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자객공천’인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적’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오는 11월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하원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의원인 펠로시 의장의 현 지역구에 ‘출사표’를 던진 공화당의 정치 신인을 적극 응원하고 나선 것이다.
28일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를 보면 ‘디에나 로레인’이란 이름의 공화당 정치 신인의 트윗을 리트윗한 글이 눈에 띈다. 디에나 로레인은 펠로시 의장의 하원 지역구인 캘리포니아 제12구에 공화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여성 정치인이다.
로레인은 자신의 트위터에 “제 이름은 디에나 로레인입니다. 이번 하원의원 선거에서 낸시 펠로시와 맞붙을 ‘시칠리안 스핏파이어’죠. 저는 그(펠로시)의 영혼없는 리더십을 사랑, 법치주의, 그리고 불같은 애국심으로 대체하려 합니다”라고 적었다.
스핏파이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서유럽 및 북아프리카 전선에서 맹활약한 영국 공군의 ‘명품’ 전투기다. 영·미 연합군이 지중해의 시칠리아섬을 통해 독일의 동맹국인 이탈리아로 진격할 때 이탈리아 및 독일 공군 전투기와 맞서 닥치는대로 격추하며 엄청난 전과를 올렸다.
이어 로레린은 ‘틱톡’이라고 시계 초침 소리를 흉내낸 뒤 “늙은 낸시여, 당신이 미국인들한테 저지른 범죄의 책임을 지고 몰락할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라고 조롱했다. 올해 80세로 하원의원 17선을 기록 중인 정계 원로 펠로시 의장을 향한 언행이라기엔 지나치게 무례해 보인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로레인의 트윗을 리트윗하는 형식으로 그에게 잔뜩 힘을 실어줬다. 리트윗과 함께 적은 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낸시가 하원의원으로 있는 동안 그의 지역구(캘리포니아 제12구)는 미국의 다른 어느 지역보다 낙후했다”고 비웃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펠로시 의장의 ‘대항마’로 나선 공화당의 정치 신인을 응원하는 건 펠로시 의장에 대한 분노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야당이자 하원 다수당인 민주당을 이끄는 펠로시 의장은 지난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트럼프 대통령을 밀어붙였고, 급기야 하원 탄핵소추까지 성사시켰다. 비록 공화당이 우세인 상원에서 탄핵안이 부결되긴 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된 3번째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 탄핵 문제가 마무리되고 의회에서 신년 연설을 할 때 펠로시 의장의 악수 요청을 거부, 여전한 ‘뒤끝’을 보여줬다. 그러자 펠로시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문 원고를 찢어버렸고 이는 백악관을 더욱 더 격분시켰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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