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코지마의 게임을 그다지 오래한 사람은 아니다. 메탈기어 시리즈 자체는 어린이집 다닐 때 접했지만 외삼촌이 하는 것을 보기만 했을 뿐이다. 정식으로 입문한 시기는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이때에 PS4를 샀는데 처음으로 한 게임이 메탈기어 솔리드 5 : 팬텀 페인이었다. 이 게임을 사고 약 6달 동안은 그 어떤 게임도 사지 않고 오직 팬텀 페인만 즐겼었다. 오픈월드를 도입하여 더욱 자유도가 높아진 잠입 플레이를 통한 훌륭한 게임성이 나를 완전히 사로잡은 것이었다. 물론 후반의 맥 빠지는 스토리는 아쉬웠지만 그걸 감안하고도 재밌어서 미친 듯이 그 게임만 즐겼었다.
그 뒤로부터 완전히 코지마의 팬이 되어버렸다. 코나미를 나간 후의 그의 행보가 매우 기대가 되었었다. 차기작은 과연 어느 장르의 게임일지 궁금하였다. 메탈 기어를 계승한 잠입 액션 게임이나 P.T로 가능성을 보여줬던 공포 게임이라고 추측했었다. 하지만 정작 나온 것은 여태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배달 어드벤처 게임이었다. 처음에는 과연 배달이라는 소재로 규모가 큰 오픈월드형 어드벤처 게임을 잘 꾸려나갈 수 있을지 걱정했다. 게임에서 배달은 주로 서브 퀘스트에서나 주어지던 소재 중 하나이니까 말이다. 그만큼 배달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임무 중 하나이다.
그러나 그 걱정도 도쿄게임쇼에서 풀린 정보를 보면서 사그라들었다. 나중에 후술할 요소들을 보고 배달이란 소재를 가지고 기대 이상으로 깊은 게임성을 담아낸 것에 놀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 걱정 없이 PS store에 들어가서 예약 구매를 하게 되었다.
레디 메이드 배달 인생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 게임의 주요 소재는 배달이다. 메인과 서브를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퀘스트가 전투가 아닌 배달로 이루어져있다. 물건만 가지고 목적지에만 가면 끝이다. 말로만 들으면 정말 간단하기 짝이 없는 임무다. 그러나 막상 시작하면 여러 벽에 부딪히게 된다.
다른 오픈월드 게임과는 다르게 인벤토리가 없기 아이템들을 직접 들고 다녀야한다. 배달물 뿐만 아니라 사다리나 밧줄 같은 등반 도구, 호신용 무기 등을 직접 지고 다녀야한다. 지고 다닐 수 있는 짐의 무게와 개수가 제한되어있어 항상 배달을 가기 전에 무엇을 지고 다닐지를 생각해야한다.
그래서 짐만 적당히만 지고 가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미국이 멸망하고 인프라가 붕괴된 세계 속은 여러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택배 도둑들과 BT들은 각각 택배와 목숨을 노리고, 험준한 산과 바위들은 배달 경로를 가로막는다. 이 때문에 항상 지도를 보며 경로를 수정하거나 계획하고, 어깨에 달린 오드라덱으로 지형을 스캔해가며 안전한 곳을 찾아서 다니고, 방해꾼들의 위치를 파악하며 숨죽이면서 지나가야한다.
이렇듯 배달의 여정은 고된 편이다. 목적지가 멀고 험준한 곳에 있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막상 무수한 방해를 뿌리치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난 여정들을 돌아보면서 피로는 싹 가시고 성취감만 남는다. 다크 소울에서 어려운 몹들과 보스들을 이겨내면서 생기는 성취감처럼 데스 스트랜딩에서는 험한 지형과 끈질긴 방해꾼들을 이겨내면서 성취감을 얻는다. 맨발 배달의 여정의 시작은 고통스럽지만 끝은 행복하기만 하다.
물론 맨발로만 배달을 다니면 힘들기만 하다. 캐릭터가 성장하지도 않고 더욱더 강한 보스를 잡으라고만 하면 어떻겠는가. 나중에 여러 NPC와 계약을 맺으면서 여러 도구들을 만들 수 있게 되고, NPC의 주변 지역에 구조물들을 설치할 수 있다. 특히 도로와 집라인은 설치할 때는 큰 수고가 들지만 만들어 놓으면 40분 이상이 걸리던 경로를 단 몇 분 만으로 단축시킬 수 있다. 도로와 집라인에 맛을 들이면 자원을 얻기 위해 손수 도둑들의 아지트를 털고 다니는 자신을 볼 수 있다.
타 유저들과 스트랜딩 되다.
이 게임의 가장 특이한 부분을 뽑으라고 하면 비동기화 멀티 플레이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타 유저와 직접 만나서 상호작용하는 여러 온라인 게임들과는 다르게 유저는 직접 만날 수 없지만 그들의 흔적을 접하며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흔적들에는 표지판, 남기고간 차량과 분실물, 도로와 건축물, 건축물의 업그레이드나 도로의 건설 비용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흔적들은 생각 외로 매우 요긴하게 쓰인다. 온라인을 안 켜면 진짜 손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특히 건축물 관련해서는 매우 중요하다. 건축물은 일정 제한이 있어 무한대로 지을 수 없고, 일부 건축물은 자원이 필요하기에 마음대로 짓기가 힘든 편이다. 타 유저들의 건축물은 그 제한에 자유롭고 대체로 완성된 형태로 남기 때문에 건물을 굳이 스스로 짓지 않아도 편하게 인프라를 누릴 수 있다.
도로도 멀티 시스템의 수혜를 많이 받는 구조물이다. 도로를 짓기 위해서는 트럭 몇 대만으로는 모자라는 자원이 들고 재건 기계가 지역 곳곳에 퍼져 있기에 혼자서 짓기에는 무리이다. 그러나 온라인이 켜져 있으면 말이 달라진다. 유저들이 도로 건설을 위해 투입한 자원들의 일부가 모두에게 공유되기에 도로 건설에 투입되는 자원이 확연히 줄어든다. 운이 좋으면 일부가 쌓이고 쌓여 몇몇 구간의 도로들은 이미 완성되어 있기도 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다른 유저의 흔적으로 큰 이득을 얻을 수 있지만 자신이 직접 남기면서 소소하게 이득을 얻을 수도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것 중 하나로는 “좋아요” 시스템이 있다. SNS에서 재밌는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처럼 흔적들에도 “좋아요”를 누를 수 있다. “좋아요”는 단순히 만족감도 주지만 받은 수에 비례하여 건축물들을 잘 낡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 또 주인공이 “좋아요”를 경험치 삼아 성장하기에 배달을 쉽게 하려면 어느정도 받아야 하는 편이다. 그리고 다른 유저가 자신의 건축물을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 도로처럼 공유할 수 있는 식이며 자원들이 쌓이면 자동으로 업그레이드가 된다.
이 때문에 유저 간 상호작용의 선순환이 잘 이루어지는 편이다. 유저들이 적절한 곳에 배치된 구조물에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고, 직접 “좋아요”를 얻기 위해 구조물을 적절하게 배치하면서 게임을 활기차게 만들어준다. 물론 항상 있는 것은 아니기에 자신이 직접 만들기도 하여야 한다.
코지마가 코지마한 스토리
게임의 세계관은 매우 매력적이다. 코지마가 주로 다뤄왔던 SF와 사후 세계를 다룬 오컬트가 서로 합쳐져서 좋은 시너지를 이루고 있다. 초자연적인 오컬트 현상을 나름의 과학적인 가설과 원리, 음모론을 내세우며 몰입하기 어색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사소한 설정들을 게임 안의 인터뷰를 통해 해소할 수 있고, 간간히 받는 NPC들의 메일을 통해 후일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치밀하게 짜져 있다.
캐릭터도 매우 매력적이다. 캐릭터 각각의 특이한 설정들과 배우와 성우들의 열연이 맞물려 게임의 몰입감을 높여준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는 매즈 미켈슨이 담당한 클리포드 엉거가 있다. 컷신의 연출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아버지라는 설정에 매즈 미켈슨의 열연이 더해져 게임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스토리는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은 괜찮으나 이를 이끌어가는 방식이 아쉬웠다.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영양가가 없는 대사의 범람이라도 본다. 설정과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하려고 한 나머지 언급했던 설정을 반복하거나 지나치게 말을 늘리면서 말한 것은 많지만 정작 안에 든 정보는 적어져 지루하기만 하였다.
지나친 컷신 남용도 문제이다. 중반에는 컷신이 많이 있지는 않지만 초반과 후반에 매우 몰려있다. 초반에는 게임 내의 살상의 페널티를 설명하려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플레이 파트로 꾸릴 수 있던 부분을 굳이 2시간짜리 컷신으로 메꾸었다고 생각한다. 후반은 진짜 컷신의 지옥이었다. 거의 한 챕터를 여태까지 몰린 떡밥을 풀어내기 위해 캐릭터들이 대사를 마구 쏟아내기에 너무나도 지루했다. 이걸 약 1시간 동안 본 내 자신이 매우 신기했다. 그나마 클리포드 엉거가 나오는 컷신은 지루했던 1시간 간의 고통을 잠시 잊을 정도로 재미있었다.
코지마는 메탈기어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것처럼 훌륭한 세계관과 캐릭터들을 선보였지만, 지나친 컷신 남용과 대사의 범람도 보여주고 말았다. 코지마 식 스토리텔링의 장단점이 이번 게임에서 매우 부각되어 버렸다.
결론 : 그래도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코지마가 코나미를 나오고 눈치 볼 것이 없어졌는지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모두 때려 박은 느낌이다. 다른 개발자들은 자신이 제일 잘 만들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반면에 코지마는 자기가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자신의 향을 풀풀 풍기면서도 독창적이다.
그러나 앞으로 대중들에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코지마 개인의 고집을 조금은 줄여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임 자체는 나쁘지 않게 잘 만들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는 추천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 이번 작품에 대한 비판을 피드백 삼아 반영하여야 더 많은 사람을 연결할 수 있다고 본다.
나의 점수 : 10점 만 점에 8.7점
P.S. 처음 써본 소감 글 입니다. 피드백 해주실 것이 있으시면 댓글로 부탁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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