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계는 이차원을 정처없이 포류하는 세계.
그것은 돌연 나타나 염치없이 헤블론의 근처에 자리잡았다.
이는 아마 사라질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분명 별다른 전조 없이 스산한 바람처럼 갑작스럽게 사라질 것이리라.
루크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 때문에 헤블론을 나서기 전, 마계를 둘러싼 차원의 균열을 감시하여 향후 500일간의 동향을 철저히 예측했고
마계에 도착하자마자 마커를 설치하여 헤블론과의 차원통로를 연결시키지 않았던가.
하지만 마계의 변덕은 고성능의 차원 분석기나 루크의 총명함을 훨씬 웃도는 것이었다.
루크는 벼랑끝에 홀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빛은 절벽 아래의 마을을 환히 밝힘으로서 주민들의 탄복감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는 그의 의도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제 차원 탐지 시스템이 먹통이에요. 마치 미로를 타는 것 처럼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를 어째..!"
골드 크라운이 발을 동동 구르며 초조한 심정을 적나라 하게 나타냈지만 루크는 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봤다.
수천년간 쌓아온 연륜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낭패로군."
루크의 예언은 위대한 권능이었으나 만능은 아니었다. 그의 세번째 눈은 모든 것을 내다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루크는 예지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예지는 언제나 거대한 위협이었고 또 그 단편적인 화상에서 언제나 해답을 찾아온 그였으니까.
이러한 측면에서 봤을 때, 현 상황은 루크의 불찰도 어느정도 기여하는 바가 있었다.
"지금은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힐더의 목소리였다.
"힐더."
"현재 마계는 이계의 틈을 떠돌고 있습니다. 무리하게 틈을 열었다간 그곳의 악마들이 대거 넘어오게 되겠지요."
"무례하고 뻔뻔하군요! 지금 이게 누구 때문에 벌어진.."
"누구의 탓도 아닐세. 이곳에 넘어온 것은 순전히 나의 판단이지 않은가. 그녀에겐 잘못이 없네.
지금 궁리해야 할 것은 헤블론으로 돌아갈 방법이지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 아니야."
"하지만..!"
크라운을 타이르는 동안에도 루크의 눈은 여전히 힐더를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지금은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게 아닐수도 있다는 의심이 엄습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얼마 전 까지만 해도 그녀의 표정에선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슨 감정을 품고 있는지가 훤히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좀처럼 알 수가 없다. 수심깊은 눈빛은 여전함에도, 이전과는 다른 기세가 느껴졌다.
어쩌면 이것도 닥쳐올 운명의 일부인가?
힐더가 말했다.
"크라운님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모든 일의 원흉은 저의 주제넘은 행동 때문이었지요.
마계를 부흥시킨다는 일념에 눈이 멀어 루크님의 제안을 면밀히 검토하지 못했습니다.
저 역시 루크님이 헤블론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모색 해보겠습니다."
"헤블론은 루크님을 필요로 하니까요.." 힐더가 덧붙히며 말했다.
한차례의 목례를 끝마치고 돌아가는 힐더의 뒷모습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그의 경계를 다시금 불러 일으켰다.
단편적인 이미지라도 보여주면 좋겠건만.. 이라고 생각할 찰나.
그의 세번째 눈이 마침내 동하기 시작했다.
"불청객들이 찾아오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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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루크 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