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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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의 습격자>
-"시현, 지금 자냐?"
-"아니."
-"오, 네가 웬일로 대답을 이렇게 빨리 한거지? 보통 지금이라면 자고 있어야 할텐데."
오전 8시 30분, 평소라면 이 시간대에 책상에서 곯아떨어져야 했을 시현은 허리를 꼿꼿이 편 채로 앉아있었다.
-"선배에게 받은 카드가 상당히 많아서 어제 다 못 봤는데, 그걸 마저 살피고 있었어. 어젯밤에도 덱 구축을 생각하느라 잠을 설쳤는데, 어늘 아침엔 이상할 정도로 정신이 맑게 깨어있더라."
-"그렇군.... 너에게 있어선 좋은 소식이네. 난 동료들이 정리해놓은 아지트를 확인해야 해서, 늦어도 점심 시간 쯤에는 거기로 올테니 그 때 보자고."
-"그래, 알겠어."
라이고우에게 대답하면서 시현은 자기도 모르게 육성이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순간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흠칫했지만, 그렇게 크게 말한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바로 앞사람 정도에게만 미세하게 들릴 정도라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괜찮았어야 했는데....
"뭐야, 유시현. 너 듀얼하냐?"
순간 책상에 커다란 얼굴 모양의 그림자가 비췄다. 조금 전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이 몸을 돌려 자리에서 일어난 것이였다.
방금 한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두 가지 의미로 볼 수 있었다. '나도 그거 하는데 같이 듀얼할까?'이거나 '네가 듀얼 같은 걸 왜 하는 거야?'이거나. 그러나 자리에 앉은 시현을 내려다보는 그 아이의 거만한 표정이나 비웃음이 섞인 얄미운 말투를 봤을 때 전자보다는 후자일 가능성이 100 퍼센트....
"네가 그런 걸 가져서 뭐하게? 이리 좀 줘 봐."
"앗, 돌려줘....!"
시현이 미처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살이 포동포동 찌고, 몽당연필처럼 짧고 굵은 손가락이 크레인처럼 덱 케이스를 위로 잽싸게 집어 위로 들어올렸다. 저 하늘 위로 승천하는 덱을 보고 시현도 똑같이 팔을 뻗어보았지만, 그 녀석의 키는 시현의 머리통을 1개 더 쌓아올린 것보다도 커서 까치발까지 들어올려도 도무지 닿지를 않았다.
"아까부터 카드를 바라보며 혼자서 웃지를 않나, 이젠 혼잣말까지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네. 차라리 정신과에라도 다시 들러보는게 어떠냐?"
사실 개념있는 대부분 아이들은 전쟁을 겪고 혼자만의 시간에 익숙해진 또래를 굳이 건드리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 애들이 듀얼 대신에 환장한다는 온라인 게임 같은 곳에서 사람 5명만 한 팀으로 모여도 난장판이 되기 일쑤라는데, 다른 곳에서 온 학생 수십명이 모이면 꼭 저런 녀석 같은 문제아가 안 나오는게 더 이상한 법. 그리고 하필이면 그 많고 많은 학생 중에서 문제아로 보이는 녀석에게 제대로 걸려버렸다.
"게다가, 너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맨날 자고 애들이랑 말 한 마디도 안 하잖아. 게다가 전쟁 때문에 여기로 옮겨왔다며, 그런데도 듀얼을 한다고? 혹시 너 사이코라도 되냐?"
주위를 둘러보니 순식간의 반 안의 온 아이들의 주목이 그들에게 쏠렸다. 어떤 이는 그냥 무시하고 마저 공부를 하거나 다른 아이와 잡담을 이어갔으며, 또 어떤 이는 '저 녀석 또 저러네....'라고 중얼거리며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러나 드로우 운에 모든 운을 다 쓰기라도 한 건가, 그 많은 학생들 중에서도 일진은 뽑혔는데 시현을 도와줄 착한 친구는 한 명도 안 뽑혔을까.
"왜, 내 말이 틀렸어? 대답해 봐!"
시현이 녀석의 위협적인 눈빛과 표정에 압도된 사이, 저 건너편에 있던 소은 역시 읽던 책을 덮고 그 녀석을 조용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시현은 녀석의 기세에 눌려 꾹 닫힌 입 대신 애처로운 눈빛으로 도움의 신호를 보냈다. 제발....뭐라도 한 마디만....
"......."
드디어 소은이 뭔가 할 말이라도 있는 듯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드디어 녀석에게 뭐라도 한마디하나 싶었던 시현의 기대는, 소은이 손을 난데없이 가방으로 향한 후 다시 자리에 앉음으로서 박살나고 말았다. 가방에서 또다른 책을 꺼낸 그녀는 책갈피 역할을 하던 카드 1장을 꺼내 주머니에 넣은 후 다시 녀석을 노려보기만 할 뿐인 것이였다.
"아무튼, 이건 내가 갖고 있는다. 정 돌려받고 싶으면.... 나랑 한 판 붙던가. 물론 듀얼 같은 시시한거 말고 진짜 싸움으로.
..... 왜 아직도 대답이 없냐? 벌써 쫄기는...."
시현이 끝까지 대답이 없자 녀석은 '재미없는 녀석'이라고 중얼거리며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그때까지 자신이 할 수 있었던건 겁에 질린 초식동물 마냥 녀석을 노려보는 것 밖에는 없었다. 한심하게....
조회 시간이 되어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다같이 인사를 하는 순간에도 시현은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차라리 선생님에게 일러보기라도 할까. 그러나 시현이 여태껏 크고 작은 일로 괴롭힘을 당해 선생님께 일러보아도 좋은 결과가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애들은 선생님이나 다른 어른들이 앞에 있을 때에만 형식적인 사과를 하지, 그들의 감시가 사라지면 평소와 똑같이, 아니 오히려 더 심하게 시비를 걸 뿐이였으니까. 그렇다고 저들에게 더 강한 규제를 내려달라고 하자니 '그냥 애들 장난인데 뭐 어때'하는 분위기 때문에 꺼려지고, 실제로 몇 번 그렇게 하게 된 적도 있었으나 결국 돌아온 건 따돌림 당하는 아이라는 딱지표 같은 낙인과 남들이 보는 시선에 대한 두려움 뿐. 시현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늘 이런 삶을 살아왔다. 오늘 그 녀석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과거부터 꾸준히 쌓여온 공포와 무기력감 때문이 아닐까.
점심 시간 종이 치자 마자 복도는 급식을 먼저 먹기 위해 교실 밖으로 뛰쳐나온 학생들로 붐볐지만, 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그 일진 녀석이 교실 밖으로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나마 다행으로, 그 녀석은 반격할 생각은 없이 가만히 앉아만 있는 시현을 괴롭히는 데에 흥미가 떨어졌는지 그를 신경쓰지 않고 다른 애들과 함께 급식을 먹으러 갔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냐, 시현? 아침엔 기분 좋아보이더니 이제 와선 또 엎드리려고 하고 있네. ...... 잠깐, 네 덱 케이스는?"
라이고우는 평소대로 누가 보기 전에 잽싸게 덱 케이스에 안에 들어가려 했다가 시현의 주머니가 빈 것을 보고 당황했다.
-"..... 오늘 아침 다른 애가 눈 앞에서 뺏어가버렸어. 전쟁을 직접 겪었으면서 왜 듀얼 같은 걸 하냐고...."
-"아니, 그럼 이르기라도 하거나 뭐라 한 마디라도 했을 거 아냐? 그런데도 빼앗겨서 점심 때까지 이러고 있었단 말이야?"
-"........."
분명 예전에는 덱이 없어서 따돌림을 당하던 신세였는데, 이번엔 정 반대였다.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듀얼이 점점 복잡하지는 룰과 파워 인플레 때문에 아이들의 수요는 줄었다곤 하지만 이 정도 취급은 아니였는데, 어쩌다보니 이젠 듀얼에 미친 사이코 취급을 받기까지.....
덱이 없으면 이제 앞으로 듀얼은 어떻게 할 거냐는 라이고우의 말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은채 막연히 방법을 찾아보겠다고만 둘러대고, 듀얼을 하면 학교를 비롯한 자신의 삶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거라 믿은 내가 잘못이지 체념하며 자리에 엎드렸다. 그러고서 한 20분 쯤 지났을까, 뜻밖에도 앰뷸런스 소리가 점점 학교쪽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뭐지?"
전쟁이라도 일어난건가 싶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시현은 창문을 열고 고개를 살짝 내밀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확인해봤는데, 들 것에 실려 누군가가 구급차로 수송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다름 아닌 시현의 덱을 강탈했던 그 이름도 제대로 못 외운 일진이였다.
"시현아."
그리고 여학생의 것으로 들리는 목소리와 함께 뒤에서 다가온 손이 시현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시현은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그 손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시현에게 말을 걸만한 여자 애... 아니, 이 학교의 학생은 그녀 한 명 밖에 없었으니까.
"왜? 무슨 용건이라도...."
그 녀석이 덱을 빼앗아 갔을 땐 그냥 지켜보기만 있었으면서 이제 와서 또 무슨 얘기를 하겠다는 건지.... 시현은 뾰루퉁해져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자, 손."
소은이 대뜸 시현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갑자기 왜...."
"손!"
무슨 위로 같은 것을 해주려고 손을 잡으려는 건가, 아니면 국어 시간에 배운 어느 소설에 나오는 여주처럼 뜨끈뜨끈한 감자라도 꺼내줄 셈인가... 그러나 예상 외로 소은이 주머니에서 꺼내 시현의 손에 꽉 쥐어준 것은 다름 아닌 시현의 덱 케이스. 뜻밖의 호재에 시현의 눈이 커다래졌다.
"네 물건은 네가 알아서 챙겨야지. 그냥 선생님에게 말할 수도 있었는데 왜 안 그랬어? 네가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하니까 내가 직접 찾아줬잖아."
"아니,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네 덱, 그 녀석 사물함 안에 들어있더라. 자물쇠가 걸려있었지만 비밀번호가 '1234'였길래 여는 데에는 오래걸리지 않았고. 이제 2학기도 지나면 중학생이 될 나이인데, 여기 애들 수준은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건지...."
그러고서 소은은 시현의 앞자리였던, 그 덱을 빼았은 녀석의 자리에 멋대로 앉아 턱을 괴며 창밖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뭐, 이제 그 자리의 주인은 당분간 오지 않을테니 상관없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지만.
"그리고 저 녀석, 듣기로는 점심 시간에 밖에서 돌아다니다가 바닥을 제대로 안 본 건지 맨홀 뚜껑이 열린 것도 모르고 그 아래로 추락한 모양이야. 애들 말로 의하면 무슨 귀신에게 홀린 것 마냥 눈앞에 '예쁜 누나'가 나타나 자기보고 따라온다고 중얼거리며 멍한 채로 걷다가 그런 봉변을 당했다고 하덴데. 자기가 뭐 대단한 존재인 것 마냥 설치더만, 재수없는 녀석...."
어제나 오늘 비가 온 것도 아니였는데 무슨 영문으로 맨홀 뚜껑이 열려있었을까. 시현이 이에 대해 질문을 하자 무슨 정비소 같은 곳에서 오래된 맨홀 뚜껑 교체를 이유로 사람들이 온다길래 미리 열어둔 상태였다고 대충 둘러댔다. 딱히 맨홀 뚜껑을 교체한다는 소식은 들은 적 없었지만, 열어둔 이유가 어찌됐든 한동안 그 녀석을 볼 일이 없다는 안도감과 생트집을 잡으며 남을 괴롭히더니 기어이 화를 입었구나 하는 통쾌감은 부정할 수 없었다. 물론 아무리 꼴보기 싫은 사람이여도 남의 불행을 대놓고 기뻐하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헛기침을 하는 척을 하려고 팔 소매로 입을 몇 번 가리며 덤덤한 척을 유지했지만.
"자, 그럼 덱도 다시 되찾았겠다, 기분 전환 겸 학교 끝나고 나랑 듀얼하지 않을래? 마침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야외 공원이 있던데, 날씨도 해가 쨍쨍해서 좋으니깐 오늘은 야외에서 듀얼해보자! 아직 학원 문 열기 전에 시간도 좀 남았고. 어때?"
"어..... 네가 원한다면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
시현은 자신이 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듀얼을 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는 건지 이상할 정도로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소은이 고맙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다른 애들에겐 별로 관심을 주지 않으면서 유독 자신에게만 보이는 친절함, 그리고 마치 전에 만나본 적이 있는 것만 같은 익숙함 때문에, 속으로는 사실 자신에 대한 일거수 일투족까지 낱낱히 일고 있는 스토커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이상한 망상도 해보았다. 뭐, 망상으로 끝나서 다행이지....
-"하, 이젠 이성 친구에게 덱도 돌려받은 것도 모라자 듀얼 신청까지 받다니, 나중에는 데이트 듀얼이라도 할 셈인가봐?"
-"그런거 아니거든. 난 그저 듀얼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다른 감정 같은 건 없어."
시현은 라이고우의 장난이 섞인 비아냥에 대해 딱 잘라 말하고는, 조용히 하라는 의미에서 라이고우가 방금 막 들어간 덱 케이스를 흔들었다.
하교 시간이 되고 공원으로 향하니 언제 벌써 가있었던 건지 소은이 듀얼을 하기 딱 좋아 보이는 넓은 잔디밭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덱을 만든 지 얼마 안 되어서 덱 구성이 좀 조잡하긴 한데.... 그래도 잘 부탁해. 그럼 간다!"
양쪽 듀얼리스트의 디스크가 전개되자 솔리드 비전 시스템이 작동하면서 그들 앞에 커다란 동전 한 개가 황금빛 궤적을 그리며 빙글빙글 회전하였다.
"자, 내 쪽으로 앞면이 나왔네. 그럼 내가 선공으로 갈게."
이번 듀얼은 주말에 '언체인드' 덱을 쓴 날 이후로 오랜만에 온 시현의 후공이였다. 과연 소은은 어떤 덱과 전술을 보여줄 것인가.
"듀얼!"
《TURN 1》
"메인 페이즈 1 개시 시, 마법 카드 [욕망과 졸부의 항아리]를 발동합니다! 엑스트라 덱의 카드 6장을 무작위로 골라 뒷면으로 제외한 후 2장 드로우!"
마/함존에 발동된 카드에 그려진 항아리가 점점 밖으로 튀어나오더니, 앞뒤로 못생겼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이 과상하게 생긴 얼굴이 2개 달린 항아리가 나타났다. 초록색 쪽은 유명한 금지 카드인 [욕망의 항아리]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얼굴이 2개나 달린건 처음 보는데....
이어서 소은이 마치 먹이를 주듯 항아리의 머리 위로 6장의 카드를 흩뿌리자, 초록색 얼굴이 -꺼어억-하는 시끄러운 트림 소리와 함께 카드 2장을 뱉었다.
"패에서 [악왕 아흐리마]를 버리고 덱에서 필드 마법, [암흑세계-섀도우 디스토피아-]를 패에 넣고, 바로 발동합니다! 이 카드가 필드에 존재하는 한, 필드의 몬스터는 전부 어둠 속성이 되죠."
필드마법이 발동되자마자 한낮에 빛나고 있던 태양은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고, 시현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듀얼디스크에서 나는 불빛에 반사된 소은의 얼굴 뿐이였다.
"그 후 [크리밴디트]를 일반 소환하고, 카드 3장을 세트. 그리고 [크리밴티드]의 효과를 발동합니다! 엔드 페이즈에 일반 소환한 이 카드를 릴리스하고, 덱 위의 카드 5장을 넘겨 그 중 마법/함정 카드를 패에 넣습니다. 그리고 그 이외의 카드는 전부 묘지로 보내져요."
소은의 머리 위로 덱 위의 카드 5장이 순차적으로 떠올랐는데, 각각
[원사제왕 가이우스], [메타 버스], [헬웨이 패트롤], [인왕의 수호], [동포의 연]이였다.
-"가이우스.... 저거 지난 주말에 상대한 그 몬스터네. 그냥 쓰는 카드가 우연히 겹친거겠지, 라이고우?"
-"뭐..... 그러겠지."
소은은 이 5장 중 마지막으로 떠오른 카드를 골랐다.
"전 이 중 [동포의 연]을 패에 넣겠습니다. 그리고 섀도우 디스토피아의 효과로 엔드 페이즈, 이 턴 중 릴리스된 몬스터 수까지 [섀도우 토큰]을 수비 표시로 특수소환합니다. 전 이걸로 턴 엔드."
{유시현 LP 8000, 패 5장 민소은 LP 8000, 패 2장}
《TURN 2》
"드로우 페이즈, 드로우!
패에서 [휘광룡 세이퍼트]를 일반 소환하고, 기동 효과 발동! 패의 [DMZ 드래곤]을 묘지로 보내고, 덱에서 [암흑룡 코라프서펜트]를 패에 넣습니다!"
시현이 세이퍼트를 묘지로 보내기 위해 엑스트라 덱에서 [스트라이커 드래곤]을 꺼내려던 차에, 거센 바람이 불더니 세이퍼트가 서서히 필드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슬슬 날씨가 겨울로 접어들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바람이 차가웠나 싶던 때, 소은의 필드에 카드 1장이 뒤집히며 빛났다.
"함정 카드, [천룡설옥]을 발동합니다! 시현이 묘지의 [DMZ 드래곤]을 제 필드에 특수소환하고, 종족이 같아지는 몬스터를 서로의 필드에서 한 장씩 제외합니다! 전 세이퍼트와 DMZ를 제외!"
이걸로 암흑룡은 사실상 제 역할을 못하는 벽돌이나 마찬가지. 하지만 아직 또다른 플랜이 남아있었다.
"그럼 마법 카드 [어둠의 유혹]을 발동, 카드 2장을 드로우 후 패의 어둠 속성 몬스터를 제외합니다!"
패에 이미 어둠 속성 몬스터가 있으니 패를 전부 버리게 되는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건 이 드로우로 나올 카드. 소은의 덱은 여태껏 만났던 상대들과는 달리 함정 위주로 견제하는 플레잉스타일을 가지고 있기에 이왕이면 상대 견제를 회피할 수 있는 트레이서가 나온 다면 좋을 텐데....
"..... 드로우!"
시현은 드로우한 카드 2장을 흘깃 쳐다보고는, 암흑룡을 듀얼디스크 삽입구에 갖다대었다. 그러자 그 카드가 소용돌이 모양으로 분해되는 연출과 함께 사라졌다.
"속공 마법, [퀵 리볼브] 발동! 덱에서 [바렛 트레이서]를 특수 소환! 그리고 드래곤족/어둠 속성 몬스터가 특수 소환된 것으로, 패의 [녹토비젼 드래곤]도 특수소환합니다!"
이번에야말로 링크 소환을 하려 했더니, 이번에도 소은의 디스크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이번에도 몬스터를 제거할 셈인가?
"함정 카드 [트랩트릭]을 발동해 덱에서 [궁수부대]를 제외하고 같은 이름의 카드를 세트, 그 후 [궁수 부대]를 발동. 자신 필드의 몬스터 1장을 릴리스하고...."
시현은 텍스트를 읽어보고는 [섀도우 토큰]을 탄환 삼아 트레이서를 제거할 생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트레이서의 효과를 체인해서 다른 바렛으로 바꿔치기하면....
"여기서 섀도우 디스토피아의 효과에 의해, 자신의 몬스터 대신 시현이 필드의 [바렛 트레이서]를 릴리스하고 [녹토비젼 드래곤]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시현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소은이 삿대질을 하며 트레이서를 가리키자 저 섀도우 토큰과 똑같이 생긴, 청록색으로 빛나는 눈과 길게 찢어진 입을 가진 악령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더니....
-캬아아아악!!!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트레이서를 그대로 덥쳤다. 시현에겐 트레이서의 효과를 발동할 틈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효과의 발동을 선언한 순간에 트레이서는 이미 저 악령들에게 산 제물로 바쳐진 것이였다.
그리고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트레이서의 형태를 본뜬 그림자 악령이 거대한 석궁의 활시위에 올라타고는 서서히 그것을 뒤쪽으로 당기기 시작했다.
활시위가 끊어질듯 밀듯 팽팽히 당겨진 순간, 날아오는 탄환을 확인하기도 전에 시현의 귓가에 빠르고 날렵한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뒤를 돌아본 후엔 녹토비젼은 이미 폭발음과 함께 저 어둠 너머로 사라진 후였다.
-"시현, 이건 좀 위기인데. 저 녀석 함정을 겨우 2번 밖에 안 썼는데 전개를 다 틀어막아 버렸잖아? 이러면 패의 [요성룡 라르바우르]의 효과도 발동해서...."
-"아니, 아직이야."
시현이 패 1장을 마/함존에 발동시키자 부서진 몸 여기저기를 억지로 끼워맞춘 듯한 모습의 트레이서가 필드 위로 올라왔다.
"장착 마법 [바렐 리로드]를 발동해 묘지의 트레이서를 소생하고, 배틀! 트레이서로 [섀도우 토큰]을 공격합니다!"
트레이서가 붉은 궤적을 남기며 그림자를 꿰뚫은 순간, 탄두가 폭발하며 그 안에서 카드 3장이 쏟아져나왔다.
"트레이서를 대상으로 [스퀴브 드로우]를 발동한 후, 체인 2로 트레이서의 효과를 발동! 스퀴브 드로우를 파괴한 후 덱에서 [바렛 칼리버]를 특수소환하고, 스퀴브 드로우로 2장, 바렐 리로드의 (2)번 효과로 1장, 총 3장을 드로우합니다!"
이로서 시현의 패는 다시 4장까지 늘어났고, 아직 배틀 페이즈이기에 칼리버의 공격 기회도 남아있었다.
"이어서, [바렛 칼리버]로 직접 공격합니다!"
소은의 필드의 아직 발동하지 않은 세트 카드 1장이 마음에 걸렸지만, [궁수 부대]를 발동한 이후로 듀얼디스크가 깜빡이지 않는 것을 보아 미끼 용이거나 아직 쓸 수 없는 상태라고 여겨 공격을 감행하였다. 이미 카드를 많이 소모한 상태라 미리 라이프를 깎아 놓는게 좋기도 하고.
소은은 칼리버의 박치기에 정통으로 맞은 후에도 담담히 머리를 쓸어넘기며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다.
"메인 페이즈 2, [바렛 칼리버]를 릴리스하고 효과 발동. 패에서 [요성룡 라르바우르]를 특수 소환합니다! 그리고 소환에 성공한 라르바우르의 효과로 패 1장을 버리고 [종언룡 카오스 엠페러]를 가져옵니다!"
저 필드 마법이 있는 한 시현과 소은의 자원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트레이서의 효과도 써버린 지금의 상태로는 필드 마법을 치울 수 있는 [트로이메어 유니콘]을 뽑을 수 없었다. [트윈 트라이앵글 드래곤]은 덱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사이드로 빠졌고....
그때, 시현의 패에 잡힌 [성유물로부터의 자각]과, '턴 플레이어'의 필드에 토큰을 생성하는 필드 마법의 효과가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본인에게 손해만 주는 줄 알았던 저 카드를 역으로 이용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패를 재빠르게 뽑아드는 시현.
"요성룡을 소재로 [스트라이커 드래곤]을 링크 소환하고 덱에서 [리볼부트 섹터]를 서치, 그 후 자신의 (2)번 효과로 스트라이커를 파괴하고 묘지의 트레이서를 회수! 그리고 리볼부트 섹터를 발동해 회수한 트레이서를 특수소환합니다!"
-"이미 트레이서의 효과는 사용한 상태인데, 여기서 더 할 수 있는게 있나?"
-"물론 있지. 몬스터를 꼭 자신의 턴에만 꺼내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 말을 들은 라이고우도 시현의 생각을 눈치 챈 모양이다.
"[종언룡 카오스 엠페러]를 펜듈럼 존에 세팅하고 효과 발동, 라이프를 1000 지불해 제외되어 있는 [휘광룡 세이퍼트]를 회수하고 이 카드를 파괴합니다.
그리고, 카드 1장을 세트하고 엔드 페이즈. 섀도우 디스토피아의 효과에 의해 토큰 2체를 제 필드에 특수 소환합니다!"
엔드 페이즈가 되자, 섀도우 디스토피아의 카드가 빛나더니 시현의 필드에 트레이서와 칼리버의 형태를 본 뜬 그림자가 몬스터 존에 드리워졌다.
{유시현 LP 7000, 패 2장 민소은 LP 6300, 패 2장}
《TURN 3》
"드로우 페이즈, 드로우."
"이 순간, 함정 카드 [성유물로부터의 자각]을 발동합니다! 자신 필드의 몬스터를 소재로 링크 소환!"
소은의 디스크에 반응이 없자, 트레이서가 막 발동한 상태인 함정 카드를 꿰뚫으며 바닥에 문 클립을 떨어뜨렸다. [바렛 리차저]였다.
"체인 2로 트레이서의 효과를 발동해 발동 중인 함정 카드를 파괴하고 덱에서 리차저를 특수 소환. 그리고 체인 1 처리로, 섀도우 토큰 2체를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2, [아이:피 마스카레나]!!"
-"토큰을 링크 소재로 쓴다라.... 나쁘지 않은 전략이군. 이걸로 유니콘까지 꺼낼 셈이야?"
-"응. 일단 되돌릴 카드 1순위는 섀도우 디스토피아지만, 일단 상황을 지켜보고 결정해야지."
그러나 소은의 표정에는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일부러 보여주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정말 겉과 속이 같은 걸까....
그 순간, 시현이 서있는 땅 아래에서 쩌저적하는 소리가 들리자, 놀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바닥에 거미줄처럼 여기저기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금은 점점 붉게 물들고, 뜨거운 열기를 내뿜으며 커지기 시작했다.
"메인 페이즈 1, 마스카레나와 트레이서를 제물로 바치고.... 상대 필드에 [용암 마신 라바골렘]을 특수 소환합니다!"
눈알이 나버리는 것 같은 강한 열기에 질끈 눈을 감았는데도 감은 눈 너머로 붉은 빛이 온 시야를 감쌌다. 천천히 다시 눈을 뜨자, 트레이서와 마스카레나가 용암 거신의 양손에 들린 철창 안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세트된 함정 카드 발동."
저 압도적인 크기와 포스를 가진 거신의 모습을 살펴보기도 전에, 그것의 몸체를 이루던 용암이 식으며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열기를 식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라바 골렘 위로 병충해가 논밭을 싹쓸이하듯 한 쌍의 뿔이 달린 악마처럼 생긴 바이러스 입자들이 라바 골렘을 덮어버리고 있는 것이였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보니 저 징그러운 바이러스 입자들은 시현의 덱에까지 침투해오고 있었다.
"[악의 덱 파괴 바이러스]! 섀도우 디스토피아의 효과에 의해, 상대 필드의 용암 마신 라바 골렘을 릴리스하고 발동합니다!"
"덱의 카드를 파괴....?"
비록 3턴 동안이나 드로우한 카드 중 몬스터를 전부 파괴한다고는 하지만, 묘지 자원 6장은 드래곤 링크에게 있어선 파격적인 어드밴티지였다. 상황이 잘 풀리면 돌아온 자신의 턴에 게임을 끝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그런데도 이 카드를 썼다는건 초심자의 잘못된 카드 선정인가, 아니면 일종의 도발인가? 시현은 알 겨를이 없었다.
시현은 고심 끝에 고른 6장의 카드를 덱에서 한 움큼 뽑아냈고, 그러자 그 카드들이 보랏빛으로 물들며 바스라져 사라졌다.
"그럼 이어서, 묘지의 함정 카드 1장을 제외하고 패의 [악마양 앨리스]를 특수 소환, 그 후 마법 카드 [동포의 연]을 발동합니다! 덱에서 종족/레벨/속성이 같은 동포 2명을 불러옵니다! [악마양 릴리스]와 [악마양 로리스]를 수비 표시로 특수 소환!
노란 생머리를 가진 악마의 뒤로 빨간 머리의 악마와 나머지 둘에 비해 체구가 작은 소녀 악마, 이렇게 2명이 더 날아왔다.
"로리스의 기동 효과로 [궁수 부대] 2장과 [트랩 트릭] 1장을 덱으로 되돌리고 1장 드로우. 그 후, 릴리스의 효과를 발동. 앨리스를 릴리스하고 덱에서 일반 함정 3장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중 무작위로 고른 1장을 자신 필드에 세트합니다!"
보여준 카드는 [데몬 글리치] 2장과 [트랩 트릭] 1장. 무엇을 고르든 결국 [리볼부트 섹터]를 파괴할 작정인건 똑같았다.
"자, 그럼.... 릴리스된 앨리스의 효과로 [악마양 마리스]를 서치하고, 몬스터가 릴리스 되었으니 로리스의 효과로 묘지의 [천룡설옥]도 세트할게요. 이제 카드 1장을 세트하고 턴 엔드. 여기서 섀도우 디스토피아의 강제 효과가 발동하지만, [동포의 연]의 디메리트로 인해 토큰이 생성되지 않아요."
{유시현 LP 7000, 패 2장 민소은 LP 4300, 패 1장}
《TURN 4》
"드로우 페이즈, 드로우!"
시현이 드로우한 카드는 [매그너바렛 드래곤]. 그러나 카드를 뒤집어 확인하는 순간 그것 역시 보랏빛으로 물들더니 이내 한 줌의 잿가루가 되어 바스라지고 말았다.
"[리볼부트 섹터]의 기동 효과 발동, 상대 필드의 몬스터 수가 자신보다 많으니, 그 수의 차만큼 묘지의 바렛을 소생합니다!"
"체인, [데몬 글리치]를 발동해 리볼부트 섹터를 파괴합니다!"
리볼부트 섹터가 산산조각난 자리엔, 라르바우르의 것과 비슷하지만 좀 더 큰 마법진이 형성되었다.
"이 순간, 묘지의 [마옥룡 질드라스]의 효과 발동! 자신의 마법/함정이 상대에 의해 필드에서 벗어난 것으로, 이 카드를 특수소환하고 묘지/제외 상태의 마/함 1장을 세트합니다!"
"..... 체인 3, [천룡설옥]을 질드라스를 대상으로 발동."
"체인 4, [바렛 리차저]를 대상으로 함정 카드 [트랩트랙]을 발동합니다!"
만약 이 효과가 통과된다면, [붕계의 수호룡]을 세트해 저 걸리적거리는 함정과 필드 마법을 통째로 치울 생각이였다. 설령 리차저가 릴리스되어 효과가 불발되어도 위협적인 견제를 하나 뺀 셈이니 그것도 그것대로 나쁘지 않고.
"체인 5, 릴리스의 효과 발동. 바렛 리차저를 릴리스하고 덱의 일반 함정 3장 중 1장을 세트합니다!"
보여준 카드는 [메탈화 강화반사장갑] 3장. 완전히 처음 보는 카드였다. 함정 카드는 세트한 턴에는 발동할 수 없고 섀도우 디스토피아의 효과도 이미 적용되었으니 당장은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데몬 글리치]의 효과로 묘지로 보내진 [절대왕 백 잭]의 효과 발동. 덱 위의 카드 3장을 확인하고, 좋아하는 순서대로 덱 위로 되돌립니다."
이걸로 눈에 띄는 방해 요소는 이미 한 번씩 빼냈으니, 이제 시현이 반격할 차례였다.
"[휘광룡 세이퍼트]를 일반 소환하고 효과 발동, 자신을 묘지로 보내고 [휘백룡 와이버스터]를 서치!"
묘지의 [스트라이커 드래곤]이 제외되자 와이버스터가 소환, 이어 푸른 회로로 들어가 또다른 [스트라이커 드래곤]으로 변했다. 그리고 스트라이커의 몸체가 폭발하며 문클립 하나가 떨구어지고, 그 자리엔 이도류를 든 드래곤이 날아올라 양팔에서 두 개의 탄환을 발사하였다.
"[듀얼윌 드래곤]의 (1)번 효과로 트레이서와 매그너바렛을 소생, 그 후 묘지의 자신을 제외해 가져온 [라피도 트리거]를 발동, 그리고 체인 2로 트레이서의 효과를 발동합니다! 발동 중인 속공 마법을 파괴하고...."
"그렇다면 바렛 트레이서의 효과에 체인, 묘지의 [인왕의 수호]를 제외해 질드라스를 대상으로 효과를 발동합니다. 이 턴 상대는 대상 몬스터밖에 공격할 수 없습니다!"
소은이 묘지에서 카드 하나를 꺼냈다. [천룡설옥]의 효과로 제외되지 않고 필드에 남은 질드라스의 앞에서 어두운 필드와 어울리지 않는 광채의 방벽이 생겼다.
"그럼 나머지 효과 처리로, 트레이서의 효과로 특수 소환한 [익스플로드바렛 드래곤]과 듀얼윌의 효과로 소생한 [매그너바렛 드래곤]을 파괴하고, [바렐로드 F 드래곤]을 융합 소환!
그리고, 묘지의 와이버스터를 제외해 [암흑룡 코라프서펜트]를 특수 소환하고, 레벨 4인 트레이서에 레벨 4인 암흑룡을 튜닝! 싱크로 소환, [레드데몬즈 드래곤 스카라이트]!!"
가능하다면 단기전으로 끝내고 싶었지만, [인왕의 수호]의 효과에 의해 함정 카드를 끌어모으는 자원의 원천인 악마양 몬스터들을 공격할 수 없었다. 그럼 미리 치워두기라도 하는 수밖에.
"스카라이트의 효과 발동, 이 카드 공격력 이하의 특수소환된 몬스터를 전부 파괴합니다! 앱솔루트 파워 플레임!"
적의 필드로 넘어간 질드라스와 두 마리의 악마가 지옥과도 같은 열가에 타는 와중에도, F 드래곤은 몸을 둘러싼 강철의 광택이 빛나며 끄떡없이 버티고 있었다. [라피도 트리거]의 내성으로 인해 피아를 가리지 않고 엑스트라 덱에서 소환된 몬스터 효과에 내성을 가지게 된 것이였다.
"이어서, 묘지의 [카오스 테리토리]를 제외하고 효과 발동, 제외되어 있는 [암흑룡 코라프서펜트]를 덱 아래로 되돌리고 1장 드로우!"
드로우한 카드는 [팬텀 나이츠 셰이드 브리간딘]. 만약 묘지에 함정이 없었다면 바로 발동해 [크로노다이버 리단]으로 이을 수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나올 타이밍이 아니였던 것 같다.
-"트로이메어 유니콘까지 꺼내서 세트 카드를 더 정리하는게 어때? 섀도우 디스토피아는 엔드 페이즈에 생성된 토큰을 탄환 삼아 파괴하면 아드 손해도 보지 않을 테고."
-"근데 아직 발동하지 않은 저 세트 카드는...."
-"글쎄, 만약 카드의 효과를 무효화시키는 함정이였다면 진작에 스카라이트의 효과를 막지 않았을까? 이미 [인왕의 수호]의 효과 때문에 이 턴에 게임을 끝낼 수도 없고, 매 턴 자원을 벌어오는 악마양 몬스터들을 남기는 쪽이 더 이득이기도 하고 말이야."
-"...... 알았어."
듣고 보니 라이고우의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그가 승부를 조작하기 위해 일부러 거짓말을 할 위인도 아니였고.
"그리고, 묘지의 [드래곤메이드의 정리정돈]을 제외하는 것으로 [드래곤메이드 체임]을 묘지에서 소생하고, 소환에 성공한 것으로 [드래곤메이드의 환대]를 가져옵니다. 그 후 스카라이트와 체임을 소재로 [데린저러스 드래곤]을 링크 소환한 후 [드래곤메이드의 환대]를 발동, 체임을 다시 소생합니다!
이제 데린저러스와 체임을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3, [트로이메어 유니콘]!"
"유니콘의 유발 효과로 패 1장을 버리고 저 세트된 [메탈화 강화반사장갑]을 덱으로 되돌립니다!"
"그럼 묘지의 [절대왕 백 잭]을 제외하고 효과 발동, 덱 위의 카드 1장을 넘겨 확인하고, 그것이 일반 함정이면 자신 필드에 세트합니다."
물론 소은은 조금 전 덱 위의 카드를 확인했으니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을 것이다. 과연 그 카드가 어떤 함정인지가 관건.
"넘긴 카드는 [활로를 향한 희망]. 따라서 자신 필드에 세트. 그리고 이 효과로 세트한 카드는 세트한 턴에도 발동할 수 있어요."
"엔드 페이즈, 섀도우 디스토피아의 효과로 토큰 2체를 소환한 후 F 드래곤의 효과를 발동합니다! 섀도우 토큰과 상대 필드에 세트된 [트랩트릭]을....."
F 드래곤이 입에서 총신을 꺼내다 말고 갑자기 소은의 세트 카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세트된 카드가 뒤집어지며 시현의 묘지에서 카드 1장이 떠올랐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첫 턴에 라르바우르의 효과로 버린 [방황의 바람]이였다.
"함정 카드 [트랜잭션 롤백]! 라이프를 절반 지불하는 것으로 상대 묘지의 일반 함정 1장의 효과를 복사합니다! 제가 고른 카드는 [방황의 바람]!"
{민소은 LP 2800-> 1400}
시현의 묘지에 있던 [방황의 바람]이 [트랜잭션 롤백]의 이미지에 덧씌워지며 검은 안개를 내뿜자, F드래곤은 안광과 날개에 들어온 초록빛이 꺼지며 추락하고 말았다.
-"[방황의 바람]의 무효화는 몬스터가 필드에서 벗어나기 전까지 영구히 지속돼... 이러면...."
-"크윽....."
스카라이트의 효과까지 통과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방해 수단이 없다고 생각한 자신의 치명적인 오판에 시현은 머리 속이 새하얘졌다.
"..... 엔드 페이즈, 파괴된 매그너바렛과 오토바렛의 효과로 덱에서 [바렛 트레이서]와 [익스플로드바렛 드래곤]을 특수소환합니다."
"저는 턴 종료 전에, 백 잭의 효과로 세트한 [활로를 향한 희망]을 발동. 1000 LP를 지불한 후, 서로의 라이프 차 2000당 1장 드로우합니다! 전 이걸로 총 3장을 드로우!"
시현은 더 이상 방해할 수단이 남지 않은 반면 소은은 순식간에 자원 손실을 드로우로 메꾸며 후속을 도모했고, 아직 섀도우 디스토피아도 건재하다. 이건, 진짜 큰일났다.
{유시현 LP 7000, 패 2장 민소은 LP 400, 패 4장}
《TURN 5》
"자, 드로우 페이즈. 드로우."
"[바렛 트레이서]의 효과를 발동, 토큰 1체를 파괴하고 덱에서 바렛 몬스터를 특수소환합니다!"
섀도우 디스토피아를 치우는 데에 실패한데다 소은이 패에 몬스터를 릴리스하고 효과를 발동하는 [악마양 마리스]가 있는 것을 알고 있기에, 릴리스되기 전에 미리 쓴다는 심산으로 트레이서의 효과를 발동했다. 하지만....
"..... 이 순간, 패 1장을 버리고 속공 마법 발동.
이 카드는 서로의 필드의 몬스터를 소재로서 몬스터를 융합 소환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그 궁극의 힘을 해방하라, 마법 카드 [초융합]!!"
융합 소환을 할 때 늘 나타나는 소용돌이였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노란색 번개가 치는 소용돌이가 몬스터들은 물론 시현까지 빨려들어갈 뻔할 정도로 거세게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F 드래곤과 트레이서의 효과 대상이 된 섀도우 토큰을 융합! 나와라, [늪지의 도로곤]!"
"상대 필드의 몬스터만을 소재로 융합 소환이라고....?!"
시현이 처음 보는 카드에 놀라 [방황의 바람]이 묘지에서 다시 세트된 것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 소은은 여유롭게 나머지 패 3장을 확인하고는 묘지의 카드 1장을 꺼내 제외된 카드가 들어가는 투입구에 넣었다.
"묘지의 [트랜잭션 롤백]을 제외하고 효과 발동, LP를 절반 지불하는 것으로, 이번에는 자신 묘지의 일반 함정 1장을 효과를 복사합니다. 제가 선택한 카드는 [활로를 향한 희망]!"
{민소은 LP 400-> 200}
①: 자신의 LP가 상대보다 1000 이상 적을 경우, 1000 LP를 지불하고 발동할 수 있다. 서로의 LP의 차 2000 당 1장, 자신은 덱에서 드로우한다.
[트랜잭션 롤백]의 일러스트에 [활로를 향한 희망]의 일러스트가 덧씌워지더니, 텍스트 또한 그것의 것으로 바뀌었다. 한 가지 차이점이라면 라이프를 지불하는 부분의 내용이 취소선 처리되며 사라졌다는 것. 이걸로 소은은 전 턴에 이어 또 카드를 3장이나 드로우핬다.
"..... 드디어 나왔네. 마법 카드 [덮쳐오는 머신] 발동. 덱에서 [메탈화 강화반사장갑]을 언급하는 카드 1장을 가져옵니다. 가져올 카드는 [악마수 데블 조아].
이 카드를 자신의 (2)번 효과로 특수소환하고, 함정 카드 [트랩트릭]을 발동! [메탈화 강화반사장갑]을 제외하고 같은 이름의 카드를 세트, 그 후 그 카드를 발동합니다! 데블 조아여, 지금 단련된 강철과 하나 되어 새로운 힘을 해방시켜라! [메탈 데블 조아 X]!!"
데블 조아의 몸체에 푸른 강철 갑옷이 씌워져 형태가 더욱 육중해지고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그것의 울음소리는 강철 갑옷 안에서 끼기긱- 거리는 쇳소리와 섞여 더욱 기괴하게 변조되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자신 필드의 어둠 속성 몬스터가 릴리스되었으니, 묘지의 [암흑의 마왕 디아블로스]가 명계로부터 돌아옵니다!"
소은의 발 밑에서 땅이 갈라지더니 불쑥 튀어나온 검은 드래곤의 손이 땅을 붙잡고 천천히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완전히 올라와 전신이 드러난 디아블로스는 생긴게 딱 라이고우가 떠오르는 쇠사슬을 끊으며 힘껏 포효했다.
"....마지막으로 패의 [악마양 마리스]를 일반 소환한 후, 묘지의 [덮쳐오는 머신]을 제외하는 것으로 상대 필드의 수비 몬스터 1장을 공격 표시로 전환합니다!"
그 말을 들은 시현의 필드의 섀도우 토큰은 진작에 소은의 편이였다는걸 몸소 보여주듯 자신을 상대 필드 코앞까지 나아가 적들을 도발하였다.
"이제 배틀! 먼저 [암흑의 마왕 디아블로스]로 [트로이메어 유니콘]을 공격! 이 순간, 패의 [쥬라게도]를 특수 소환하고 자신의 LP를 1000 회복합니다!"
디아블로스가 휘두른 쇠사슬이 감긴 주먹에 유니콘의 가슴에 달린 코어가 쨍그랑- 하고 박살나버리자, 그 날카로운 파편들이 고드름처럼 시현을 향해 쏟아졌다. 여느때처럼 시현은 한 쪽 팔로 얼굴을 가렸지만, 군데군데 파편들이 박힌 손등이 벌겋게 달아오르다가 작게 피가 맺히는 것을 보고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 이번엔 자신이 알던 솔리드 비전의 위력을 넘어선 것이였다.
{유시현 LP 7000-> 6200}
그러나 소은의 몬스터들은 시현에게 생각할 틈조차 주지 않았다. 벌써 [쥬라게도]가 [바렛 트레이서]를 발톱으로 할퀴며 산산조각내고 있던 것이였다.
"트레이서를 공격한 후, [쥬라게도]의 또다른 효과를 발동. 자신을 릴리스하고.... 아, 이제 따로 설명할 필요 없겠죠?"
시현의 예감대로 쥬라게도 대신 익스플로드바렛이 악령들에게 붙잡혀 바닥 밑의 끝없는 심연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제물로 바쳐진 익스플로드바렛의 혼을 흡수한 메탈 데블 조아의 기운은 더욱 상승하였다.
"자, 이어서 [늪지의 도로곤]으로 공격 표시인 [섀도우 토큰]을 공격!"
그러나 공격 선언 후 몇 초 후에도 도로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시현의 신발 안에서 뭔가 축축한 감각이 느껴지면서 양말이 젖기 시작했다.
"이건.... "
시현의 발목까지 올라온 늪지대에서 도로곤이 돌고래처럼 튀어올라, 끈적끈적한 점액을 튀기며 카멜레온 같이 기다란 혀로 그림자 악령을 삼켰다. 시현의 옷에도 조금 묻은 점액은, 어제 계단실에서 맡았던 다연 씨의 입냄새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역한 냄새를 풍겼다.
{유시현 LP 6200-> 5300}
도로곤이 섀도우 토큰을 삼켜 소화하는 사이, 숨을 고를 여유 따윈 주지 않겠다는듯 텅텅 비어버린 시현의 필드로 [악마양 마리스]가 날아와 기다란 꼬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시현은 몸을 양 팔로 감싸며 눈을 질끈 감았으나, 정작 비명을 지른 것은 시현이 아니였다. [요성룡 라르바우르]가 시현과 마리스 사이에 온몸을 던져 공격을 대신 맞아준 것이였다.
"자신 몬스터가 전투로 파괴된 것으로.... 묘지의 라르바우르가 소생...."
라르바우르에게 미처 고맙다는 말도 전하기도 전에 거대한 그림자가 시현 앞을 가로막자, 시현은 몸을 떨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제 가장 공격력이 높은 몬스터의 직접 공격 만이 남았다.
메탈 데블 조아X가 조금씩 입을 벌리며 쇳소리가 섞인 낮은 울음 소리를 내었다. 그런데 이번엔, 강철을 두른 그 괴수의 기분 나쁜 짐승의 울음 소리가 아니였다. 마치 음성 프로그램으로 조작한 것처럼, 음산한 기계음 속에서 미세하게 부드러운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 것이였다.
"시현아."
그 순간, 귀에 물이 잔뜩 들어간 것처럼 귓속이 먹먹해졌다.
".......?"
메탈 데블 조아X의 공격을 예상하고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던 시현은 천천히 눈을 뜨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메탈 데블 조아X가 날카로운 강철 발톱을 곤두세우는 모습에 은백색 도끼를 들고 휘두르는 여인의 모습이 겹치더니, 어느덧 여인의 모습만 남게 되었다.
"저건....."
그 순간, 푸욱- 하는 메스꺼운 소리와 함께 배에 무언가 날카롭고 단단한 촉감이 시현의 배를 눌렀다. 무방비 상태로 팔을 벌린 틈에 그것의 강철 날이 시현을 찌른 것이였다.
"크윽?!"
시현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저만치 날아갔고, 공원 한구석에 있던 벤치 모서리에 등을 부딪히는 순간 지금껏 누적된 데미지가 한꺼번에 분출되기라도 하듯 몸 여기저기에서 솔리드 비전 시스템에 의한 스파크가 튀었다.
"아아아아!!"
{유시현 LP 5300-> 900}
메탈 데블 조아X의 참격이 시현의 몸을 가른 후에도, 칼날이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공격력 4400의 공격이라지만, 솔리드 비전의 충격량이 이 정도였던가? 배를 더듬어봐도 피 같은게 흘러나오지는 않았지만, 배에 스펀지처럼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기라도 한듯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을 때마다 쉰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나저나, 아까 그 여인의 모습은.....? 주말에 자신을 유인한 그 수수께끼의 여인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단순히 사람의 형체로만 보였던 것이 좀 더 모습이 확연해지기까지 했다.
정말 한순간이였던지라 구체적으로 묘사할 자신은 없었지만, 머릿속에 기억이 남은 머리에 달린 한 쌍의 뿔, 엉덩이에는 자그맣게 튀어나온 꼬리, 그리고 몸에는 풍성한 은빛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는 점은 또렷하게 기억했다. 정작 사람을 알아보는데에 제일 중요한 얼굴에는 음영이 져 있어 외모까지는 알 수 없었고... 대체 왜 주말 이후로 나타나지 않았던 그 자가 여기서 또 떠오른건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라이프가 아슬아슬 남았네? 이 턴에 끝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듀얼은 시현이가 주인공인가봐?"
그래도 아직 라이프가 0이 되지 않고 남았으니 다행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잠깐, 아슬아슬하게 남았다고?
상황을 돌이켜보니 공격 순서가 잘못되어있었다.
만약 도로곤과 쥬라게도로 공격한 후 쥬라게도의 효과를 썼다면 라르바우르의 효과를 쓸 틈도 주지 않고 그대로 이길 수 있었다. 메탈 데블 조아X는 몬스터 효과가 발동하면 상대 필드의 몬스터 1장을 파괴할 수 있으니, 마지막 몬스터가 전투로 파괴된 시점이 아니면 라르바우르의 효과를 써봤자 다른 몬스터가 파괴되어 몬스터 수는 그대로일 테니까. 그런데 과연, 자신의 생각을 꿰뚫어보고 패배 직전까지 밀어붙이던 상대가 이런 실수를 했을까?
"그럼.... 메인 페이즈 2에 디아블로스의 효과를 발동합니다! 자신을 릴리스하는 것으로, 상대는 자신의 패 1장을 덱의 맨 위 또는 아래로 되돌립니다!"
휘백룡을 덱 탑으로 되돌려봤자 드로우를 한 후 바이러스의 효과에 의해 파괴될 테니 시현에겐 다음 턴 드로우를 리볼부트 섹터로 정리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카드 3장을 세트하고 엔드 페이즈. 그 후 섀도우 디스토피아의 효과로 토큰 2체를 특수소환 후, [악마양 마리스]의 효과로 토큰 2체를 릴리스하고 묘지의 [데몬 글리치]도 세트합니다."
{유시현 LP 900, 패 1장 민소은 LP 1200, 패 0장}
《TURN 6》
"..... 드로우!"
드로우한 카드는 역시나 [리볼부트 섹터]. 시현은 그 카드를 그대로 소은에게 공개한 후 다시 패로 넣었다.
"스탠바이 페이즈, 함정 카드 [삼위일택] 발동. 융합/싱크로/엑시즈 중 하나를 선언하고, 선언한 종류의 몬스터가 엑스트라 덱에 더 많이 있는 플레이어는 3000LP를 회복합니다. 전 '융합 몬스터'를 선언."
저 카드를 발동한 이유로는 걸레짝이 된 라이프를 회복하려는 용도도 있었지만 상대 엑스트라 덱의 카드를 전부 확인해 행동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는 점도 한몫 했을 것이다.
시현도 소은의 엑스트라 덱을 확인할 수 있기는 했지만 엑덱을 적극적으로 쓰는 타입이 아닌 데다가 이미 현재 필드 상태만으로도 밀리는 상황이라 별 메리트는 없었다.
소은의 엑스트라 덱에 남은 융합 몬스터는 [공명의 날개 가루라], [구신 노토스], 그리고 [엘리멘틀 히어로 프레임 윙맨]이 있었다.
잠깐, 히어로...? 이게 왜 들어있는 거지? 아직 덱을 짠 지 얼마 안 됐다는 그녀의 말에서 추측해보건대 엑덱을 채울 카드가 부족해 항아리 코스트 용으로 아무거나 집어넣은 것으로 보였지만 왜 굳이 저런 옛날 카드를 넣었는지는 오직 그녀만이 알 뿐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소환될 여지도 없는 몬스터보다 눈앞의 위기를 타개하는게 먼저이니...
"필드 마법 [리볼부트 섹터]를 발동, 자신 필드의 몬스터 수가 상대보다 적으니 그 차만큼...."
"체인, [데몬 글리치]를 발동해 [리볼부트 섹터]를 파괴합니다. 그 후, 덱에서 [새크리보]를 묘지로 보냅니다."
이걸로 바렛 몬스터들을 대량으로 소생시키는 방법은 물건너 갔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일렀다. , 전 턴에 효과가 불발되어 다시 묘지로 보내진 질드라스가 남아 있으니까.
"자신의 마법/함정이 상대 효과로 필드에서 벗어났으니 [마옥룡 질드라스]를 특수소환하고, 묘지의 [바렐 리로드]를 세트합니다!
그 후 장착 마법 [바렐 리로드]를 발동, 묘지의 [바렛 리차저]를 소생하고....."
"메탈 데블 조아X의 효과 발동, 상대가 마법 카드의 효과를 발동했으니 상대 필드의 몬스터 1장을 파괴합니다!"
소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X자 모양의 섬광이 시현의 시야를 가렸다. 메탈 데블 조아X의 칼날이 질드라스를 정확히 4등분한 것이였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4등분 되어버린 질드라스는 바로 입자가 되는 연출과 함께 사라지지 않고 미세하게 꿈틀거리다가 바닥에서 솟아난 그림자 악령들에게 끌려가 사라졌다. 무언가 질겅질겅 씹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면.... 그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여태껏 몬스터의 파괴 연출 중 이렇게 비위 상하는 그로테스크한 것은 없었는데, 시현은 순간 자신이 너무 충격을 많이 받아서 헛것을 본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바렛' 몬스터가 특수소환된 것으로 묘지의 [데린저러스 드래곤]을 소생! 그 후, 묘지의 [스트라이커 드래곤]을 제외하고 패의 [휘백룡 와이버스터]를 특수 소환한 후, 데린저러스와 와이버스터를 링크 마커에 세트! 나와라, 링크 3! 닫힌 세계를 이끄는 폭풍, [바렐코드 드래곤]!"
아직 섀도우 디스토피아의 릴리스 대용 효과를 쓰지 않았기에 바렐로드 같은 대형급 몬스터는 아직 꺼낼 수 없었다. 하지만 바렐코드는 링크 3에, 어떤 식으로든 묘지로 보내면 (3)번 효과로 메탈 데블 조아X를 제외하고 토폴로직 몬스터를 꺼낼 수 있으니 돌파할 방법은 분명 남아있을 터...
"묘지로 보내진 휘백룡의 효과로 암흑룡을 패에 넣고...."
그러나 이런 시현의 기대는, 세트된 카드가 뒤집히며 금방 깨지고 말았다.
"이 순간 지속 함정, [대대적 체포 작전]을 발동. [바렐코드 드래곤]의 컨트롤을 얻습니다!"
눈부신 백색광들이 모두 바렐코드에 초점을 맞추어 비춰지더니, 사방에서 밧줄이 튀어나와 바렐코드를 속박하고 소은의 진영으로 끌고 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묘지의 [휘광룡 세이퍼트]와 [암흑룡 코라프서펜트]를 제외하고, [종언룡 카오스 엠페러]를 특수 소환합니다!"
카오스 엠페러는 이 카드 이외의 자신 필드의 카드를 전부 묘지로 보내고, 그 수만큼 상대 필드의 카드도 대상을 지정하지 않고 묘지로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봤자 사전에 방해받기 쉬운 기동효과. 소은이 이 약점을 공략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럼 [악마양 마리스]의 효과를 발동, 필드 마법의 효과에 의해 자신과 종언룡을 릴리스한 후 묘지의 [천룡설옥]을 세트합니다!"
"크윽.... 이번에도...."
이제 엑스트라 덱에서 꺼낼 만한 몬스터도 얼마 남지 않았다. 게다가 저 메탈 데블 조아X는 공격력 4400에 몬스터/마법 효과에 대한 대상 내성과 파괴 내성을 가진 견고한 벽 그 자체. 어쩌면 자신의 라이프를 남겨둔건 실수가 아니라 끝까지 자신을 농락하기 위한 인성질이였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묘지의 [바렐로드 F 드래곤]의 효과를 발동, 묘지의 [아이:피 마스카레나]를 소생...."
이번에도 파괴 효과를 쓸 거라 생각해 말끝을 흐렸지만, 의외로 메탈 데블 조아X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던 맹수 같은 모습이 무색하게 얌전히 주인의 명령을 기다릴 뿐이였다. [바렐 리로드]의 효과로 소환한 몬스터가 효과로 파괴되었을 때 1장 드로우하는 효과를 경계해서 그런 것인가?
이 상황에서 패에 남은 마지막 몬스터인 암흑룡도 꺼내 바렐로드를 소환할 수 있었으나 선뜻 그 카드에 손이 가지 않았다. 설령 그것의 효과로 바렐코드나 메탈 데블 조아X의 컨트롤을 얻는다 해도, 결국 이 턴 안에 게임을 끝내지 못하면 다음 턴에 섀도우 디스토피아의 연계로 다시 제거당할 뿐이니까. 게다가 묘지에 남은 자원들도 다 써버린 상태. 여기서 밀린다면 다시는 필드를 복구할 수 없을 것이다.
"전.... 전......."
이렇게 된 이상 토폴로직 폭탄 드래곤을 꺼내서 필드 클린을.... 아니, 타점도 밀릴 뿐더러 메탈화 강화반사장갑의 내성 때문에 데블 조아X를 치울 수 없다.
매그너바렛 같은 탄환을 가지고 올 수 있었다면.... 아니, [늪지의 도로곤]의 지속 효과 때문에 트레이서의 효과로 탄환을 불러오는 것은 물론 쏘는 것조차 할 수 없다. 전턴에 도로곤이 소환되면서 (2)번 효과로 도로 세트된 [방황의 바람] 역시 잉여나 마찬가지.
[수호룡 피스티]로 스카라이트를 다시 불러내도 딱히 할 수 있는게 없다는것도 여전했다. 그야말로 모든 수단이 틀어막힌 진퇴양난의 상황.
만약 바렐스워드가 엑스트라 덱에 있었더라면 이 상황을 돌파했을지도 모르지만, 일단 출처를 알기 전까지는 쓰지 않겠다고 약속해 덱 케이스 깊숙히 넣어두었다. 이제 남은 방법은 서렌더를 선언하거나....
-"..... 이번 듀얼은 여기서 끝인 것 같군. 서렌더하면 듀얼 에너지를 못 받으니 차라리 남은 몬스터로 공격이라도 해서 패배를 인정하는 수밖에..."
라이고우의 말을 듣고 떨리는 손가락으로 듀얼 디스크의 화면을 터치해 배틀 페이즈로 넘어가려던 순간, 시현의 옆에서 머리카락이 한쪽으로 쏠릴 정도의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분명 비가 그치고 해가 떠오른 시각이라 바람이 불리가 없었지만 시현에게는 확실히 느껴졌다. 폭풍 속에서 속삭이는 정령의 목소리가....
"이건....."
또 그것이였다. 다연과 만났을 때 자신의 내면에서 듀얼을 독촉하던 의문의 목소리. 혹시 덱 밖에 있던 바렐스워드가 마치 애니에서처럼 스스로의 의지로 엑스트라 덱에 들어오는 기적이라도 일어난 건가 싶어 엑스트라 덱을 확인해 보았으나,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엑스트라 덱 맨 밑에 처음 보는 카드가 듀얼디스크에 꽂아보라는 듯 반짝거리는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왜 그래, 시현?"
-"응? 아....그냥 처음 보는 카드가 엑스트라 덱에 들어있어서...."
어쩌면 우연한 오류 같은 것으로 탄생했을 지도 모른다면서 비록 다연 씨는 바렐스워드에 대해 일단 쓰지 말고 기다려보라고 했지만, 정작 사용한 후 따로 부작용이 있는 것은 아니였다. 정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가짜 카드라 하기에도, 전국적으로 카드를 유통하는 대기업이란 곳에서 진작에 제제를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기에 그것 또한 아닐 것이다.
하지만 방금 메탈 데블 조아X의 직접 공격으로 받은 충격의 크기나 그때 떠오른 '그 여인'의 모습이 계속 거슬렸다. 만약 이 듀얼에서 진다면 어떤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는 더더욱 예측할 수 없었고. 시현은 당장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럼.... 일단 속는 셈치고 한 번 더 자신 안에 있는 미지의 존재의 말을 믿어보는 수밖에.
"..... 전 마스카레나와 리차저를 링크 마커에 세트!"
그 말을 들은 2장의 몬스터가 머리 위로 나타난 회로에 빨려들어갔다.
"나와라, 링크 3! [토폴로직 투리스바에나]!"
저 카드는 [토폴로직 폭탄 드래곤]과 비슷한 외눈을 가지고 있었고, '토폴로직'이라는 이름 역시 공유하고 있었다. 그 '정령의 진화'라는 것이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기존 정령이 변형/강화된 형태가 되는 것은 확실해보였다.
그런데, 바렐로드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이는 바렐스워드와는 달리 이 카드의 원본으로 보이는 폭탄 드래곤은 여태껏 시현이 한 번도 꺼낸 적 없는 몬스터였는데... 일단 그건 지금 따질 게 아니지.
"묘지의 휘백룡을 제외하고 패의 [암흑룡 코라프서펜트]를 투리스바에나의 링크 마커 앞에 특수소환하고, 투리스바에나의 효과 발동!"
메탈 데블 조아X가 그 말을 듣고 투리스바에나를 뭉개버리기 위해 돌진하였다. 그러나 투리스바에나는 가소롭다는 듯이 그 움직임을 한 팔로 막아내고는 그것이 있어야 할 자리로 다시 밀어 던져버렸다. 물론, 투리스바에나 자체의 능력은 아니고 링크 소재가 된 마스카레나의 효과로 파괴 내성을 얻은 덕이였다.
훼방꾼이 사라지자 투리스바에나의 양 팔이 날개와 결합하며, 상반신이 마치 탄환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이 생긴 총신처럼 변했다. 그리고 이 총구는 이 지긋지긋한 어둠 속을 벗어나고픈 시현의 마음을 반영하듯 섀도우 디스토피아의 카드 이미지를 겨누었다.
"링크 앞에 몬스터가 특수소환된 것으로, 그 몬스터 및 필드의 마법/함정을 전부 제외하고, 제외한 상대의 카드 1장 당 500 데미지를 상대에게 줍니다!
마이그레이션 포스!!"
시현의 선언이 떨어지자 투리스바에나의 상체에서 푸른 에너지파가 쏟아져나왔다. 그러자 메탈 데블 조아X의 몸을 감싼 강철 코팅이 묵은 때가 벗겨지듯 깨끗이 사라졌다. 듀얼 필드를 감싸고 있던 그림자 악령들과 검은 안개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샤워기로 씻기기라도 한 것처럼, 몸과 마음이 모두 상쾌해졌다.
한편 소은의 눈은 놀란 것처럼 보이면서도, 아니 오히려 황홀한 눈빛에 더 가까웠으며 입은 웃고 있었다. 마치 대적할 수 없는 상대를 보고 느낀 경외감이랄까.
"바로 이거야, 내가 보고 싶었던 건...!"
소은은 제외된 카드들이 폭풍에 휘날리면서 자신의 얼굴을 스치자 얼굴에 미세하게 검은 균열이 생겼지만, 아픈건 전혀 상관 없다는 건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이렇게 시현의 귀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민소은 LP 4200-> 2200}
그리고 [대대적 체포작전]이 필드에서 벗어나면서 [바렐코드 드래곤]을 구속하고 있던 밧줄도 힘없이 풀려났다. 바렐코드는 풀려난 자유를 만끽하듯 포효하며 날개를 크게 펼쳤다. 물론, 그것은 저 하늘 위로 생겨난 링크 마커에 들어가기 위함이였다.
"그리고, 투리스바에나와 바렐코드를 링크 마커에 세트! 나와라, 링크 4! [토폴로직 폭탄 드래곤]!!!"
투리스바에나의 흑백의 몸체에, 바렐 코드의 붉은 갑주가 결합하며 이 외눈의 기계는 거대한 뱀을 연상시키는 하반신을 갖추게 되었다.
한편 외형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토폴로직 뿐만이 아니였다. 은빛 갑주를 잃은 메탈 데블 조아X는 이제 수백개의 정육면체 모양 입자로 분해되기 시작했다.
"묘지의 [바렐코드 드래곤]을 제외하고 효과 발동, 필드의 공격력 3000 이상의 어둠 속성 몬스터 1장을 제외하고, 엑스트라 덱/묘지에서 토폴로직 몬스터 1장을 특수소환합니다! 메탈 데블 조아X를 제외하고.... 투리스바에나를 폭탄 드래곤의 링크 마커 앞에 소생!"
투리스바에나의 몸체가 폭탄 드래곤의 꼬리에 휘감기자, 플러그를 꽂는 소리와 함께 폭탄 드래곤의 외눈이 붉게 빛나며 경고음이 울리기 사작했다.
"이 순간, 링크 앞에 몬스터가 특수소환된 것으로 토폴로직 폭탄 드래곤의 효과 발동! 메인 몬스터 존의 몬스터를 전부 파괴합니다! 풀 오버랩!!"
"[쥬라게도]를 릴리스하고 효과 발동, [늪지의 도로곤]의 공격력을 1000 올립니다!"
비어버린 메인 몬스터 존의 땅이 갈라지더니 새까만 드래곤의 손이 공포 영화 속의 귀신처럼 불쑥 튀어나왔다.
"그 후, 자신 필드의 어둠 속성 몬스터가 릴리스된 것으로 묘지의 [암흑의 마왕 디아블로스]가 부활합니다! 자....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물론 시현은 상관없었다. 오히려 게임을 더 빨리 끝낼 수 있었으니.
"배틀, [토폴로직 폭탄 드래곤]으로 [암흑의 마왕 디아블로스]를 공격합니다! 종극의 마리셔스 코드!!"
"하지만 양쪽 몬스터의 공격력은 3000, 이대로라면...."
디아블로스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폭탄 드래곤을 건방지다고 여긴 건지 그것의 양손을 붙잡고 반격하려 했다. 그러나.... 폭탄 드래곤이 노리려던건 디아블로스를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였던 것 같았다. 폭탄 드래곤의 꼬리가 뱀처럼 디아블로스를 휘감자, 그것의 외눈이 (1)번 효과를 발동할 때처럼 붉게 점멸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디아블로스도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폭탄 드래곤을 향해 머리로 박치기를 반복하며 어떻게든 그것을 때어내려 발악해보았지만 폭탄 드래곤은 외눈이 달린 머리가 박살나는 와중에도 디아블로스를 놓지 않았다.
"폭탄 드래곤이 공격한 데미지 계산 후..... 그 상대 몬스터의 원래 공격력만큼의 데미지를 줍니다! 에이밍 블래스트!!"
폭탄 드래곤의 외눈이 점멸하는 주기가 점점 빨라졌고 디아블로스도 울부짖으며 살기 위해 발버둥쳤으나, 기계가 사람을 봐주지 않듯이 폭탄 드래곤은 매정하게 경고음을 이어나갈 뿐이였다.
삐이이--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느낀 걸까, 빠르게 반복하던 경고음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 디아블로스의 울음 소리가 아주 잠깐이였지만 멎었다.
잠시 후....
-투콰아아앙!!!
귓속을 가득 메우는 폭발음과 함께 두 몬스터는 장렬히 필드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그 폭발의 여파로 발생한 충격파가 소은의 안면을 강타했다.
{민소은 LP 2200-> 0 듀얼 종료}
"으.... 으윽....."
소은이 지른 비명소리조차 묻힐 정도로 강한 폭발에 정신을 차려보니, 소은은 자신의 얼굴 왼쪽을 손으로 감싼 채 바닥에 뒹굴어 쓰러진 상태였다.
"괜찮아? 혹시 많이 다친 건 아냐?"
"시현아..... 이번 듀얼 정말 즐거웠어!"
혹시라도 자신이 너무 과했던 것은 아닌지 걱정하던 시현에게, 소은은 뜻밖에도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악수를 하려는듯 얼굴을 가리지 않은 반대쪽 손을 건냈다.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 얼굴은 좀 어때?"
"뭐.... 그렇게 많이 다친 건 아니야. 이 정도는 그냥 반창고 정도만 붙이면 될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넌 먼저 학원에 가 있어. 이제 갈 시간 다 되었겠다...."
"근데.... 방금 그건 도대체 뭐였어?"
"뭐가?"
"어? 그, 그게.... 듀얼 중에 솔리드 비전의 충격량이 평소와 다르게 높아져서 몸에서 막...."
그러면서 시현은 5번째 턴에 상처를 입었던 손등을 보여주려 했으나, 듀얼이 끝나면서 다 아문건지 아니면 애초에 그런 상처는 나지 않았던 것인지, 그곳엔 상처 하나 없이 맨들맨들한 새 살만이 있을 뿐이였다.
"응? 아무리 그런건 없었는데.... 그냥 솔리드 비전이 너무 리얼했던 나머지 헛것을 본 건 아닐까? 봐, 지금 넌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잖아. 지금 나보다 네가 더 상태가 안좋아 보여."
소은이 얼굴을 가린 손의 반대쪽 손으로 땀이 송골송골 맺힌 시현의 이마를 한 번 닦아주었다. 본인도 듀얼에 너무 열중했던 나머지 소은이 직접 닦아주기 전까진 땀이 난 줄도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머리뿐만 아니라 목, 등, 다리까지 땀이 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시현은 그것 말고도 자신에게 나타난 여인의 모습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 입이 10개여도 부족했으나, 그냥 오늘 유난히 자신이 예민해서 이런 헛것을 본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계속 소은에게 따지자니 그녀 또한 무안해질게 뻔해서 그 이상 나서지는 않았다.
"그럼 다음에 보자, 시현아."
소은이 얼굴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책가방을 챙겨 보건실로 가는 사이, 시현 역시 구석에 놓아둔 책가방을 들고 교문 밖으로 나서려는 참이였다.
우드득-
시현의 빌 밑에서 무언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다리를 들어 신발바닥을 보니 무슨 계란 껍질의 파편처럼 생긴 살구색 조각이 들러붙어 있었다. 그것을 신발바닥에서 떼어내 만져봤는데, 바깥쪽으로 볼록 튀어나온 겉부분은 정말 '사람의 피부'라고 착각할 정도로 매끄럽고 빛깔이 났다. 반면 오목하게 들어간 안쪽은 햇빛에 별로 반사되지 않는 회색 빛깔이였으며 안쪽을 만진 손에서는 미술실에서나 날 법한, 조각상을 만드는데에 쓰는 석고 냄새가 났다.
"이게 뭐지?"
시현이 손가락으로 계속 조각을 만지작거리는 사이, 바깥쪽의 살구색 부분도 서서히 빛깔을 잃고 회색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손끝에 힘을 주자, 조각이 더 잘게 바스러지며 가루로 흩어졌다.
"그냥 누가 내다버린 쓰레기인가....?"
시현은 덱 케이스 안에서 들썩거리며 어서 학원에 가자는 라이고우의 무언의 재촉을 이기지 못하고, 빨간불로 변하기까지 3초 남은 횡단보도를 서둘러 건너갔다.
..............................................................
소은은 학교 안에 들어서자 10m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보건실을 지나쳐 그 옆의 여자화장실로 들어갔다.
"음.... 이 정도면 오늘 안에 회복할 수 있겠다."
세면대 위의 거울을 보며 얼굴에 난 '상처'를 어루어만진 그녀는 이어 변기가 있는 화장실 칸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었다.
"그래서, 결국 시현에게 진거야?"
분명 소은 혼자서 들어갔을 화장실 칸 안에서는 또다른 소녀의 목소리가 웅성웅성거리고 있었다.
"뭐, 이기려면 진작에 이길 수 있었지만.... 이번 듀얼은 그게 목적이 아니잖아?"
"그렇군.... 근데 주박 덱이라는 카드 뭉치에 [함정 속으로]는 왜 넣었어? 안그래도 마이너한 덱인데 언제적 카드를..."
이번에는 방금 전 소녀와는 다른 소녀의 목소리가 소은에게 물었다.
"실은 듀얼하기 전에 잠깐 쓸 일이 있어서 따로 꺼내두었는데, 깜빡하고 내가 쓸 덱에 다시 넣어버렸지 뭐야? 더군다나 시현이가 막턴에 일반 소환을 하지도 않아서 효과는 써보지도 못하도 투리스바에나의 효과로 제외되고 말았지. 그게 오히려 다행이라고도 할 수 있으려나...."
그러면서 소은은 노트북의 키보드를 연신 두들기며 덱에서 따로 꺼내놓은 [메탈화 강화반사장갑]을 바라보았다.
<정령 진화 프로젝트 관찰 일지>
이번에 새로 진화한 정령은 [토폴로직 투리스바에나].
화력 조절에 실패해서 하마터면 이 몬스터를 보기도 전에 게임을 끝낼 뻔했지만.... 다행이도 적당히 공격 순서를 바꾼 덕분에 라이프를 아슬아슬하게 남겼고, 그 덕에 시현의 투쟁 본능을 극한까지 끌어올려 정령의 진화를 위한 최적의 컨디션을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메탈화 카드들과 연계할 생각으로 [암흑의 마왕 디아블로스]를 투입하였으나 정령의 진화 같은 것의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메탈화 강화반사장갑의 효과로 '드래곤족 몬스터'를 릴리스하고 소환할 수 있는 '메탈화' 몬스터를 발견하고 싶었는데, 디아블로스 말고 '더 적합한 몬스터'가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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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여기까지 쓰고..... 오늘 학원은 가는게 낫겠다. 개인사정으로 핑계대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계속 수업을 째고 다니면 날 좀 이상하게 볼 수도 있으니깐. 일단 대회 전까지는 학원 사람들이랑 적당히 어울려줄 필요가 있겠어...."
그러면서 소은은 노트북을 접어 다시 책가방에 넣은 후 화장실 문의 잠금장치를 풀고 밖으로 나왔다. 분명 화장실 칸 안에서의 목소리는 3가지였지만 밖으로 나온 것은 소은 혼자였다.
"시현이의 실력과 듀얼 에너지 방출량도 꾸준히 오르고 있고.... 앞으로가 기대되는 걸."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학교 밖으로 나설 때에도 보건실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선 아프다는 표정은 도저히 확인할 수 없었다. 그저 '상처'가 난 부위를 앞머리를 쓸어 넘겨 적당히 가린 후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걸어갈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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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여러분, 6월달부터 여러모로 바빴기에 업로드가 더 미뤄질까봐 걱정했지만 다행이도 저번처럼 다음 편까지 거의 반년씩이나 걸리지는 않았군요.
지금까지 시현이가 선공을 잡는 전개가 계속 이어졌기에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이번 듀얼은 제가 여태껏 썼던, 에이스 몬스터끼리 치고박는 식의 일반적인 듀얼이 아닌 함정 위주의 견제를 하는 덱과 맞붙는 듀얼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로그 짜는 것도 더 힘들어졌지만요.
특히 제일 힘들었던 부분은 바로 패 부족 이슈였습니다. 초기 구상에는 [크리티우스의 이빨]로 [데스 바이러스 드래곤]을 꺼내서 덱 파괴를 하는 장면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작성을 해보니 섀도우 디스토피아의 대신 릴리스하는 효과나 [천룡설옥] 같은 카드 하나만 '딸깍'해도 필드랑 묘지의 아드가 날아가는데다, 이걸 '악마양' 카드들의 효과로 재활용까지 할 수 있다보니 도저히 시현이가 역전하는 전개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미 듀얼 묘사에서 다들 눈치채셨겠지만) '상대가 적당히 봐주었다'는 묘사도 할 겸 [악의 덱 파괴 바이러스]를 통해 묘지 자원을 쌓게 해주는 방법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보니 이번엔 소은이 쪽에서 문제가 터져서, 시현이 잔뜩 쌓인 묘지 자원으로 전개하며 스카라이트랑 F 드래곤, 유니콘까지 다 꺼내니 아드 벌이의 원천인 필드 마법이랑 몬스터가 싸그리 날아가버려서 재기불능 상태가 되어버리더라고요... 견제 수단을 더 주려고 해도 이미 패를 많이 소모한 상태라 기껏해야 아까 언급한 셋 중 하나의 효과를 막는게 전부였던지라, 결국 롤백+활로를 향한 희망까지 투입해 상대 턴에 3장, 자기 턴에 롤백으로 베껴서 3장.... 총합 6장 드로우라는 무리수를 두게 되었습니다. 거기다 투리스바에나의 데뷔를 위해 라이프를 아슬아슬하게 남길 것까지 고려하다보니.... 로그가 전반적으로 깔끔하지 못했던 것 같네요.
그래서, 이번 에피는 팬픽 쓰시는 분들의 고충을 제대로 느낀 에피인 것 같았습니다. 보여주고 싶은 장면은 많은데 패는 늘 모자라고, 뭔가 주고받는 식의 듀얼을 쓰고 싶은데 실제로는 실전 듀얼처럼 한 번 전세가 기울면 역전하기도 쉽지 않고.... 이러다 다음 화 듀얼은 언제쯤 다 쓸 지 벌써 걱정이군요. 그래도 일단 뭐라도 써야 실력이 느는 법이니 느리더라도 꾸준히 써봐야 겠습니다.
그럼 이번 글은 여기서 마치며, 다음 화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로그 오류나 오타 지적 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IP보기클릭)118.176.***.***
잘 봤습니다 이번 듀얼은 지겠구나 하던 듀얼을 보기 좋게 이겨버리는 게 주인공답네요 덱에서 악마양 메탈화 나오면서 무심코 라뷰린스 언제 나오냐 생각한 자신을 반성합니다
(IP보기클릭)211.106.***.***
이미 등장을 예고한 이상 언젠가는 나올 테니 그때까지 열심히 달려봐야죠!
(IP보기클릭)118.235.***.***
초반부... 부모님이 없는 것과 후견인이라도 있는 것의 차이는 크군요...
(IP보기클릭)118.176.***.***
잘 봤습니다 이번 듀얼은 지겠구나 하던 듀얼을 보기 좋게 이겨버리는 게 주인공답네요 덱에서 악마양 메탈화 나오면서 무심코 라뷰린스 언제 나오냐 생각한 자신을 반성합니다
(IP보기클릭)211.106.***.***
이미 등장을 예고한 이상 언젠가는 나올 테니 그때까지 열심히 달려봐야죠! | 25.08.01 09:04 | |
(IP보기클릭)118.235.***.***
초반부... 부모님이 없는 것과 후견인이라도 있는 것의 차이는 크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