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멋진 경치예요 도련님."
"그러게."
나하고 모모는 서울 도시의 야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호텔 루프탑 위에 있는 수영장에 있는 썬베스 의자에 누우면서. 달과 별빛으로 빛나고 있던 수영장은 야밤이라 우리 두 사람밖에 없었고, 소리라고는 차 소리와 비행기 지나가는 소리 외에는 들려오지 않았었다.
"너무 간만이네요. 도련님."
모모는 옆 테이블 위에 놓인 초콜렛 크레이페 케이크를 포크로 한번 잘라 먹으면서 말을 이어갔다. 수영장이 있다는 이유로 수영복을 입은 채로. (밤이라 추울 거라 말했지만, 모모는 기어코 입었다)
"그동안 도련님과의 단둘만의 시간을 가져보지도 못했는데. 도련님도 호텔로 오시는 것도 덜 하셨고요."
"그러게."
나 역시 케이크를 한입 먹은 뒤, 입안으로 가득 찬 단맛을 홍차로 쓸어 넘겼다. 홍차는 모모가 호텔에 오면서 직접 타 준 것인데 생각보다 괜찮았다. 콘스탄차 언니에게서 타는 법을 배웠다나. 하긴 콘스탄차는 부모님이 항상 미리 준비하라고 할 정도로 차 끓이는 실력이 출중하니 모모가 차를 잘 끓이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볼 수 있다. 마신 이들이 하나같이 마음이 편해진다고 평할 정도로. (어떤 애는 홍차의 브랜디가 너무 효력이 좋아서 집중을 못 할 정도라나?)
"이번 시험 어떻게든 반드시 최고 점수로 올려야 했으니까. 그동안 깎인 점수들을 어떻게든 채워 놓아야 했고."
"도련님 그때 방안에서도 독서실에서도 나올 생각을 안 하셨죠. 오죽하면 바닐라 언니가 도련님 공부 너무 열심히 해서 승천하신 거 아닌가요? 라고 직접 말씀하실 정도로 말이죠."
"아하하 바닐라가 그래?"
걔는 참...못 하는 말이 없어.
"뭐 결과적으로 그동안 깎인 점수 다 커버를 하게 됐잖아. 등수도 예전처럼 올라갔고."
"다행이에요 도련님. 모모도 시험 기간 때 엄청나게 긴장했는데. 도련님이 망쳐서 기분 상해지시게 까봐."
"모모가 응원해준 덕분이야. 늘 네가 준 마카롱하고 홍차 덕분에 공부하는데 좀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시험공부 시간 때 비록 모모랑 놀러 가지 못했어도 모모는 시간 날 때마다 나한테 마카롱하고 홍차를 내주었다. 마카롱의 바삭함과 달콤함은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잊게 해주고도 남았었고 덕분에 모모에게 얘기했듯 맑은 기분으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치 모모가 마카롱과 홍차에 마법의 힘을 넣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지컬 베이킹 이렇게 말이다.
"도련님 예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뭔데 모모?"
"그게..."
잠시 머뭇거리는 모모의 모습이 보였었다. 아무 말도 없다가 양팔로 자기 다리를 끌어모아 수영복을 입은 모모의 몸을 감싸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게요…아 역시 물어보면 안 되겠죠? 왠지 화내실 듯하고..."
"왜 학생회장이랑 사귀게 되었냐고?"
"에?"
"맞네 표정을 보아하니."
단순히 질문이 무엇인지 맞춘 거 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얘기하고 싶었던 내용 이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역시 물어보면 안 되겠죠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물어보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테고. 민감한 내용이라는 것은 모모도 알고 있으니까.
"괜찮아 모모. 이젠 물어봐도 돼. 그 여자애는 이젠 미련 버렸으니까. 아쉬울 것도 없고."
여전히 양팔로 양 무릎을 끌어안은 채 나를 바라본 뒤 모모는 더 이상 숨길 게 없다는 듯 귀여운 숨소리를 내뱉으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왜 그런 여자랑 사귀려고 한 것인지 모모는 궁금했어요. 학교에서 매우 중요하다던 성적까지 깎으면서 말이에요."
"다른 이유가 없었어."
내가 말하려고 하자 그 여자애랑 지내온 시간이 마치 주마등 보듯 하나씩 눈에 보였었다. 어떻게 해서 사귀게 되었는지, 데이트한 기억 그리고 나중에 가서 본성을 보게 된 기억 들도.
"나도 알고 있었어. 그 여자애에게 무언가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동시에 최근 들어 공부에 너무 집중하지 않고 너무 그 여자애에게만 끌려 다는 것도 말이야. 그래도..."
한숨을 푹 쉬었다. 땅이 꺼지라고 하듯.
"나는 잃고 싶지 않았던 거야. 인연을. 다른 사람과의 인연을 말이야."
"인연을요?"
"내가 그동안 살아오면서 실질적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은 거의 없었어. 초등학교 때 사귄 친구들도 떠나거나 연락이 끊기는 것이 대부분이었어. 덕분에 학년을 올라갈수록 다들 떠나고 나 혼자만 남게 되더라고. 혼자 말이야."
홍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내 입에서 쓴웃음이 지어지고 있었다. 내 의지와 관련 없이. 말 그대로 친구들은 하나 같이 흩어졌다. 어떤 애는 이사하거나 혹은 성적 미달로 다른 학교로 가기도 하지만, 어떤 친구는 우리가 언제 친구였냐는 듯 다음에 만나도 아는 척도 안 하고 그대로 쓱 지나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동안의 같이한 시간은 다 잊었다는 듯.
"그래서 더욱더 그 애랑 헤어지기 싫었던 것일 거야. 어떻게든 인연을 유지 하고 싶어 했고, 그래서 술도 마셔보고 성적 깎이는 일이 있더라도 걔가 하자는 데로 놀러 가자는 데로 다 갔고."
"...도련님..."
"알아. 미련한 짓이었다는 거. 나의 미련한 행동 덕분에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줬고. 부모님도 콘스탄차도 바닐라도 그리고 ㄴ-"
말을 잇기 전에 내가 누운 썬베드 의자 위에 무언가가 나를 안겼다. 따뜻하면서도 포근하지만 동시에 향긋한 냄새가 내 코를 찌르면서.
"이젠 좀 기분 좋나요?"
귀에 속삭이는 목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려보니 모모가 그대로 나를 안고 있었다. 수영복을 입은 채로. 그녀의 대담한 행동에 나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느껴졌고, 그녀 또한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나를 안긴 그녀를 내 팔이 그대로 감싸지자 그녀의 팔 또한 서서히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나를 놓지 않겠다는 듯 더욱더 세게.
"나도 모모에게 하나 물어봐도 돼?"
"뭐든 물어보세요 도련님."
"혹시 모모 너도 나한테 화나거나 그런거 있었어? 이상한 여자애랑 사귄 뒤로 너를 너무 외면하거나 차갑게 굴었잖아. 그래서 나한테 실망한 게 아닌지 걱정-"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입술이 포근하고 탄력 있는 무언가하고 감싸졌다.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함인지 양손으로 내 얼굴을 꼭 잡고 있었고, 한참 뒤에 나와 그녀의 입술이 서로 떨어지게 되었다. 혀의 사이에, 투명한 실이 쓰윽 늘어지면서.
하아-하는 한숨 소리와 함께.
"이게 저의 답이에요."
얼굴을 붉힌 체 요염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던 모모. 오늘따라 밝게 빛나는 보름달의 빛으로 인해 모모가 더욱더 빛나 보이는 듯했고.
나는 모모를 안은 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뒤 모모를 따라 하듯 나 또한 그녀의 얼굴을 양손으로 잡았다.
"미안해 모모."
말을 이어가기 전 나는 그녀의 하얀 이마에 한 번 입을 맞추었다.
"내가 이상한 여자랑 사귀는 바람에 하마터면 너까지 다칠 뻔했어. 하마터면 너를 잃어버릴 뻔했고."
"...네."
짧은 대답과 함께 그녀는 다홍색 눈동자로 내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는 내가 보였었고. 거울을 보는 거처럼.
"정말로 괜찮은 건가요 도련님?"
모모는 내 품에 안기면서 말을 이어갔다. 수영복을 입은 상태로 안겨서 그런지 그녀의 온기가 서서히 올라가는 것을 일상복을 입은 내 몸으로 전달되어 왔고.
"모모는 진짜 인간이 아닌 바이오 로이드에요. 도련님은 제가 섬기시는 분이자 인간이시고요. 분명히 주인님도 마님도 그리고 언니들도 이상하게 볼 수도 있단 말이에요."
"그게 뭐 어때서. 내가 보기에는 넌 평범한 소녀로 보이는데."
그날, 모모를 트럭에서 치이는 것을 구해 준 뒤 학생회장과 나는 헤어지게 되었다. 난리를 피울 거라 생각한 거와 달리 그 여자는 아무 말도 없이 내 곁을 떠나버렸고. 조용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사랑해 모모. 내가 진심으로 사랑한 건 바로 너였어. TV에서 아니 정확히는 너를 그날 퍼레이드에서 실제로 만났을 때부터 네가 좋았어. 난 바보같이 그런 것을 몰라 이상한 여자에게 시간을 허비했고."
"도련님..."
이번 일로 인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게 됨으로써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내가 모모에게 말했듯이 상당히 어리석었다는 것을. 이미 내 곁에 누군가가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늘 곁에 있어 주고 동시에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마법 소녀가 늘 가까이 있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분홍빛이 감도는 모모의 입술을 한번 엄지로 이루어 만진 뒤 다시 키스하였다. 서로 간의 양팔이 그대로 나와 모모의 등을 감싸면서. 서로의 뜨거운 숨결을 느끼면서.
소년기는 여기서 끝마치겠습니다.
잠시 휴식기를 가진 뒤 최종 에피소드인 청년기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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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기 결말을 애초부터 마지막에 도련님하고 모모하고 사귀는 결말로 생각해두고 있었습니다. 마법소녀물의 정석중 하나가 마법 소녀는 남주하고 맺어지는것이니까요 허헛. | 23.03.20 00:4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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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03.20 00: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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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인간하고 바이오로이드하고 사귀는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면 그래야 할수 밖에요. 아무도 못보는곳에서 몰래 몰래 사랑을 나누고요. 어쩌면 이게 청년기편의 메인이 되겠네요. | 23.03.22 12:0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