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SS.GRIDMAN,
그러니 너 또한 나아가기를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언제나와 같은 따분한 하루
하늘에서 내려온 5개의 빛 무리.
그리고 지금 그 따분한 일상이 무너진다.
저는 가끔 어쩌면 자주 밖이 무섭다고 느낍니다. 나만의 세상인 좁은 이불 속이 넓고 또 넓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세상보다 훨씬 편하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자신만의 공간에 스스로를 가둔 신. 신죠 아카네는 그런 생각이 아주 강한 캐릭터이자 어떤 면에서는 공감도 되는 그런 인물입니다.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설정이 있습니다. 이게 그리드맨이 한창 방영할 때 심즈 드립이 유행을 하다보니 무슨 게임에 접속해 있는 거처럼 설정을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틀린 해석입니다.
최종화에서 알렉시스가 직접 언급하는 말들과 엔딩 부분을 보면 아카네는 모니터 등의 창으로 츠츠지다이를 지켜보는 식이 아닌 아예 다른 세계인 츠츠지다이로 직접 들어와 있다고 봐야합니다.
현실 도피인 것은 같지만 아예 자신만의 세계에 숨어들었다는 것이 차이입니다. 츠츠지다이를 다른 현실로서 인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 아카네는 반쪽짜리 신입니다. 분명 츠츠지다이를 만든 건 확실하지만 그건 본인만의 힘이 아닌 알렉시스를 통해서 이룬 것이고 괴수를 만들어 무언가를 행할 때도 예외 없이 알렉시스를 거칩니다.
츠츠지다이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설정하고 만든 조물주이지만 동시에 혼자서 모든 것을 쥐고 흔들 수는 없는 불완전한 인간이기도 한 것이죠.
그렇기에 아카네는 신이면서 전부 제멋대로 굴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학교에서 귀찮은 일이 있을 때도 가짜 웃음으로 넘기거나 자신이 맹목적으로 거부하던 그리드맨에 대한 정보를 찾아 나설 때도 직접 발로 뛰었을 정도이죠.
하지만 정말 아카네는 그럴 능력이 없었기에 자신이 만든 세계의 이치를 지키려 했던 것일까요?
아카네가 악역으로서 드러나는 장면들은 전부 비 상식적일 정도로 작은 일에 살의를 들어내는 것들입니다.
공 놀이를 하다가 스페셜 도그를 쳤다고 죽이고 부딪치고 사과 안 했다고 죽이려 드는 것 등등 분명 상식과는 큰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자신이 귀찮아하는 일도 인간관계를 유지하려는 듯 웃어 넘기는 아카네와 작은 일에도 살의를 품고 괴수를 만드는 아카네. 둘은 완전히 상반되어 보이지만 이를 이어서 해석해보면 이런 거 아닐까요?
‘아카네가 진짜 원하는 것은 자신이 바라는 대로 모든 것이 뒤바뀌는 세상이 아닌 현실과 유사하지만 짜증 나는 일이 없는 세상이다.’
제가 생각하는 아카네는 이런 인물입니다. 현실에서 인간관계를 맺고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어 하지만 그에 따르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싫은 미숙한 인물 말입니다.
원래라면 분량을 할애해서라도 꼭 나왔어야 할 아카네가 츠츠지다이에 숨어든 사연 같은 것들이 의도적으로 나오지 않은 것도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굳이 엄청난 일이 있어야만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으신가요? 만화나 게임에서 나오는 청춘을 동경하지만 학교에서 괜한 다툼과 보이지 않는 기 싸움에 머리가 지끈 거리는 경험.
꼭 내가 왕따를 당했다 거나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어도 그런 것들로부터 눈을 돌리고 만 싶은 감정들 말이죠.
비교적 사소하지만 현실의 우리도 충분히 느껴봤을 감정들을 더 강하게 느껴 자신만의 세상에 스스로를 가둔 것이 아카네 라는 캐릭터라고 생각합니다.
분명 좁은 이불 속은 별 것 없고 금방 따분해지지만 그 밖에 있을지 모르는 수도 없이 많은 일들에 지레 겁먹는 사람이 신죠 아카네 이고 그런 아카네를 밖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어주기 위해 나타난 것이 바로 그리드맨 인 것이죠.
안티는 아주 맹목적인 거부를 괴수로 만든 결과입니다. 상대를 카피하는 능력을 주고 머릿속에는 자신이 거부하는 그리드맨에 대한 살의만 가득 채운 녀석이죠.
처음에는 안티도 창조주인 아카네에게 종속되어 일주일 동안 쥐어짠 설정만을 지키며 행동하지만 릿카나 우츠미처럼 조금씩 자신만의 진심을 본인도 모르게 키워나가게 됩니다.
겉으로는 모두와 인간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누구와도 진심으로 교류하지 않은 아카네와 달리 안티는 그리드맨과 계속해서 싸우고,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릿카를 만나고,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무라이 캘리버와 대화하며 상대를 통해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아카네를 구제하기 위해 온, 자신이 맹목적으로 적대했어야 할 그리드맨의 동료인 그리드 나이트로 각성하죠.
아카네가 처음 만든 츠츠지다이는 자신을 위한 곳이었습니다. 모두 나를 좋아하도록 설정하고 마음에 안 드는 것들은 괴수로 부수어가면서 재단했죠. 자신을 위해서요.
하지만 그 세계는 조금 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리드맨이 츠츠지다이를 찾아오게 됩니다.
균열은 가속화 되고 더 이상 그들은 아카네가 의도했던 움직이지 않습니다. 릿카도, 우츠미도, 안티도.
분명 행복한 일상이라는 건 아주 짧은 순간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괴로운 일들이 훨씬 많은지도 모르죠.
아카네가 원했던 이상적인 츠츠지다이는 그런 괴로운 일들을 차단하고 조금씩 피어나는 변수를 지워가며 만드는 행복한 일상만 가득한 유토피아였을 것입니다.
그럼 그렇게 모든 괴로운 일과 변수를 지워내면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나날만 가득할 수 있을까요?
그리드맨 동맹을 괴수로 꿈에 집어넣을 때 그들은 행복한 시간을 보냅니다. 아카네가 처음 그렸던 그림대로 유타는 연인으로서, 우츠미는 같은 취미를 공유하는 친구로서, 릿카는 허울 없는 절친으로서. 난 영원히 꿈을 꾸고 싶다는 아카네는 꿈이라도 좋다며 도망치려 합니다.
하지만 끝내 아카네는 자신이 준비한 마지막 수까지 통하지 않자 완전히 멘탈이 붕괴하고 스스로 깨지 않으려고 악을 쓰던 일상을 붕괴하는 선까지 넘어버립니다. 그 이후에는 아예 아카네는 아카네로서 움직이지 못하게 되죠.
자포자기해 무의식적으로 모든 마을의 구성을 부수고 손을 놓은 아카네는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것도 이곳에서의 원래 일상을 돌리는 것도 선택하지 못한 채 이방인으로 되돌아가 버립니다.
그저 알렉시스 라는 순수한 악의에 의해 휘둘리며 이용당할 뿐 자신의 의지는 잃은 채 휘청 일 때, 그녀가 만들었던, 자신 만을 위해 설정했던, 그 설정을 깨어내며 자신을 등질 것만 같았던 이들이 다시 아카네 에게 손을 내밉니다.
아카네는 자신이 원하는 행복한 일상을 위해 그들을 만들었고 그들은 나를 사랑해주었으며 그것들이 모여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인 츠츠지다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찾아온 이방인들에 의해 뒤틀리기 시작했고 더 이상 아카네가 의도했던 대로 움직이지 않게 되며 각자의 자유의지를 가지게 되었죠.
하지만 그렇게 자유의지를 가지게 된 이후이기에 진심을 전하는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녀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들의 순수한 자기 의지로 아카네 에게 손을 내밀게 된 것이죠.
창조주인 아카네가 아닌 친구 아카네 에게.
자신의 자아를 인정해준 그리고 자신을 만들어준 그녀를 위해 안티가.
유타를 다치게 했지만 이제까지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알기에 우츠미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 절친한 친구 릿카가.
그리고 그저 원하는 대로 흐를 뿐인 ‘따분함’에서 구해주기 위해 유타-그리드맨이.
아카네에게 손을 내밉니다.
아카네는 대단한 사연을 가지지 않은 인물로 설정되었습니다. 현실 세계의 아카네에 대한 이야기가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것은 다분히 의도 된 것이죠.
내가 원하는 일만 일어나고 작은 변수들과 짜증 나는 것들을 하나하나 쳐 내다보면 진정으로 행복만이 가득한 유토피아가 올까.
그런 세상은 한없이 ‘따분한 세상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두렵더라도 현실로 한 발자국 내디뎌 보는 건 어떨까.
왜냐하면 내가 원하지 않았더라도 나를 좋아해줄, 나를 믿고 의지해줄, 내가 영향을 주고 다시 내게 영향을 줄 어떤 이들이 그곳에 있을지도 모르니까.
어두컴컴하고 좁은 방 밖은 분명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두렵고 무섭지만, 그렇다고 거기 있을지 모르는 행복을 놓치는 것은 너무 아까운 일 일 테니까.
너를 그 따분함에서 구하러 왔어.
세상 모든 아카네에게, SSSS.GRIDMAN이 말합니다.
“혼자가 아니야. 언제나, 어디까지라도.”
-SSSS.GRIDMAN 캐치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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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구도를 이용해 프레임 속 아카네와 그 밖에 있는 릿카를 보여주면서 릿카가 더 이상 아카네의 통제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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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안앉은 걸로 지금 저들 사이가 저정도구나 싶은 건 줄 알았는데 이런것도 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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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최근에 다시 보았는데 그리드맨은 역시 여러 번 볼수록 다양한 메타포나 세심한 연출을 찾을 수 있는 재미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 24.03.09 21: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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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구도를 이용해 프레임 속 아카네와 그 밖에 있는 릿카를 보여주면서 릿카가 더 이상 아카네의 통제 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죠 | 24.03.09 21:3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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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유수
옆에 안앉은 걸로 지금 저들 사이가 저정도구나 싶은 건 줄 알았는데 이런것도 있었군요. | 24.03.09 23:3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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