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1화:
https://bbs.ruliweb.com/mobile/board/184992/read/14450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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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야. 잘 지내고 있니? 오르카에서 생활은 어때?”
그때가 언제쯤이었더라. 장화가 오르카에 합류하고 두 달쯤 지났을 때였던가.
“...나쁘지는 않아.”
장화가 생각 외로 오르카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 기뻐, 가벼운 마음으로 그런 말을 건넸다. 장화는 멋쩍게 볼을 긁으며 시선을 돌렸었지. 왠지 그녀다운 반응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피식 웃었다.
“다행이네. 몽구스 팀 애들하고 있기 껄끄러울 텐데 노력해 줘서 고마워.”
“....”
왜 나는 그때 장화의 표정이 굳은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걸까.
“오르카의 다른 사람들하고도 가족처럼 잘 지내.”
그리고, 왜 그런 한마디를 덧붙여 버린 걸까.
“나한테… 나한테, 명령하지 마…! 난, 더 이상… 아무도 죽이고 싶지 않단 말야…!”
“...어?”
돌연 표변한 장화의 태도에 의아해할 틈도 없이, 목 왼쪽이 불타는 듯이 뜨거워져 무심코 손을 갖다대었다. 손을 떼어 확인해 보니 온통 붉은 빛 일색.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내 피였다.
“아, 아아…!”
피로 물든 내 손을 보고서는 안색이 새파래진 장화. 그녀가 머리를 감싸쥐고 그 자리에서 무너지듯 쓰러진 것과, 곁에 있던 호위 역의 바이오로이드가 번개같이 달려들어 장화를 제압한 것, 그리고 주위의 모든 바이오로이드들이 몰려들어 내게 응급처치를 한 것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덜덜 떨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장화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마치 꿈처럼 느껴져 도통 실감이 나지 않았지.
눈을 감았다가 뜨니 그곳은 병실. 장화가 패닉에 빠져 와이어로 내 목을 그어버렸고, 천만 다행히도 경동맥을 비껴가 치명상을 피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몽구스 팀], [가족]이라는 키워드, 그리고 [인간의 명령]이 장화의 트라우마를 깨우는 트리거라는 사실은 그보다 더 늦게 알게 되었다.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어야 했다고 뒤늦게 후회해본들 이미 사고는 일어나 버렸고, 부관들의 강력한 건의로 장화에게 접근 금지 명령이 떨어졌다. 그녀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음을 참작해 그 정도로 마무리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뒤로는 두세 다리를 건너 안부를 전해 들을 수밖에 없었지만,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상태가 안정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종종 그런 생각을 하고 만다. 과거 내 목을 그어버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장화의 불안정한 마음은 단지 억눌려 있는 것 뿐이지 않을까- 하는. 예고도 없이 터져나와서, 다른 누군가를 상처입히지 않을까- 하는.
내가 일개 인간일 뿐인 이상, 그 때가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그 칼날이 누구를 향할지도 알 수 없다. 다만, 그 ‘언제’가 가능한 먼 훗날이기를, 그리고 누군가 반드시 상처입어야만 한다면 그것이 오직 나 뿐이기를 바랄 뿐이다.
“————. ———! ——, ——!!”
요즘 들어 꿈에 장화가 나오는 경우가 잦아졌다. 내게 무언가 호소하듯, 혹은 다그치듯 나를 보며 울부짖는다. 허나 나는 그녀가 하는 말을 단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다. 아니, 어쩌면 내 본능이 이해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일지도.
“....”
그렇게 한참을 노력하다가, 내게 아무런 뜻도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장화는 이내 눈물을 거둔다. 그리고 어딘가 비틀린, 섬뜩하고 기괴한 미소를 짓는다. 꿈 속의 나는 눈을 감을 수도, 고개를 돌릴 수도 없어 그 미소를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이 다음의 장면은 언제나 둘 중의 하나. 장화가 손을 뻗어 내 목을 조르거나, 혹은-
“그, 윽…. 케으윽…”
자신의 목을 조른다.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자신의 최후를 똑똑히 보고 기억해 두라는 듯이.
장화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의식이 부상한다. 땀에 젖어 질척이는 옷의 감촉이 적잖이 불쾌하다. 피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몸을 간단히 씻고 침실을 나선다.
“오늘의 업무는…”
부관들의 브리핑을 들으며, 업무용 단말을 조작해 간밤에 온 연락을 확인한다.
“음?”
수신함에 눈에 띄는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사령관님. 홍련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장화와 관해 드릴 말씀이….]
발신인은 홍련. 왜인지 모르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며, 나는 패널을 터치해 그 내용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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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가 저렇게 악화되는 동안 사령관은 어디서 뭐 했어? 에 대한 내용입니다. 3화로 따로 빼기는 애매해서 그냥 2.5화로 올립니다.
트러블이 있었던 탓에 사령관은 장화와 거리를 두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제때 알아차리지 못한 거였죠. 그렇다고 트리거 그 자체인 사령관이 섣불리 다가갈 수도 없는 일인지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 시리즈 괜히 시작한 것 같아요. 쓰면서 스스로 멘탈 대미지를 받고 있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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