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 대전 하나시티즌 감독이 28일 남해의 한 호텔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오른손 검지로 하늘을 가리키며 승격에 대한 의지를 밝히고 있다. 남해 | 황민국 기자
황선홍 대전 하나시티즌 감독(52)은 요즈음 부드러운 남자가 됐다.
자신의 축구 철학을 고집하지 않는다. 골만 넣을 수 있다면, 그리고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면 그 누구에도 귀를 기울인다. 국내를 넘어 아시아를 호령했던 포항 스틸러스 시절 외국인 선수를 배제해 ‘황선대원군’이라 불렸던 것을 떠올리면 믿을 수 없는 변화다.
황 감독은 18일 국내 전지훈련지인 남해의 한 호텔에서 ‘스포츠경향’과 만나 “변했다고 말하면 조금 이상할 수도 있다. 그저 세월이 흐르니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라며 “내가 갖고 있는 틀에서 벗어나기로 했다”고 말했다.
황 감독의 변화는 최근 몇년간 어려움을 겪으면서 과거의 성공 방식만 고집하면 안 된다는 성찰에서 비롯됐다. 2018년 FC서울에서 스스로 지휘봉을 내려놓은 그는 이듬해 중국 옌벤에선 해체의 아픔까지 겪었다. 올해 기업구단으로 재창단한 대전에선 창단 감독으로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는 다짐 아래 새로운 길을 찾게 됐다.
황 감독의 새로운 길은 선수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에서 시작됐다. 지난달 스페인 발렌시아 전지훈련에선 일부러 FC바르셀로나의 경기를 현장에서 관전한 뒤 회식 자리를 만들어 자유로운 토론 현장을 유도했다. 본격적으로 전술을 가다듬는 남해에선 외국인 선수들이 선호하는 전술과 움직임까지 직접 대화하면서 다져가고 있다. 장신 골잡이(1m97) 브루노 바이오가 알려진 것과 달리 공중볼 경합을 선호하지 않기에 전술 줄기를 수정한 게 대표적인 성과물이다.
황 감독은 “바이오는 큰 선수지만 몸 싸움을 선호하지 않았다. 직접 물어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사실”이라며 “또 다른 외국인 선수 안드레 루이스도 영상과 달리 오른쪽 측면에서 뛰는 걸 좋아하기에 전술의 제약을 풀어줬다”고 말했다.
황 감독이 자신의 축구 철학 대신 선수들에게 맞춤 전술을 준비하는 것은 짧은 준비시간의 한계도 영향을 미쳤다. 선수들의 절반 이상이 바뀐 상황에서 2개월 만에 오밀조밀한 패싱 게임과 약속된 패턴을 준비할 수 없으니 아예 선수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축구로 바꿨다. 황 감독은 “예전에는 선수들을 내가 갖고 있는 틀에 맞췄지만, 지금은 그 선수들을 살리는 방법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짧은 패스냐, 긴 패스냐는 선택일 뿐”이라며 “대전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만 찾고 있다”고 말했다.
황 감독의 실리주의는 오는 29일 K리그2 개막전 상대인 경남FC와 연습경기 및 훈련 영상을 공유하는 파격에서도 드러난다. 공교롭게도 두 팀 모두 남해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상황이 연출되자 불필요한 마찰 대신 ‘오픈’을 선택한 것이다. 황 감독은 “이 부분도 옛날 같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한·일월드컵 멤버인 설기현 경남 감독과는 말이 통했다”고 활짝 웃었다.
황 감독은 자신이 변한 만큼 선수들도 변하기를 바란다. 오랜만에 축구의 봄날을 찾은 K리그에서 여전히 약점으로 손꼽히는 팬심 찾기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황 감독은 최근 예능프로그램 <뭉쳐야 찬다>에 출연해 대전의 이름을 알리려고 노력했다. 여전히 축구가 아닌 곳에 발을 내딛는 게 불편하지만 감독이 솔선수범해야 선수들도 따른다는 생각이 영향을 미쳤다. 다행히 “감독이 말려도 팬들이 원하면 버스가 떠날 때까지 사인을 하겠다”(골키퍼 김동준)고 선언하는 선수들이 생겼다. 황 감독도 “사인을 하느라 버스를 놓친 선수가 나오면 따로 차량까지 준비하겠다”고 화답했다. 올해 대전의 목표로 제시한 1부리그 승격과 함께 팬심을 잡아 명문 구단으로 단숨에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다. 황 감독은 “감독만 달라지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며 “우리 선수들이 한 명의 팬이라도 더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게 올해 우리의 또 다른 목표”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