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가 지나도 여전히 어리고 귀엽게만 보였던 딸이 3월이면 고3이 된다. 치열한 수험생이 된다는 생각에 안타깝고 측은하게만 보였던 딸이 어느 날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던져 깜짝 놀랐다. 딸의 질문은 바로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 누굴 뽑아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하고 세상 물정도 잘 모른다고 생각했던 딸이 왜 이런 고민을 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딸의 설명을 듣고 나의 무지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3월 초가 생일인 딸이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 생애 첫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만 18세가 되면 투표권을 준다는 것을 그냥 흘려듣다가 우리 딸이 어느새 그런 나이가 됐다는 데 먼저 놀랐고, 고3이 단순한 수험생이 아니라 한 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권리를 갖게 되는 나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데 다시 한 번 놀랐다.
어쨌건 첫 투표에 참여하게 된 딸은 당장 어떤 후보를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며 똘망똘망한 눈으로 아빠의 조언을 구하는 눈치다. 친구들 대부분이 아직 투표권이 없어 이런 얘기를 나눌 주변 사람도 없다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누구를 찍으라고 아예 점지를 해줘도 따를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잠시 “넌 정치 같은 거 신경 쓰지 말고 공부나 하다가 아빠가 찍으라는 사람 찍어”라고 답해주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첫 투표를 떠올렸다. 당시에도 나에게 어떻게 하라고 강요하는 어른들이 있었고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크게 반발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딸이 나에게 질문을 던진 이유가 답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투표를 하기 전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조언을 해 달라는 얘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됐다.
문제는 내가 아직 첫 투표를 앞둔 딸에게 좋은 조언을 해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단순히 대선 후보 하나하나에 대해 개인적 호불호를 얘기해 줄 수는 있겠지만 이것이 오히려 후보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특히 이번 대선 후보들을 두고 유독 “마땅히 찍을 사람이 없다”고 푸념하는 어른들의 얘기를 이미 많이 들어온 것 같아 첫 선거부터 투표 참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가질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일단 나부터 이번 대선 후보에 대해 조금 더 적극적으로 알아보려고 한다. 단순한 인상비평이 아니라 후보 각각의 공약도 자세히 살펴볼 계획이다. 그리고 선거 공보물이 집으로 오면 딸과 함께 각 후보의 장단점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를 나눠 볼 생각이다. 그래서 딸이 첫 투표를 스스로 판단해 결정한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하는 멋진 아빠가 되고 싶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아빠의 편견과 은근한 강요가 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빠의 말이 자기 생각과 다른 게 있을 때 딸이 곧바로 반박할지, 아니면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지, 혹은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아빠 생각이 틀렸다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어떤 모습이건 간에 딸이 투표라는 한 나라 국민이 행사할 수 있는 최고의 권리를 최대한 주체적 판단에서 행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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