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끝나고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정도 현실 감각이 돌아오고 있었다. 수많은 AGS들이 스파크를 일으키면서 반파 되어있었고, 싸늘한 기분이 뒤에 느껴지길래 돌아보니 보기만 해도 들어가기가 싫어지는 거대 흉가가 보였었다. 비록 멀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내 무릅위에 무언가의 무게가 느껴지길래 고개를 내려보니.
"......바닐라."
더이상 움직이지 않고 무릅에 누워 있는 바닐라가 눈에 보였었다. 편안하게 잠을 자듯 눈을 감은 체.
"...................바닐라..."
혹시나 해서 그녀의 몸을 흔들어 보았지만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잖아. 라고 말했지만 그녀에게서 어떤 대답도, 심지어 입 조차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구나.
바닐라 마저 내 곁을 떠난것이다. 콘스탄챠에 이어서.
늘 곁에 있어주었던, 나의 가족이었던 두 사람이...
이젠 더이상 내 곁에 없는것이다.
"도련님."
"아..응?"
고개를 들어보니 모모가 돌아와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싸우다가 땅에 굴러버려서 온 몸이 흙으로 뒤집어 진 체.
"다쳤네..."
"에헤헤...상처 없이...돌아오지는 못했-"
말도 끝내기도 전에 나는 모모를 꼭 안았다. 무릅위에 있는 바닐라가 떨어지지 않도록, 하지만 동시에 모모를 누구에게도 뺏기지 않을 심정으로 꼭 안으면서.
"됬어. 돌아오면 된거니까..."
"....도련님."
그래. 아직 한명 남았었지. 내 가족이. 어릴적부터 늘 곁에 있어주고 떠나주지 않았던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온기와 향은 모모가 살아있다는것을 알려주었고.
"잘돌아왔어. 어서와 모모."
"화나지 않으셨나요? 다치고 돌아왔는데."
"왜 화나. 모모가 살아 돌아왔으면 된거야. 그걸로도 충분한거고."
"에헴 거기 닭살 두분-"
한참동안 보고 있었다는 듯 우리 두사람을 쳐다보았다.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아예 드라마를 찍으시죠 그냥? 이젠 내가 와도 닭살짓이네."
"미..미안 시라유리..."
"죄송해요 시라유리씨 에헤헤..."
"슬슬 떠나야하지 않을까요."
시라유리는 한손에 활을 꼭 쥔 체 주변을 둘러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또 놈들이 쳐들어 오기 전에 말이죠. 가까운곳에 터널이 있으니 그곳으로 안내해 드릴테니까."
"가려면 -치지직-를 두고 가시오."
반파된 한쪽 다리로 인해 절뚝 거리시는 장인 어르신이 보이셨다. 다리뿐만 아니라 아까의 폭격으로 인해 성한 곳이 없으셨던 장인 어르신은 목소리 내시는것 조차 힘드시다는 듯 치지직 하는 노이즈가 어느정도 들려왔고.
"어르신..."
"괜찮습니-치직-님. 저로 인해치직-지직-모두의 발목-을수 없습니다."
어르신은 내 무릅에 누워 있는 바닐라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어갔다.
"저의 부주의로 인해 바닐라씨-치지직-를 지키지 못--니다. 이것 또 한 명예를 지키지 못한 처벌이겠죠."
"하지만 그러면 모모가 슬퍼한다고요. 어르신이 없으시면."
"도련님이-대신 -지켜--시길. 절대로 모모를 버-마시고요. 그거면 됩-"
지잉-
그 말을 끝으로 어르신에게서 나오던 불빛이 꺼지면서 그대로 쓰러지셨다. 아까전의 늠름한 수호수가 아닌 그냥 평범한 AGS로 돌아갔다는 듯 아무 움직임이 없으셨고.
"...어르신..."
"실례할게요."
모모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어르신을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뭐하나 했는데 모모의 손에 USB크기 만한 부품을 손에 쥐어서 나와 시라유리에게 보여주었고.
"뭐야 이건?"
"메모리 칩이요. 이것만 있으면 아저씨가 반파 되어도 다른 AGS 몸에 넣어도 되 살아나세요. 아저씨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빼는 법을 알려주셨고요."
"그 뜻은...어르신은 아직 돌아가지 않았단 말이야?"
"맞았어요."
그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또다시 가족을 잃어버린게 아닌가 해서 걱정했고.
"어디까지 걸어가야 하는거야 대체?"
"조금만 더 걸어가면 되요."
시라유리를 따라 우리 두명은, 정확히는 내 등뒤에 업힌 바닐라와 모모의 손에 쥐어진 어르신의 메모리 칩도 포함해서 네명은 그대로 터널을 따라 갔다.
차 한대가 지나갈만한 크기의 터널 안은 하얀색의 불빛이 안을 밝혀 주고 있었고, 숲길과 달리 어떤 소리도, 발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아 적막함을 느낄수 있었다.
"여길 빠져나가면 도시로 빠져나오는건가요 혹시."
"뭐...그렇긴 한데."
중간에 모모의 말에 대답을 해주면서 자리에 멈춘 시라유리였다. 쟤가 뜬금없이 왜저러나 했는데...
"선배님. 아까전에 질문 하나 더 있지 않았나요? 제가 누구냐고."
"...그렇긴 한데?"
뒤돌아보지 않은체 말하는 시라유리. 그녀에게서 뭔가의 위화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뭐라고 해야할까...분위기가 바뀌어졌다고 해야할까? 공기의 흐름도 달라지고.
시라유리는 한손을 들더니...
따악!
하는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주변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곧 이어서 하얀 단발 머리를 하고, 한손에 라이플을 든 브라우니와 비슷하게 생긴 바이오 로이드들이 모습을 들어냈다.
"뭐...뭐야...이것들은...? 브라우니...?"
"시라유리씨..."
모모도 상황을 파악했는지 카타나를 꺼낼 준비를 하면서 내 곁에 딱 붙었다. 누구든 가까이 오면 벨 기세로.
"이게 무슨 짓인가요? 뭐하시는거고요?"
"정식으로 소개할게요 선배님 그리고 모모양."
뒤 돌아본 시라유리는 고개를 딱 숙인 뒤...
"080 첩보요원 출신 바이오 로이드 시라유리입니다."
"첩보요원...이요?"
"너 역시 바이오 로이드였구나. 어쩐지 뭔가 수상하다 했는데."
"역시 선배님이시군요. 저에 대해 짐작을 하신것을 보면."
브라우니들이 서서히 가까이 오자 나하고 모모는 더욱 더 가까이 붙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여태까지 우리 두사람을 이용한거야? 아니 정확히는 나를 말이야. 학교 때부터."
"일단 두사람을 이용한건 사실이긴 해요. 하지만 동시에..."
시라유리가 한손을 들자 브라우니들이 걸음을 멈추었다. 미소를 지은 체 한손에 수첩을 꺼내면서.
"하나의 실험 과정이었고요."
"실험 이요?"
"지금 기업들간의 전쟁중인거 다 아시죠? 기업은 전쟁을 효율적으로 싸우기 위해 온갖 여러 방법을 동원했는데 그것은 바로 세뇌에요."
시라유리는 한손에 스마트폰을 들더니 영상을 보여주었는데, 나와 모모는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뽀끄루 마왕이 온몸에 폭탄을 두른 체 적 부대를 향해 달려가 자폭을 하는 장면을 시작해서, 또다른 모모 개체와 백토 개체가 카타나와 전기톱으로 다른 기업의 바이오 로이드들을 정육점 고기 마냥 베거나 썰기를 반복하였다.
아무런 후회도, 망설임도 없이 웃음으로 가득 지은 체....
-매지컬!-
-악은 처단입니다!-
라고 외치면서.
"이런식으로 세뇌를 마친 바이오 로이드들은 누구보다도 잘 싸우죠. 망설임도 없어요. 후회도 없어요. 자신이 하는것은 정의를 위한거라고 100퍼센트 믿고 있으니까."
"너 설마..."
내 마음속에 무언가가 끓어올랐다. 내얼굴이 빨개지면서 모모를 한번 쳐다 본뒤 시라유리를 향해 외쳤다.
"너 설마 모모도 세뇌 시켜서 전장에 내보내려는것이 목적이었어!? 세뇌 걸어서 기업들간의 싸움에 내 던지게 해서!?"
"도련님..."
"반대에요 선배, 저는 모모양을 도와주려고 했답니다."
"...뭐?"
손에 들던 수첩을 주머니속에 넣은 시라유리 손에는 아까전 모모의 귀에 껴져 있던 귀걸이를 보여주었다. 시라유리 말에 의하면 세뇌하기 위한 귀걸이를...
"제 동료가 아무도 못보는 사이 모모양의 세뇌 장치를 이거하고 바꿔 치기 했죠. 마법의 주문을 외우면 세뇌를 잠시나마 약하게 장치를요."
"마법의...주문?"
"잘생각해보세요 선배. 모모양에게 잡혔을 때 뭐라 하셨죠? 마지막이다 라고 생각하시면서 말이죠."
무슨말을 했더라? 라고 속으로 말하면서 아까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모모에게 목을 졸렸을 때, 모모가 주변에 자신을 죽이러 오는 바이오 로이드들을 카타나로 베면서 목의 졸림이 서서히 강해져왔었다. 아무리 불러도 모모가 듣지 못하였고.
그럼에도 나는 그런 모모를 사랑하고 있었다. 모모를 세뇌하게 한 어른들의 잘못이지 모모의 잘못이 아니라는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마지막이다 라고 말한...
"...모모 사랑해?"
"딩동댕! 정답입니다!"
짝짝-하고 박수를 치면서, 마치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듯 밝게 웃는 시라유리였다. 모모도 나도 뭐지? 라고 말하는 듯 서로를 쳐다보았고.
"모모양 세뇌가 풀렸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도련님으로 부터 사랑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게...가슴속 깊숙한곳에 무언가가 쏟아오른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머리속에 있던 무언가들을 다 쓸어버렸고요. 사랑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여기서 더 나아가서, 모모양은 저희에게 진귀한 자료를 가져다 주었어요. 그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진귀한 자료라고 말하는 시라유리는 눈빛으로 내 등뒤에 업은 바닐라를 가리켰다.
"분명히 모모양은 이렇게 말했죠. 저 메이드랑 다시 재회한 뒤로 더이상 머리가 어지럽거나 그러지 않으셨다고. 원래 같으면 다시 세뇌가 걸어져야 할텐데 귀걸이를 맨 상태에서도 멀쩡히 돌아다니셨어요. 그 뜻은 뭔지 아세요? 모모양은 스스로가 극복해낸거에요. 그 소위 말하는 사랑의 힘으로 말이죠."
"...모모를 도와준것도 결국은 실험의 단계중 하나였다는 거네 결론은?"
"뭐...그렇게도 볼수 있겠네요. 선배. 세뇌의 해방 또한 말이죠."
"왜 하필 저희 였나요?"
한참 동안 듣고 있던 모모는 여전히 카타나를 쥔 체 경계를 풀지 않으면서 시라유리를 노려보았다.
"다른 개체들도 있었을텐데 왜 하필 저하고 도련님을..."
"간단해요. 두분이라면 해낼거라 믿었거든요."
"해낼거라고? 우리가?"
"진작부터 알아보았죠. 두 분 관계가 보통이 아니란것을. 두분이라면 실험 멋지게 사랑의 힘으로 극복할거라는것을 말이죠. 참 로맨틱하지 않았나요?"
쿠쿠쿳-거리면서 시라유리를 웃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평소의 시라유리와 다르게 순수하게 어린아이가 웃는듯한 분위기도 들고.
"사랑해 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세뇌가 풀리다니. 마법 소녀 매지컬 모모에서 많이 본 장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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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혹은 3편만 쓰면 에필로그 파트겠네요. 원래는 더 쓰려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이렇게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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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작품에서 시라유리 정확히는 블랙리버의 목표이기도 하죠. 과연 상대의 세뇌된 바이오 로이드들을 해방 시키는것이 가능하나 이렇게 말이죠. 물론 바이오로이드를 구하자는 아니고 상대 전투력 크게 꽝 할 목적인것이죠. 세뇌된 바이오로이드가 풀려나면 그만큼 여파가 엄청날테니. | 23.06.01 11: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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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아마도요? 오히려 끝까지 조력자 일수도 있고요. | 23.06.02 13:2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