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제 도입 후 8명만 임기 채워
개인비리 연루·검란에 밀리기도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기를 넉 달가량 남겨놓고 4일 사의를 표명하면서 검찰총장 임기제 도입 후 임기를 지키지 못한 14번째 총장이 됐다. 윤 총장은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적폐수사’를 진두지휘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임을 얻었지만 ‘역린을 건드린 검찰총장은 단명한다’는 검찰총장 잔혹사의 고리를 끊지 못했다.
문 대통령 등 여권의 지지와 박수를 받으며 취임할 당시 “형사 법 집행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이므로 오로지 헌법과 법에 따라 국민을 위해서만 쓰여야 하고, 사익이나 특정세력을 위해 쓰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윤 총장은 결국 여권이 자기편 이익을 위해 형사사법 시스템마저 흔든다는 생각으로 직을 던졌다. 적폐수사 당시 윤 총장에게 환호했던 여권은 검찰의 칼이 자신들에게도 향하자 윤 총장 축출에 온갖 무리수를 뒀고, 결국 윤 총장도 대다수 선배처럼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
1998년 13대 국회에서 만든 검찰총장 임기제 이후 임명된 22명 중 임기를 지킨 검찰총장은 8명에 불과하다. 윤 총장처럼 자신을 임명한 정권과의 갈등으로 중도 사퇴한 사례는 노무현정부의 김종빈 전 검찰총장과 박근혜정부의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대표적이다. 김 전 총장은 2005년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고 헌정 사상 처음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자 이를 수용한 뒤 항의 차원에서 사표를 던졌다. 채 전 총장은 2013년 박근혜정권의 정당성을 흔들 수 있는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의혹 사건 수사를 밀어붙이다 혼외자 의혹이 불거지면서 물러났다. 반면, 노무현정부의 송광수 전 검찰총장은 2002년 대선 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하면서 안희정·이광재 등 정권 실세들을 처벌하는 등 정권에 부담스러운 존재였지만 2년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개인 비위로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난 경우도 적지 않다. 김영삼정부의 박종철 전 검찰총장은 공직자 재산 공개로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되자 취임 6개월 만에 사퇴했다. 김대중정부의 신승남 전 검찰총장은 취임 직후 동생이 당시 대표적인 권력형 게이트로 꼽힌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된 의혹을 받자 약 8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이 밖에 이명박정부의 한상대 전 검찰총장은 당시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을 겨냥한 감찰과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추진하다 검찰 내부의 반발에 부딪혀 스스로 물러났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수사에는 좌우, 진보·보수가 없다”며 “검찰총장 임기제는 단순히 임기만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줄 장치로 도입됐지만 결국 중립성을 보장하지 않은 것은 수사에 불편했던 권력임을 역사가 방증한다”고 꼬집었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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