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윌리엄 배스, 존 제퍼슨
역자 - 김성훈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쪽수 - 420쪽
가격 - 23,000원 (정가)
“시체농장(Body Farm)”을 설립한
법의인류학자의 경이로운 기록
우연한 선택이 인생을 바꾸는 경험을 사람들은 종종 한다. 이 책의 저자 윌리엄 배스 박사도 상담학을 전공하고 카운슬러가 된다는 미래를 꿈꿨지만, 순전히 재미로 선택한 교양 인류학 수업이 그의 인생을 180도 바꿔버린다. 인류학 교수의 제안으로 불에 타고 부러진 뼈로 희생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오랫동안 풀리지 않았던 미제 사건을 종결하는 과정에 큰 매력을 느낀 뒤 인류학으로 아예 전공을 바꾸게 된 것. 이후로 저자는 5000구가 넘는 인디언 유해를 발굴하고, 세계적으로 떠들썩했던 린드버그 아기 납치 사건의 유해를 감식하고, 아무도 모르게 살해당해 매장되거나 토막 난 유해의 신원을 밝혀냄으로써 지방 소도시 보안관 사무실에서 FBI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법집행기관이 담당한 수백 개 사건의 해결을 도왔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슬프고도 경이로운 저자의 경험담을 통해서 뼈 해부학, 법의곤충학, 인체 부패 연구 등 법의인류학이 새롭게 개척해낸 학문의 영역들, 그리고 죽은 인간이 겪은 사망의 종류와 사망 후 경과시간, 그리고 사망한 환경을 판별하는 연구가 발전하는 과정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더하여 저자의 뼈 해부학 설명과 부록에 담긴 골격 일러스트를 보고 나면, 독자 또한 희생자의 나이, 인종, 성별, 신장을 판별할 수 있게 되는 법의학의 ‘교양’을 얻을 수 있다.
자동차 트렁크에 숨겨진 시체, 시멘트에 뒤덮인 시체로
‘부패의 언어’를 배우는 곳
1980년 설립 이후 약 1200평에 달하는 시체농장에서 저자는 미국 전역에서 시신을 기증받아 다양한 환경과 조건에 놓고 사후 과정에 대한 실험을 진행했다. 이를테면 시체를 물웅덩이에 담가놓고 언제, 어떤 형태로 시랍(습한 곳에서 부패한 시신에 생기는 왁스)이 생기는지, 뚱뚱한 시체와 날씬한 시체 중에 어느 쪽이 더 빨리 부패가 진행되는지, 얕은 무덤, 숲의 그늘, 자동차의 트렁크나 뒷좌석에선 시체가 어떻게 부패하는지, 더 나아가 시체가 부패할 때 구더기, 파리, 송장벌레 등 곤충은 어떤 활동을 보이는지, 부패한 시체가 놓인 토양은 어떤 화학물질의 변화가 일어나는지 등이다. 즉 사망 직후부터 몇 주, 몇 달이 지나 뼈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시신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연구하고 기록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사람 시신의 부패 과정의 ‘시간표’, 즉 사망 후 경과시간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것이다.
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목표는 딱 한 가지였다. 실제로 살인사건 희생자가 발견되었을 때, 그 시신이 어떤 환경, 어떤 부패 단계에 있든지 간에 경찰에게 그 사람의 사망 시각을 과학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말해주기 위함이다. 그런데 사망 후 경과시간이 왜 그리 중요한 걸까? 대체 무엇을 의미하기에 저자가 자신의 인생을 바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걸까?
맨 뼈, 썩은 시체, 구더기와 파리로
가장 정확한 ‘죽음의 시간’을 재구성하는
치열한 분투의 시간
저자는 수십 년간 시체농장에서의 연구로 시체 부패의 과정이 예측 가능한 일관된 순서대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진 속 시신 피부의 미끄러짐, 뼈의 노출, 머리카락 상실, 곤충의 활동과 더하여 사망 당시 미시시피의 온도와 습도 변화를 자신이 발명한 ‘누적도일’이란 공식에 넣자 사망 후 경과시간이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도출해낸 날짜에 용의자의 명확한 알리바이가 있다는 것. 수십 년 동안 치밀하게 구축해온 저자의 연구가 틀렸던 걸까? 바로 그때 저자가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사진 한 장이 발견된다. 그 사진 속 손녀의 머리카락 사이에는 구더기가 파리로 변태하면서 남긴 껍데기가 있었다. 이는 저자가 애초에 예측했던 것보다 일가족이 더 빠른 날짜에 살해당했다는 의미였고, 이 증거 덕분에 배심원들은 의붓할아버지에게 사형을 선고하기에 이른다.
사망 후 경과시간 연구에 저자가 인생을 건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유골 감식으로 살해 희생자의 신원을 밝히면 유해의 주인만 찾을 수 있지만, 사망 후 경과시간을 정확히 안다면 ‘언제’ ‘누구’의 손에 죽었는지 밝혀내고, 법적 증거로 채택되어, 법의 이름으로 살인자를 단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망자의 몸에 남은 이야기를 부패의 언어로 번역해준 덕분에 오늘날 살인 사건의 희생자들은 자신이 죽은 시간을 우리에게 알리고, 자신을 죽인 살인자의 정체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 현재 검시관, 법의학자, 경찰과 법집행기관에서 사용하는 거의 모든 사후 조사 기법은 바로 윌리엄 배스 박사와 그의 제자들이 몰두한 시체농장 연구에서 나온 것이다.
한때는 인간의 ‘살’이었던 것에서 일어나는 변화
그 과정에서 찾아낸 인류학과 의학,
그리고 인간성의 의미에 대한 통찰
“리사의 유해는 재판이 끝나고 머지않아 매장됐다. 만약 리사가 살아 있었다면 지금은 30대 중반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자기 아이를 두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아이는 가는 금발머리에 앞니 사이가 살짝 벌어지고, 크고 환한 미소를 지을 때면 가운데 치아에 나 있는 파인 홈이 눈에 들어오는 예쁜 여자아이였을지도 모르겠다.”(93쪽)
시체농장이 만들어진 이후, 인간의 시신을 도구화한다는 윤리적 논쟁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저자는 시체농장이야말로 죽음을 통해 생명을 구하는 곳이며, 정의를 구현하는 공간이라는 것을 시신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 증명한다. 살았을 때도, 살해당했을 때도 그 어떤 관심조차 받지 못했던 한 여성의 뼈로 그는 오늘날 수많은 법의인류학자와 검시관과 FBI 요원을 키워냈다. 살인자가 신원을 알 수 없도록 불로 바싹 태워버린 뼈로도 마침내 사망 후 경과시간을 알아내고야 말았다. 시신에 남은 구더기와 톱질의 흔적으로도 살인범을 밝히는 방법을 그와 제자들은 찾아냈다. 인간만이 동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상상도 못 할 방법을 동원해 희생자의 신원을 알 수 없도록 숨기지만, 또 인간만이 그 갖가지 방법을 추적해 우리에게 정의를 돌려주고 있다. 그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말하는 메시지이자 저자가 인생을 바쳐 증명한 인간을 향한 사랑이다.
- 프롤로그 | 죽은 자들이 사는 땅 … 008
1. 12개의 작은 뼈 … 012
2. 2000년을 기다린 인디언 … 030
3. 뼈의 증언: 법의인류학 입문 … 059
4. 초원에 홀로 남겨진 아이 … 077
5. 머리 없는 시신 … 094
6. 불타버린 집이 말해준 진실 … 112
7. 시체농장, 탄생하다 … 134
8. 구더기는 알고 있다 … 148
9. 죽음의 악취가 퍼지는 거리 … 166
10. 뚱보 샘과 캐딜락 조 … 179
11. 자기 집 바닥에 묻힌 남자 … 194
12. 동물원 사나이 연쇄살인사건 … 212
13. 불에 탄 시신, 토막 난 뼈 … 251
14. 죽음을 모방한 예술 … 277
15. 시체농장, 논란에 빠지다 … 290
16. 어떤 아내의 죽음 … 302
17. 우연을 가장한 설계자 … 322
18. 순수한 악의 심연 … 343
19. 재가 되지 못한 시체들 … 368
20. 그리고 내가 죽는 날 … 397
부록Ⅰ | 사람의 골격을 구성하는 뼈 … 404
부록Ⅱ | 법의인류학 용어 해설 … 407
감사의 말 | … 414
주 | … 419
추 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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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그 행위는 두려움을 넘어선 연민이며, 과학을 넘어선 윤리다. 내가 매주 시신을 만나며 마음속으로 되뇌는 그 문장을, 이 책은 섬세하고도 강인하게 써 내려간다. 죽음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판단이 아니라 경청임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이 책은 인간과 과학, 그리고 죽음 사이의 절묘한 균형과 깊은 사유를 제기한다. 법의학자와 수사관은 물론, 생명과 윤리의 본질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이 책을 진심으로 추천한다. -
2012년 나는 배스 교수 애제자의 지도 아래 시체농장에서 진행되는 연구에 참여했다. 범죄 현장을 실험적으로 재현하고, 수많은 가설을 실제 시신으로 검증하는 연구들. FBI와 검시관, 전 세계 과학수사 전문가들이 모여 이곳에서 워크숍을 열고 학문을 나누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
이 책에서는 배스 박사의 실제 경험이 생생히 재현된다. 그가 시체농장을 설립하게 된 이유, 사건을 해결해 나간 과정, 그리고 법의학이 과학수사에 어떤 혁신을 불러왔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사망 후 경과시간’이라는 주제가 단순한 과학적 문제가 아니라, 진실을 밝히는 핵심 열쇠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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