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영어책 읽어주는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중입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를 대상으로 영어 동화책을 읽어주고, 다 읽고 나면 이야기를 바탕으로 색칠하기나 만들기 등의 활동도 함께 하곤 하지요.
이번에 읽는 책은 "생강과자 인형The Gingerbread Man (Karen Schmidt 그림, Scholastic 출판사, 1980)"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커피와 함께 먹는 로터스 쿠키 덕에 좀 익숙하다지만 아이들은 의외로 먹어본 경험이 없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과자를 기념품으로 걸어놓으면 아이들의 학습 집중력이 폭발적으로 높아지는지라 기회다 싶어 생강과자 인형을 나눠주기로 결정합니다.
도서관 옆에 붙어있는 쿠킹 스튜디오 주방을 이용해서 생강과자 대량생산 모드로 들어갔습니다.
우선 버터 450g, 흑설탕 150g, 당밀 한 컵, 박력분 480g, 달걀 3개, 펌킨파이스파이스 3~4티스푼을 준비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실온에 둬서 말랑해진 버터에 흑설탕을 섞어가며 크림화시켜야 하는데...
날씨가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춥다보니 버터 크림화도 쉽지가 않네요.
쿠킹 스튜디오에 반죽기가 없어서 거품기와 스페츌러로 섞다보니 버터 덩어리가 완전히 섞이질 않습니다.
집에서 반죽기에 돌렸으면 30초만에 크림이 되었을텐데...
없는 걸 아쉬워해봤자 해결되지 않으니 커다란 보울에 뜨거운 물을 받아 버터를 녹여가며 겨우겨우 크림을 만들었습니다.
크림화된 버터에 달걀을 하나씩 넣으며 계속 휘저어주다가 당밀을 섞고 가루 재료를 넣어서 마저 반죽합니다.
원래대로라면 소금도 넣어야 하지만 대신 버터를 가염버터로 썼기 때문에 생략.
그 대신 대다수의 재료에서는 생략하는 당밀을 듬뿍 넣어줍니다. 당밀 특유의 향이 있어야 제대로 된 생강과자의 풍미가 살아나지요.
여기에 더해서 생강가루, 시나몬, 카다멈, 클로브 등의 향신료를 넣어야 합니다.
이 향신료 조합은 추수감사절 호박파이에서부터 크리스마스 쿠키를 만들 때까지 주구장창 사용되는 향신료들입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스파이스, 펌킨파이 스파이스, 진저브레드 스파이스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지요.
직접 만들기 귀찮고 소량만 필요한데다 유통기한도 길기 때문에 베이킹 재료 상점에서 한 병 구입해서 쓰는게 여러모로 이득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생강과자 반죽은 버터와 당류 함량이 높아서 흐물거리고 끈적거리는 바람에 모양 잡기가 번거로운 반죽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냉장고에 30분 정도 넣어서 버터를 굳힌 다음 녹기 전에 모양을 잡곤 하지요.
그런데 오늘은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냥 내버려둬도 반죽하기 딱 좋을 정도로 굳어있습니다.
덧밀가루만 조금 뿌려서 밀대로 2~3mm 두께로 밀고, 사람모양 틀로 찍어줍니다.
쿠킹 스튜디오의 오븐 세 개를 동시에 돌려가며 쉴새없이 과자를 찍어냅니다.
오븐 일곱 개를 동시에 사용하면 더 금방 끝나겠지만, 반죽 모양 잡는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아서 오븐 세 개만 돌려도 충분합니다.
베이킹파우더를 사용하는 레시피라면 반죽을 좀 더 두껍게 밀어서 약간 빵처럼 부드러운 식감이 나도록 만들기도 하지만
이번에 만드는 것은 바삭바삭한 식감의 생강과자인지라 베이킹파우더를 생략하고 반죽을 얇게 밀어서 180도에 10분 정도로 빠르게 구워냅니다.
과자가 구워지면서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풍기기 시작합니다.
이야기 속의 소년이 "오븐 문을 열지 마라"는 경고도 잊어버리고 오븐을 열었던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향기롭네요.
"Run, run, as fast as you can. 달려라, 달려. 최대한 빨리 달려봐.
You can't catch me. 그래도 넌 날 잡을 수 없어.
I am the gingerbread man! 나는 바로 생강과자님이니까!"
소년이 오븐을 열자마자 튀어 나와서 도망치던 생강과자 인형.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농부들도, 곰과 늑대도 바람처럼 빠르게 달리는 생강과자 인형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류의 '도망치는 음식' 이야기는 의외로 세계 각국에서 발견되는데, 굴러가는 빵이나 치즈 덩어리 또는 만두나 팬케이크 등의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고들 하지요.
어쩌면 눈 앞의 먹거리를 잡으려는 사냥 본능이 사람들의 유전자에 남아있기 때문인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량으로 만든 생강과자 군단을 주욱 늘어놓고 식히고 있자니 몇 놈 쯤 도망쳐도 귀차니즘에 지배당하는 입장에서는 굳이 잡으려고 쫓아나가지는 않을 것 같네요.
다만 녹지 않은 버터 덩어리 때문에 곳곳에 조그맣게 구멍이 뚫린 게 좀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래도 완전히 식힌 다음 맛을 보니 바삭바삭하면서도 은은하게 달콤한 맛이 향신료와 잘 어우러지는 게, 시판되는 과자보다 훨씬 더 맛있습니다.
"Run, run, as fast as you can" 노래를 흥얼거리며 비닐봉지에 하나씩 나눠 담고 있으려니 왠지 생강과자 인형을 꼼짝 못하게 묶어두면서 약올리는 악당이 된 기분입니다. 스머프를 잡아서 우리에 가둬둔 채 솥에 물을 끓이는 가가멜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미국에서 문헌정보학을 공부하며 스토리텔링 수업을 들었던 때가 기억이 납니다.
도서관에서 이야기를 읽어주는 일이 많다보니 스토리텔링과 관련된 각종 스킬이나 진행 방법 등을 배웠는데, 하루는 교수님이 통기타를 메고 와서는 동화책을 읽으며 노래를 불러주던 게 떠오르네요.
기타를 치며 그림책의 첫 문장을 딱 시작하는 순간 '우와, 이거 완전 음유시인이 따로 없네!'라는 느낌이었지요.
비디오 게임에서 바드가 하프를 튕기며 노래부르면 같은 팀의 공격력이나 방어력이 상승하는 효과가 나는게 단번에 이해될정도로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아쉽게도 취미로 다루는 악기는 오카리나 뿐인지라 악기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스토리 텔링은 못하지만, 뭐 그래도 크게 아쉽지는 않습니다.
갓 구운 과자를 흔들며 동화책을 읽어주니 앞에 앉은 아이들이 눈을 반짝거리는 게, 당시 제가 노래 들으며 받았던 감동보다 못하지는 않은 것 같거든요.
118.32.***.***
진저 브레드 맨이네요 어릴적에 동네 베이커리에 가면 있었는데 요새는 자주 안보이더라구요 동네 베이커리도 안보이구요 그땐 저렇게 안컸던거같은데 손바닥만한 쿠키가 눈앞에 있어서 기대감에 눈이 빤짝거리는 아이들 있어서 보람 느끼셨을거같습니다.
118.44.***.***
음식 + 인문학 너무 좋습니다
118.32.***.***
진저 브레드 맨이네요 어릴적에 동네 베이커리에 가면 있었는데 요새는 자주 안보이더라구요 동네 베이커리도 안보이구요 그땐 저렇게 안컸던거같은데 손바닥만한 쿠키가 눈앞에 있어서 기대감에 눈이 빤짝거리는 아이들 있어서 보람 느끼셨을거같습니다.
118.44.***.***
음식 + 인문학 너무 좋습니다
22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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