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파병에 나선 청해부대가 지난 1일 표류 중인 이란 선박을 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달 21일 고심 끝에 청해부대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결정했던 정부는 반색했다. 미국의 압박에 굴복한 조치라거나, 해적퇴치에서 전투 임무까지 부여받아 국회 비준동의를 거쳐야 한다는 등의 정치권 반발을 희석시킬 수 있는 호재(好材)라서다. 외교적 갈등이 예상됐던 이란과의 관계를 부드럽게 가져갈 수 있는 기회도 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선박 구조 사실은 2일 합동참모본부를 통해 서둘러 언론에 전파됐다.
#. 호르무즈에서 청해부대의 전투 가능성은
정부는 호르무즈 파병을 발표하면서 미국 주도의 국제해양안보구상(IMSC)에는 참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확대된 파견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해도 필요할 경우에는 IMSC와 협력할 예정”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바레인에 있는 IMSC 본부에는 청해부대 소속 장교 2명을 연락장교로 보낸다고 했다. 명목상 독자 작전을 편다지만 막후에서 IMSC와 공조해 움직인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미국의 요청 시 전투에도 가담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는 대목인 셈이다.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되는 청해부대는 소말리아 아덴만 일대에서 해적퇴치와 선박호송 등을 지원해온 부대다. 2009년 3월 1진이 처음 출항한 이후 아덴만 해역에 출몰하는 해적을 퇴치하고 우리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펼쳐왔다.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한 ‘아덴만 여명 작전’이 대표적이다. 임무 자체가 해적퇴치에 다소 제한돼 있다 보니 이번 호르무즈 파병으로 전투 수행을 위한 작전능력 확보가 시급하다는 우려가 이어졌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이제 청해부대 임무는 이전 해적을 상대하는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다”면서 “해적을 상대하는 무기하고 전투에 사용되는 무기는 차원이 다르다. 그만큼 성격이 바뀌는 거다.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중동지역 정세를 살펴보는 것도 향후 청해부대의 전투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있다.
이란은 과거 이라크와의 전쟁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이 전쟁은 1980년 9월 22일 이라크 군대가 양국의 접경지대에 있는 이란 서부지역을 침공함으로써 시작됐다. 이라크는 이란 국경 지역에 위치한 풍부한 유전지대인 후제스탄을 장악하려 했다.
유엔 중재로 막을 내린 이 전쟁 이후 이란은 거의 모든 군사충돌은 피해왔다. 이라크와 예멘에 대한 산발적인 재정적·군사적 지원이나 시리아와 레바논과의 동맹 유지를 위한 혁명수비대 파견 정도에 그쳤다. 직접 다른 나라를 공격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이런 이란이 중동의 맹주가 된 데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미국과 이란이 호르무즈에서 섣부른 군사행동에 나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군사전문가들은 21세기 가장 성공적인 군사전략은 사태를 관망해가며 다른 나라들이 서로 싸우게 하는 것으로, 호르무즈에서 이란이 미국을 직접 공격할 개연성은 거의 전무하다고 보고 있다. 국회 비준동의 문제로 논란이 된 청해부대 임무가 전투보다는 호송 및 호위에 치우칠 개연성이 높다는 얘기다.
#. 21세기 성공적 전쟁 수행이 힘든 것도 호르무즈에서의 전투 가능성 작게 해
21세기는 성공적인 전쟁 수행이 어려워진 시대다. 전쟁을 통한 부의 축적 내지, 경제적 수탈이 불가능해졌다는 의미다. 오늘날 주요 경제자산은 기술적·제도적 자산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토지나 광산, 유전과 같은 유형이 아닌 무형자산이다. 물론 무역체제를 바꿔 이득을 취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21세기는 이런 업적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2014년 2월 러시아는 이웃한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크림반도를 점령한 뒤 합병까지 했다. 러시아는 전투를 거의 하지 않고 전략적 요충지를 얻었고 세계열강의 위상을 재확인했다. 그런데 경제적 측면에서 이 전쟁은 ‘밑진’ 장사였다. 크림반도를 차지한 것만으로는 전비(戰費)를 충당하기 어려웠고, 자본 이탈과 국제 제재에 따른 손실을 상쇄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달 이란은 미국이 자행한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에 따른 보복으로 미사일 포격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사전에 공격 시점을 미국에 알렸다는 사실이 공개됐다. 자칫 확전 상황으로 이어져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 피해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됐다. 이후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미국과 이란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은 더욱 낮아졌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는 예측불허로 속단은 금물일 수 있다.
호르무즈에서 전투 발발 가능성을 낮추는 또 다른 요인은 사이버전이다. 만약 미국이 호르무즈에서 이란을 공격한다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몇 분 안에 컴퓨터 악성코드로 미 본토의 교통과 전력망을 비롯해 금융시장을 마비시키는 방안을 강구토록 지시할 것이다.
무인기를 이용한 전투도 거론된다.
메흐란 캄라바 미국 조지타운대 카타르캠퍼스 국제·지역학연구소장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가진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파병했을 수 있지만, 군사적으로만 보면 (파병) 조치가 필요했다고 할 수 없다”며 “(만약 전투가 발생한다면) 이란으로서는 무인기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송유관 등 유조시설을 공격하는 게 훨씬 저비용 고효율”이라고 말했다.
그는 위기상황에서 한국군이 미군의 IMSC에 참여할 경우 이란군이 한국군을 공격할 가능성에 대해선 “그럴 것 같지 않다”며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청해부대의 호르무즈 파병이 전투 임무 수행 여부보다 미국과의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더욱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박병진 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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