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기 전에 다음 글들을 읽으시면 좋을 지도 모릅니다.
Memento Mori. Carpe diem. Amor Fati.
단지 워울프와 한잔할 뿐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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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현실 아래에 가라앉아있지만, 가끔은 현실 위로 부상하기도 한다.
“……후우.”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신속의 칸은 한숨을 내쉬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몸은 땀으로 젖어있었다. 몸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옷, 이불, 침대까지.
그녀는 자신이 왜 자다 깼고, 이렇게 땀을 흘리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꿈 때문이다. 꿈이라고는 하나 허황된 것이 아니다. 과거의 회상이었다.
칸은 눈을 감으며 자신이 꿨던 꿈을 돌이켜 보았다.
그녀의 입이 작게 열렸다. 닫혔다.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꿈에서 본 옛 전우의 이름. 죽어버린 전우의 이름이다.
전부 죽었다. 살아남은 것은 그녀 혼자뿐이다.
살아있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살아있는 것이 가끔은 버겁다는 생각도 든다.
그녀처럼 오래 살게 된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죽은 자들을 등에 업고 살게 된다면 말이다.
“후우.”
칸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했으나 다시 잠들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대로 어둠 속에서 옛 전우들의 이름을 되뇌이는 것도 탐탁지 않았다.
칸은 잠시 고민 후에 밤 산책을 나서기로 했다.
* * *
산책을 하러 나오자마자 아는 얼굴을 만났다.
매일 보는 얼굴이다. 그리고…… 방금 전에 꿈에서 봤던 얼굴이다.
T-75 워울프.
죽어버린 워울프들을 떠올리던 중에 살아있는 워울프를 보게 되니 칸은 그녀 답지 않게 잠시 몸을 떨었다.
그러나 칸은 이내 현실과 과거를 격리 시키고 현실의 워울프에 집중했다.
워울프가 가져온 술을 마신다.
워울프는 그냥 적당히 좋은 술이라고 말했으나, 멸망 전의 인류도 구하기 힘들었던 최상급 위스키가 음미되지 못하고 싸구려 술처럼 소비된다.
멸망 전의 주당들이라면 그리고 다른 때의 워울프라면 기겁할 행위지만 지금의 워울프는 묵묵히 칸과 술잔을 나눌 뿐이다.
반 밖에 없던 술이 다시 그 절반즘 되었을 때, 워울프가 입을 열었다.
그 말을 마치고 칸은 잔에 있는 술을 들이켰다.
그제서야 그녀는 처음으로 술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알코올을 섭취하기 위해서 마셨던 술은 깊고 풍부한 향과 복잡한 맛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엠퍼러 다이슨 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워울프는 전혀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술은 분위기로 마시고, 사람에 의해 취한다고 했다.
함께 마시는 사람이 좋다면 어떤 술을 마셔도 좋을 것이다.
* * *
"후우."
술자리가 끝나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칸은 술기운 가득한 한숨을 내쉬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녀 답지 않게 많이 흐트러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술에 취한 사람 답게 그녀는 그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후우."
칸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술에 절은 머리로 과거를 회상했다. 오래된 과거는 아니다. 방금 전 잠에서 깨어난 직후를 회상했다.
살아있다는 것이 축복이라는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살아있는 것이 가끔은 버겁다는 생각도 든다.
그녀처럼 오래 살게 된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죽은 자들을 등에 업고 살게 된다면 말이다.
이 얼마나 오만한 소리란 말인가.
살아있는 것은 축복이었다. 그녀 자신에게 뿐만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죽은 자들을 등에 업고 살아가기에 버겁다? 아니다. 그들이 있기에 쓰러지지 않고 버티며 살 수 있었다.
죽은 자들이 있는 덕분에, 그들과의 기억이 있는 덕분에 그녀는 지금 존재할 수 있었다.
칸은 눈을 감았다.
술기운이 머리를 잠식해 어질어질하다.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칸은 그 어지러움을 만끽하며 잠이 들었다.
칸은 꿈을 꾸었다.
지금은 죽어버린 전우들에 대한 꿈이었다.
그러나 그 꿈에서 전우들을 마주해도 그녀는 더 이상 괴롭지 않았다.
그들을 본 칸은 잠든 와중에도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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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루 리더 신속의 칸에게 한 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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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우승까지 갑시다! | 21.06.21 00: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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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좀 더 길게 써보려고 했는데 피곤해서 이 정도밖에 쓰지 못했습니다. 칸 대장의 매력은 이게 전부가 아닌데!!! 그리고 보아하니 본선은 확정인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 21.06.21 23:4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