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 그린라이트를 통해 인디 게임 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스팀에서 일본산 동인 게임들을 찾아보는 일은 이제 그리 여려운 일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진다면 알 만한 유명 동인 게임들은 알게 모르게 대부분 발매가 되어 있을 정도죠. 그리고 그 중 일본 동인게임 ESM중 하나인 'PLAYSIM'은 가장 의욕적으로 스팀에 게임을 발매하는 배급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매된 게임 중 하나가 쯔꾸르(Rpg Maker)를 통해서 만들어진 '오렌지혈액'입니다.
게임의 기본적인 시놉시스는 전직 범죄자인 '바닐라'(위 사진 중 핑크색 머리)가 되어 CIA의 사주를 받아 한 섬의 도시인 '뉴 코자'에서 비밀을 밝혀낸다는 이야기입니다. 게임은 전체적으로 90년대 미국 슬럼가의 분위기를 강하게 이어 받은 듯한 분위기를 보여줍니다. 또한 힙합의 영향을 받은 사운드트랙과 함께 화려한 픽셀 아트로 표현된 도시의 분위기 또한 썩 나쁘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사운드트랙이 워낙 취향 저격이기에 꽤나 마음에 들기도 했습니다. 다양한 인종과 단체들이 대립하는 도시 '뉴 코자'의 한가운데서 갱스터스러운 무대뽀 정신으로 사건을 풀어나간다는 이야기가 주요 골자입니다.
쯔꾸르 게임임에도 아트워크 하나는 정말로 놀랍다
즉 전체적으로는 90년대스러운 분위기에, 갱스터이도 한 미소녀들이 주인공인 바닐라를 필두로 여러 가지로 난장판을 만들고 다니는 내용입니다. 그렇기에 등장 인물들의 입담 또한 걸출하죠. 일단 주인공인 바닐라부터 F-Word(욕설)과 Slang(비속어)를 입에 달고 삽니다. 덕분에 게임 아트워크 곳곳에 한글이 존재함에도 한글화가 되지 않은 것이 아쉽기도 합니다.
대사 대부분이 걸걸한 욕설
도시 곳곳에서 다양한 상호작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시각적 놀라움을 보여주려는 게임이 대개 그렇듯이, 가끔은 그 효과가 지나치고는 합니다. 기본적으로 설정된 블러 효과부터 게임의 가시성을 크게 해치고는 합니다. 또한 주인공 4인방 중 한명인 미치코의 패시브 스킬은 턴이 시작할 때마다 여러 효과를 제공하는 능력인데, 이 능력이 발동될 때마다 깜빡거리는 연출은 눈을 아프게 만듭니다. 제작자 또한 여러 피드백을 받고 이 부분에 대한 수정을 한다고 공언할 정도죠. 그리고 옵션을 통해 여러 흑백, 세피아 등 여러 방식의 색감을 제공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이 가시성만을 해치기에 굳이 추가되어야 했을 부분인지에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게임의 전투는 기본적으로 턴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기본 무기들은 총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탄창 시스템이 구현되어 있어 다른 전략 게임들처럼 잔탄이 빌 경우 재장전을 해줘야 합니다. 만일 한 턴에 잔탄을 초과할 경우 강제로 재장전을 하며, 회피에 있어 패널티를 받습니다. 외에도 총기별로 각 속성이 존재해 적 타입별로 약점 속성이 존재합니다. 무기별로도 특성이 나뉘어져 있어 대물 저격총, 소총, 기관단총, 샷건 등 다양한 무기군을 조합하는 재미 또한 있습니다.
전투에서 획득한 열쇠로 여러 맵의 상자에 흩어져 있는 무기와 방어구들을 파밍하는 재미 또한 제공합니다. 그리고 무기별로 다양한 속성과 능력치가 존재해 취향이나 필요에 따라 다양한 직군의 무기들을 섞어서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무기들은 다른 파밍 중심 Rpg처럼 그 특성에 따라 여러 수식어가 붙곤 하는데, 가끔은 그 길이가 지나쳐 UI에서 사라지거나 설명을 읽을 수 없는 불편함이 존재하곤 합니다.
심할 경우에는 무기의 설명이 잘려서 보이지 않기도 한다
초반의 연출, 아트, OST가 보여주는 임팩트에도 불구하고 오렌지혈액은 아쉽게도 동인 게임의 그 한계점을 보여줍니다. 먼저 스토리부터 말 그대로 '의식의 흐름' 기법에 충실합니다. 주인공부터 갱스터이고, 워낙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무대뽀적인 행동을 보여주기는 하나, 이야기는 그 최소한의 개연성 하나 없이 중구난방으로 흘러갑니다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들의 개성 또한, 등장 챕터가 지나가면 대사조차 거의 없는 그저 그런 조연 캐릭터로 전락하기도 하죠. F-Word로 대표되는 수많은 대사 또한 여러 문법적 오류와 함께 스토리의 진부함을 배가시킬 뿐입니다. 또한 스킬과 육성의 다양성 또한 부족해 후반 전투 구간은 같은 스킬만을 계속해서 사용하는 단순한 반복의 연속입니다. 특히 최후반 구간은 적들의 피통이 급격하게 높아져, 계속해서 지루한 공방전만이 이어질 뿐이죠. 레벨 디자인 자체도 갈수록 엉망이기 때문에 보스가 지나치게 강하다던가, 아니면 약점 속성 찌르기 한방에 허무하게 무너지고는 합니다.
전투의 난이도가 낮아, 결국 단순 버튼 클릭의 반복으로 귀결된다
결국 게임이 겉으로 약속하던 90년대의 디자인, 눈을 즐겁게 하는 도트 그래픽, 펑크 스타일의 사운드트랙, 다양한 미소녀 캐릭터들의 개성에도 불구하고 본편은 계속되는 아쉬움의 연속일 뿐입니다. "시작 패는 정말로 좋았는데, 끗발이 안 선다"라고 이야기한다면 나름 적절한 비유인지도 모르겠네요. 개인적으로 기대하던 게임이 콩깍지를 쓰고 보아도 재미있지 않다는 점은 게이머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고는 하죠. 그나마 아트워크에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제작자의 다음 게임을 기대해야 하는 것만이 정답일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