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용할 원두는 엘카페의 르완다 부산제입니다.
아, 그 대한민국 부산 아닙니다. 르완다 사시는 농부님 이름이 부산제십니다. 암튼,
엘카페는 아시는 분은 아실 서울 3대로스터리중 하나로 꼽히는 네임드 로스터리죠.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가장 애정하는 로스터리기도 합니다.
뭐랄까, 커피 본연의 맛 그 자체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버릴 듯한 기세가 있는 곳이라서요.
그 탓에 다른 유명 로스터리들에 비해 레시피 잡기가 수월한 편입니다.
그냥 커피의 긍정적인 성분들을 최대한 뽑아낸다, 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설계하면
대개 근사한 맛의 커피가 완성되거든요.
또한, 이곳의 원두는 디게싱(원두의 가스를 빼주는 숙성기간)을 덜 타는 듯한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따로 원두를 묵혀둘 필요가 딱히 없습니다.
각설하고, 원두 상태부터 보시겠습니다. 컬러나 윤기만 보아도 꽤 강하게 로스팅 된 친구라는 게 느껴지실 겝니다.
이 정도면 싱글오리진 스페셜티 커피 중에서는 독보적인 강배전 커피라 봐도 무방합니다.
물론 스벅의 새까맣고 맨질맨질한 바둑돌 커피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요.
이처럼 색깔만 보아도 맛이 연상됩니다. 쌉쌀하고 고소한, 왠지 달콤한 케잌류와 잘 어울릴 것같은 느낌,
그럼 이 시점에서 맨 위 사진의 커피의 컵노트 등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품종은 버본, 워시드 가공이고 컵노트는 캐러멜, 홉, 캐슈넛이라고 나왔네요.
대충 풀어 쓰면 쓴데 달콤한 향이 나면서 고소하고 깔끔한 커피라는 이야깁니다.
개인적으로는 위와 같은 컵노트 방식의 맛표현에 굉장히 부정적인 편입니다.
과일맛이 난다, 꽃향기가 난다, 견과류가 어떻다 저떻다....
실제 먹어보면 그냥 커피가 가진 다양한 뉘앙스들에 이름 붙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커피가 주는 다양한 맛의 맥락들을 왜 굳이 몇몇 단어로 한정시키려 하는지 납득은 되지 않습니다만....
일단 이러한 컵노트만으로도 레시피를 설계하는 데에 있어서는 큰 영감이 됩니다.
이제 슬슬 내릴 준비를 해야겠지요? 원두는 저 혼자 마실 거기 때문에 딱 18그램 계량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20그람으로 머그잔 한 잔의 분량의 커피를 추출하지만 질 좋은 스페셜티의 경우에는
16~18그램 정도면 충분히 한 잔 분량의 커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성분이 꽉꽉 차 있는 탓이죠.
원두가 준비되었으니 추출도구들도 준비해야겠지요.
오늘은 하리오 스위치 드리퍼를 사용할 겁니다. 별 거 아닙니다.
일반적인 하리오 드리퍼에다가 물빠짐 스위치를 달아놓은 겁니다.
스위치를 닫으면 물이 빠지지 않고 위에 고이니까 말 그대로 차처럼 우려내서 먹을 수 있게 만들어놓은 도구입니다.
하지만 저는 애초에 스위치를 열고 쓸 겁니다. 그럼에도 하리오스위치를 사용하는 이유는...
현재 가지고 있는 커피필터가 하리오전용인데 일반 하리오드리퍼가 없기 때문입니다. -_-
컵이 좀 드럽다구요? 어차피 저만 쓰는 컵이고 이미 한 잔 마신 담에 또 한 잔 마시려는 겁니다.
그러니 괜찮습니다. 드러운 건 컵이 아니라 저란 사람...음....
이제 원두를 분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라인더는 바라짜 버추소를 사용합니다.
요즘 유행이라는 바라짜 엔코보다 조금 더 비싼, 상위기종입니다.
물론 분쇄품질은 엔코나 버추소나 거기서거기라는 게 중론입니다. 심지어 날도 동일하구요.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버추소를 좀 더 추천하는 편입니다.
왜냐면 상단부가 사진에서처럼 스뎅 재질로 되어 있는 터라
분쇄후에 손바닥으로 옆면을 탕탕 내리쳐서 안에 들러붙어 있는 미분 가루들을
털어낼때 아무래도 플라스틱 재질의 엔코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ㅎㅎㅎ
털지 않고 그냥 쓸 수도 있지만... 가정집에서 원두 분쇄 전후의 털(?)날림... 은근 스트레스입니다.
때문에 잘 털어줘야 합니다. 따라서 그라인더도 막 다룰 수 있고 잘 털리는 게 장땡입니다.
미분제거 기능이 포함된 아예 고가 그라인더로 가는 것도 한 방법이겠지만...
가격표를 보고 오면 생각이 많이 달라집니다. 이 세계가 그런 세계입니다.
아, 물도 끓여야겠지요?
얼마 전에 구매한 브뤼스타 신상 주전자 되시겠습니다.
이 글의 작성 동기 또한 주전자를 자랑하고 싶은데 주전자를 자랑해봤자 도대체
주전자를 왜 자랑하느냐고
눈 동그랗게 뜨고 반문할 인간들 밖에 주변에 없어서였습니다.
아무튼 참 좋은 주전자입니다. 물온도 조절 등의 다양한 장점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이쁩니다.
커피가 주는 즐거움은 결국 눈과 코와 입과 촉감을 통해 전달되는 관능의 영역입니다.
때문에 커피를 내리는 과정도, 도구도 모두 이쁜 게 장땡입니다.
그러니 이제 나의 이쁜 신상 브뤼스타 주전자를 이용해서 물을 뎁히도록 합니다.
물 온도는 92도입니다. 강배전 원두를 다룰 때는 고온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략 86도에서 91도 사이가 적절하며 그 이상의 온도에서는 무슨 한약같은 커피가 완성되기 십상입니다.
온도를 92도로 설정한 까닭은 엘카페의 가이드 레시피에서의 추천 온도가 91도인 까닭입니다.
드립 도중에 내려갈 온도까지 고려해서 92도로 세팅했습니다.
분쇄한 원두의 상태 보시겠습니다.
사진으로 잘 나오지 않지만 분쇄상태가 조금 세밀한 편입니다.
강배전 원두라는 걸 전제로 보면 더더욱 분쇄입자가 곱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입자가 고우면 고울 수록 당연 추출효율이 올라갑니다.
강배전은 애초부터 효율이 좋은 상태니 저러다 자칫 과추출의 우려 또한 있습니다.
그럼에도 분쇄도가 곱다는 건, 이는 생두의 기본적인 품질이 우수하다는 반증입니다.
뽑아낼 성분이 워낙 많으니 저렇게 쭉쭉 짜내도 부정적인 성분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거죠.
아, 린싱은 왜 안 했는지 궁금해 하실 분 또한 계실 듯해서 덧붙입니다.
저는 린싱 같은 거 안 합니다. 귀찮아요. 그리고 커피는 관능의 음료기 때문에
만드는 과정 또한 내 기분을 거스르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겁니다.
물론 당연 린싱하는 게 결과물에는 더 낫다는 게 중론입니다.
하지만 갠적으로 결과물이 덜 나아도 전혀 상관없으니 저는 그냥 린싱 안 합니다.
이제 뜸을 들일 차례입니다.40그람의 물을 붓고 30초간 뜸을 들입니다.
스월링이라고, 뜸들일 물을 붓고나자마자 동시에 드리퍼를 손에 들고 두어바퀴 정도
흔들어주는 것도 좋습니다. 이처럼 커피퍽을 의도적으로 부서뜨리면
보다 균일하고 고수율의 커피를 추출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단, 강배전 원두기 때문에 뜸들일 물과 원두의 비율이 1:2 내외를 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뜸 시간 또한 유의합니다. 적정시간을 넘어가면 너무 쓰고 텁텁해지기 쉬우니까요.
40(뜸) - 60 -40 -40 -40 -60 총 280그램의 물을 모두 붓고난 상태입니다.
대략 2분35초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추출회차를 너무 잘게 쪼갠 것 아니냐고 반문하실 수도 있을텐데...
이게 엘카페의 가이드레시피입니다.
그리고 강배전 커피의 경우에는 회차를 잘게 쪼개 내릴 때
좀 더 부드러운 질감의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구요.
이에 다른 과추출의 위험성은 물 온도를 조절하는 것으로 예방합니다.
아무튼 한 잔의 커피가 완성됐습니다.
아 진짜 컵 드럽긴 하다. ㅎㅎㅎㅎㅎ
그럼 맛있게 먹겠습니다!!
얘랑 같이요. ㅎㅎㅎㅎㅎ
.
.
.
아, 커피맛에 대해 부연해야겠군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이른바 컵노트 식의 커피맛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캐러멜, 홉, 캐슈넛의 맛이 나냐고 물어보신다면....
뭔 헷소리냐고 대답할 수밖에 없겠네요. 커피가 커피맛이지 쯥.
커피에는 단맛 신맛 쓴맛 짠맛이 나고 나머지 맛들은 죄다 가져다 붙인 것 뿐이다...
가, 제 지론 되시겄습니다.
뭐... 제 혓바닥에 하자가 있어설 수도 있겠지만 제 주관은 그래요.
뭐 제가 전문가도 아니고, 제 수준에서 커피를 재미있게 즐길 뿐인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제게 커피맛을 물을 경우에는 저는 그냥 아래처럼
제가 커피를 마실 때 느꼈던 기분 그대로를 산문으로 풀어서 설명합니다.
"맑은 기운의 쌉쌀한 첫 인상,
이어 입 안 가득하는 달콤함과
의외의 동그란 목넘김."
- 끝 -
(IP보기클릭)221.138.***.***
(IP보기클릭)121.135.***.***
과정을 즐기기 시작하면 그다지 번거로울 것도 없습니다. ㅎㅎㅎ 집에서는 그냥 전동으로 돌려버리지만 사무실에서는 핸드밀 쓰고 있는데 그것도 좋아하니 감수할 수 있더라구요. | 22.04.18 20:53 | |
(IP보기클릭)223.62.***.***
(IP보기클릭)121.135.***.***
뭐 로스터리 추천하라고 하면 다들 비슷비슷하게 나오지 않을까요? 모모스, 커피리브레, 프릳츠, 나무사이로, 그리고 저 위의 엘카페... ㅎㅎㅎㅎㅎ 저도 에스프레소를 하고 싶은데 장비도 장비지만 설치 위치가 너무 애매해서 차일피일 미루는 중입니다. 암튼 즐커피하세욥. ^^ | 22.04.18 20:52 | |
(IP보기클릭)223.62.***.***
감사합니다 모모스 커피리브레 나무사이로는 접해봤는데 엘카페와 프릳츠는 도전 해봐야겠군요 즐커피 하세요 ㅎ | 22.04.18 20:57 | |
(IP보기클릭)14.43.***.***
(IP보기클릭)121.135.***.***
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가늘 수록 당연 추출효율이 올라가구요. 강배전에서는 굵은 입자로 분쇄해도 어차피 조직이 활짝 열려 있는 상태기 때문에 어차피 효율이 좋습니다. 괜히 입자 가늘게 해봤자 텁텁하기만 한 커피가 나올 가능성이 높죠. 따라서 굵은 분쇄도로 긍정적인 부분만을 완벽히 녹여내는 깔끔함을 추구하는 게 나은 선택인 거죠. 그런데 문제는 원두마다 케바케인 터라... 위의 부산제처럼 강배전임에도 가는 분쇄도가 유리한 경우도 생기는 거구요. | 22.04.18 23:06 | |
(IP보기클릭)14.43.***.***
케바케에 완전 공감 합니다. 마트에서 로스팅 된 것만 사서 갈아서 커피머신으로 마시는데도 맛이 그렇게 차이가 나더라고요. | 22.04.18 23:12 | |
(IP보기클릭)218.236.***.***
(IP보기클릭)121.135.***.***
강배전을 사랑하신다면 르완다 부산제 추천 드릴만합니다. ^^ | 22.04.19 01:02 | |
(IP보기클릭)218.236.***.***
엘카페는 물론 스페셜티를 아주 멋지게 하는 곳이지만 제 취향은 마이샤, 헬카페, 커피가게동경, 코페아신드롬, 빈스톡 같은 어찌보면 일본식쪽의 강렬한 강배전 같은 스타일쪽이라서요 ㅎㅎ 저도 커피 좋아하다보니 여러 스페셜티 카페들, 챔피언들이 있는 카페들을 많이 찾아 다녔는데 마셔보면 볼수록 전 요즘의 스페셜티쪽 취향이 아니란게 느껴지더라구요. 요즘 스타일의 카페에서 내놓는 강배전들은 대부분 제 기준엔 못 미치는 느낌이라 손이 잘 안가네요 ㅎㅎ | 22.04.19 02:4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