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59) CJ그룹 회장이 세무당국이 부과한 세금 중 약 1562억원을 덜어내며 세금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사실상 승소했다. 이에 따라 6200억원 비자금 차명 운영 등 탈세·횡령·배임 혐의를 받는 이 회장에게 부과됐던 2614억원의 세금 중 112억만 남게 됐다.
서울고법 행정11부(부장판사 김동오)는 11일 이 회장이 서울 중부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1674억원의 증여세 등 부과처분 취소 소송 항소심에서 “약 1562억원을 취소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1심은 71억원에 대해서만 취소해야 한다고 판단했었다.
이 회장은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7개의 SPC를 설립한 뒤 주식을 취득·양도해 이익을 취한 조세 포탈 혐의를 받았다. 재판부는 이 회장이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 명의로 취득하거나 SPC가 해외 금융기관과 증권거래에 관한 대행 계약을 체결하고 CJ 주식에 관한 명의합의 신탁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를 근거로 이 회장과 해외 금융기관이나 SPC 사이에 CJ 주식에 관한 명의신탁을 한 것으로 보고 구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증여세를 부과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구체적으로 증여세 약 1562억원과 양도소득세 약 33억원, 종합소득세 약 78억원에 대한 처분이 위법하다고 봤고, 나머지 112억원만 적법한 처분이라고 봤다.
중부세무서는 2013년 9월부터 11월까지 이 회장이 명의신탁한 주식 등을 양도해 소득이 발생했음에도 부당한 방법으로 과세표준을 신고하지 않았다며 증여세·양도소득세·종합소득세 등 총 2614억원을 부과 처분했다.
이 회장은 이같은 세금 부과가 부당하다며 조세심판원에 심판을 청구했고, 조세심판원은 2017년 11월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로 확정된 940억원을 취소하라며 일부 받아들였다.
이 회장은 “각 SPC를 지배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법상의 소유권까지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며 “해외 금융기관과 명의신탁에 관한 합의가 없었다”고 남은 1674억원에 대한 부과처분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앞서 1심은 이 중에서 가산세 71억원 처분만 위법하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사실상 패소 판결을 했다. 1심 재판부는 “이 회장이 조세회피 목적을 넘어 명의신탁 사실을 은폐해 부당한 방법으로 과세표준을 신고 안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식취득 자금은 모두 이 회장 개인의 자금이고 취득과 보유·처분 모두 이 회장의 이익을 위해 이 회장에 의해 결정됐다”며 “주식의 실제 소유자인 이 회장과 명의자인 해외 금융기관 사이에 명의신탁에 관한 합의나 의사소통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나머지 부과 처분은 모두 적법하다고 봤다.
한편 이 회장은 2013년 7월 국내 비자금 3600여억원과 해외 비자금 2600여억원 등 총 6200여억원의 비자금을 차명 운영하며 546억원의 조세를 포탈하고, 719억원 상당의 국내외 법인자산을 빼돌리는 등 탈세·횡령·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1·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대법원 파기환송을 거쳐 2015년 징역 2년6개월에 벌금 252억원이 확정됐다. 건강 악화를 사유로 형집행정지를 반복하다가 2016년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풀려나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나진희 기자 naji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