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규모 각 1조6000억·5100억 달해
라임 주범 김봉현 옥중편지가 도화선
“野인사·현직검사에 로비… 수사 안해”
秋법무, 尹총장 배제 수사 지휘권 발동
黨·靑, 옥중편지 반색 난투극에 합류
금융당국 늑장 대처, 핵심 인물 도주
사기극 이면에는 거대한 부패 권력
요즘 대한민국에는 ‘권력형 게이트’ 망령이 떠돈다. 검찰은 4월 라임자산운용의 돈줄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과 이종필 부사장 등을 검거했고 7월에도 옵티머스자산운용 김재현 대표 등 4명을 구속했다. 피해 규모가 각각 1조6000억원과 5100억원에 달하는 희대의 금융사기극은 막을 내리는 듯했다. 그런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김 전 회장은 이달 초 법정에서 “강기정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옵티머스 운영진이 작성한 ‘펀드 하자 치유 관련’ 문건에는 “정부와 여당 관계자들이 프로젝트 수익자로 참여했으며 펀드설정과 운영에도 관여했다”고 적시돼 있다. 권력형 비리의 지옥문이 열린 것이다. 정가는 발칵 뒤집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정면 충돌하며 공권력 권위가 바닥을 모른 채 추락했다. 정치는 물론 사법기관마저 불신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라임·옵티머스사태를 둘러싸고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반전을 거듭하는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다.
◆법·검 갈등 점입가경
라임 사기의 주범 김 전 회장의 옥중편지가 도화선이었다. 그가 “야당 정치인, 현직 검사에게 로비했다고 밝혔으나 검찰이 수사하지 않았다”고 하자 추 장관은 수사팀 감찰을 거쳐 윤 총장을 라임 수사 등에서 배제하는 지휘권을 발동했다. 대검이 “중상모략”이라고 반박하자 추 장관은 “대검이 국민을 기망했다”고 맞받았다. 윤 총장은 국정감사에서 중범죄자 얘기를 듣고 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는 것은 비상식적이라며 “(수사지휘가) 근거·목적 등에서 위법하다”고 정면 반박했다. 라임 수사를 지휘해온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이 수사지휘권에 동의할 수 없다며 사표를 냈다. 그는 “정치가 검찰을 덮어 버렸다”고도 했다. 박 지검장은 윤 총장의 장모를 기소해 한때 ‘추 장관 라인’으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그러자 추 장관은 총장에 대한 감찰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정치권에도 게이트 논란이 불붙었다. 강 전 수석의 5000만원 수수 의혹에 입을 꾹 다물었던 청와대와 여권은 옥중편지에 반색하며 법·검 난투극에 합류했다. 청와대는 지휘권 발동이 불가피하다며 추 장관에 힘을 실어줬다. 더불어민주당도 “윤 총장이 무소불위한 검찰 권력의 단면을 보여줬다” “라임은 검찰 게이트다”라고 몰아붙였다. 이낙연 대표는 윤 총장의 지휘권 불법 발언에 대해 “국민의 대표가 행정부를 통제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도 무시하는 위험한 인식”이라고 했다. 그러자 야권은 “사기꾼과 여당, 법무장관이 한 팀이냐”며 공세를 폈다.
◆청와대 인사 연루
라임과 옵티머스 사건에는 청와대 인사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옵티머스 사태의 주요 고리 중 하나가 청와대 민정수석실 이모 전 행정관이다. 그는 옵티머스 지분 9.8%를 지닌 대주주로 구속 수감 중인 옵티머스 윤모 이사의 아내다. 옵티머스 돈세탁 창구인 유령회사 ‘셉틸리언’의 최대주주여서 자금흐름에 관여하고 수사정보를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감에서는 펀드 가입 유명인사와 로비대상 정치인, 검사를 놓고 여야간 실명 폭로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자문단에는 전직 경제부총리와 검찰총장이 이름을 올렸다.
라임 사태에서도 김모 전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이 등장한다. 김 전 행정관은 김 전 회장에게 사건무마 청탁과 함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지난 4월 구속됐다. 그는 작년 8월 강남 룸살롱에서 금융감독원 검사역으로부터 라임 검사계획서를 넘겨받아 옆방에 있던 김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 김 전 회장은 평소 지인들에게 “(청와대)민정수석, 정무수석라인을 타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수상한 금감원·공공기관
사기극의 핵심인물이 잠적하거나 도주하는 일이 다반사다. 라임의 김 전 회장과 이종필 부사장은 지난해 구속영장청구 직후 달아난 뒤 5개월 만에 붙잡혔다. 옵티머스의 설립자 이혁진씨는 미국으로 도주했고 정치권 로비를 도맡았던 신모씨의 행방도 묘연하다. 금융당국의 늑장대처도 도마에 오른다. 금감원은 2015년 이후 전담팀마저 없애며 사모펀드 감독에 손을 놓았다. 올해 들어서는 옵티머스의 부실징후를 포착하고도 수개월 방치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김재현 대표는 전·현직 금감원 간부 등에게 금품을 건네며 도움을 요청했다.
불똥은 공공기관과 금융회사·기업에도 튀었다.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과 농어촌공사 등 공공기관들이 옵티머스에 1100억원을 투자했는가 하면 NH투자증권이 펀드 판매를 도맡았다. 한화종합화학 등 코스피·코스닥 기업 59곳과 성균관대 등 주요 대학도 펀드에 가입했다가 손실을 봤다.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과 기업 오너들까지 당했다. 펀드의 안전성을 전문적으로 따지는 공공기관·대기업과 해박한 금융지식을 지닌 유명인사들까지 실체도 불분명한 사모펀드에 ‘묻지마 투자’를 한 것이다. 금융가에선 권력층 비호나 도움 없이 가당치 않은 일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청와대 인사 연루부터 추 장관의 지휘권 남용·위법 논란, 허술한 금융감독, 공공기관의 펀드 가입까지 이상한 일투성이다. 이 모든 게 우연일까. 사기극 이면에는 탐욕과 부패에 빠진 거대한 권력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게 틀림없다.
주춘렬 논설위원 clj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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