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해결, 재발 방지에 책임 다하는 것이 우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4월 7일로 예정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하기로 사실상 방침을 굳히고 당헌 개정 절차에 착수한 가운데 시민단체들이 “성폭력 문제를 반복하고도 이를 사소화하려는 남성 기득권 정치에 절망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개정하려는 당헌 조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의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한 경우 재보궐선거에서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인데, 개정이 성사되면 민주당은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궐위로 치러지는 내년 4·7 재보선에 후보를 공천할 수 있게 된다.
오 전 시장은 여자 직원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스스로 물러났다. 박 전 시장은 전직 여성 비서에 의해 성추행 혐의로 고소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으로 구성된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과 오거돈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30일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이 현 당헌 96조 2항을 개정하는 절차에 착수한 것을 강력하게 규탄했다. 현 당헌 내용대로라면 민주당 출신 선출직 공직자에게 귀책 사유가 있는 서울 및 부산의 시장 공백 사태 해소를 위한 보궐선거에 민주당은 후보를 공천할 수 없다. 그러자 이낙연 대표의 결심 아래 민주당이 ‘당원 투표’라는 형식을 빌려 아예 당헌을 고치는 작업에 나선 것이다.
공동행동과 공대위는 기자회견에서 “기존 조항은 ‘선출직 공직자의 잘못’에 대한 당 차원의 성찰과 재발 방지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며 “그러나 민주당은 ‘후보 공천을 통해 시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공당의 도리’라고 주장하며 일말의 반성도 없는 당헌 개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민주당은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서 근본적 성찰도 없이, 재발 방지와 책임있는 대책도 없이, 2차 피해에 대한 제지와 중단 노력도 없이, 피해자 일상 복귀를 위한 사회적 환경 개선 노력도 없이, 오로지 권력 재창출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것이 민주당에서 말하는 ‘책임있는 공당의 도리’인가”라고 반문했다.
공동행동 및 공대위는 민주당 지도부를 겨냥해 “우리는 성폭력 문제를 반복하고도 이를 사소화하려는 남성 기득권 정치에 절망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반성도 성찰도 없는 정치에 우리의 심판은 이미 내려졌다”며 “민주당 지도부는 당헌 개정 절차를 즉각 중단하고 사건 해결과 재발 방지를 위해 책임을 다해 임하는 것만이 부산시장과 서울시장 재보선 선거 초래에 책임지는 방법”이라고 일갈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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