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Why Did L.A. Noire Take Seven Years to Make?". June 24th, 2011. Andrew MacMillen. IGN AU.
Team Bondi의 필름 누아르 풍 수사 스릴러 [L.A. 누아르]는 지난 5월에 발매되어 상업, 비평적 성공을 거두었다. 세세하게 재현된 1947년의 로스 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이 게임은 익숙한 오픈월드 디자인을 버리고 사건 단위로 범죄 현장을 조사하고 용의자들을 심문하는 수사 형식의 게임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거대한 도시, 플레이어의 행동과 선택에 따라 변화하는 사건들, 지금까지의 비디오게임에 쓰인 것보다 더 복잡한 모션 캡쳐 기술을 사용한 이 게임은 엄청나게 큰 계획이었다.
게임의 엄청난 계획 덕분에 개발은 7년이나 걸렸고, 중간에 소니에서 락스타로 배급사가 바뀌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L.A. 누아르]의 개발 과정은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듀크 뉴켐 포에버, 투 휴먼, 프레이 같은 게임들의 긴 개발기간에 대한 글은 굉장히 많다. 그러나 호주의 작은, 탄탄하게 뭉쳐있는 게임 개발 커뮤니티 안에서 [L.A. 누아르]의 험난했던 개발 과정은 특히 눈에 띈다. Team Bondi의 범죄 드라마는 지금까지 호주에서 벌어진 가장 거대한 게임 개발 계획일 뿐만 아니라, [L.A. 누아르]를 만든 수많은 창조 인력들의 첫 번째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아마도 이 모든 것들이 섞인 결과 Team Bondi의 예전 직원들의 게임 개발 경험에 대한 놀라울 정도로 솔직한 증언들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Team Bondi의 과거 직원들이 게임의 크레딧에서 빠진 100명 가량의 개발자들의 이름을 다시 올릴 것을 요구하는 웹사이트를 공개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역사는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 2010년 1월 23일, 트위터에서 누군가가 익명으로 어깨 너머로 Team Bondi에 대해서 들은 내용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 내용들은 전 직원이 올린 내용이 아니라, 위키리크스처럼 자신이 익명의 출처로부터 파헤친 내용들을 익명으로 올리는 것이었다.
이 출처는 개발사 창립자인 브렌단 맥나마라(Brendan McNamara)가 Team Bondi와 [L.A. 누아르] 개발을 잘못 운영하고 있으며, 단 1년만에 자체 기술 개발에 수천만 달러를 들였다고 밝혔다. SCEA가 플레이스테이션 2로 발매되었던 성공작 겟어웨이의 성공 때문에 맥나마라를 어느 정도 믿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니는 2005년 [L.A. 누아르] 배급을 포기했다. 개발사가 “SCEA가 예상한 개발 비용을 훨씬 넘겨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이 출처는 또한 이 상황이 “개발사를 혼란에 빠트렸다”고 밝힌다. “이상하게도, 맥나마라는 바로 그의 옛 라이벌인 하우저 형제(주: 락스타 게임즈의 창립자들)에게 기댔고 락스타 게임즈가 2006년 봄에 바로 [L.A. 누아르]를 집어갔다. … 그 이래로 게임은 계속해서 수정되고, 이식되고, 4번 연기되었다. 락스타는 게임이 망하지 않기 위해 소니보다 더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이 트윗이 호주의 게임 산업 포탈인 Tsumea에 올라왔을 때, 익명의 몇몇 사용자들이 그 내용에 동의했다. “끔찍한 노동환경, 욕을 달고 사는 열 받은 사장과 개발 팀 일원들을 보호할 생각이 전혀 없는 비효율적인 지도층, 전부 다 증명할 수 있다. 업계 신참들이 상습적인 야근과 주말 근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24시간 노가다판으로 떠밀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고 한 사람은 말했다.
Team Bondi의 개발 환경의 진실은?
Tsumea에 올라온 몇몇 댓글들은 2004년 EA_Spouse(주: 해석하면 EA_부인) 라는 ID를 사용한 한 익명의 사용자가 LiveJournal에 글을 올린 사건을 떠올렸다. 당시 이 사용자의 약혼자는 “반지의 제왕: 중간계 전투” 개발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일해야 했고, 그녀는 자신의 약혼자를 거의 볼 수 없다며 블로그에 자신의 좌절감을 표했다. 블로그는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결국 지불되지 않은 추가 노동비용에 대해서 EA에 총 3개의 단체 소송이 걸린 바 있다.
초기의 트윗과 그에 대한 약간의 토론이 있은 후 상황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L.A. 누아르]의 발매일이 2011년 5월 중순으로 정해진 것이다. 게임은 나오게 될 것이었지만, 질문은 남아있었다. 과연 회사의 노동 환경에 대한 진술은 사실이었을까? 왜 [L.A. 누아르]를 발매하기 까지 7년이 걸렸을까?
호주 IGN은 수십명의 전 Team Bondi 직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을 했고 이중 11명이 익명성을 보장받는다는 조건 하에 인터뷰 기록에 응했다. 많은 직원들은 현재 또는 앞으로의 고용주들에게 자신이 배신자로 찍히게 된다면 돌아올 보복을 무서워했다. 이들이 한 일의 총량은 광범위하며, 시간으로 합하면 총 24년에 달한다. 어떤 사람들은 몇 달을, 다른 사람은 4년을 일하기도 했으며, 아티스트, 프로그래머, 애니메이터, 소프트웨어 설계 등 보직도 다양하다. 또한 우리는 Team Bondi의 총 책임자인 브렌단 맥나마라의 시각을 알아보기 위해 그와도 깊이 대화를 나누었다.
초기의 상황
2003년 Team Bondi가 설립되었을 당시 팀의 핵심 멤버는 브렌단 맥나마라와 그가 작업한 The Getaway의 개발사 Team Soho에서 옮겨온 그의 가장 가까운 지지자들이었다. “첫 번째 호주 고용자”들로 불린 다섯 명이 2004년 3월 Team Bondi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중 한 명은 초기의 상황이 “힘들긴 했지만 좋았다”고 말한다. “기술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사실 어떠한 측면에서도 특별한 방향성이 있어 보이진 않았습니다. 기술 책임 담당자(CTO)가 있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우리에게 딱히 무슨 말을 하지도 않았고 어떤 방향을 제공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힘든 일을 하고 매주마다 이를 검토하면서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만 의존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교적 빠르게 발전하여 첫 해에 30명이 일하기 시작했죠.” 고 그는 밝힌다. 회사가 점점 커지자 거기에 맞춰 그들은 Ultimo에 있는 좀 더 큰 사무실로 옮겼다. “그 첫 해에 소니에 몇몇 마일스톤(주: 초기 빌드)을 보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뭔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압력이 서서히 세지고 경영진 쪽에서 주로 기술적인 문제로 우리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보기 시작하자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었어요.”
다섯 명 중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밝혔다. “처음에야 재미있었죠. 새 개발사에, 크고 새로운 게임도 있었고. 시간이 지나고 프로젝트는 경영진 생각처럼 빠르게 진행되지 않자, 그들은 굉장히 공격적으로 변했고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떠나가기 시작했고, 직접적인 명령을 거절하자 해고당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있기 짜증나는 곳으로 변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떠났을 때는 한 100명 정도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죠."
스튜디오 구조
Team Bondi의 핵심 직원들은 Team Soho에서 고스란히 옮겨온 사람들이었다. 한 출처에 의하면 맥나마라는 이들에게 “많은 돈과 시드니에서의 멋진 삶을 약속하면서, 자기와 함께 가자고 이들을 구슬렸다.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되어야 할지에 대한 구상과, 그들의 회사가 얼마나 끝내주는 곳이 될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회사에 왔다.”
모든 개발자들의 증언은 개발사가 비공식적이지만 아주 확실한 왕정 체제로 운영되었다는 점을 가리켰다. 작가이자 감독이었던 브렌단 맥나마라가 뭔가를 바꾸려고 할 때, 그는 간부급 직원을 통하지 않고 바로 담당 직원에게 말을 했다. 한 프로그래머는 “상관들이 자주 배제되었다”고 기억한다. “부서 상관한테 가서 ‘이봐요, 브렌단이 또 말도 안되는 부탁을 해요’라고 말하면 그 사람들이 이해는 하는데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어요. 저도 그럴 수가 없지만 그 사람들도 브렌단한테 가서 이건 말이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없거든요. 도저히 이성적으로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스튜디오 구조에 대해 물어봤을 때 맥나마라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가 원한다면 누구한테든지 가서 얘기할 수 있죠. 이건 내 게임이에요. 팀 안에 있는 누구한테나 가서 ‘이거 바꿔’ 라고 말 할수 있어요.” 그는 락스타의 샘 하우저 역시 자기 팀에 그런 식의 부탁을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나는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일해 왔고, 지금까지는 괜찮은 방식이었어요.”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모션 캡쳐 기술, 엄청난 규모의 대본과 47년 LA의 완전한 재현이라는 목표 때문에 [L.A. 누아르]의 개발은 굉장히 어려웠다.
우리와 이야기를 나눈 몇몇 전 직원들에 따르면 이것은 맥나마라가 스튜디오 전체에 대한 권력을 휘두르려는 자기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방식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었는지 그에게 직접 물어보았을 때 그는 웃으면서 질문을 했다. “그게 잘못된 거에요? 난 비디오 게임 만드는 사람이에요. 그런 건 그냥 나에 대한 사적인 평가일 뿐이고. 내가 대본을 쓰고, 내가 감독을 하고, 내가 필요한 기술들을 종합하고, 내가 세상에 나가서 ‘여기 투자하시겠습니까?’ 이러는데. 그게 강박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뭐 당연하죠.”
개발진 교체
11명의 전 직원들과의 인터뷰 도중 반복해서 나온 내용은 Team Bondi의 경영진들이 초보 직원들을 고용해서 “더 오래, 빨리” 일하도록 키우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직원들이 자주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한 출처는 “간단히 말해서, 회사가 초과 근무와 주말 근무를 당연하게 기대하고 있었어요. 내 주말을 이렇게 매번 내 줄 수는 없다고 말하니까 지금 장난하냐고 하더라고요. 그야말로 우리는 소비되는 자원이었어요. (Team Soho 출신 사원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 ‘내부 모임’ 사람이 아니면 그냥 쓰다 버릴 자원이었어요. 이 사람들 생각이 어떤 식이냐 하면, ‘우리와 일하는 건 엄청난 특권이라고. 마음에 안 들면 나가든지’에요. 실제로 고위 직원 중 하나가 거의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걸 들었고요. 역겨웠어요. 왜 능력 있는 직원들을 유지하는 것이 자기들한테 좋은걸 모르는지 이해가 안 가요.” 라고 밝힌다.
12년의 직업 경험을 가진 아티스트는 이렇게 회상한다. “신참 대하는 것 이하의 노동환경을 만들었죠. 막 졸업한 신참을 갖다 써서, 돈은 적게 주고 막 시키는 겁니다.” Team Bondi는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한 게임 개발 회사다. “이 회사에서의 경험이 있은 이후로 게임 업계에서는 다시는 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시 같이 일했던 다른 아티스트들도 거의 다 그렇습니다.”
전직 프로그래머는 자신이 3년 동안 일하면서 개발사에 “엄청난 인원 교체가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코딩 쪽에서 그랬는데, 회사를 나온 45명 중에서 11명은 해고 당했고, 스스로 결정해서 나온 34명 중에서 25명이 코더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서 당장 다른 직업을 구할 수가 없었는데, 이 회사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무직 상태가 낫다고 생각한 겁니다. 저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 전에 게임 개발 경험이 없었던 게임플레이 프로그래머도 똑같은 말을 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바뀌었어요. 나가는 사람들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았어요. 모든 게임플레이 프로그래머들과 미팅이 있었을 때가 기억납니다. 한 20명 정도 있었는데, 책임자를 빼면 제가 가장 오래 일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일한 게 12달도 채 되지 않았었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개발진 교체 문제를 제기하고 약 100명 가량의 직원들이 들어왔다가 나갔다는 출처의 내용을 언급했을 때 맥나마라는 놀랍게도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마 그보다 더 있을 걸요. 우리와 함께 게임을 만들었던 사람들 중에서 대부분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이런 종류의 목표치를 가지고 있는 게임을 만들어본 사람들도 거의 없었을 테죠.”
몇몇 직원들은 이처럼 직원 유지가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 불러온 부작용에 대해서도 말했다. 전직 게임플레이 프로그래머는 자신의 동료가 회사를 떠났을 때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료가 작업해야 할 모든 내용들을 제가 받았습니다. 당연히, 한번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한 달 동안은 어떻게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적응부터 해야 하고 뭔가를 만들어낼 수가 없죠. 그런 일이 세 번인가 네 번 정도 일어났죠. 네 사람 일을 동시에 해야 했어요.” 그는 동시에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야 했고, 락스타에서 파견 나온 책임 프로듀서는 한 사람이 네 사람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저는 거의 ‘내 말이요! 이게 뭐냐고요!’ 이랬었죠. 그런데 결국 떠날 때 저는 네 사람 분량의 일을 또 다른 사람한테 맡겨야 했고, 그리고 회사는 새로운 사람들을 고용하고, 그렇게 계속 가야 했어요. 아마 사람들을 계속 챙겼다면 이 회사는 훨씬 더 효율적으로 돌아갔을 테고 게임 개발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역자 추가: 개발환경 구설수에 자주 오른 락스타마저도 당황하게 만든 Team Bondi의 작업환경.
맥나마라는 Team Bondi의 인력 관리에는 열심히 개입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자주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도 그것을 알면서도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그냥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아, 회사에 들어와서 테스터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죠. 그런데 비디오 게임을 만들거나 아니면 검토하는 과정은 대부분, 말하자면, 완성이 안 되어 있죠. 테스트가 그리 재미있지는 않아요. 게임 세계를 구성하기 위한 도구를 만들고 있는데 그 도구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하면 당연히 모든 아티스트들이 굉장히 화가 나겠죠. 레벨을 만드는 도구를 개발하고 있는데 그게 잘 안되면 이번에는 당연히 디자이너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겠죠. 하지만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런 건 당연히 일어나는 겁니다."
대인 관계
인터뷰 기록을 허락한 모든 11명의 전 직원들은 Team Bondi의 지도층이 가지고 있던 많은 문제들을 비난했다. 한 프로그래머는 비현실적인 목표, 비상식적인 기한과 언어 폭력의 난무를 문제로 들었다. 또 다른 사람은 맥나마라를 “내가 만난 가장 열 받은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뒷문으로 가서 화내는 건 그렇다 칩시다. 그런데 사무실 한 가운데에서 자기를 화나게 만드는 사람한테 소리치는 게 흔한 일이었어요.”라고 말한다. 맥나마라는 우리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경영 방식에 대해서 상당히 개방적으로 말했다. 그는 이렇게 논쟁을 벌이는 일이 제대로 일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제가 게임 개발에 열정적이냐고요? 당연하죠. 제가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냐고요? 당연하죠. 하지만 그게 언어 폭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007년 3월, 리딩 팀즈라고 하는 사내 팀 조성 전문회사가 직원들의 불만족과 높은 사원 교체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Team Bondi의 부탁을 받고 왔다고 한다. 몇몇 직원들은 자신들의 불만에 대해서 말할 수 있었지만 다른 직원들은 보복을 두려워해서 여기 협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원들의 사기는 잠시 좋아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인터뷰를 한 프로그래머 중 하나는 “리딩 팀즈가 찾아온 결과 중에 하나가 브렌단이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서 고립된 상태로 앉아 있어야 한다는 요구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하루 종일 막 여기저기 걸어 다니던 통에 평소보다 사람들을 더 짜증나게 만들었죠.”라고 밝혔다.
2007년의 팀 조성 모임에 대해 맥나마라는 자신이 “회사의 모든 사람들 앞에 앉아 있었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한 내용들에 대해서 말하던 것”을 회상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들은 좋은 말을, 또 다른 사람들은 나쁜 말을 했다”는 것 말고는 그 피드백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Team Bondi는 리딩 팀즈와 단 두 번의 모임을 가졌고, 두 번째 날에는 회사의 총 감독인 비키 로드(Vicky Lord)가 전날 브렌단이 앉은 자리에 앉았다. 브렌단은 사원들의 피드백 중 하나라도 반영했을까? “몰라요, 2007년이었다니까요."
그는 잠시 멈춘 후 “나는 내가 한 일, 그리고 내가 이룬 일에 대해서 조금도 화가 나거나 실망스럽지 않아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방어할 생각도 전혀 없고요. 내 생각은, 만일 누군가가 여기 와서 내가 이룬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싶다면, 잘 해보라고 하죠. 회사를 나간 사람들이 회사 밖에서 성공을 거두고 싶다면, 그것도 잘 해보라고 하죠. 나하고 같이 할 생각이 없으면, 뭐 괜찮습니다. 락 밴드의 음악적인 차이 비슷한 거죠, 안 그래요? 누군가는 이걸 하고 싶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니고, 그런 거죠." 라고 대답했다.
Team Bondi 창립자 브렌단 맥나마라.
작업환경
우리와 인터뷰를 한 Team Bondi의 많은 전직 직원들은 계속적인 “crunch time”에 시달렸다. Crunch time이란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 밀린 개발 일정을 만회하기 위해 초과근무를 하는 것을 말한다. 개발 막바지에 crunch time이 있는 것은 미국의 게임 및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개발사에서 흔히 있는 일이며 이 쪽에서도 불평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게임 개발 산업에 처음 뛰어든 사람들은 이런 관례에 상당 부분 좌절했다. Team Bondi에서 2년을 일한 한 아티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팀에 들어왔을 때는 모두가 이 일이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주5일 직업인 것처럼 말했어요. 아무도 대놓고 그보다 더 일해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았지만 회사 분위기 자체가 그랬어요. 초과 근무를 하지 않으면 애초에 개발이 제대로 안 되는 겁니다.
다른 아티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7시 반에만 퇴근해도 사람들이 째려봐요. 계속해서 crunch가 있었어요. 일정이 계속 바뀌었습니다. Crunch time 기간이 끝없이 뒤로 밀리고 계속 밀렸어요. 경영진 쪽에서는 ‘아, 이번 데드라인만 맞추면 끝날 겁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지만 데드라인이 계속 뒤로 밀리는 거에요. 거의 1년동안 그랬죠.” Team Bondi에서 일한 3년동안 이 아티스트는 주당 평균 60시간을 일했다. 거의 한 달에 한번 정도 찾아왔다고 하는 각각의 주요 개발단계를 맞춰야 할 때 작업 시간은 주당 80에서 110시간까지 뛰었고 이러한 상황이 약 1~2주 정도 지속되었다. 한 애니메이터는 이에 대해 문제는 “게임 회사들이 crunch가 잘못 된 일정 설정이나 초기에 내린 잘못된 결정들을 수정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2008년 회사를 떠난 또 다른 사람은 그가 Team Bondi에서 겪은 경험을 그의 인생 최대의 실망이라고 밝혔다. “제가 떠난 이유는 주로 스트레스와 작업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회사를 나가게 만든 사건은 따로 있었어요. 15분 늦었다고 ‘행동 및 시간엄수’ 조항을 어겼다고 회사에서 징계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전에 그날 새벽 3시 15분에 퇴근을 하고 내 돈 내고 택시를 타고 갔다가 그날 9시 15분에 출근했다고요! 시드니의 소프트웨어 개발회사가 3D 직장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맥나마라는 이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우리 모두 일하는 시간이 똑같습니다. 나보다 오래 일하는 사람은 없어요. 저 혼자서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해서 해변으로 가는 게 아닙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 일할 때 똑같이 일해요.”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서 “아무도 만든 적이 없는 것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이 전에는 만들어진 적이 없는 게임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그 사람들은 당연히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야죠.”
맥나마라는 7년간의 게임 개발기간 동안 기본적인 근무시간보다 직원들이 초과 근무를 했는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말한 “일반적인 작업시간”이 일반적인 기준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시인했다. 그는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직업을 원한다면 다른 업계에 가야죠.”라고 말하면서 회사의 평균적인 근무시간이 9시 출근/8시 퇴근이었던 점, “얼마가 걸리든 무조건 끝내야 한다”는 신념, 그리고 뉴욕에 있는 배급사로의 잦은 출장과 배급사 측이 오전 4시에 걸어오는 전화에 대해 언급했다.
11명의 전 직원들은 초과 근무에 대한 또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한 아티스트는 “제가 Team Bondi에서 일한 3년 3개월동안 초과근무 수당을 제대로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들에 의하면 직원 고용 계약서가 초과근무수당을 받을 방법은 게임 개발이 끝나고 3개월 동안 회사에 남아있는 방법뿐이라는 식으로 쓰여 있었다고 한다. 그 전에 회사를 떠난 사람들은 초과 근무 수당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우리와의 대화 중에 맥나마라는 현재의 직원들에 대한 모든 초과근무수당이 지불되었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녁 근무에 대한 보너스가 있었고, 같이 1달씩 휴가도 주었습니다. 주말 근무 수당도 다 계산해서 줬습니다. 하지만 사실 계약상은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어쨌든 우리는 어떻게든 돈을 주고, 계약서에는 필요하면 초과 근무를 해야 한다고 되어 있어요. 나는 이렇게 초과근무를 20년을 하면서도 따로 초과수당을 받지 않았어요. 그런다고 화 안 냅니다. 이런 게임들을 만들 기회를 얻었으니까.”
개발 지연
[L.A. 누아르]의 개발을 둘러싼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이다. 게임 개발 초반부터 투입되었었던 두 명의 전 직원들은 “개발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플레이스테이션 3은 존재하지도 않았었고, 때문에 우리가 추측했던 많은 부분들은 나중에 틀렸거나, 고쳐야 할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또한 직원들의 경험 부족을 또 다른 문제로 든다. 직원들의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새로운 하드웨어에 적응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중 한 명은 “결국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죠. 제가 사임했을 때 이미 80명이 회사를 나왔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한다.
한 아티스트가 2008년 회사를 나왔을 때 상황은 이랬다고 한다. “게임은 꽤나 잘 돌아가고 있었어요. 프레임도 잘 나왔고, 그래픽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아직 게임이 끝나려면 먼 상황이었습니다. 터널 끝부분까지는 아직 한참 남아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만 해도 우울해지는군요. 당시 경영진들은 게임이 2009년 중반에 나올 거라고 예상중이었습니다.”
한 게임플레이 프로그래머는 자신이 사임했을 때의 상황을 이렇게 돌아본다. “더 이상 나 자신에게 이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제가 들어왔을 때 개발은 ‘이제 1년도 안 남은’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2년 반 후에 제가 떠날 때 여전히 개발은 ‘이제 1년도 안 남은’ 상황이었죠.”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웃었다. “경영진이 거짓말을 했던 건지 아니면 그냥 무능했던 건지 잘 모르겠네요.”
한 프로그래머는 사임을 하게 된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윗사람들이 언론에 보여준다고 만들라고 했던 데모를 만들고 있었어요. 3주 동안 매일 15시간씩 일했어요. 매일 동안.” 그러나 그는 그 때가 Team Bondi에서 일했던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뭘 하고는 있잖아요. 뭔가 성과가 있으니까 그게 그냥 좋았어요. 그는 자주 경영진도 우리를 그냥 내버려 뒀었고요. 그러니까 집에 가면,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고 지쳐서 그냥 잤던 겁니다.” 3주 동안의 힘든 일이 끝나고 나서 이 프로그래머는 데모 언론 공개는 아예 없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회사는 그가 3주동안 주당 평균 100시간 동안 일한 결과물의 반을 완전히 갈아엎었다.
7년간의 개발 과정을 돌아볼 때 맥나마라는 그 과정의 좋았던 점과 그렇지 않았던 점에 대해서 말했다. “시작과 끝은 언제나 좋지만 중간이 늘 고문이죠. 다 그렇잖아요? 겟어웨이를 만들 때도 그랬고, 그 전에 작업했던 게임들도 다 그랬어요. 중간 과정은 꼭 페인트가 마르는 걸 기다리는 것 같은 일입니다. 굉장히 느린데, 그렇지만 끝에 가면 모든 게 가치 있는 일일 것이라는 희망을 잡는 거죠. 그는 이 게임에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고 말한다. “개발사,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기회, 우리의 가족, 집, 모든 것, 모든 일상의 것들이 전부 다 모인 결과물입니다.”
완성된 결과물은 액션물보다는 경찰 수사물에 가까웠다.
뒤돌아볼 때, 이들이 약간 다르게 할 수 있었던 일이 있었을까? “시드니로 온다는 건 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맥나마라는 50분 간의 인터뷰 동안 계속 근처에 있었던 회사의 총감독인 비키 로드에게 질문했다. “캐나다나 미국에 비하면 정부 지원도 거의 없어요. 그리고 여긴 사람들 생각이 좀 이상해요.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고도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게 안 되요. 런던에 있든 뉴욕에 있든 어디든 간에 지금 자기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최고들과 경쟁을 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과 경쟁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죠. 여기는 사람들 생각이 좀 달라요.”
“그리고 여기서 일했던 사람들도 대개 호주에서 했던 일이 그냥 고용되었으니까 하는 그런 일인데, 이건 우리가 런던에 있는 소니 밑에서 일하면서 기대하던 것에 비하면 질적으로 수준이 좀 낮은 것들이죠. 그게 제일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는 결론은 이렇게 냈다. “지금 있는 사람들 괜찮지 않아? 확실히 그래요. 정말 생 초보로 시작했지만 다들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되었죠. 이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L.A. 누아르], 그리고 미래
7년간의 개발이 끝나고 [L.A. 누아르]는 마침내 발매되었다. 호주에서 여태까지 만들어진 최대, 최장 규모의 게임 개발이었다. 호주의 게임 개발자들이 [L.A. 누아르]의 개발과정과, 전 직원들의 고발과 이에 대한 브렌단 맥나마라의 대답 사이의 분명한 괴리로부터 얻을 수 잇는 것은 무엇일까? 2004년 ‘EA 부인’ 포스팅의 주인공인 에린 호프만(Erin Hoffman)은 이에 대해 “결국 개발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더 나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알고 그것을 위해 싸우는 것은 모든 개발자들의 책임이에요.” 라고 밝힌다.
호프만은 그 책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지금은 남편)를 위해 이 블로그 포스트를 썼다. 그녀의 남편은 당시 EA의 ‘반지의 제왕: 중간계 전투’ 개발을 위해 주당 85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고 있었다. 블로그 포스팅이 불러온 후폭풍과 세 개의 단체 소송이 있은 직후, EA는 지불되지 않은 초과 수당 3000만 달러를 EA LA의 프로그래머와 그래픽 아티스트들에게 즉시 지불하고 사건을 일단락했다.
우리가 Team Bondi 전 직원들과 인터뷰를 한 내용들을 보여주자, 호프만은 이렇게 대답했따. “얘기를 쭉 들어보니까 이 사람들은 세계화의 희생자들 같군요. 미국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만 빈도가 훨씬 덜해요. 아무리 ‘능력자’(visionary) 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증명된 개발 팀 없이는 배급사들이 웬만하면 프로젝트를 승인해주지 않거든요. 능력자 한 명만 믿고 가는 방식은 거의 웬만하면 실패해요. 그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누구든지 훈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떠한 상관이든 예전 팀과의 관계가 나빠진 사람이라면 그건 그 사람에 대한 적신호에요. 불행히도 이 일은 이런 수준의 작업을 완성한 경험이 없는 한 사람에게 엄청난 계획이 주어져서 벌어진 일 같네요. 이렇게 엄청나게 큰 기획들이 성공하려면 한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기술, 예술, 디자인 등 다양한 부문에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팀이 필요해요. 게임 디자이너가 아니라 아이디어만 내놓는 사람이 책임을 맡은 것도 문제인 것 같네요.”
호주의 게임 개발 업계가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스튜디오들이 닫힌 이후 다시 복구되고 있는 지금, 개발자들은 자신이 현재의 노동 환경 때문에 불행한 경우 자신이 끌어올 수 있는 방책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11명 중 한 명은 이렇게 당부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젊은 프로그래머들 상당수가 아직 너무 순진해요. 업계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에 너무 흥분을 하고 있다고요. 다들 열심히 일만 하려고 하지만, 어떻게 스스로를 지키고 좋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지는 다들 아직 잘 모르고 있어요.”
Team Bondi의 필름 누아르 풍 수사 스릴러 [L.A. 누아르]는 지난 5월에 발매되어 상업, 비평적 성공을 거두었다. 세세하게 재현된 1947년의 로스 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이 게임은 익숙한 오픈월드 디자인을 버리고 사건 단위로 범죄 현장을 조사하고 용의자들을 심문하는 수사 형식의 게임플레이를 보여주었다. 거대한 도시, 플레이어의 행동과 선택에 따라 변화하는 사건들, 지금까지의 비디오게임에 쓰인 것보다 더 복잡한 모션 캡쳐 기술을 사용한 이 게임은 엄청나게 큰 계획이었다.
게임의 엄청난 계획 덕분에 개발은 7년이나 걸렸고, 중간에 소니에서 락스타로 배급사가 바뀌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L.A. 누아르]의 개발 과정은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듀크 뉴켐 포에버, 투 휴먼, 프레이 같은 게임들의 긴 개발기간에 대한 글은 굉장히 많다. 그러나 호주의 작은, 탄탄하게 뭉쳐있는 게임 개발 커뮤니티 안에서 [L.A. 누아르]의 험난했던 개발 과정은 특히 눈에 띈다. Team Bondi의 범죄 드라마는 지금까지 호주에서 벌어진 가장 거대한 게임 개발 계획일 뿐만 아니라, [L.A. 누아르]를 만든 수많은 창조 인력들의 첫 번째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아마도 이 모든 것들이 섞인 결과 Team Bondi의 예전 직원들의 게임 개발 경험에 대한 놀라울 정도로 솔직한 증언들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Team Bondi의 과거 직원들이 게임의 크레딧에서 빠진 100명 가량의 개발자들의 이름을 다시 올릴 것을 요구하는 웹사이트를 공개했다. 그러나 이를 둘러싼 역사는 훨씬 전부터 시작되었다. 2010년 1월 23일, 트위터에서 누군가가 익명으로 어깨 너머로 Team Bondi에 대해서 들은 내용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 내용들은 전 직원이 올린 내용이 아니라, 위키리크스처럼 자신이 익명의 출처로부터 파헤친 내용들을 익명으로 올리는 것이었다.
이 출처는 개발사 창립자인 브렌단 맥나마라(Brendan McNamara)가 Team Bondi와 [L.A. 누아르] 개발을 잘못 운영하고 있으며, 단 1년만에 자체 기술 개발에 수천만 달러를 들였다고 밝혔다. SCEA가 플레이스테이션 2로 발매되었던 성공작 겟어웨이의 성공 때문에 맥나마라를 어느 정도 믿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니는 2005년 [L.A. 누아르] 배급을 포기했다. 개발사가 “SCEA가 예상한 개발 비용을 훨씬 넘겨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이 출처는 또한 이 상황이 “개발사를 혼란에 빠트렸다”고 밝힌다. “이상하게도, 맥나마라는 바로 그의 옛 라이벌인 하우저 형제(주: 락스타 게임즈의 창립자들)에게 기댔고 락스타 게임즈가 2006년 봄에 바로 [L.A. 누아르]를 집어갔다. … 그 이래로 게임은 계속해서 수정되고, 이식되고, 4번 연기되었다. 락스타는 게임이 망하지 않기 위해 소니보다 더 많은 돈을 쏟아부었다."
이 트윗이 호주의 게임 산업 포탈인 Tsumea에 올라왔을 때, 익명의 몇몇 사용자들이 그 내용에 동의했다. “끔찍한 노동환경, 욕을 달고 사는 열 받은 사장과 개발 팀 일원들을 보호할 생각이 전혀 없는 비효율적인 지도층, 전부 다 증명할 수 있다. 업계 신참들이 상습적인 야근과 주말 근무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24시간 노가다판으로 떠밀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하다”고 한 사람은 말했다.
Team Bondi의 개발 환경의 진실은?
Tsumea에 올라온 몇몇 댓글들은 2004년 EA_Spouse(주: 해석하면 EA_부인) 라는 ID를 사용한 한 익명의 사용자가 LiveJournal에 글을 올린 사건을 떠올렸다. 당시 이 사용자의 약혼자는 “반지의 제왕: 중간계 전투” 개발 데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일해야 했고, 그녀는 자신의 약혼자를 거의 볼 수 없다며 블로그에 자신의 좌절감을 표했다. 블로그는 언론의 많은 관심을 받았고 결국 지불되지 않은 추가 노동비용에 대해서 EA에 총 3개의 단체 소송이 걸린 바 있다.
초기의 트윗과 그에 대한 약간의 토론이 있은 후 상황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L.A. 누아르]의 발매일이 2011년 5월 중순으로 정해진 것이다. 게임은 나오게 될 것이었지만, 질문은 남아있었다. 과연 회사의 노동 환경에 대한 진술은 사실이었을까? 왜 [L.A. 누아르]를 발매하기 까지 7년이 걸렸을까?
호주 IGN은 수십명의 전 Team Bondi 직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을 했고 이중 11명이 익명성을 보장받는다는 조건 하에 인터뷰 기록에 응했다. 많은 직원들은 현재 또는 앞으로의 고용주들에게 자신이 배신자로 찍히게 된다면 돌아올 보복을 무서워했다. 이들이 한 일의 총량은 광범위하며, 시간으로 합하면 총 24년에 달한다. 어떤 사람들은 몇 달을, 다른 사람은 4년을 일하기도 했으며, 아티스트, 프로그래머, 애니메이터, 소프트웨어 설계 등 보직도 다양하다. 또한 우리는 Team Bondi의 총 책임자인 브렌단 맥나마라의 시각을 알아보기 위해 그와도 깊이 대화를 나누었다.
초기의 상황
2003년 Team Bondi가 설립되었을 당시 팀의 핵심 멤버는 브렌단 맥나마라와 그가 작업한 The Getaway의 개발사 Team Soho에서 옮겨온 그의 가장 가까운 지지자들이었다. “첫 번째 호주 고용자”들로 불린 다섯 명이 2004년 3월 Team Bondi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이중 한 명은 초기의 상황이 “힘들긴 했지만 좋았다”고 말한다. “기술적으로도, 예술적으로도, 사실 어떠한 측면에서도 특별한 방향성이 있어 보이진 않았습니다. 기술 책임 담당자(CTO)가 있기는 했지만 그 사람은 우리에게 딱히 무슨 말을 하지도 않았고 어떤 방향을 제공해 주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굉장히 힘든 일을 하고 매주마다 이를 검토하면서 우리가 일하는 방식에만 의존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교적 빠르게 발전하여 첫 해에 30명이 일하기 시작했죠.” 고 그는 밝힌다. 회사가 점점 커지자 거기에 맞춰 그들은 Ultimo에 있는 좀 더 큰 사무실로 옮겼다. “그 첫 해에 소니에 몇몇 마일스톤(주: 초기 빌드)을 보냈는데 반응이 좋지 않았어요. 뭔가를 내놓아야 한다는 압력이 서서히 세지고 경영진 쪽에서 주로 기술적인 문제로 우리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보기 시작하자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었어요.”
다섯 명 중에 다른 사람은 이렇게 밝혔다. “처음에야 재미있었죠. 새 개발사에, 크고 새로운 게임도 있었고. 시간이 지나고 프로젝트는 경영진 생각처럼 빠르게 진행되지 않자, 그들은 굉장히 공격적으로 변했고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떠나가기 시작했고, 직접적인 명령을 거절하자 해고당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있기 짜증나는 곳으로 변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떠났을 때는 한 100명 정도가 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죠."
스튜디오 구조
Team Bondi의 핵심 직원들은 Team Soho에서 고스란히 옮겨온 사람들이었다. 한 출처에 의하면 맥나마라는 이들에게 “많은 돈과 시드니에서의 멋진 삶을 약속하면서, 자기와 함께 가자고 이들을 구슬렸다. 그들은 앞으로 어떻게 일이 진행되어야 할지에 대한 구상과, 그들의 회사가 얼마나 끝내주는 곳이 될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회사에 왔다.”
모든 개발자들의 증언은 개발사가 비공식적이지만 아주 확실한 왕정 체제로 운영되었다는 점을 가리켰다. 작가이자 감독이었던 브렌단 맥나마라가 뭔가를 바꾸려고 할 때, 그는 간부급 직원을 통하지 않고 바로 담당 직원에게 말을 했다. 한 프로그래머는 “상관들이 자주 배제되었다”고 기억한다. “부서 상관한테 가서 ‘이봐요, 브렌단이 또 말도 안되는 부탁을 해요’라고 말하면 그 사람들이 이해는 하는데 어떻게 해줄 방법이 없어요. 저도 그럴 수가 없지만 그 사람들도 브렌단한테 가서 이건 말이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없거든요. 도저히 이성적으로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스튜디오 구조에 대해 물어봤을 때 맥나마라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내가 원한다면 누구한테든지 가서 얘기할 수 있죠. 이건 내 게임이에요. 팀 안에 있는 누구한테나 가서 ‘이거 바꿔’ 라고 말 할수 있어요.” 그는 락스타의 샘 하우저 역시 자기 팀에 그런 식의 부탁을 한다고 말한다. 그는 또한 “나는 오랫동안 이런 식으로 일해 왔고, 지금까지는 괜찮은 방식이었어요.”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모션 캡쳐 기술, 엄청난 규모의 대본과 47년 LA의 완전한 재현이라는 목표 때문에 [L.A. 누아르]의 개발은 굉장히 어려웠다.
우리와 이야기를 나눈 몇몇 전 직원들에 따르면 이것은 맥나마라가 스튜디오 전체에 대한 권력을 휘두르려는 자기 욕구를 실현하기 위한 방식 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것이 사실이었는지 그에게 직접 물어보았을 때 그는 웃으면서 질문을 했다. “그게 잘못된 거에요? 난 비디오 게임 만드는 사람이에요. 그런 건 그냥 나에 대한 사적인 평가일 뿐이고. 내가 대본을 쓰고, 내가 감독을 하고, 내가 필요한 기술들을 종합하고, 내가 세상에 나가서 ‘여기 투자하시겠습니까?’ 이러는데. 그게 강박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뭐 당연하죠.”
개발진 교체
11명의 전 직원들과의 인터뷰 도중 반복해서 나온 내용은 Team Bondi의 경영진들이 초보 직원들을 고용해서 “더 오래, 빨리” 일하도록 키우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직원들이 자주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한 출처는 “간단히 말해서, 회사가 초과 근무와 주말 근무를 당연하게 기대하고 있었어요. 내 주말을 이렇게 매번 내 줄 수는 없다고 말하니까 지금 장난하냐고 하더라고요. 그야말로 우리는 소비되는 자원이었어요. (Team Soho 출신 사원들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 ‘내부 모임’ 사람이 아니면 그냥 쓰다 버릴 자원이었어요. 이 사람들 생각이 어떤 식이냐 하면, ‘우리와 일하는 건 엄청난 특권이라고. 마음에 안 들면 나가든지’에요. 실제로 고위 직원 중 하나가 거의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걸 들었고요. 역겨웠어요. 왜 능력 있는 직원들을 유지하는 것이 자기들한테 좋은걸 모르는지 이해가 안 가요.” 라고 밝힌다.
12년의 직업 경험을 가진 아티스트는 이렇게 회상한다. “신참 대하는 것 이하의 노동환경을 만들었죠. 막 졸업한 신참을 갖다 써서, 돈은 적게 주고 막 시키는 겁니다.” Team Bondi는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한 게임 개발 회사다. “이 회사에서의 경험이 있은 이후로 게임 업계에서는 다시는 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당시 같이 일했던 다른 아티스트들도 거의 다 그렇습니다.”
전직 프로그래머는 자신이 3년 동안 일하면서 개발사에 “엄청난 인원 교체가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코딩 쪽에서 그랬는데, 회사를 나온 45명 중에서 11명은 해고 당했고, 스스로 결정해서 나온 34명 중에서 25명이 코더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대부분 나와서 당장 다른 직업을 구할 수가 없었는데, 이 회사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무직 상태가 낫다고 생각한 겁니다. 저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 전에 게임 개발 경험이 없었던 게임플레이 프로그래머도 똑같은 말을 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바뀌었어요. 나가는 사람들의 비율이 엄청나게 높았어요. 모든 게임플레이 프로그래머들과 미팅이 있었을 때가 기억납니다. 한 20명 정도 있었는데, 책임자를 빼면 제가 가장 오래 일하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일한 게 12달도 채 되지 않았었는데 말입니다.”
우리가 개발진 교체 문제를 제기하고 약 100명 가량의 직원들이 들어왔다가 나갔다는 출처의 내용을 언급했을 때 맥나마라는 놀랍게도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아마 그보다 더 있을 걸요. 우리와 함께 게임을 만들었던 사람들 중에서 대부분은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이런 종류의 목표치를 가지고 있는 게임을 만들어본 사람들도 거의 없었을 테죠.”
몇몇 직원들은 이처럼 직원 유지가 제대로 안 되는 상황이 불러온 부작용에 대해서도 말했다. 전직 게임플레이 프로그래머는 자신의 동료가 회사를 떠났을 때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료가 작업해야 할 모든 내용들을 제가 받았습니다. 당연히, 한번 그런 일이 일어나면 한 달 동안은 어떻게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적응부터 해야 하고 뭔가를 만들어낼 수가 없죠. 그런 일이 세 번인가 네 번 정도 일어났죠. 네 사람 일을 동시에 해야 했어요.” 그는 동시에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야 했고, 락스타에서 파견 나온 책임 프로듀서는 한 사람이 네 사람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저는 거의 ‘내 말이요! 이게 뭐냐고요!’ 이랬었죠. 그런데 결국 떠날 때 저는 네 사람 분량의 일을 또 다른 사람한테 맡겨야 했고, 그리고 회사는 새로운 사람들을 고용하고, 그렇게 계속 가야 했어요. 아마 사람들을 계속 챙겼다면 이 회사는 훨씬 더 효율적으로 돌아갔을 테고 게임 개발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역자 추가: 개발환경 구설수에 자주 오른 락스타마저도 당황하게 만든 Team Bondi의 작업환경.
맥나마라는 Team Bondi의 인력 관리에는 열심히 개입하지 않았으며, 사람들이 자주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도 그것을 알면서도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그냥 누군가는 남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는 과정 중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아, 회사에 들어와서 테스터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이 있죠. 그런데 비디오 게임을 만들거나 아니면 검토하는 과정은 대부분, 말하자면, 완성이 안 되어 있죠. 테스트가 그리 재미있지는 않아요. 게임 세계를 구성하기 위한 도구를 만들고 있는데 그 도구가 제대로 작동을 안 하면 당연히 모든 아티스트들이 굉장히 화가 나겠죠. 레벨을 만드는 도구를 개발하고 있는데 그게 잘 안되면 이번에는 당연히 디자이너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겠죠. 하지만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게임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런 건 당연히 일어나는 겁니다."
대인 관계
인터뷰 기록을 허락한 모든 11명의 전 직원들은 Team Bondi의 지도층이 가지고 있던 많은 문제들을 비난했다. 한 프로그래머는 비현실적인 목표, 비상식적인 기한과 언어 폭력의 난무를 문제로 들었다. 또 다른 사람은 맥나마라를 “내가 만난 가장 열 받은 인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뒷문으로 가서 화내는 건 그렇다 칩시다. 그런데 사무실 한 가운데에서 자기를 화나게 만드는 사람한테 소리치는 게 흔한 일이었어요.”라고 말한다. 맥나마라는 우리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경영 방식에 대해서 상당히 개방적으로 말했다. 그는 이렇게 논쟁을 벌이는 일이 제대로 일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제가 게임 개발에 열정적이냐고요? 당연하죠. 제가 제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하냐고요? 당연하죠. 하지만 그게 언어 폭력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007년 3월, 리딩 팀즈라고 하는 사내 팀 조성 전문회사가 직원들의 불만족과 높은 사원 교체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Team Bondi의 부탁을 받고 왔다고 한다. 몇몇 직원들은 자신들의 불만에 대해서 말할 수 있었지만 다른 직원들은 보복을 두려워해서 여기 협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원들의 사기는 잠시 좋아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인터뷰를 한 프로그래머 중 하나는 “리딩 팀즈가 찾아온 결과 중에 하나가 브렌단이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떨어져서 고립된 상태로 앉아 있어야 한다는 요구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하루 종일 막 여기저기 걸어 다니던 통에 평소보다 사람들을 더 짜증나게 만들었죠.”라고 밝혔다.
2007년의 팀 조성 모임에 대해 맥나마라는 자신이 “회사의 모든 사람들 앞에 앉아 있었고,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한 내용들에 대해서 말하던 것”을 회상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어떤 사람들은 좋은 말을, 또 다른 사람들은 나쁜 말을 했다”는 것 말고는 그 피드백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Team Bondi는 리딩 팀즈와 단 두 번의 모임을 가졌고, 두 번째 날에는 회사의 총 감독인 비키 로드(Vicky Lord)가 전날 브렌단이 앉은 자리에 앉았다. 브렌단은 사원들의 피드백 중 하나라도 반영했을까? “몰라요, 2007년이었다니까요."
그는 잠시 멈춘 후 “나는 내가 한 일, 그리고 내가 이룬 일에 대해서 조금도 화가 나거나 실망스럽지 않아요.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방어할 생각도 전혀 없고요. 내 생각은, 만일 누군가가 여기 와서 내가 이룬 것과 같은 일을 하고 싶다면, 잘 해보라고 하죠. 회사를 나간 사람들이 회사 밖에서 성공을 거두고 싶다면, 그것도 잘 해보라고 하죠. 나하고 같이 할 생각이 없으면, 뭐 괜찮습니다. 락 밴드의 음악적인 차이 비슷한 거죠, 안 그래요? 누군가는 이걸 하고 싶다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아니고, 그런 거죠." 라고 대답했다.
Team Bondi 창립자 브렌단 맥나마라.
작업환경
우리와 인터뷰를 한 Team Bondi의 많은 전직 직원들은 계속적인 “crunch time”에 시달렸다. Crunch time이란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 밀린 개발 일정을 만회하기 위해 초과근무를 하는 것을 말한다. 개발 막바지에 crunch time이 있는 것은 미국의 게임 및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 개발사에서 흔히 있는 일이며 이 쪽에서도 불평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지만, 게임 개발 산업에 처음 뛰어든 사람들은 이런 관례에 상당 부분 좌절했다. Team Bondi에서 2년을 일한 한 아티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팀에 들어왔을 때는 모두가 이 일이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주5일 직업인 것처럼 말했어요. 아무도 대놓고 그보다 더 일해야 한다고 얘기하지 않았지만 회사 분위기 자체가 그랬어요. 초과 근무를 하지 않으면 애초에 개발이 제대로 안 되는 겁니다.
다른 아티스트는 이렇게 말했다. “7시 반에만 퇴근해도 사람들이 째려봐요. 계속해서 crunch가 있었어요. 일정이 계속 바뀌었습니다. Crunch time 기간이 끝없이 뒤로 밀리고 계속 밀렸어요. 경영진 쪽에서는 ‘아, 이번 데드라인만 맞추면 끝날 겁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지만 데드라인이 계속 뒤로 밀리는 거에요. 거의 1년동안 그랬죠.” Team Bondi에서 일한 3년동안 이 아티스트는 주당 평균 60시간을 일했다. 거의 한 달에 한번 정도 찾아왔다고 하는 각각의 주요 개발단계를 맞춰야 할 때 작업 시간은 주당 80에서 110시간까지 뛰었고 이러한 상황이 약 1~2주 정도 지속되었다. 한 애니메이터는 이에 대해 문제는 “게임 회사들이 crunch가 잘못 된 일정 설정이나 초기에 내린 잘못된 결정들을 수정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2008년 회사를 떠난 또 다른 사람은 그가 Team Bondi에서 겪은 경험을 그의 인생 최대의 실망이라고 밝혔다. “제가 떠난 이유는 주로 스트레스와 작업 환경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회사를 나가게 만든 사건은 따로 있었어요. 15분 늦었다고 ‘행동 및 시간엄수’ 조항을 어겼다고 회사에서 징계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전에 그날 새벽 3시 15분에 퇴근을 하고 내 돈 내고 택시를 타고 갔다가 그날 9시 15분에 출근했다고요! 시드니의 소프트웨어 개발회사가 3D 직장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맥나마라는 이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우리 모두 일하는 시간이 똑같습니다. 나보다 오래 일하는 사람은 없어요. 저 혼자서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해서 해변으로 가는 게 아닙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 일할 때 똑같이 일해요.”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서 “아무도 만든 적이 없는 것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이 전에는 만들어진 적이 없는 게임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그 사람들은 당연히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야죠.”
맥나마라는 7년간의 게임 개발기간 동안 기본적인 근무시간보다 직원들이 초과 근무를 했는지 확신하지 못했지만, 자신이 말한 “일반적인 작업시간”이 일반적인 기준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시인했다. 그는 “9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직업을 원한다면 다른 업계에 가야죠.”라고 말하면서 회사의 평균적인 근무시간이 9시 출근/8시 퇴근이었던 점, “얼마가 걸리든 무조건 끝내야 한다”는 신념, 그리고 뉴욕에 있는 배급사로의 잦은 출장과 배급사 측이 오전 4시에 걸어오는 전화에 대해 언급했다.
11명의 전 직원들은 초과 근무에 대한 또 다른 문제를 제기했다. 한 아티스트는 “제가 Team Bondi에서 일한 3년 3개월동안 초과근무 수당을 제대로 받은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이들에 의하면 직원 고용 계약서가 초과근무수당을 받을 방법은 게임 개발이 끝나고 3개월 동안 회사에 남아있는 방법뿐이라는 식으로 쓰여 있었다고 한다. 그 전에 회사를 떠난 사람들은 초과 근무 수당을 받을 자격이 없었다.
우리와의 대화 중에 맥나마라는 현재의 직원들에 대한 모든 초과근무수당이 지불되었다고 확인해 주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녁 근무에 대한 보너스가 있었고, 같이 1달씩 휴가도 주었습니다. 주말 근무 수당도 다 계산해서 줬습니다. 하지만 사실 계약상은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어쨌든 우리는 어떻게든 돈을 주고, 계약서에는 필요하면 초과 근무를 해야 한다고 되어 있어요. 나는 이렇게 초과근무를 20년을 하면서도 따로 초과수당을 받지 않았어요. 그런다고 화 안 냅니다. 이런 게임들을 만들 기회를 얻었으니까.”
개발 지연
[L.A. 누아르]의 개발을 둘러싼 가장 중요한 질문은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이다. 게임 개발 초반부터 투입되었었던 두 명의 전 직원들은 “개발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플레이스테이션 3은 존재하지도 않았었고, 때문에 우리가 추측했던 많은 부분들은 나중에 틀렸거나, 고쳐야 할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들은 또한 직원들의 경험 부족을 또 다른 문제로 든다. 직원들의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협력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새로운 하드웨어에 적응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중 한 명은 “결국 많은 사람들이 회사를 떠났죠. 제가 사임했을 때 이미 80명이 회사를 나왔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네요.”라고 말한다.
한 아티스트가 2008년 회사를 나왔을 때 상황은 이랬다고 한다. “게임은 꽤나 잘 돌아가고 있었어요. 프레임도 잘 나왔고, 그래픽도 괜찮았고요. 하지만 아직 게임이 끝나려면 먼 상황이었습니다. 터널 끝부분까지는 아직 한참 남아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만 해도 우울해지는군요. 당시 경영진들은 게임이 2009년 중반에 나올 거라고 예상중이었습니다.”
한 게임플레이 프로그래머는 자신이 사임했을 때의 상황을 이렇게 돌아본다. “더 이상 나 자신에게 이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제가 들어왔을 때 개발은 ‘이제 1년도 안 남은’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2년 반 후에 제가 떠날 때 여전히 개발은 ‘이제 1년도 안 남은’ 상황이었죠.”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웃었다. “경영진이 거짓말을 했던 건지 아니면 그냥 무능했던 건지 잘 모르겠네요.”
한 프로그래머는 사임을 하게 된 사건에 대해 이야기했다. “윗사람들이 언론에 보여준다고 만들라고 했던 데모를 만들고 있었어요. 3주 동안 매일 15시간씩 일했어요. 매일 동안.” 그러나 그는 그 때가 Team Bondi에서 일했던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뭘 하고는 있잖아요. 뭔가 성과가 있으니까 그게 그냥 좋았어요. 그는 자주 경영진도 우리를 그냥 내버려 뒀었고요. 그러니까 집에 가면,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고 지쳐서 그냥 잤던 겁니다.” 3주 동안의 힘든 일이 끝나고 나서 이 프로그래머는 데모 언론 공개는 아예 없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회사는 그가 3주동안 주당 평균 100시간 동안 일한 결과물의 반을 완전히 갈아엎었다.
7년간의 개발 과정을 돌아볼 때 맥나마라는 그 과정의 좋았던 점과 그렇지 않았던 점에 대해서 말했다. “시작과 끝은 언제나 좋지만 중간이 늘 고문이죠. 다 그렇잖아요? 겟어웨이를 만들 때도 그랬고, 그 전에 작업했던 게임들도 다 그랬어요. 중간 과정은 꼭 페인트가 마르는 걸 기다리는 것 같은 일입니다. 굉장히 느린데, 그렇지만 끝에 가면 모든 게 가치 있는 일일 것이라는 희망을 잡는 거죠. 그는 이 게임에 “모든 것”이 집약되어 있다고 말한다. “개발사,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기회, 우리의 가족, 집, 모든 것, 모든 일상의 것들이 전부 다 모인 결과물입니다.”
완성된 결과물은 액션물보다는 경찰 수사물에 가까웠다.
뒤돌아볼 때, 이들이 약간 다르게 할 수 있었던 일이 있었을까? “시드니로 온다는 건 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맥나마라는 50분 간의 인터뷰 동안 계속 근처에 있었던 회사의 총감독인 비키 로드에게 질문했다. “캐나다나 미국에 비하면 정부 지원도 거의 없어요. 그리고 여긴 사람들 생각이 좀 이상해요.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고도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게 안 되요. 런던에 있든 뉴욕에 있든 어디든 간에 지금 자기가 하는 일에 있어서는 최고들과 경쟁을 하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과 경쟁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죠. 여기는 사람들 생각이 좀 달라요.”
“그리고 여기서 일했던 사람들도 대개 호주에서 했던 일이 그냥 고용되었으니까 하는 그런 일인데, 이건 우리가 런던에 있는 소니 밑에서 일하면서 기대하던 것에 비하면 질적으로 수준이 좀 낮은 것들이죠. 그게 제일 어려웠어요.” 하지만 그는 결론은 이렇게 냈다. “지금 있는 사람들 괜찮지 않아? 확실히 그래요. 정말 생 초보로 시작했지만 다들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되었죠. 이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L.A. 누아르], 그리고 미래
7년간의 개발이 끝나고 [L.A. 누아르]는 마침내 발매되었다. 호주에서 여태까지 만들어진 최대, 최장 규모의 게임 개발이었다. 호주의 게임 개발자들이 [L.A. 누아르]의 개발과정과, 전 직원들의 고발과 이에 대한 브렌단 맥나마라의 대답 사이의 분명한 괴리로부터 얻을 수 잇는 것은 무엇일까? 2004년 ‘EA 부인’ 포스팅의 주인공인 에린 호프만(Erin Hoffman)은 이에 대해 “결국 개발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더 나은 회사에 들어가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자신의 권리를 알고 그것을 위해 싸우는 것은 모든 개발자들의 책임이에요.” 라고 밝힌다.
호프만은 그 책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약혼자(지금은 남편)를 위해 이 블로그 포스트를 썼다. 그녀의 남편은 당시 EA의 ‘반지의 제왕: 중간계 전투’ 개발을 위해 주당 85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내고 있었다. 블로그 포스팅이 불러온 후폭풍과 세 개의 단체 소송이 있은 직후, EA는 지불되지 않은 초과 수당 3000만 달러를 EA LA의 프로그래머와 그래픽 아티스트들에게 즉시 지불하고 사건을 일단락했다.
우리가 Team Bondi 전 직원들과 인터뷰를 한 내용들을 보여주자, 호프만은 이렇게 대답했따. “얘기를 쭉 들어보니까 이 사람들은 세계화의 희생자들 같군요. 미국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만 빈도가 훨씬 덜해요. 아무리 ‘능력자’(visionary) 한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증명된 개발 팀 없이는 배급사들이 웬만하면 프로젝트를 승인해주지 않거든요. 능력자 한 명만 믿고 가는 방식은 거의 웬만하면 실패해요. 그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누구든지 훈련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어떠한 상관이든 예전 팀과의 관계가 나빠진 사람이라면 그건 그 사람에 대한 적신호에요. 불행히도 이 일은 이런 수준의 작업을 완성한 경험이 없는 한 사람에게 엄청난 계획이 주어져서 벌어진 일 같네요. 이렇게 엄청나게 큰 기획들이 성공하려면 한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기술, 예술, 디자인 등 다양한 부문에서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팀이 필요해요. 게임 디자이너가 아니라 아이디어만 내놓는 사람이 책임을 맡은 것도 문제인 것 같네요.”
호주의 게임 개발 업계가 지난 몇 년 동안 많은 스튜디오들이 닫힌 이후 다시 복구되고 있는 지금, 개발자들은 자신이 현재의 노동 환경 때문에 불행한 경우 자신이 끌어올 수 있는 방책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11명 중 한 명은 이렇게 당부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젊은 프로그래머들 상당수가 아직 너무 순진해요. 업계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에 너무 흥분을 하고 있다고요. 다들 열심히 일만 하려고 하지만, 어떻게 스스로를 지키고 좋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지는 다들 아직 잘 모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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