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바라따」의 대서사,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가다.
전쟁보다는 평화를 구하지만 욕망의 충족과 권력의 추구로 이루어진 세상의 이치는
철의 법칙처럼 전쟁과 대결로 치받는다.
인간 세계와 신의 세계를 이어온 「마하바라따」의 ‘문제적 인물’
비슈마 할아버지를 둘러싼
마지막 위대한 장면은 「마하바라따」의 주제를 압축적으로 들려주며
우리를 눈물짓게 만든다.
세상의 운명을 극복하며 넘어서기 위한 온갖 ‘인간적 노력’과 공덕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다시 우주의 운명을 돌고 돌아 오늘날의 비극을 잉태하고 마니 ……
인도인이 가장 사랑하는 고전 「바가와드 기따」, 새로운 완역으로 새로운 얼굴을 갖게 되고, 「마하바라따」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옷을 입게 되다. 함석헌의 영역부터 온갖 시인들의 자유로운 번역까지, 한국에서 무수한 방식으로 번역되어온 「바가와드 기따」가 수많은 주석과 ‘요가’의 맥락에서 그리고 「마하바라따」를 배경으로 비로소 본 얼굴을 갖게 되다. 우주의 원리와 개인의 운명, 그리고 개인의 삶의 원리를 하나로 합일해내는 인도 문명의 인도다움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명역!
할아버지를 해쳐야 하는 아르주나의 비극
집안의 가장 존경받는 어른일 뿐만 아니라 세상 최고의 미덕의 구현자인 할아버지를 우주의 운명에 의해 죽여야 하는 이 비극,
오이디푸스와는 다른 이 인도적 비극 앞에서
아르주나는 어떻게 ‘실의’를 딛고 앞을 나아갈 수 있는가?
? 「마하바라따」의 문제적 인물, 비슈마 할아버지, 죽음에 이르다. 이 비극 앞에 선 아주르나의 ‘실의’와 그것의 극복 과정이 인도 최고의 고전 「바가와드 기따」에서 설해지다!
지상 최고의 고행자이자 위대한 수행자, 지덕체의 화신 등 온갖 지상적 이상을 구현한 듯한 비슈마 할아버지는 동시에 사촌 간의 동족상잔이 벌어지게 되는 이 비극을 지금까지 막아온 일종의 균형점이었다. 게다가 그는 천상의 아들이기도 해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초월적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세상일이 비극으로 치닫는 것은 막지 못해, 어찌 보면 신적 존재도 또 인간의 이상적 도덕적 완성태도 ‘권력’과 ‘욕망’의 파노라마 속에서 펼쳐지는 인간의 비극은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이 대하서사시의 가장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인도인들의 성경’의 흥미로운 점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덕체를 구현한 이 신적-인간적 존재가 ‘선’을 위해 행한 최선, 최고의 행위마저 전쟁으로 이어지는 비극을 막지 못하는 것은 물론 할아버지를 죽여야 하는 동족상잔이라는 끔찍한 ‘악’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이 비극을 진정 인류 최고의 고전으로 만든다. 자연계에서처럼 콩 심은 데 콩이 나면 좋겠지만 욕망 덩어리에다 권력 덩어리인 인간계는 능히 그러한 자연계의 이치마저 훌쩍 뛰어넘으니, ‘선’은 반드시 ‘선’을 낳지 않는다. 인류 역사에서 등장한 ‘기축 종교’가 모두 이 딜레마를 기본 주제로 하며, 인류의 가장 위대한 문학 장르가 가령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인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여기서 예외인 중국문명은 참으로 ‘예외적이다).
다른 한편 이 점에서 이 모든 것을 수긍하며 자기 운명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비슈마야말로 이 대하서사시 전반부의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운명과 그에 대한 해석이야말로 「마하바라따」를 인도 문명의 진정한 정수로 만들어주는 교훈이자 가르침이다. 그것은 동시에 인도 문명이 비로소 하늘과 신과 도덕의 세계를 넘어 인간의 세계로, 지상의 욕망과 정치의 세계로 이행하면서 이 두 세계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지상에서의 삶을 어떻게 구상하게 되었는가를 기록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볼 때만이 「마하바라따」의 일부지만 흔히 독립되어 따로 읽히며, ‘인도인들의 성경’으로 추앙받는 「바가와드 기따」에 대한 올바른 독해도 가능할 것이다.
? ‘인도인들의 성경’이지만 할아버지를 죽여야 하는 우주적 운명 앞에 선 아르주나의 ‘실의’를 달래주며 설하여지는 「바가와드 기따」, 천의 얼굴을 가지다! 각자는 거기서 각자의 운명과 각자의 얼굴을 보게 되리라.
한국에서는 일찍이 ‘간디의 고전’ 또는 처음 한국에 본격 소개한 ‘함석헌의 생명의 책’으로 알려진 「바가와드 기따」는 이후에도 10여 종이 넘게 번역되는 등 한국인들에게서도 꾸준히 사랑받아 왔다.
인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고전인 「바가와드 기따」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인도 고전’이기도 한 셈이다. 동시에 대부분 영어에서 중역되고, 또 이 ‘노래’가 속한 본래의 「마하바라따」와는 동떨어져, 그리고 인도 철학사의 발전사의 맥락과는 분리되어 번역되는 바람에 이 ‘노래’가 우리의 삶과 곡진하게 관련되지 않고 ‘신비한’ 책 정도로 수용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세 가지 단점을 극복하며 고전 번역의 모범을 보여주는 이 책은 또한 유려한 한국어로 인도 철학의 주체적 수용을 시도하고 있다.
싼스끄리트 원어에서, 『마하바라따』 의 본래 맥락에서 최초로 국역되다!
근대 이전에는 한문을 통해 우회적으로, 근대 이후에는 주로 서양어를 통하거나 철학적 측면에서 많이 왜곡되거나 편협한 형태로 이해되어온 ‘인도의 바이블’을 싼스끄리뜨 원어에서 옮기고, 아뜨만, 박띠, 요가 등 수많은 핵심 개념어에 대해 상세한 비평적ㆍ역사적 주해로 길을 잡다.
『요가수뜨라』 와 함께 ‘요가’에 관한 인도의 2대 기본 경전. 몸과 마음 즉 영육, 그리고 우주의 관계에 대해 기존의 서양과 중국문명 중심의 이해방식을 완전히 초월해 ‘범아일여’ 등 새로운 우주관을 통해 달랑 ‘나’와 ‘주체’만 남은 현대인의 삶에 새로운 삶의 이정표를 제시하다.
새 술은 새 푸대에! ‘자아 너머의 자아’, ‘감각 너머의 감각’ 등 새로운 번역어와 유려한 시적 번역을 통해 새로운 개념=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다.
가령 감성, 오성, 이성의 3중 구조를 기본으로 하는 서양 철학의 기본 틀에서 감성은 ‘지양’과 ‘극복’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그리고 우주와 세계는 ‘물 자체’로 ‘불가지’화거나 ‘대상’화될 뿐이다. 자아상실과 세계상실로 상징되는 현대문명의 병폐의 뿌리이다. 21세기의 새로운 정신혁명은 새로운 나, 새로운 우주를 찾아야 하며, 그것은 새로운 개념의 창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삶의 확신을 잃고, ‘실의’에 빠진 현대인에게 건네는 ‘의심 없는 지혜’의 보고寶庫! 망설임과 두려움만 쌓여가는 우리 삶,
감각적 확신과 자본에의 욕망 말고는 형해화되어 가는 우리 존재,
감각 너머의 감각, 존재 너머의 존재,
자아 너머의 자아를 꿰뚫어보는
인류 최고의 가르침!
마하바라따 9권에 앞서서 바가와드 기따가 출간되었습니다.
전쟁을 주저하고 있는 아르주나에게 크리슈나가 의무와 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간디가 손에서 놓지않고 읽었다는 힌두교의 경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