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몇 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고, 민속학을 전공하고 있었다.
……라고 해도, 특별히 흥미가 있어서 택한 건 아니었다.
단지 학점 따기 쉬울 것 같아서 선택했을 뿐이다.
마침 그때,
“고향에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나 전설을 조사해 레포트로 정리하라”
라는 과제가 나왔다.
보통이라면 고향 도서관이나 향토자료관에서 찾아보면 끝날 일이었겠지만,
나는 며칠이 지나도 주제를 정하지 못했다.
책을 펼쳐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기록을 읽어도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솔직히… 관심 없는 걸 조사하는 게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건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마감이 다가왔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어차피 책이나 자료를 봐도 머리에 안 들어온다면,
직접 지역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그걸 그대로 레포트로 쓰면 되지 않을까?
옛이야기의 진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마을의 노인이 이렇게 말했다.”
이 문장 하나만 넣어도 그럴듯해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대학이 있는 도시에서 전철로 몇 정거장 떨어진 시골 마을로 가보기로 했다.
그곳에는 오래전부터 살아온 노인들이 많아
뭔가 이 지역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을에 도착한 나는 먼저 작은 잡화점에 들어갔다.
낡은 목조 건물에, 간판 글씨도 바래서 읽기 힘들었다.
안에는 허리가 굽은 노파가 한 명,
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저기요, 이 근처에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나
특이한 전설 같은 게 있을까요?”
내가 그렇게 묻자,
노파는 얼굴을 한번 들더니
나를 흘겨보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조용히 중얼거렸다.
“……자네, 그걸 조사하려는 건가.”
“그걸?” 하고 되묻자,
노파는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뜨개질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계속 캐묻으려 하던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젊은이, 혹시 민속학 하는 학생인가?”
뒤돌아보니, 장바구니를 든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남자는 씨익 웃으며 내게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렇다면… 그 이름 들어본 적 있어?”
“그 이름?” 하고 묻자,
중년 남자는 이마를 찌푸리며
“분명… 그게… 음…” 하고 중얼거리며 한참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러다 무언가 떠올랐는지
“아, 그래 그래!” 하고 소리치더니
뜩뜩 뜨개질하던 노파 쪽으로 걸어갔다.
“할멈, 종이랑 펜 좀 빌려줘.”
노파는 뜨개질 하던 손을 멈추고,
힐끔 위를 올려다보며 우리를 노려보았다.
"……자네, 그걸 외지 사람에게 알려줄 생각인가?"
중년 남자는 약간 난처한 듯 어깨를 으쓱였다.
"딱히 나쁜 걸 조사하려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이 친구가 찾고 있다길래 말이야"
노파는 시선을 나에게로 옮기며,
날카롭게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마치 ‘믿을 만한 놈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처럼.
잠시 후, 노파는 마지못해 일어나더니
종이와 펜을 집어 들었다.
"……어쩔 수 없구나. 하지만 말이야,
자네가 어떻게 돼도 난 모른다"
나는 몸을 조금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의 매서운 시선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중년 남자는 종이와 펜을 넘겨받아
익숙한 듯, 주저함도 없이 빠르게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나는 숨을 죽인 채 그가 다 쓰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남자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鼃醫鸕鷃瘀龢驥鸜懸蠱
숨이 멎을 뻔했다.
뜻도, 읽는 법도 전혀 알 수 없는 글자들이었다.
나는 겁먹은 마음으로 중년 남자에게 물었다.
"……이거, 뭐라고 읽는 건가요?"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고, 난감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못 읽어. 애초에 어떻게 읽는지 아무도 몰라"
대학생인 나는 더 깊게 캐물었다.
"못 읽는다니…… 그럼, 이 이름은 대체 뭔가요?"
그러자 뜨개질을 하고 있던 노파가 입을 열었다.
그 목소리에는 조심스러움과 경고가 동시에 묻어 있었다.
"이건, 이 마을에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존재다.
신인지, 요괴인지, 정체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노파는 천천히 입을 열며 옛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아주 먼 옛날, 이 마을에 무언가가 찾아왔다.
그 ‘무언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기 정체가 무엇인지 물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대답할 수 없었다.
신인지, 요괴인지,
아니면 그냥 이형의 괴물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는 제멋대로 마을에 살기 시작했다.
내쫓으려는 자도 있었지만,
일부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신이라면, 쫓아내면 화를 입을지 모른다’고.
그래서 손을 대지 못하고 그냥 마을에 두기로 했다.
하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괴물로 취급해 쫓아내려 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갈렸다.
"이건 신이다!"라 믿는 사람과
"아니다, 틀림없이 괴물이다. 쫓아내야 한다!"라며 두려워하는 사람들.
논쟁은 점점 과열되어, 말다툼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게 되었다.
결국 마을 안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발전했다.
집들은 파괴되고, 우물과 논밭은 망가지고,
사람들은 서로 손에 든 몽둥이나 칼로 싸웠다。
그 싸움 동안에도, 그 ‘무언가’는 마을 안을 조용히—그러나 확실히—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싸움의 끝에서, 죽는 사람도 생기고, 마을도 폐허가 되며,
마을 사람들은 완전히 지쳐버렸다.
그리고 그 혼란 속에서, 그 ‘무언가’는 그저 조용히 모습을 감춰버렸다.
그 ‘무언가’가 떠난 후에서야
마을에는 겨우 평온함이 돌아왔다.
하지만 남은 것은,
황폐해진 논밭과
서로 죽고 죽인 피의 기억뿐이었다.
“그것은 신이었을까, 요괴였을까……”
마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물었지만,
누구도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결론을 내려는 것을 포기했다.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는 그대로 두자.
그렇게 정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자식과 손자 세대에 전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아무 의미도 없는 기괴한 글자들을 끌어모아
이름 비슷한 것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鼃醫鸕鷃瘀龢驥鸜懸蠱"
였다.
노파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즉, 아무 의미도 없는 이름이다.
누구도 읽지 못하게,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나는 두려운 마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럼, 그 ‘무언가’는…… 지금은 어떻게 된 건가요?”
중년 남자는 잠시 침묵하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그게 말이야…… 소문이긴 한데,
지금도 나온다더라고. 그 ‘무언가’가。
뭐,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저,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입에 올리려 하지 않아.”
그 말과 함께 남자는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뜨개질을 하던 노파가 손을 멈추었다.
“……아니, 나온다.
난 알아.”
중년 남자는 놀란 얼굴로 노파를 바라보았다.
“아, 할멈……?”
나는 저도 모르게 물었다.
“어, 어떻게 그런 걸 아시는 거죠……?”
노파의 깊은 주름 사이로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왜냐하면……
내가 어릴 때에도, 그 놈이 왔으니까.”
그 목소리에는 확신이 있었다.
노파의 눈은 바늘처럼 가늘고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그놈은, 자기 이름을 확인하러 오는 거다.
잊혀져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하는 듯이 말이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릴 때 왔다니…… 그건 도대체――”
나는 저도 모르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노파는 뜨개질 바늘을 움켜쥔 채 굳게 입을 다물어 버렸다.
중년 남자도 난처한 듯 눈을 내리깔았고,
마을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제 그 얘긴 그만두자고.”
남자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이상 캐물러 하였지만,
노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살짝 떨리는 입가만이,
과거의 공포를 말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마침내 눈치챘다.
이 마을에는 정말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말하려 하지 않는다.
아니,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 후, 나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마을을 떠났다.
떠나기 전에, 그 기괴한 문자열
'鼃醫鸕鷃瘀龢驥鸜懸蠱'
이 적힌 종이를 스마트폰으로 찍어 두었다.
마을의 좁은 길을 걸으며,
나는 멍하니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다시 보아도 정체 모를 불길함만이 남는다.
읽을 수도 없고, 의미도 알 수 없고,
그저 오싹함만이 짙어졌다.
“……이걸, 레포트에 어떻게 써먹지.”
솔직히 그냥 옛날 이야기로 적어두면 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인지 요괴인지 모르는 존재라는 애매함이 묘하게 마음에 걸렸다.
자료로 보기에는 드문――
아니, 너무 위험한 것인가.
그런 생각만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그런 생각에 잠겨 걷고 있는데,
문득 길가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흐린 듯 ‘탁한 투명’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덩어리.
뜨거운 공기가 흔들리는 모습이 땅 위에 떨어져
형체를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빛이 비치는 순간 물처럼 녹아 형태가 무너지는 것 같기도 했다.
찰나의 순간, 사람 그림자처럼 보였다.
다음 순간, 짐승의 등 같은 곡선으로 바뀌었다.
더 자세히 보자,
그저 짙어진 그림자 같은 공간으로도 보였다.
착각인가 싶어 여러 번 눈을 깜빡이고
손으로 비벼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탁한 투명의 덩어리는
잔물결처럼 흔들리며
희미한 소리를 냈다.
목소리인지 바람인지 알 수 없는 불명확한 울림.
그러나 분명 내 귀에 닿았다.
“……넌……누구……냐……?”
나……는……누……구……?
그 순간, 노파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옛날 옛적, 이 마을에 ‘무언가’가 찾아왔다.
그 ‘무언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이 무엇인지 물었다.
마을 사람들은 대답할 수 없었다.
신인지, 요괴인지, 아니면 괴물인지――
아무도 몰랐다.
“……설마, 이게……?”
목이 얼어붙는 듯했다.
전승 속의 ‘무언가’.
그것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인가.
탁한 투명의 그것이
마치 내 멱살을 붙잡듯
바싹 다가왔다.
“……넌……누구……냐……?”
“……나는…… 누구……?”
대답해야 하는 걸까.
아니다, 대답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도망치고 싶지만, 두려움 때문에 발이 땅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이젠, 될 대로 되라.
나는 거의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에 비친 '鼃醫鸕鷃瘀龢驥鸜懸蠱'라는 글자를
그 ‘무언가’에게 내밀듯 보여주었다.
“네 정체 같은 건, 나도 몰라!!”
목소리가 떨려 나오면서도, 거칠게 소리쳤다.
“……너도 모르는 거잖아?
그러니까…… 넌 알 수 없다고!!”
그러자 그 흐릿한 투명 덩어리는
마치 내 말에 반응한 듯 흔들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천처럼,
윤곽이 일렁이고, 아주 약하게 부풀었다가 줄어들었다.
“……설마, 내 말을 이해한 건가?”
다리가 떨리고, 심장이 목까지 차오른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존재의 기척만이
나를 스쳐 지나가듯 움직였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마치 숨을 멈추기라도 한 듯,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탁한 투명 덩어리는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
주변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멍하니 서 있었지만,
사라졌다는 사실이 이해되자
안도의 물결이 몰려왔다.
공포와 긴장으로 굳어 있던 몸이 한꺼번에 풀리며
나는 그대로 땅에 털썩 주저앉았다.
숨은 거칠고,
무릎을 끌어안은 채
심장의 두근거림이 조금씩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 후,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책상 앞에 앉아
그 탁한 투명한 ‘무언가’――
鼃醫鸕鷃瘀龢驥鸜懸蠱
에 대해 레포트를 쓰려 했지만,
어딘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그만둬라” 하는 소리가 웅웅 울렸다.
무언가 건드리면 안 된다며 말리는 듯한 감각이 있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인터넷과 도서관에서 조사한 다른 전승을 가지고 레포트를 작성했다.
레포트는 제출했지만,
머릿속 한구석에는
그 존재의 기척과
사라질 때의 일렁임이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레포트를 끝낸 뒤에도
나는 그 鼃醫鸕鷃瘀龢驥鸜懸蠱라는 존재를 잊지 못했다.
그야,
그런 일을 겪었으니 당연하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흐릿한 투명한 존재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충동이
작게 타오르고 있었다.
두려움과 호기심이 뒤섞인 그 감정은
억누르려고 해도
마치 조약돌이 물에 떨어져 일으키는 파문처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퍼져나갔다.
그 후 몇 년간,
나는 대학 방학 때마다 그 마을을 찾아가
鼃醫鸕鷃瘀龢驥鸜懸蠱
에 대해 조사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휴일이나 빈 시간만 생기면 계속 조사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그 흐릿하고 투명한 무언간
단 한 번도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이 사이트에 공개하는 이유는
정보를 구하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鼃醫鸕鷃瘀龢驥鸜懸蠱의 정체를 밝혀주길 바란다.
나는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한,
이 불안과 의문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어쩌면, 그 ‘무언가’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알려줘.
나는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