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코로나 사태로 학교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거리두기를 지키며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지 않으며, 다 먹으면 신속하게 밖에 나가는 것이 생활화되었다. 식사 후 잠시 학교 운동장 주변을 산책한다. 선선한 바람 속에 높은 하늘은 비늘구름이 늘어나고 밤나무 열매는 어느새 풍성하게 여물고 있다. 나뭇가지는 무거운 듯 몸을 기대고 바늘 옷에서 윤기가 나는 갈색 가죽을 보여준다. 밤나무는 1만 년 이상 전부터 식용으로 사용되어 왔다고 하는데 이 나무는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왔을까 생각으로 바라본다. 학교 근처에는 등산을 할 수 있는 산기슭이 있어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맛볼 수 있다.
산책로 발밑에 구절초가 자유분방하게 피어 있다. 가로로 뿌리를 뻗는 성질이 있어서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 국화 종류는 지구상 대부분에서 생육이 가능한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고 한다. 함께 산책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이건 내 생일화라서 미안하지만’라고 하면서 자기 책상에 장식하려고 꺾는다. ‘이왕이면 더 많이 따는 게 어때요?’하면 아직 청년 같은 선생님이 ‘저한테는 이만큼이 딱 맞으니까’라고 본심인지 농담인지 모를 말을 한다.
산책을 하다 보면 지렁이도 엄청 많이 나와서 비가 온 다음 날은 조심하지 않으면 밟을 정도다. 지렁이는 몸 표면 전체에서 피부 호흡을 한다. 그래서 비가 와서 땅에 수분이 많아지면 숨을 쉴 수 없어 밖으로 나온다. 땅속에서 지상으로 피신했다가 아스팔트에 나온 지렁이는 그곳에서 결국 말라 죽는다. 왜 진작 흙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지 않았느냐고 하소연해도 지렁이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렁이는 손, 발, 머리 등 현저하게 눈에 띄는 기관이 하나도 없어 하등 동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오히려 복잡한 형태를 가진 조상들로부터 지중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단순화를 일으키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고 한다. 인간의 눈에는 ‘퇴화’라고 보일지 몰라도 그들에게는 ‘진화’이다.
지금의 운동장은 뛰어다니는 학생이 없어서 마치 들판처럼 되어버렸다. 그 안에서 환경미화원들이 잡초를 뽑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일본어 회화실로 향한다. 일반 교실의 절반 정도 넓이의 좁은 회화실에서는 거리 두기가 어렵기 때문에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가끔 환기를 하러 가보면 나무 의자나 문에 파랑, 검정, 흰색 등 알록달록한 곰팡이가 피어 있어 무척 놀란 적이 있다. 미생물이 지구상 생태계의 본질이고 그 본능으로 그들의 생명력을 자유롭게 퍼져나가는 것뿐인데 인간은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균을 제거하는 데 바쁘다.
‘생물 다양성’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동식물부터 균류의 미생물까지 생식하는 모든 생물들이 서로 의지하여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를 말한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다양한 종류의 생명체를 유지하며 균형을 이루어 그들만의 자연계를 만들어 온 생물인 것을 생각할 때 거기에는 분명 경이로운 점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요코야마 히데코 원어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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