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고 가신 님
나는 그가 말하는 것을 배우려들지 않고
다만 어떻게 말하는가를 듣기에만 골몰하고 있었는데
당신께 도달하는 길을 이미 단념해버린 내게는
이런 쓸데없는 주의만이 남았었기에
―성 아우구스티누스,「제5권 14장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고백록』
사랑해요
이 말을 못 한 것은
그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도 그렇기에
이 말을 하는 순간
당연함 속에 잠자던 그 맘을
부러 흔들어 깨워
고연히 곱씹는 의혹의 눈동자가 불을 켜
자꾸 그 불을 끄기 위해 혀를 놀려
내뱉었다가 자칫
쓸데없이 지껄이는 말이 되어 끝내
사랑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려
아니 지껄임만 못하게 될까
두려워
그저 모른 채 맘속에 그 뜻을
고이 간직하여
이제나저네나
아끼고 소중히 어루만져
오직 사랑만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이렇게 이별하고 나니 말 한마디
못 한 내 내 어리석고 미련함
천추의 한이요
후회막심 통탄할 일이라
놓고 가신 님 뒤안길에
전구가 녹아 흘러 빛이 출렁여
아리랑 아리랑 우는 바람 소리
귀청을 찢고 목청으로 파고들어
곡소리가 절로 나와 부질없이 빌며
문지방 너머 맨발로 뛰쳐나오며
되뇌니이다
사랑해요
사랑했어요
사랑만을 했어요
빛과 이름
성기완, 문학과지성 시인선 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