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적인 선언문
‘사랑스러워’를 ‘사랑해’로 고쳐 말하라고 소리 질
렀다
밥 먹다가 그는 떠났다
사랑스러운 거나 사랑하는 거나
남자는 남자다워야 하나
죽은 친구를 묻기도 전에
민첩하게 그 슬픔과 분노를 시로 쓰던 친구의 친구
를 본 적 있다
그 정신에 립스틱을 바르고
난 멍하니 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인은 시인다워야 하나
오늘 나는 문학적인 선언문을 고민한다
내 친구들 대부분은 이미 써서 카페에 올렸다
주저 말고 서둘러야 한다
적이 문제다
‘적(的)’은 ‘다운, 스러운’의 의미를 가진 접
사인데
‘문학적(文學的)’이라는 말
문학적 죽음, 문학적 행동, 문학적 선언, 시적 인
식, 시적인 소설
나는 지금 시적으로 시를 쓸 수 없구나
문학적인 선언문을 쓰자는 말은
왕에게 속한 신성한 것을 그냥 불러서는 안 되는
폴리네시아 인처럼
은유로 도피하라거나
수사적 비유를 사용하라는 뜻은 아닐 텐데
나는 한 줄 쓰는 데 좌절하고 애통함에 무기력하다
그리하여 난 또다시 적(的)의 문제로 적(敵)을 만
들게 될 것이다
나는 내가 시적이지 않은 시를 쓰며
시인답지 못하게 살다
문학적이지 않은 죽음을 맞게 되길 빈다
김이듬
말할 수 없는 애인, 문학과지성 시인선 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