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탐정 코난 : 흑철의 어영
코하커플 지지자들을 위한 퍼레이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보라 누나의 도움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 코난 일행. 그곳에서 마주친 것은 인터폴의 해양기지 퍼시픽 부이.
퍼시픽 부이에는 일본과 유럽의 모든 cctv를 감시하는 시스템과 한 사람의 모든 연령대 얼굴을 인식하는 ‘생장인식시스템’이 있었다.
모종의 계기로 장미는 진짜 정체가 생장인식시스템에 의해 발각되어 검은 조직에게 납치를 당하게 되는데.
코난은 이미 정체를 들켜버린 상황을 수습하고 장미를 구해낼 수 있을까?
일단 볼만했습니다. 코난 극장판은 대대로 본편 스토리와 직접 연계되지 않도록 제작되고 있어서 스케일이 커지면 커질 수록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났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검은조직을 메인으로 세우고 코난에 등장하는 비중 있는 세력을 전부 끌어와서 그저 속 빈 강정이 아닌 이제까지 우리가 본 코난 설정들로 꽉 찬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줍니다.
본격적인 리뷰 이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자면 코난 시리즈. 특히나 극장판 시리즈에 대한 글들을 보면 너무 초인적인 액션들이 나오는 거 아니냐 라는 말들이 많습니다.
이건 그냥 코난 세계관은 이런 게 가능하구나 하고 넘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근본이 추리물이고 일단은 현실을 배경으로 하기에 초능력 같은 게 나오면 안된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제는 갈 만큼 가서 그냥 시리즈만의 특징으로 자리 잡지 않았다 싶네요.
미란이가 2,3층에서 뛰어내려 유성낙하를 갈겨도, 초등학생의 몸으로 일반 보드바퀴를 장착한 보드로 산속을 가로질러 차를 쫓거나 축구공으로 집체만한 해일을 갈라도 그러려니 해야 합니다. 그게 이 시리즈를 보는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이제는 아무래도 좋은 것 같은 추리물 로서는 어떠한가. 이번에 추리파트 쪽 호평이 나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저는 글쎄요.
추리라고 할만한 건 후반부에 휘리릭 나오는 핑가의 입막음 살인에 대한 추리 뿐 인데. 이게 메인 스토리 라인과 좀 떨어져 있는 느낌입니다.
이 추리가 핑가를 색출하는데 쓰이는 거지 메인 줄기인 장미를 구하는데 도움이 안되거든요. 핑가가 마지막에 코난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걸 밝혀 추리의 필요성을 강조하긴 했지만 이것도 코난 팬들이라면 연계가 약한 극장판 특성 상 코난의 정체를 알았다는 건 강력한 사망플래그라 그리 긴장감을 느낄 요소도 아니었습니다.
추리과정도 분량을 적게 받아서 그런지 몰라도 내내 보여주었던 영상 조작이라는 5살 짜리 얘도 유추할만한 무식단순 트릭이라 관객과 두뇌싸움을 할만한 부분이 없는 수준이었죠.
그나마 핑가의 정체는 괜찮은 단서들이었다고 보지만 이마저도 메인 스토리의 비중에 휩쓸려서 못 본 거에 가까웠습니다. 냉정하게 레온하르트 ■■사건은 나오자마자 대충 넘겨지고 장미 구출에 모든 시선이 쏠려서 뚝 끊어졌다 뒤에 수습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럼 메인파트인 장미 구출작전은 괜찮았는가? 저는 재미있었습니다.
이야기는 단순합니다. 장미는 정체가 발각되어서 확실한 검증을 위해 납치를 당했고 그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잠수함인 겁니다. 잠수함은 기본적으로 쉽게 침입할 수 없는 폐쇠적인 공간이기에 안과 밖에서 연계를 해서 구출해야하는 거죠.
여기서 코난 시리즈가 쌓아온 캐릭터들을 적극 활용해 극의 긴장감을 불어넣습니다. 장미가 납치 당한 시점에서 코난이 직접적으로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없으니 잠수함 내외부에 있는 인물들이 극을 이끌어가는 거죠.
버번은 코난에게 내부 상황과 구출 할 수 있는 타이밍을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키르는 잠수함 내부에서 장미에게 정보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거나 진과 워커의 행동을 적절히 제한합니다.
이는 이제까지 그저 코난의 원맨쇼와 우연의 연속으로 끌어가던 재미없는 전개가 아닌 다른 인물들의 입체적인 상황이 맞물려 충분히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흥미로운 전개로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그것도 초중반부 한정이긴 합니다. 이번에도 속내를 알 수 없는 베르무트의 분탕으로 장미의 정체가 모호해지고 밧줄을 푼 건 알겠으나 검은 조직 사람들이 가득 찬 잠수함 내부를 어떻게 발각되지 않고 걸어다니다 탈출구까지 갔는지는 설명할 의지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외전 형식을 띄고 있는 극장판에서 장미의 정체가 밝혀지면 차후 진행이 곤란해지니 이해는 하지만 아무리 만든 지 얼마 안된 시스템 이라 해도 그거 하나 얻겠다고 잠수함까지 동원한 놈들이 베르무트 사진 몇 장에 ‘역시 시스템은 믿을게 못된다니까!’ 하고 장미를 포기하는 전개는 중간이 빈 급전개로 보이기 까지 합니다.
말투까지 꼬집어가며 의심하던 워커와 쉐리의 사생 스토커인 진이 베르무트의 농간을 의심하나 없이 받아들이는 건 전체적인 극의 전개를 가볍게 만드는 영향을 줘버립니다.
이후에는 인기캐들의 기시감 넘치는 폭발쇼 연계로 어찌저찌 검은 조직을 격퇴하는데 성공하지만 코난이 여파에 휩쓸려 위험에 빠지죠.
저 또한 코난장미 커플을 지지하는 팬으로서 꽤나 유의미한 장면들의 향연에 정신을 잃을 뻔했습니다. 소꿉친구 클리셰도 좋지만 아무래도 사지에서 만난 동료이자 파트너인 코하커플이 더 끌리는 법이죠.
이 작품은 최후반부 코난과 장미의 절절한 수중씬 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도는 알겠으나 어차피 코하커플 지지자 저격으로 만들었으면 그 키스전달씬은 없는 게 나았을 거 같지만요.
전체를 아우르는 스토리와 개인의 서사, 성장을 강조하는 캐릭터 중 더 많은 비중을 차지 한 것은 캐릭터 쪽입니다.
일본과 유럽 전역을 감시하는 시스템은 그 도덕성에 대한 고찰은 하나 없는데다 후반부에 폭파까지 시켰는데 엔딩신에서 부활시켜버리거든요.
핑가는 무색무취하게 쓰이고 버려져 버렸고 검은 조직은 내부의 적에게 휘둘리다 또 삽질만 한 꼴이 되었지만 중요한 건 코난과 장미의 관계진전 이니 아무렴 어때 같은 느낌으로 결론지어진 거 같습니다.
내내 애매하게만 표현되었던 장미의 진심 어린 고백을 팬들이 직접 들었으니 그걸로 만족 해야 되지 않나 싶네요.
이번 영화 볼만한가? 네, 볼만합니다. 본편을 꾸준히 봐왔던 팬들에게는 충분히 만족스러울만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전망이 좋은 가는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이번에 검은 조직과 장미 정체 발각이라는 초 강수를 꺼내면서 작품을 풍성하게 채웠지만 결국 극장판 만의 확실한 방향성을 보여 주었다기 에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싶네요.
같은 골든위크 동기인 짱구 극장판 시리즈와의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겠지만 짱구 극장판 시리즈가 짱구라는 프랜차이즈를 적절히 활용하면서 감독들 각자의 색을 잘 버무려 작품마다 개성을 살리는 방법으로 시리즈를 이끄는 반면.
코난 극장판 시리즈는 코난이라는 프랜차이즈에서 인기 있는 요소들을 강박적으로 배치하고 그 중간 중간을 채우는 방식이라 소재는 다른데 나오는 결과물은 거기서 거기인 느낌이 강한 거 같습니다.
팬서비스와 이제껏 쌓아온 설정, 캐릭터들로 꽉 채운 퍼레이드 같은 작품. 그러나 결국 퍼레이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이 아닌 가진 것들을 펼치는 것이라 천년만년 재밌게 볼 수 없거든요.
코난 본편 시리즈와 약한 연계를 표방하는 만큼 조금 더 개성적인 작품이 앞으로 나왔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해보겠습니다.
아쉬운 점이 없던 건 아니지만 오랜만에 만난 괜찮은 코난 극장판 시리즈. 흑철의 어영은 볼만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