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이 열리던 날
포클레인 위에서 떨어진 후
병원에 안 가겠다고 다시 기어올라가
손수건으로 감싼 나무토막을 입에 물고
텐트 안에서 일곱시간을 버텼다
뒤늦게 달려온 정보과 형사들이
혹시라도 먹잇감을 놓칠까봐
포클레인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밤 12시, 앞뒤에 망차를 한대씩 따라붙이곤
몰래 병원으로 향했다 발뒤꿈치뼈가
비스킷마냥 부스러져 있었다
퉁퉁 부어 수술이 안된다고
진통제만 맞으며 하루를 더 버텨야 했다
끝까지 농성을 지키지 못한 게 더 뼈저리고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웠지만
그만큼 노력했으면 됐다 했다
학벌도 뭣도 없어 남들처럼 내놓을 게 없는데
뒤늦게 발 한짝이라도 내놨으니
이제 나가면 정말 운동 한번
제대로 해보겠구나 했다
그러나 빌어먹을, 복병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내 안에 시커멓게 숨어 있었다
나름 고공농성이라고 부분 단식을 해왔는데
이십여일 만에 처음으로
숙변을 보라고 기별이 온 날
혼자서 간신히 휠체어에 올라타고 몇번이나 나서보는데
포탄처럼 굳은 변은 나오지 않고
피가 쏠린 다리는 실밥이 터질 듯 아프고
말뚝 박힌 듯 한번 열린 뒤는
찢어진 채 닫히지 않고
아, 이런 전투는 처음이야
눈물 콧물 흘리며 혼자 용을 쓰는 밤
비로소
운동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진짜 운동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라
뒤로 하는 것임을
고귀한 영혼의 일이 아니라
이렇게 고통스럽고 지저분한 몸의 일임을
항문이 찢어지며 알게 되었다
그날 이후 다시는
운동은 온몸 바쳐 해야 한다는 말을
쉽게 입에 담지 못한다
송경동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창비시선 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