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통해 경영권을 부정 승계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검찰이 아닌 외부 전문가들에게 기소 타당성을 판단받겠다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전날 오후 이 사건 수사를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검에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신청서를 제출했다.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측도 신청했다. 주요 기업 총수가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한 것은 처음이다.
수사심의위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되거나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 수사과정을 심의하고 수사 결과 적법성을 평가하기 위해 2018년 도입됐다. 수사심의위에 안건이 올라가려면 검찰청 시민위원 중 무작위로 뽑힌 ‘부의심의위원회’에서 과반수 찬성을 받아야 한다. 과반수 찬성을 받으면 수사심의위로 안건이 이동된다. 이 부회장 등은 수사계속과 기소·불기소 여부에 대한 심의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곧 부의심의위를 열어 이 부회장 등이 신청한 안건을 논의할 예정이다.
삼성 경영권 부정 승계 의혹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의 신병처리 결정은 당분간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직접수사는 2018년 11월부터 시작해 1년6개월 넘게 진행 중이었다. 당초 검찰은 이르면 이달 초순 이 부회장 등 삼성그룹 고위 임원들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관측됐다. 수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부장검사 이복현)는 지난달 26일과 29일 이 부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두 차례 소환조사했고, 기소가 유력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검찰은 이 부회장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서의 불법행위 의혹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관련 의혹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부회장은 두 번의 조사에서 모두 “보고받거나 지시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7개 계열사는 4일 준법감시위원회 정기회의에서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에 따른 후속조치 방안을 설명한다. 이 부회장이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노조 설립 방해 등 준법 의무 위반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지 약 한 달 만이다.
◆심의효력 강제성 없지만… 검찰, 다른 결론 땐 부담 클 듯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의혹에 대해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이 검찰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한 것을 두고 ‘회심의 카드’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주 이 부회장을 두 차례 소환조사한 검찰은 이번 주 내로 구속 및 기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이날 수사심의위 소집을 요청한 것은 벼랑 끝에 몰린 이 부회장으로서는 시간을 벌어보려는 의도가 있다. 또 기업 총수가 이례적으로 검찰 수사 자체에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면서 과잉수사 혹은 표적수사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수사심의위 자체가 열릴 수 있을지, 열린다고 해도 기소 결정을 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과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 변호인들은 전날 심의위 소집 신청서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팀은 심의위의 개최 및 결정이 이뤄질 때까지 사건을 처분하기가 사실상 어려워졌다.
◆수사심의위 오르려면 ‘1차 관문’ 시민 판단 거쳐야
수사심의위는 문무일 검찰총장 재직시절인 2018년 도입됐다.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주요 사건의 수사 과정을 심의하고, 수사 결과의 적법성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평가하기 위한다는 목적으로, 수사 당사자나 검사장, 검찰총장이 소집을 요청할 수 있다. 지난 2년간 총 8차례 소집됐다. 이 중 수사 당사자가 사건을 요청하는 경우에는 ‘부의심의위원회’에서 과반수 찬성을 우선 얻어야 한다. 부의심의위원회는 관할 고등검찰청 소속 지방검찰청의 시민위원 중 무작위로 추첨해 구성한다. 이 부회장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관할이므로 서울고검 밑 5개 지방검찰청의 시민위원 중 추첨한다. 서울중앙지검이 절차를 서두르고 있지만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경영권 부정승계 의혹’ 사건이 큰 논란을 불렀다는 점에서는 수사심의위 제도 도입 취지에 부합하는 면이 있다. 그러나 그동안 수사심의위가 실제로 가동된 사례는 극히 적고, 피고인 측 요청으로 수사심의위가 소집된 경우는 더 드물었다. 만약 이 부회장 측이 부의심의위의 ‘좁은문’을 통과한다면 수사심의위가 열리게 된다.
수사심의위는 사회 각층의 추천을 받아 250명의 위원 인력 풀을 구성한 상태다. 이 중 이 부회장 사건 관련 심의기일 출석이 가능한 15명으로 현안위원회를 구성해 이 부회장 사건에 대한 심의를 맡는다. 위원장은 양창수 전 대법관이다.
심의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경영권 부정승계 의혹’ 사건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외부위원들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심의 효력에는 강제성이 없어 수사심의위가 어떤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검찰 수사팀이 이를 그대로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시민의 판단을 구한 만큼 심의 결과와 검찰의 결론이 다를 경우 여론 부담을 맞닥뜨려야 한다. 한 검찰 간부는 “수사심의위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절차를 통해 시민의 눈높이에서 사건과 검찰 수사에 대해 판단을 받았다는 명분이 있는 만큼 수사심의위 결과를 많이 고려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심의위 기소 판단 여부는 미지수
수사심의위에서는 지금까지 제기된 검찰 수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총체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측된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서 출발한 삼성 경영권 승계 관련 검찰 수사는 2018년 말부터 현재까지 1년6개월 넘게 진행 중이다. ‘국정농단’ 관련으로 특검이 삼성 합병 의혹을 들여다본 것까지 합치면 4년 반째 계속되는 중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이 과정에서 ‘과잉수사’ 논란을 제기한다. 무리하게 ‘범죄’라고 예단하고 수사에 착수했다는 비판이다. 이후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하게 되자 무리하게 수사기간을 늘리면서 피고인들은 물론 삼성 전체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었다. 회계와 합병 등과 관련해 삼성 임원 30여명은 현재까지 100여 차례나 검찰에 소환된 것으로 알려졌다. ‘과도한 검찰권 남용’ 아니냐는 비판이다.
학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애초 ‘수사 대상이 아니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번 수사의 시작점이었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에 대한 회계처리 문제에서 불거졌다. 통상 부실을 숨기기 위해 재무제표를 조작하는 여타 다른 분식회계 사건과는 다르다는 지적이다.
다만 수사심의위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과거 증거 부족으로 기소가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 사건에 대해 기소 의견을 낸 전례도 있다. 검찰이 확보한 증거가 어느 정도냐에 따라 심의위의 결정이 갈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준법委 ‘이재용 사과’ 후속조치 내놓나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조만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 이후 후속조치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지적한 내부 준법감시체제가 확립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등 삼성그룹 7개 계열사는 4일 준법감시위 정기회의에서 이 부회장 대국민 사과에 따른 후속조치 계획과 이행사항 등을 보고한다. 앞서 지난달 6일 이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를 통해 4세 경영 승계와 무노조 경영 포기, 시민사회와 소통 등을 약속했다. 준법감시위는 이 부회장의 사과를 의미 있게 평가한다면서도 각 계열사가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해 보고하도록 권고했다.
후속조치에는 향후 노사관계 확립과 시민사회계와의 열린 소통 채널 구성 방안 등이 중점적으로 담겼을 것이란 추측이 나온다. 노조 활동 보장 등의 분야는 이 부회장이 단순히 노사관계법령을 준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 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전향적인 대책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삼성은 지난달 29일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와 합의를 이뤄내고 355일간의 고공 농성을 중단시키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준법감시위의 발표가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은 물론, 현재 진행 중인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검찰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삼성의 내부 준법감시제도 중요성을 강조했고, 이에 삼성은 준법감시위를 설치해 재판과 상관없이 활동을 보장하겠다고 화답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은 이미 대국민사과를 포함한 준법감시위의 권고사항을 모두 수용했다. 향후 각 계열사를 통해 후속조치까지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재판부도 이 부회장의 양형 결정에 이를 참작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수사도 이 부회장 측이 요청한 대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꾸려지면, 법리적인 부분뿐 아니라 조금 더 종합적인 측면에서 사안을 들여다보지 않겠느냐”며 “삼성과 이 부회장이 노사관계와 시민사회 소통 등 공익적 차원의 노력을 계속하고 국민 여론에 변화가 생기면, 검찰과 사법부의 판단에도 영향이 없진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도형·박세준·김청윤·정필재·나기천 기자 scop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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