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이터 3 캐릭터 노벨
제 3장 클레어 빅토리어스 편
「때묻지 않은 선택 3화」
오른손에 묶였던 약속의 손수건이 결의와 함께 붉은 팔찌로 바뀌고서 수 년이 흘렀다.
열여덟 살이 된 나는 글레이프니르의 일원으로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전선을 지원하는 물자의 수송을 주된 임무로 하는 글레이프니르 제6기계과 대대 특별 운송 관리 연대. 그것이 지금 내가 소속된 부대이다.
아버지와 오빠가 이끌었던 이전의 빅토리어스 가와 비교한다면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이기는 하지만.
갓 이터가 되기로 결의한 그날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의학 공부는 글레이프니르 안에서도 우수하다는 평을 들을 만큼의 실력을 가지게 해주었다.
네가 있으면 안심하고 적에게 집중할 수 있어. 이름도 모르는 갓 이터로부터 전해들은 그 한 마디는 글레이프니르의 들어간 이후 내가 얻은 몇 안 되는 훈장이다.
아주 조금의 상냥함이 신분도 입장도 초월하여 사람을 잇고 마음을 구한다.
그날의 경험으로부터 그런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시작한 의학 공부가 갓 이터로서 살아가는 날들 속에서 이렇게 빛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날의 손수건은 변하지 않는 나의 의지를 지탱하는 부적으로서 얼룩 하나 없이 깨끗하게 해서 가방 안에 넣어두었다.
아직 약속은 지키지 못했지만, 언젠가 그날이 찾아오는 것을 나는 기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녀의 소문은 내 귀에도 닿을 정도로 글레이프니르 내부에서 퍼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떠한 멸칭과 함께.
"신규 항로의 개척 작전입니까..."
어느 운송 임무가 끝났을 무렵, 갑자기 글레이프니르 기관의 항구, 애로우헤드에 전체소집 명령이 내려졌다.
"글레이프니르의 모든 부대를 총동원하여, 애로우헤드 주변의 항로를 새롭게 구축하는 대규모 작전이라고 한다. 귀환 후에는 작전 개시까지 항구에서 대기한다."
갑작스러운 대규모 작전에 대장도 의아한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애로우헤드에 귀환하고 짐을 정리하는 것으로 이번 임무를 종료되었다. 대규모 작전까지 항구에서 대기다.
"너, 혹시 클레어 빅토리어스야?"
할 일도 없이 무료하게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어딜봐도 귀족처럼 보이는 남성이 과장된 몸짓을 취하며 다가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라고 해야하나. 이렇게 너와 이야기할 기회를 계속 기다리고 있었어."
"죄송합니다. 아직 임무가 있으므로 실례하겠습니다."
정말로 귀찮을 것 같았다. 얼른 도망치려고 발길을 돌린 그 순간.
"저런, 잠시 기다려봐. 운송 부대의 임무는 이미 종료된 것을 확인했어. 그 빅토리어스 가의 당주와 꼭 친분을 쌓고 싶다고."
팔을 붙잡히고 퇴로를 차단당했다.
이런 상대는 가끔 만난다. 어차피 빅토리어스 가와의 연결을 원하는 흔해빠진 귀족이겠지.
내 팔을 놓지 않고 주절주절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하는 남자에게 어찌해야 할지 막막해하던 그때였다.
"이런 시간부터 신부감 찾기인가요? 집안을 위해서라고는 해도 참 안쓰럽네요."
옆에 있는 계단에서 어떤 여자가 내려왔다.
"아..."
그 모습에 나는 숨을 삼켰다.
"네놈이 무슨 용건이냐..."
말을 걸어온 남자는 불쾌해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뇨, 뭐, 즐거워보여서 저도 함께하려고요. 그러고보니 이전에도 다른 여성에게 말을 걸고 있었지요? 그녀와는 잘 지내고 계신가요?"
도발하는 것처럼 입꼬리를 틀어올린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 남자 사이로 끼어들었다.
"혹시 멋진 여성에게는 평등하게 사랑을 쏟는 타입? 그렇다면 부디 저와도 잘 지내주셨으면 합니다만, 어떠신지요?"
"칫, 어디 두고보자. 동료를 살해한 하이에나년."
성대하게 혀를 찬 남자가 떠났다.
후우, 라고 한숨을 쉰 여자가 이쪽을 돌아본다.
아름다운 은발과 싸늘한 눈매. 매혹적인 미소와 세련된 몸짓은 한층 격이 늘어난 듯 보였다.
"저, 저기...!"
겨우 다시 만났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클레어 빅토리어스 님이시군요. 주제넘은 짓을 하고 말았네요, 실례했습니다."
그 순간 눈앞에 선 여자는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해왔다.
깊은 낙담이 나를 덮쳐왔다.
그녀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리도 아니야. 어릴 때 딱 한 번 만났을 뿐이니까.
기억해달라고 하는 게 억지라는 건 물론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을 지탱하던 빛 중에 하나가 너무도 어이없이 사라져 버린 것은 매우 괴로웠다.
"아뇨... 감사합니다."
목소리를 떨며 간신히 그렇게 대답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볼까?
하지만 그건 너무 염치없는 행동이다. 분명 당황하게 만들겠지.
그렇다면 차라리 잊어버리는 게...
"풋, 후후후후후...아하하하핫! 그렇게 버려진 아이 같은 얼굴 하지 마."
갑자기 참을 수 없다는 듯 여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어...?"
"미안해,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그냥 놀려본 거야."
눈물을 흘릴뻔한 내 앞에서 여자는 은발을 우아하게 넘기며 단정히 자세를 바로했다.
"글레이프니르 특수 주정 대대 강습 보병 연대 제2 위생대 대장, 에일 알베르트. 그게 지금 내 직함이야. 오랜만이네, 클레어 빅토리어스."
"에일...!"
자랑스럽게 대장의 직함을 밝힌 에일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날 맺었던 인연이 이렇게 아직 이어져 있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기뻤다.
"자, 잠깐... 울지 마, 정말이지."
"하지만... 하지만...!"
"정말, 여전히 울보라니까... 쌓인 이야기도 있고, 차라도 마실래? 조금 전의 그 무능한 귀족보다는 스마트하게 애스코트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물론이야. 나는 정말로 오랫만에 누군가에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에일의 방에는 온갖 분야의 학술서들이 올려다볼 정도로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보고 싶은 책이 있다면 빌려줄게. 나는 전부 읽었으니까."
"이것들을 전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온 걸까.
그날 에일의 눈동자에 깃들어있던 야망의 불꽃은 지금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는 듯 하다.
"대장이 되었구나... 축하해."
"나쁜 소문과 함께 말이죠."
우아하게 홍차를 달이며, 에일은 스스로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의 검은 소문은 나도 몇 번이나 들었다.
위생병이면서 공을 차지하려고 전장을 휩쓸었으며, 전 대장을 죽이고 그 자리를 빼앗은 의료부대의 악마, 에일 알베르트.
동료를 죽인 하이에나, 아까 그 남자의 말이 머리를 스쳤다.
"너무해... 그럴 리가 없는데."
가슴 속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정말이면 어쩔거야?"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차가운 손이 뒤에서 갑자기 내 목을 건들였다.
"알베르트 가의 재건을 위해서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빼앗을 정도로 타락했다면...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몸을 밀착시키며, 에일은 내 귓가에 야릇하게 속삭였다.
목에 둘러진 그 손을 나는 재빨리 쳐냈다.
"그렇게 나쁜 사람인 척 하는 거. 좋지 않은데?"
불시에 위협을 당했는데도 내 심장은 전혀 뛰지 않았다.
"나는 안 믿어. 그런 시시한 소문."
에일을 흉내낸 건 아니지만, 나는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야망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한다. 에일의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사람을 상처입히는 행동을 그녀는 하지 않는다. 자존심을 버리는 일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목적을 위해 누구보다 필사적으로 달려나가 결과를 내왔기 때문에 에일을 달가워하지 않는 적들이 늘어났다. 단지 그뿐이다.
"그래."
놀린 보람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재미없다는 듯 에일이 중얼거렸지만.
그 입가에 떠오른 작은 미소는 분명 잘못 본 것이 아니다.
"뭐, 모처럼이니 시시한 이야기는 그만두자. 예의 신규 항로 개척 작전말인데, 클레어는 어떻게 생각해?"
방금 탄 홍차를 테이블에 두고 에일이 반대편에 앉았다.
"어떻게 생각하냐니?"
"일단은 나도 대장이니까 여러 정보가 들어와. 그런데 이번 작전은 정말로 갑자기 결정된 것 같아."
에일은 손끝을 맞대고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글레이프니르 전체를 움직일 정도의 뭔가가 있거나... 아니면... 더 큰 작전의 예행연습일지도."
"더 큰 작전...?"
"그냥 추측일뿐이야. 하지만 이번 작전이 다음에 있을 큰 움직임으로 이어질 게 틀림없어."
"그렇구나... 그러면 에일에게는 이름을 알릴 찬스려나?"
에일이라면 이번 작전도 자신의 기회로 삼을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넌지시 그렇게 말해보았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에일은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게..."
말문이 막히다니, 에일답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에일은 곧바로 평소의 미소를 되찾고 있었다.
"뭐, 지위만 믿고 잘난 체하는 녀석들을 벌벌 떨게 만들어주겠어."
"후훗, 에일은 정말로 변하질 않았네. 왠지 안심이 돼."
"뭐야? 내가 상층부에 미움을 받는 게 그렇게 즐거워?"
"그런 건 아니지만... 에일이 꿈을 이뤘으면 좋겠다고, 계속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네가 꿈에 가까이 다가가는 게 너무 기뻐."
허를 찔린 듯 나를 바라보는 에일의 앞에서 나는 내 가방을 열었다.
"드디어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되었어."
줄곧 소중히 보관하고 있던 손수건을 조심스레 에일에게 건냈다.
"기가 막혀... 너 그걸 계속 가지고 있던 거야?"
"왜, 왜냐면, 내게는 정말 소중한 거였으니까..."
그날부터 오늘까지. 그리고 지금 내 품을 떠난다고 해도.
앞으로도 추억이 되어서 내 마음을 지탱해주니까.
이 손수건은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에일에게 돌려주고 싶다.
"후훗... 그러면, 약속대로 돌려받도록 할게. 마침 걸레가 필요했거든."
"조, 조금은 소중하게 보관해주면 기쁘겠는데..."
"아하핫, 농담이야. 정말 고마워... 나도 소중히 보관할게."
그날, 내가 받은 상냥함은 내가 주는 작은 보답으로 에일에게 되돌아갔다.
"서로 캐러밴에 동행해서 줄곧 회역 내를 뛰어다니고 있으니까. 좀처럼 만날 수 없지만... 그래도 너와 재회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
"응. 나도 만나서 반가웠어."
그날 바라봤던 우리들의 길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었다.
"다음 작전 힘내, 에일."
"응, 너도."
명랑한 표정과 함께 우리는 굳게 손을 맞잡았다.
함께 있었던 시간은 정말로 짧았지만 에일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내게 있어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저자 : 카와세미 히스이 (주식회사 테일 포트)
원안 : 요시무라 히로시 (주식회사 반다이 남코 스튜디오)
역자 : ei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