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이베리아: 더 월드 비포 | 출시일 | 2022년 03월 19일 |
개발사 | 마이크로이드 스튜디오 | 장르 | 어드벤처 |
기종 | PC | 등급 | 15세 이용가 |
언어 | 한국어 지원 | 작성자 | PforP |
온 세상을 뒤덮는 죽음의 축제에서도, 사방에서 비 내리는 저녁 하늘을 불태우는
열병과도 같은 사악한 불길 속에서도, 언젠가 사랑이 샘솟는 날이 올 것인가?
-토마스 만, ‘마의 산’ (1924) 중
안타깝게도, 소칼이 직접 참여한 사이베리아는 본작이 마지막이다. 2021년 타계했기 때문이다.
사이베리아 3 리뷰 이후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우선 안타까운 소식으로 시작해야 되겠다. 2021년 5월 28일 사이베리아 시리즈의 창조주인 브누아 소칼이 오랜 지병 끝에 향년 66세로 타계했다. 그렇기에 본 리뷰작인 사이베리아: 더 월드 비포 (이하 더 월드 비포)는 소칼이 참여한 마지막 사이베리아 게임으로 남게 되었다. 소칼의 만화책은 지금도 한국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그가 만든 어드벤처 게임들은 2000년대부터 작지만 반짝거리는 수작들이었고 한국 게임 팬들에게도 알음알음 알려져 왔다. 적어도 프랑스 어드벤처 게임 역사에서 소칼은 분명하게 기억될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게임 얘기로 돌아가자면, 더 월드 비포는 3 DLC 이후 5년만에 나온 신작이다. 원래는 2021년에 나올 뻔했으나 한번 미뤄져 지금에서야 나오게 되었다. 사실 3이 나올 때만 하더라도 사이베리아 팬덤에서도 후속작에 다소 회의적인 편이었다. 좋게 말하더라도 3은 어색한 실패작이었기 때문이다. 변화한 게임 제작 현장에 적응 못한 소칼, 유니티 엔진에 적응에 실패하고 좋은 아트웍을 못 살린 제작진, 어색한 모션, 불편한 조작과 난잡한 인터페이스, 나름 의미 있는 의도와 메시지에 비해 다소 힘 없이 쥐어짜는 스토리텔링 등등 이 게임을 옹호하려면 팬심이 상당히 많이 필요했다. 2000년대 이후 이런 정통파 (혹은 구식) 어드벤처 게임은 코어한 팬덤에 기대는 경향이 큰데 이들을 실망하게 만들었으니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신작이 나왔다.
사실 기본 틀은 3에서 다 정해졌고 본편은 재정비를 갖춘 쪽에 가깝다.
캐릭터를 변경하면서 플레이하는 디자인이 대거 추가되었다.
인터페이스가 확실히 깔끔해졌다. 힌트 시스템도 새롭게 정비된 편.
더 월드 비포는 게임 자체로 따지자면 기존 사이베리아 시리즈, 정확히는 3에서 그리 멀리 벗어난 게임은 아니다. 인벤토리와 퍼즐이 있는, 3인칭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라는 장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인터페이스나 여러 디자인적 측면에서 보면 3과는 확연한 차이점을 두고 있다. 먼저 퍼즐 디자인 같은 경우, 3에서 정립된 3D 그래픽으로 둘러보는 디자인을 유지하고 있다. 대신 3과 달리 오토매턴이 비중이 다시 높아지면서 오토매턴 관련 퍼즐 대다수가 돌아왔다. 여기다 케이트 이외의 다양한 캐릭터를 조작할 수 있는 부분이 추가되었는데, 그 결과 케이트와 다른 캐릭터를 번갈아 가면서 푸는 퍼즐이 대폭 강화되었다. 전작에서 등장한 오염 구역 내 오스카와 케이트를 동시에 진행하는 파트가 본격화되었다고 보면 좋은데, 게임 내 힌트와 퍼즐을 번갈아 보면서 풀어야 하는 구간이 많아졌다.
인터페이스도 깔끔해졌다. 먼저 상호작용 선택이 마우스를 끌거나 스틱을 밀어야 했던 3과 달리 버튼 누르는 걸로 변경되어 불편함이 줄어들었다. 아이템 사용 인터페이스 역시 상호작용과 인벤토리가 화면 양쪽으로 나뉘어져 산만한 감이 있던 3과 달리 상호작용 포인트 바로 위에 인벤토리가 뜨도록 변경되었다. 목표 안내와 힌트 시스템 역시 게임 화면에서 바로 확인 가능하도록 변경되었다. 힌트 시스템은 단계별로 힌트 게이지가 설정되어 설명도 상당히 친절해졌다. 대화 시스템도 최대한 간결하게 쳐냈다. 3에서는 대화 선택에 따라 진행 방식이 다소 달라지는 디자인이 있었으나, 더 월드 비포는 반응이나 향후 묘사가 달라지는 정도로 대화/선택지 스크립트가 간결해진 편이다. 사실 3에서도 변별점이 적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쳐내는 쪽도 납득이 가긴 한다. 다만 대화 스킵 기능이 없어서 이미 들은 대화를 다시 들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 부분은 향후 패치로 개선될 가능성이 크다.)
QTE 비중이 늘어났는데, 그렇다고 게임의 본질을 해칠 정도로 크지는 않다.
전작과 달리 그래픽이 확실히 좋다고 느껴질 만큼 공들인 티가 난다.
더 월드 비포만의 큰 변화가 있다면 부가 미션 개념이 추가되고, QTE 개념이 강화되었다는 점이 있다. 부가 미션 자체는 대단한 수준까지는 아니고 스토리만 쭉 진행하지 말고 주변 둘러보면서 탐색하고 얘기 들어보라는 쪽에 가깝다. 대신 이런 부가 미션이 게임 밖 도전 과제랑 연계된 경우가 대다수기 때문에 도전 과제 매니아들이라면 필수적으로 다 하게 될 것이다. 사실 부가 미션보다는 3에서 시도했던 QTE 개념이 꽤 본격화되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뭔가 힘을 들여야 하는 부분이나, 액션이 필요하다 싶을 때 등장한다고 보면 좋을 정도다. 퀀틱 드림이나 너티 독처럼 현란한 액션과 연계되는 QTE는 아니지만 적시 적소 액션이 필요할 때 등장해서 시대의 조류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임 디자인 자체는 전작의 실책을 반성하고 현시대에 맞게 깔끔하게 재정비했다에 가깝다면, 명백히 좋아진 부분도 있다. 바로 그래픽이다. 사실 사이베리아 3은 그래픽 구현에서는 실패한 게임이었다. 춥고 황량한 러시아 야생 및 폐허가 주 배경이라 매력을 살려 내기 까다로운 구석이 많았는데, 정작 실 그래픽은 사양은 사양대로 많이 먹으면서도 어색한 모델링과 폴리곤, 모션, 그리 효율적이지 못한 스테이지 설계 같은 문제가 있었다. 여기다 자연물이 많이 나와야 하는 게임 내용과 달리 자연물 그래픽 역시 그다지 좋진 않았다. 소칼의 비주얼을 잘 살려내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최적화는 여전히 잘 된 편은 아니다.
한국어 번역이 많이 엉망이다. 이 스샷만 해도 무르나우를 무리뉴라 표기하고, 사고로 40대에 요절한 사람 보고 지금쯤 죽었겠지라고 표현하는 오역을 저질렀다.
더 월드 비포는 그런 지적이 한에 맺혔는지 칼을 갈고 나선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AAA급 게임의 돈과 최고급 인력을 갈아 넣어 극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3D 게임으로서 가질 수 있는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게임의 주 배경인 바겐이 처음 등장하자마자 감탄했을 정도다. 화려했지만 지금은 침체된 스팀펑크풍 독일어권 옛 도시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스토리 진행은 하지 않고 그냥 관광이나 하고 싶어질 정도다. 바겐 뿐만이 아니라, 알프스 산맥이나 히말라야 같은 자연 풍경 역시 전작에 비해 훨씬 생동감 있게 그려지고 있다.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으로 3에서 CG 영상 처리되었던 이벤트 장면 역시 실시간 플레이로 대체되었다. 이게 소칼이 생전 볼 수 있었던 마지막 결과물이라는 게 아쉬울 정도다. 카메라 시점이나 조작에서도 많이 개선이 이뤄져서 3처럼 티 나게 엉키거나 어색한 스테이지 이동 같은 결점이 많이 사라졌다.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과거 시점 바겐 음악 광장에서 카메라가 고정되었음에도 캐릭터는 안 보이는 버그 같은 부분이 있긴 하다.
다만 기술적인 측면은 여전히 아쉽다. 대대적으로 늘어난 어셋과 폴리곤에 대한 반작용과 게임 엔진의 까다로운 최적화 환경이 겹쳐 더 월드 비포는 최적화가 좋은 편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더 월드 비포는 PC판 기준으로 요구하는 사양이 많이 높은 축에 속한다. 공식 권장 사양이 코어 i7 8700에 램 16GB, GTX 1060 정도니 감이 잡힐 것이다. 사실 게임이 구현하는 그래픽이 아름답긴 해도 과하게 사양을 잡아먹어야 할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최적화만 잘했다면... 싶은 아쉬움도 있다. 때문에 좀 옛날 컴퓨터라면 중옵으로도 다소 허덕거리는 편이라, 컴퓨터 사양이 낮으면 하반기에 발매될 콘솔판을 노리는 걸 추천한다.
게임 외적으로는 한국어 번역이 엉망이다. 사실 3 번역도 그리 좋진 않았지만 더 월드 비포 현지화는 한때 스캔들 감이었던 '다크사이더스 제네시스’나 ‘다키스트 던전’급으로 안 좋다. 서로 존대를 하고 있던 캐릭터가 직후 선택지에서는 서로 반말을 하고 있다던가, 대사 지정을 잘못했는지 상황에 맞지 않는 다른 번역 문장이 튀어나온다던가, ‘(계단) 올라가기’를 ‘일어나기’로 번역한다던가 제대로 감수를 했다면 도무지 나올 수 없는 오역과 오류가 수두룩하다. 하도 이렇다 보니 실존 영화감독 F.W.무르나우를 무리뉴라 표기하는 인명 표기 오류는 사소하게 보일 정도다. 당연하겠지만 독일어 표기 준수는 포기하는 게 편하다. 향후 수정될 여지가 없다면 그냥 영자막 플레이를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전반적으로 3처럼 억지로 긴장감을 쥐어짜기 보다는, 1의 차분한 분위기로 돌아간 편이다. 케이트도 도입부 이후로 크게 위협에 휩쓸리지 않는 편.
이번에는 더블 주인공 체제를 택해, 이 여성도 비중이 높다.
상당히 여성 중심적인 한 편이기도 하다. 레온 빼면 주요 캐릭터 대다수가 여성이기 때문.
사이베리아 3는 소수 민족이나 인종 차별 비판 같은 괜찮은 내용이 있었음에도, 몇몇 무리수 때문에 매력을 깎아 먹는 편이었다. 더 월드 비포는 주인공을 둘로 나누면서도, 꽤 흡입력 있는 서사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우선 전작 악당들에 대한 비판을 고려했는지, 도입부에서 악당들을 빠르게 처리해버리고 케이트 워커와 오토매턴 얘기로 다시 돌아갔다. 내용 역시 쫓기거나 위급한 상황은 거의 없어진 대신, 도입부에 충격적인 사건들을 제시해 극도로 공허해지고 지친 케이트의 심신이 어떻게 여정을 통해 회복해가는 지에 중심을 두고 있다. 결말 역시 3처럼 대책 없는 클리프행어가 아니고, 케이트의 성장과 함께 어느 정도 일단락되면서 끝난다. 다나 로즈라는 새로운 캐릭터가 중요 인물로 등장함에도 케이트와의 배분도 괜찮게 이뤄지고 있다.
더 월드 비포의 서사는, ‘학이 난다’나 ‘독일, 창백한 어머니’, ‘피닉스’ 같은 부류의 ‘여성 전쟁 멜로드라마’라 보면 좋다. 일단 배경 자체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격전지 중 하나였던 알프스 근방 중부 독일어권 도시 국가로 옮겨갔다. 1의 배경에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는데, 1,2가 전후 유럽사를 다루고 있었던 걸 생각해보면 의도적으로 전쟁 당시를 다루기 위해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 ‘여성 전쟁 멜로드라마’ 대다수는 또다른 주인공인 다나 로즈가 담당하고 있다. 이 캐릭터는 설정부터가 2차 세계 대전에서 엄청나게 고생했던 부류에 속한다. 비록 사이베리아 특유의 대체 역사 설정상 다르게 호칭되지만 곧장 말해 다나는 피아니스트 지망생인 독일어권 유대인 여성이다. 다나는 홀로코스트로 끌려가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에 준하는 온갖 고생을 하게 된다. 심지어 사이베리아 시리즈에서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게릴라전 장면도 나올 정도다. 또한 굉장히 여성 중심적인 한 편이다. 다나랑 레온 커플을 제외하면, 이야기 중심에 있는 캐릭터 대다수가 여성이기 때문이다. 이는 케이트한테도 속하는 얘기기도 하다.
거의 돌직구다 싶을 정도로 정통파 전쟁 멜로드라마고 반전도 예측 가능하지만 흡입력은 좋은 편이다.
본작의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인 토마스 만의 ‘마의 산’. 특히 과거편 초반부 전개는 이 소설 오마주에 가깝다.
더 월드 비포가 전쟁 여성 멜로 장르에서 엄청난 걸 보여준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게임이 숨기고 있는 반전도 감이 좋은 사람이라면 초장부터 눈치 챌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다나 로즈는 상당히 공감 가능한 좋은 주인공 캐릭터이고, 다나와 관련된 다른 캐릭터들도 완성도가 높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정말 있었을 법한 실수와 후회를 저지르면서도, 그런 인물들의 후호와 반성이 잘 그려져 있기에 심하게 비호감으로 떨어지지 않는다. 반전도 충격 효과보다는 역사의 비극에 휘말려야 했던 사람들을 그리는 도구로 쓰이고 있기에 ‘고작 이 얘기하려고 이랬냐!’스러운 구석은 없는 편이다. 전반적으로 꽤 고전적인 멜로 드라마 향취가 강해서, 다나가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시퀀스가 안겨주는 감흥 역시 굉장히 유명한 할리우드 고전 멜로드라마를 연상시킬 정도다.
엄청난 걸 보여준다고 할 수 없다고 적었지만, 더 월드 비포만의 분명한 강점도 있기도 하다. 바로 제3제국 시절 문화상과 더불어 파시즘이 어떻게 예술이나 인문학을 망가트리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 있다. 더 월드 비포는 이런 주제를 다루기 위해 토마스 만의 ‘마의 산’를 적극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마의 산’은 우연히 알프스 산맥에 있는 요양원에 머물게 된 한 청년이 다양한 사람과 사상들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그리면서 1차 세계 대전 이전 시대상의 종말과 성장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책 그 자체로도 꽤 중요한 복선이기도 하지만, 과거편 자체가 ‘마의 산’ 오마주다 싶을 정도로 깊게 관여하고 있다. 도입부가 지나가면 다나는 파리 유학 가기 전 요양 겸 돈벌이하러 근처에 있는 산장에 가기 때문이다. 다나는 여기서 연인 레온을 비롯해 인생을 바꿀 사람들을 만나는데, 이 인물 대다수가 제3제국 시절 군상들을 대변하고 있다.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강렬함을 탐닉하다가 결국 나치 선전 예술가로 전락해버린 레니 리펜슈탈. 본작의 중요한 키워드다.
전후 독일 영화사는 사실상 리펜슈탈과 싸우는 과정이나 다름없었다. (한스-위르겐 쥐베르베르크의 ‘히틀러: 독일 영화’)
등장 인물 중 준타 스타인호프는 실제 레니 리펜슈탈의 커리어를 반영한 캐릭터인데, 이름도 리펜슈탈이 감독하고 연기했던 영화 '파란 빛' 주인공에서 따왔다.
이외 레니라는 이름을 가져간 캐릭터도 있는데, 의외로 이 캐릭터에게도 리펜슈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캐리커처 아닌가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나치 악당인 프랭크 호스는 그렇다 쳐도, 영화 감독/사진 작가 준타 스타인호프랑 산장 주인 딸 레니는 꽤 흥미롭다. 이 캐릭터들은 명백히 실존 영화 감독 레니 리펜슈탈에서 비롯된 캐릭터기 때문이다. 레니 리펜슈탈은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과 자연의 원시성에 관심을 가진 영화 작업으로 유명해졌으나, 결국 히틀러와 나치와 결탁해 선전물을 만들면서 나치 부역이라는 죄를 지은 감독이다. 레니 리펜슈탈의 타락은 찬란했던 무성 영화 시절 독일 영화의 종말이자, 이후 독일 영화가 반평생 투쟁해야 했던 과거의 멍에였다. 사실상 전후 독일 영화는 리펜슈탈과 나치 부역 영화인들이 저지른 잘못 극복하기나 다름없었고, 한스-위르겐 쥐베르베르크의 ‘히틀러: 독일 영화’는 그런 전후 영화인들의 극복을 가장 직접적으로 담아낸 걸작이라 할 수 있다.
더 월드 비포는 이런 실존 감독의 행보를 상당히 분열증적인 방식으로 다루고 있다. 레니 레너와 준타 스타인호프 두 캐릭터 모두에게 실제 레니 리펜슈탈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직접적인 인용은 준타 스타인호프 쪽이 많다. 우선 그 유명한 리펜슈탈의 자화상 사진 패러디가 등장하는데다, 첫 등장 역시 레온이 속한 ‘오리진 (기원) 탐사대’ 훈련 활동을 기록하는 기록 예술가로 첫등장한다. 리펜슈탈이 파시스트 선전가가 되기 전에 ‘파란 빛’이나 ‘신성한 산’ 같은 산악 영화를 찍었는데, 이를 염두에 두면 상당히 명백한 인용이라 할 수 있다. 실제 히틀러가 리펜슈탈을 끌어들인 이유 역시 ‘파란 빛’에 감명받아서 였다고 한다.
심지어 준타라는 이름 역시 레니 리펜슈탈이 직접 연기한 ‘파란 빛’ 주인공 캐릭터 ‘윤타’에서 따오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파란 빛’의 윤타는 산을 잘 탄다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에게 ‘마녀’라 따돌림 당하는 ‘피해자’로 등장하는데, 후반부에 밝혀지는 준타의 정체와 속내랑 연계해보면 실제 인물에 대한 안티테제적인 성향이 강하다. 반대로 실존 인물의 이름을 가져간 레니 레너 같은 경우, 실존 인물과의 연관성은 준타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다만 영화와 사진 촬영에 관심 있다는 연결고리는 명백한데다 스포일러성이 짙어 자세히 설명하진 않겠지만 캐릭터 행보 자체가 실존 인물의 어둠을 반영하지 않았나 싶은 부분이 있다.
오리진 탐사대는 제3제국 치하의 인류학이 어떻게 이용당하고 파국을 맞이했는지 보여준다.
미지에 대한 동경과 교감이라는 소칼 특유의 주제 의식도 여전하다.
소칼의 투병으로 죽음이라는 문제가 강하게 다뤄지지 않았나 싶은 부분이 있다.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비중있게 다뤄지는데, 죽음에 대한 태도랑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다나의 남자친구인 레온이 있는 ‘오리진 탐사대’는 학문과 연구자의 열정 및 호기심이 어떻게 파시즘에 이용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다. 이 오리진 탐사대의 목표는 중국 내륙에 있다고 여겨지는 인류의 역사를 바꿀 만한 유인원을 찾는 것인데, 이를 지원하는 단체가 바로 작중 세계의 나치에 해당하는 브라운 섀도다. 요제프 멩겔레나 무수한 나치 협력 학자들의 사례를 안다면, 이 유인원 연구가 아리아인 우월주의의 도구로 이용될 것이라는 걸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학문적 탐구심과 인종우월주의 간의 불편한 동거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끝내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전후 시퀀스에서 등장하는 연구자의 반성과 한탄은 그 점에서 학문하는 자의 딜레마를 잘 포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파국 속에서도 레온과 유인원 종족 간의 교류가 이뤄지면서 또다른 희망을 만들어내는데, 브누아 소칼 특유의 미지에 대한 경외와 인류학적인 호기심이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 지를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브누아 소칼의 입장이 반영된 부분이 있다. 바로 죽음이다. 더 월드 비포는 죽음에 대한 태도와 감수성이 이전작들에 비해 훨씬 강하게 두드러지고 있다. 이전부터 소멸하는 구세계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시리즈긴 했지만, 더 월드 비포는 훨씬 구체적으로 죽음을 앞두거나 일어난 죽음에 대한 슬픔의 정서를 다루고 있다. 케이트가 만나는 인물들 대다수가 노인들이라는 점도 그렇고 중심 소재 자체가 전쟁이다 보니 과거편 같은 경우 인물들이 꽤 죽어 나간다. 여기다 도입부 역시 갑작스럽게 닥친 죽음에 대한 공허함과 슬픔으로 가득하다.전작의 한스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노인이었지만, 죽음을 ‘매머드를 찾아간다’라는 식으로 상징적으로 제시한 걸 생각하면 본편에서 죽음은 상당히 구체적인 양태를 띄고 있다.
이 죽음에 대한 감정은 사적인 감정뿐만이 아니라, 비판 의식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연관이 케이트 편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 의식 역시 다름이 아닌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점도 이런 감수성과 관련이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과 돈이 유입되고, 임대료 상승 등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뜻하는데, 바겐 역시 이런 현상을 앓고 있다. 더 월드 비포는 그 점에서 과연 과거의 껍데기만 착취하는 게 옳은지, 죽어가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받아들여야 할지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결말에서 케이트의 행보 역시 더 늦기 전에 기억해야 되겠다는 인식에서 비롯되고 있다. 어찌 보면 더 월드 비포는 죽음을 앞둔 창작자만이 만들 수 있는 감성이 있는 작품이며, 마지막에 다시 뜨는 추모 메시지는 그 점에서 찡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사이베리아: 더 월드 비포’는 3보다 훨씬 좋은 게임이다. 물론 게임 디자인에서 새로운 걸 바라면 안 되고 최적화 및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개선할 필요가 있긴 하지만, 3을 하면서 이랬으면 좋았을 건데라는 아쉬움 대다수를 해결하고 지금 시대에 적응하는 데 성공하는 게임이다. 이야기도 딱히 새롭다 할 수 없지만, 여전히 잘 먹히고 의미 있는 이야기다. 옛 친구가 전에 줬던 장난감이 많이 부족했다고 미안해하면서 소박하지만 제대로 만들어서 건네 준 오토매턴 장난감과도 같은 게임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적어도 한 편 정도는 더 나올 것 같은 결말로 마무리되었기 때문에, 향후 앞날에 대해서도 마냥 자신할 수 없다는 점이 불안하다. 케이트의 여정이 소칼 없이 어떻게 마무리될지는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할 것이다.
후속작이 예정된 결말인데 브누아 소칼의 존재감이 강했던 시리즈인지라 걱정되긴 한다.
내게 살아갈 힘이 되는 건 앞으로 우리가 함께할 거라는 믿음이야.
남은 평생 함께하자. 사랑한다.
-카림 아이누즈, ‘인비저블 라이프’ (2020) 중
작성 PforP / 편집 : 안민균 기자(ahnmg@ruliwe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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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에 비해 상당히 잘 만들었는데 한국인들 사이에선 완전히 묻혔네... 아쉽다. 후속작도 나올거 같은데 한글화는 안되겠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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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베리아 시리즈 참 좋아하는데 3편이 망이라 끝날 줄 알았더니 다행히 후속작은 잘 나온 모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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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는 이야기에 흠뻑 취했는데, 3 하다가 조작에 지쳐 이야기를 까먹는 지경까지 가다 보니 때려치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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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베리아3 어드벤쳐 장르를 좋아함에도 플레이 조차 엄두가 안났던 쓰레기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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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스트저니 - 사이베리아1/2 연달아 발매되던 그 때가 지금 생각하면 어드벤처의 빛나던 황혼기였나 싶습니다. 4가 나온 건 정말 의외네요. 여기서 리뷰까지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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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베리아 시리즈 참 좋아하는데 3편이 망이라 끝날 줄 알았더니 다행히 후속작은 잘 나온 모양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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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에 비해 상당히 잘 만들었는데 한국인들 사이에선 완전히 묻혔네... 아쉽다. 후속작도 나올거 같은데 한글화는 안되겠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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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드벤쳐 장르에 학을 뗀다면 모를까.. 1 정도는 해보는게 좋음. 1 잼있으면 2도 하면 되고. 3 는.... 실망할 각오를 하고 하면 되는것;;; | 22.05.07 10:4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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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상 미스테리 장르긴 하지만 장르상 추리어드벤처라기 보다는 전통적인 포인트앤클릭에 가깝죠 | 22.04.29 18:5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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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베리아3 어드벤쳐 장르를 좋아함에도 플레이 조차 엄두가 안났던 쓰레기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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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는 이야기에 흠뻑 취했는데, 3 하다가 조작에 지쳐 이야기를 까먹는 지경까지 가다 보니 때려치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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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인물 설정 같은것은 1,2,3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그래서 주인공인 케이트 워커의 선택이나 대사가 이해가 안될수도 있는데, 메인 스토리 라인은 연계가 그렇게 높진 않아서 할만할것 같습니다. | 22.05.21 21: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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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스트저니 - 사이베리아1/2 연달아 발매되던 그 때가 지금 생각하면 어드벤처의 빛나던 황혼기였나 싶습니다. 4가 나온 건 정말 의외네요. 여기서 리뷰까지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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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내역 이즈 사이언스 | 22.05.13 02: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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