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메린 매케나
역자 - 김홍옥
출판사 - 에코리브르
쪽수 - 512쪽
가격 - 25,000원 (정가)
‘항생제’를 통해본 현대 세계사
인류가 직면한 또 하나의 심각하고도 긴급한 ‘항생제 내성’
책 제목 ‘빅 치킨(Big Chicken)’은 사족 없이도 이 책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를 대번에 직관적으로 알아차리게 해준다. 세계적인 거대 제약회사를 지칭하는 용어 ‘빅 파마(Big Pharma)’처럼 말이다. 빅 치킨은 공장형 집중사육을 특징으로 하는 오늘날의 거대 가금기업을 일컫는 것이자, 그 기업들이 생산하는 빠르게 성장하고 가슴살이 두둑한 일명 뻥튀기 닭을 지칭하는 용어다. 그러니까 이 책은 한마디로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빅 치킨이 등장하게 된 경위, 빅 치킨의 빛과 그림자, 그리고 그에 맞선 성찰적 노력의 결실을 담아낸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치킨너겟을 다시는 종전과 같은 눈길로 바라볼 수 없게 되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고 평한 이가 있는데 정말이지 맞는 말이다. 이 책을 접하기 전 대다수 사람들은 매일이다시피 닭고기를 소비하면서도 과연 닭이 어떻게 사육되고 도살·가공되어 우리 식탁에 오르는지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을 것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공장형 가금 사육장·자동화한 도살 가공 공장의 광경을 담은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갓 부화한 병아리들이 컨베이어벨트에서 이리저리 치이면서 얼떨떨하고 곤욕스럽게 생을 시작하는 모습, 비위생적인 공장형 양계장에서 사육되는 건강하지 않아 보이는 닭들의 처연한 모습, 도살 무게에 이르러 산 채로 발목 족쇄에 거꾸로 매달린 채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서서히 그 본연의 종착점인 닭고기로 변신해가는 광경 등을 볼 수 있다. 일단 이 모든 과정이 거의 완전하게 자동화되어 있다는 사실, 기계장치가 정교하고 아름답게(?) 작동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에 맞추기 위해서는 닭이 몸무게며 신장이 일정한 제품처럼 사육되어야 한다는 것도 일면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가장 주된 감정은 역시 불편함이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다. 한층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항생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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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부는 우리가 어쩌다 항생제를 사용하기에 이르렀고 또 거기에 의문을 품게 되었는가, 그리고 어쩌다 산업형 닭고기를 생산하기에 이르렀고 또 그를 재고해보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내용이다. 그래서 마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산업화의 전개 과정을 닭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것처럼 읽힌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기계화·속도와 효율·일관성과 획일성 따위를 중시하는 산업화가 전개되었고, 그 과정에서 환경 파괴와 오염·전통적 가치의 붕괴·소수 거대기업의 독과점에 따른 중소 규모 혹은 독립적 기업의 몰락·공동체 지향적인 감수성의 파괴 등 숱한 부작용이 드러났으며, 그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뒤따르는 과정 말이다. 저자는 닭의 산업화가 가능했던 것은 순전히 항생제 덕분이고, 그에 대한 반성과 성찰 역시 농장에서 상시 사용하는 항생제가 내성을 키움으로써 인간 건강에 뜻하지 않은 위험을 안겨주었다는 인식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암이나 심장병, 당뇨병 같은 생활습관형 질환보다 외상에 따른 감염에 의해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어이없이 목숨을 잃는 사례가 훨씬 더 많았다. 1943년 페니실린이 보급됨에 따라 항생제 시대가 열리면서 이런 상황이 극적으로 달라졌다. 사형선고나 다름없던 전염병을 며칠 만에 물리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항생제를 기적의 약물이라 부르며 열렬히 환호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7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 우리는 ‘(항생제가 듣지 않는) 항생제 이후 시대’를 우려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항생제 출현으로 인한 이점들을 흥청망청 소비한 데 따른 대가다. 그 대가는 바로 항생제 내성이었다. 진화 과정에서 살아남은 모든 생명체는 자신을 향한 공격에 맞서 새로운 방어 시스템을 갖춰나가는 데 성공한 적자(適者)들이다. 세균 역시 자신을 공격하는 항생제에 대항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이 그때껏 해오던 방식으로 응수했다. 우리 인간은 그간 세균과 일종의 뜀틀 게임, 즉 군비 경쟁을 벌여왔다. 즉 인간이 약물을 내놓으면 유기체는 거기에 내성을 키우고, 인간이 그에 맞서는 신약을 개발하면 세균은 또다시 거기에 내성을 갖추는 과정이 끊임없이 되풀이된 것이다. 항생제 오남용으로 슈퍼버그가 등장하면서 웬만한 신약으로는 어림도 없는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항생제 내성은 자연에 맞서려 한 인간에게 내린 자연의 엄중한 경고처럼 보인다. 항생제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관행을 멈추지 않으면 계속 세균의 맷집만 키워주는 꼴이고, 인간은 신약 개발을 통해서는 결코 그들과의 싸움에서 이길 재간이 없다. 언제나 진화가 승리를 거두기 때문이다. 내성이 생기지 않는 약은 지금껏 단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제약회사는 신약을 한 가지 개발하려면 10∼15년의 시간과 1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해야 하는데 기껏 그렇게 한 보람도 없이 내성이 나타나는 통에 약물이 순식간에 쓸모없어지는 과정을 거듭 겪으면서 신약을 개발할 의욕마저 잃은 상태다. 세균이 너무 빠른 시간 내에 내성을 키우는 바람에 항생제 제조가 더는 이익을 내지 못하는 구조라 판단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질병 치료에는 치명적인 결론이다.
이는 인간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내성은 자연선택이 이뤄지고 있음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진화의 필연적 산물이지만, 그 과정을 앞당긴 책임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 있다. 인간은 꼭 필요하지도 않은 순간에 항생제를 사용함으로써 세균에게 우리가 만든 방어벽을 뚫을 수 있는 기회를 수없이 제공해주었다. 항생제를 인간 치료용으로 남발한 것도 문제지만, 한층 더 심각한 것은 육용 동물의 성장을 촉진하고 그들의 비위생적 공장형 축사에 번질지도 모를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상시적으로 퍼부은 일이었음이 드러났다. 미국에서 시판되는 항생제의 80퍼센트,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항생제의 절반 이상을 인간이 아닌 가축이 소비한다고 한다. 그로 인해 초래될지 모를 결과를 면밀히 따져보지도 않은 채 마구잡이로 말이다. 페니실린은 1950년대까지만 해도 처방전 없이 구입할 수 있었으며, 많은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전히 상당수 항생제를 처방전 없이 구할 수 있다고 한다. 페니실린을 발견한 알렉산더 플레밍은 노벨상을 수상하기 몇 달 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가투약(self-medication)에서 가장 잘못되기 쉬운 결과는 바로 극소량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감염을 퇴치하지도 못하면서 페니실린에 저항하도록 미생물들을 학습시키게 된다. 수많은 페니실린 내성균이 이종교배를 통해 번식하여 다른 개체들에게 전파됨으로써 마침내 폐렴이나 패혈증 환자에까지 닿는다. 결국 페니실린은 그들을 구제할 수 없다.
이처럼 페니실린 치료로 장난을 친 생각 없는 자들은 페니실린 내성균에 의해 감염되어 죽음에 이른 사람들에게 도의적으로 책임이 있다. 그러한 폐해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사람들은 예지력 있는 그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았고, 그 결과 우리는 끝내 그가 우려하던 사태에 이르고 말았다. 무분별하게 그 약물의 단물을 빨아먹다가 ‘항생제 이후 시대’의 도래를 눈앞에 두게 된 것이다. 그 흐름에 제동을 걸거나 적어도 그 속도를 늦추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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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는 항생제를 토대로 구축된 전통적인 가금 생산방식이라는 거대한 벽에 균열을 내는 여러 층위, 여러 수준의 시도를 다룬다. 일군의 농부들은 내성균으로 세상을 병들게 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값싼 단백질을 세상에 내놓으려 한 어느 과학자의 결론이 애당초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과학자·정부관료·소비자·요리사의 지원에 힘입어 항생제 내성 없이 가금을 생산하는 것도, 환경 파괴 없이 집중 사육농법을 실시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다각도로 보여주었다. 기꺼이 항생제를 포기한 네덜란드 농부들, 퍼듀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기업은 성장 촉진제나 예방적 용도의 항생제를 쓰지 않고도 산업 규모의 생산이 가능함을 입증해 보였다. 마이자두르와 루에, 화이트오크의 성공은 소규모 또는 중간 규모의 농장도 새로 재편된 육류 경제에서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저속 성장 닭 품종으로 돌아선 홀푸즈는 항생제를 배제하면 가금 생산에서 다양성을 되살릴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새로운 모델들은 네덜란드에서처럼 첨단기술을 접목한 것일 수도, 라벨루즈 농장의 제3세계 버전 같은 저집중 시스템 위에 구축된 것일 수도 있다. 이 모든 시도는 항생제를 가능한 한 최소한으로만 사용하겠다, 즉 동물을 살찌우거나 막연히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플 때 치료하는 용도로만 쓰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이야말로 항생제가 인간의 질병 치료에 쓰일 수 있는, 그리고 항생제를 사용하면서도 내성의 위험을 낮출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맺음말 말미에 이렇게 덧붙임으로써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
항생제 내성은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기후변화 문제와 흡사하다. 첫째, 수백 만 명에 이르는 개인들의 의사결정에 따라 수십 년 동안 조성되었으며 산업계의 조치들에 의해 강화된 심각한 위협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둘째,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아시아 등에서 부상하고 있는 신흥경제국이 서구 선진국과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미 공장형 농업으로 값싼 단백질을 누려본 지구의 4분의 1은 이제 그것을 후회하고 있다. 하지만 나머지 4분의 3은 그 기회를 누려보지도 못한 채 포기하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이다. 셋째, 북극곰이 물에 빠지는 광경을 지켜보고 형광등을 사는 것 같은 개인적 실천만 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기후변화 문제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항생제 내성과 관련해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다. 세균의 무자비한 진화 속도가 우리에게 그렇다고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방대한 문헌 연구와 발로 뛴 성실한 취재의 결실임을 짐작케 하는 부분은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 참고문헌과 감사의 글이다. 또한 이 책에서는 탐사 보도가 자칫 빠지기 쉬운 선정성을 경계하고자 치열하게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저자가 모든 쪽마다 근거를 가지거나 관찰 결과에 입각해 이야기하고 있음을 우리는 수십 쪽에 걸친 주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책에 실명이 공개된 농부들, 그들이 가금을 비롯한 육용 동물을 키우는 농장의 모습은 유튜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면면을 떠올리면서 본문을 읽노라면 그 내용이 훨씬 더 실감 나게 다가올 것이다
마린 맥케나는 말한다. “닭은 산업화한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육류고 머잖아 전 세계인이 가장 많이 찾는 육류로 자리 잡을 것이다. 닭 산업을 바꾸는 노력은 지구의 육류 경제와 그것이 영향을 끼치는 모든 것―토지 이용, 물 이용, 쓰레기 처리, 자원 소비, 노동의 역할, 동물권리의 개념, 그리고 지상에 살아가는 수십 억 인구의 식생활―을 바꾸는 일이다.” 현대판 업턴 싱클레어라는 그녀에 대한 평가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목 차
머리말
1부 닭은 어쩌다 중요해졌나
01 질병, 그리고 운 나쁜 해
02 화학을 통해 더 나은 삶을
03 빵 가격에 육류를
04 내성이 시작되다
05 문제를 밝혀내다
2부 닭은 어쩌다 위험해졌나
06 증거로서 유행병
07 교배종의 개가
08 오염의 대가
09 예측 불허의 위험
3부 닭은 어떻게 달라졌나
10 작음의 가치
11 협동을 선택하다
12 가축우리의 관점
13 시장이 입을 열다
14 과거에서 미래를 보다
맺음말
감사의 글
주
옮긴이의 글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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