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박경수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KT가 박경수가 투수 데뷔 문턱까지 다녀왔다. 만약 마운드에 올랐다면 승부가 이미 난 경기, 마운드에 오른 KBO 최초의 야수가 될 뻔 했다.
KT는 24일 잠실 LG전에서 8-12로 졌다. 스코어는 4점차이였지만 6회부터 사실상 포기한 경기였다. 6회말이 끝났을 때 점수는 3-12로 벌어져있었다. 필승조를 투입할 수 없는 경기 흐름이었다.
KT 이강철 감독은 선발 알칸타라를 4이닝만에 교체했고, 이정현, 정성곤 등이 이어던졌다. 승부가 기운 뒤인 6회부터는 좌완 김대유가 마운드에 올랐다.
좌안 사이드암스로에 가까운 김대유는 올시즌 2이닝을 넘어서 던져 본 적이 없다. 투구수 40개를 넘겨 본 적도 없다. 게다가 KT는 전날인 23일 롯데전에서 12회 3-3 무승부를 기록했기 때문에 불펜이 모두 소진됐다. 이미 승부가 난 경기, 나와서 던질 투수가 없었다.
6-12로 뒤진 8회말 LG 구본혁이 볼넷을 골라 나갔을 때 김대유의 투구수는 38개였다. 2사 1루, 다음 타자는 이성우였다.
KT 이강철 감독은 이 장면을 복기하며 “김대유에게 40개 넘는 투구는 부담스러웠다. 이미 승부가 난 경기였기 때문에 박경수의 등판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직전 이닝 지명타자 자리에 대타로 투입된 박경수는 이 감독의 지시에 따라 캐치볼로 몸을 풀기까지 했다.
하지만 김대유가 이성우를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박경수의 투수 데뷔는 무산됐다.
이강철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는 자주 벌어지는 일로 알고 있다. 전날 연장전을 벌이면서 투수가 없었다. 팬들에게 재미를 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면서 “만약 박경수 등판 상황이 됐다면, 내가 직접 올라가서 상대 감독님한테 멀리서나마 양해를 구하는 식으로 교체를 해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의 포수 러셀 마틴은 올시즌 벌써 3경기에 등판해 3이닝 1안타 무실점을 기록 중이다. 승부가 기운 경기 마지막 이닝을 책임지기 위해 등판했다.
KBO리그에서 이미 승부가 기운 경기, 야수가 마운드에 오른 적은 없다. 과거 무승부가 ‘패’로 기록됐던 2009년 SK 최정이 KIA전에서 승리가능성이 없어지자 동점이던 12회말 투수로 등판한 적은 있었다. 이제 ‘시도’는 이뤄졌다. KBO리그에서도 승부가 끝난 경기 막판 야수의 등판을 볼 날이 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