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뛰어나온 테오는 지나다니는 사람들 틈에서 주점의 영웅 아가씨를 찾기 시작했다. 꽤 사람이 북적대는 곳이었지만, 보우건을 메고 걸어다니는 금발은 쉽게 발견 할 수 있었다. 일단 뒤를 쫓아 달려간 테오... 잠시 멈춰서서 그 아가씨를 불렀다.
" 저기... 이봐요! "
금발의 아가씨는 걸음을 멈춰서며 뒤를 돌아 테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랬지...
새초롬한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눈빛에 테오는 일단 할 말을 잃어 버렸다.
하지만, 숲속의 일을 떠올리며...
" 혹시... 불팡고와 싸울 때 거들어 주신분 아닌가요? "
" 싸울 때...? "
" 네. 마지막 위험할 때 분명히 누군가 총으로 그 멧돼지를 쓰러뜨린거 같았거든요. "
" 그럼, 난 아니군... 내가 도와준 사람은 멧돼지에게 정신없이 쫓기던 어떤 바보였으니... "
" ............. "
자존심 때문에 돌려 말한 상황을 직설적으로 들어버리니 약간은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일단은 그 때 도와 준 사람이었다는 것은 틀림 없었다.
" ............ "
"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것 아닌가...? "
" ............ "
" ............ "
일단 무슨 말을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테오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 할 말 없으면 그냥 간다. "
어깨에 멘 보우건을 다시 추스려 메고 금발의 아가씨는 홱 돌아서 버렸다.
뚜벅 뚜벅 가던 길을 계속 가려는 듯 걸어가는데, 그 앞을 테오가 가로막았다.
" 저, 일단 그 때는 감사했습니다. "
" ........... "
"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 때의 빚은 꼭 갚겠습니다. "
" 됐어! 그런 거 들을려고 한건 아니니... 어차피 그 땐 내가 좀 괴롭힌 놈들이라 화가 나 있기도 한참이니 내 탓이기도 하지. "
" .......... "
" 그럼, 나 간다. "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 그 아가씨는 그냥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 실례지만, 이름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
또다시 느닷없는 테오의 외침에 그 아가씨는 멈춰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 ...안나... "
" ... 네?? ... "
" 안나 리비에르... "
" 저는 테오... "
" 건 별로 상관 없고, 이제 더 이상 나한테 볼 일은 없겠지?
" ........... "
" 귀찮은 건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이야. 이만 실례~. "
싸늘한 말투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그 아가씨... 아니 안나는 사라졌다. 그리고 뒷모습을 그냥 쳐다보고 있던 테오. 다시 발걸음을 돌려 주점을 향하려는데...
문득 건너 모퉁이에서 안나의 뒤를 쫓아가고 있는 낮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 저 사람은... '
주점안에서 테오의 밥까지 먹고 있던 카츠... 슬슬 테오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 이 녀석... 갑자기 나가더니 왜 여태 돌아오지 않는거야...? 할아버지 오시기 전에 안 돌아오면 내가 골치가 아프게 됐는데...? '
웬 아가씨의 황당한 말에 테오가 어째서 이상한 반응을 보이며 따라서 나갔는지 물을 사이도 없었다.
하지만, 멧돼지 사건을 운운하는 걸 보니 혹시나 며칠전에 있었던 바티스와의 숲속 사건을 말하는 건가...
나름대로 추리는 해보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조금 복잡해지려 하고 있었다.
테오의 과민 반응도 신경이 쓰이려 하지만, 할아버지와의 시장일 때문에 피곤해서 생각하기도 귀찮아졌다.
' 뭐, 어린애도 아니니 알아서 돌아오겠지. 제발 빨리 오기나 해라... '
나름대로 여유를 가지려 하는 카츠의 앞에는 아직도 음식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 요놈이... 자기가 많이 먹는다고 잔뜩 시켜놓고 나보고 이걸 다 어떻게 처리하라고... '
카츠는 손도 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멍하니 수저만 들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그렇다면 정말 소문이 맞는 모양이군. "
촌장 할아버지는 현역 사냥꾼 시절 오랫동안 함께 해온 옛 전우의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그렇다네... 이젠 토벌괴물들도 지능적이라 요즘 같이 사냥이 힘들 때는 으례 생겨날 수 있는 법이지. "
" 하지만, 동료들의 뒤를 치다니... 그게 있을 법한 일이기나 하냔 말이지... "
" 동료이기에 앞서 사냥꾼도 즐기는게 아닌 먹고 살아남는 직업일세. 하지만, 그 생존의 방법이 위험해지면 결국 다른 수단을 선택하기 마련 아닌가... "
아주 오래전 어릴 때부터 사냥꾼으로써 80여년 긍지를 지켜왔던 촌장 할아버지는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예전보다 사냥을 해서 보수금 받는 일이 힘들어진다고 하지만, 이젠 정식 의뢰도 받지 않고 다른 사냥꾼들의 먹이를 채가거나 싸워서 지친 그들을 뒤치기 하는 방법을 쓰는 파렴치한 놈들이 있다니...
" 다른 정보는 전혀 없는 건가? "
" 아쉽지만, 이게 다일세... 워낙에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놈들이라... 두목은 커녕 하급부하 한명도 전혀 알 수 없는 놈들 뿐일걸세. "
" 으음... 아무래도 이건 쉽게 지나칠 문제가 아닌거 같군. "
" 그렇지. 사실 지금까지는 몇몇 뜨내기 사냥꾼이나 피해를 본거 같아 그들 나름대로의 프라이드가 있기 때문에 쉬쉬하면서 공공연히 퍼지는 걸 숨겨는 왔지만, 곧 대규모로 번지게 될거야. "
" 아무래도... 더 커지기 전에 뿌리를 뽑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이야기겠지? "
" 그렇다네. 곧 성지에서 비밀리에 임무가 코콧트로 전달이 될거 같네. 영주님께서도 이 일의 심각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계신 모양이야. "
" 오지 않아도 상관없네. 늦는다면 내 손으로 직접 발령을 해서 토벌작전을 사냥꾼들에게 수주할까 생각하던 참이었으니... "
" 자네의 생각은 알겠지만, 일단은 조금 더 기다려보게. 이건 기분만으로 처리해야 할 일은 아닌거 같아. 만약 작전에 들어간다면 사냥꾼 한둘로는 어림도 없는데, 자네 혼자서 그걸 책임진다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 조만간 성지에서 코콧트마을에 토벌령이 내려진다니 들리는대로 바로 전달해 주도록 하지. "
" 알겠네. 자네 몸이 불편하다는 건 알지만, 이번에 신세 한 번 져야겠네. 참... 그런데, 그 조직의 이름은 알 수 있겠는가...? "
" 스탄 이라는 이름을 쓴다고 들었네... "
촌장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 왜, 또... 무슨 일이야? 감사 인사라면 아까 걸로 충분한 거 같은데. "
" 그게 아니라... "
안나와 부지런히 뒤를 쫓아왔던 테오가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아까 주점에서의 그 놈들이... 아무래도 저기에서 진을 치고 있는거 같은데요? "
" 누구 말이야...? 혹시 아까의 애꾸 패거리들? "
" 네... 분명히 그 패거리 중 한명이 당신의 뒤를 쫓길래 저도 따라가 봤더니, 안나씨의 가는 방향을 보고 패거리들에게 연락하는 거 같아서... 알려 드릴려고... "
" 흠... 그래? 일단, 고마워. 좋은 거 알려줘서... "
어깨에 메어진 보우건을 내려놓는 안나... 그리곤 허리에 차여있는 탄창 몇 개를 꺼내어 털어보더니, 보우건에 장전하고는 다시 어깨에 둘러멨다. 계속 가던 쪽으로 가려는데, 테오가 급히 말렸다.
" 잠깐, 혹시 그 놈들과 싸우실 겁니까? "
" 그래야지. 피하는 건 적성에 맞지도 않고... "
" ......... "
" 정보 고마워. 이젠 너도 네 갈길 가봐야지? "
이젠 테오가 귀찮은 듯 뒤도 보지않고 갈 길을 가는 안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테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대검을 가져오는게 좋았었나... 짐꾼들에게 그냥 보내는게 아니었는데...
' 아무래도 일단 쫓아가봐야겠다. 진 빚은 갚아야지. "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안나의 뒤를 쫓아가고 있는 테오... 혹시나 아까의 패거리들이 언제 안나에게 공격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에 조바심을 내며 쫓아가고 있었다.
그 뒤에 아까부터 둘을 지켜보고 있는 그림자를 모른 체...
마을 외곽으로 갈수록 점점 지나다니는 사람들 수도 적어지고... 하나 둘씩 나무가 나타나더니, 숲속의 한 공터가 나타났다. 그 곳에 멈춰선 안나...
" 아까부터 요란하게 쫓아오는거 같던데... 슬슬 나오실까? "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가운데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만 숲을 에워싸고 있었다.
나무가지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이 조금씩 흔들리기만 했을뿐...
" 좋아, 그럼, 가벼운 인사라도 해두지! "
'철컥'
어깨에 메어진 보우건을 익숙한 솜씨로 빠르게 조준 자세를 취하는 안나. 쉴 틈도 없이 나무 숲의 한 군데에 갑자기 한 방의 유탄을 발사했다.
타앙....
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르는 유탄이 숲속 나무의 한 가운데 박혔다.
펑...펑...
유탄의 폭발소리와 함께 사방 여기저기에서 잽싸게 튀어나오는 그림자들... 제법 높은 나무에서 뛰어내린 듯 했지만, 깃털처럼 가볍게 안나의 근처에 착지를 했다.
유탄의 탄피를 제거하며 여유있는 표정으로 안나가 물었다.
" 쫀쫀하게 숨어서까지 따라온 이유가 뭐냐? 데이트 신청은 아닌거 같고... "
" 하하하, 눈치가 제법인데? 아무래도 아까 그 꼬맹이 덕분에 긴장했나 보군 "
" 그 정도의 미행솜씨론 세살짜리도 속이긴 힘들지. 숨어서 싸우는 게 내 특기인데 상대를 잘못 골랐어. "
상대는 둘이었다.
제법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진 푸른 눈의 사내였는데, 양 손에는 쌍검이 쥐어져 있었고 다른 한 명도 제법 키가 커 보였는데, 안나와 같은 보우건을 사용하고 있었다.
" 하급부하 몇 놈이 우는 소리를 하길래 버릇이나 고쳐주려고 따라와 봤더니, 이거 꽤 큰 놈이군. "
" 후후후. 마음에 드는데? 설마 블론디건일 줄이야... "
" 그러니까, 니들 결국 아까 별 볼일 없던 술집 패거리들 두목이라는 이야기 아냐. "
상대는 이미 안나를 알고 있는 듯 했다. 귀찮아 죽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마를 찡그리는 안나.
" 나도 제법 인기인인 모양이군. 미안하지만, 난 쥐새끼들한테는 흥미 없어. 사인은 미뤄두지. "
" 하하하... 이 아가씨 좀 보게. 이 상황에 제법 큰 소리치는 걸 보니 배짱 하나는 제법인데? "
" 어디 그 배짱만큼 실력도 있는지 솜씨 좀 보여 주실까? "
여유있게 한바탕 웃더니 둘은 금새 긴장한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역시나 쌍검이 이쪽을 근접전으로 견제를 하다 기회가 오면 보우건이 마무리를 할 모양이었다.
' 쌍검은 그렇다 치더라도 보우건쪽은 좀 곤란한데...? 저쪽의 탄환수나 종류도 모르겠고... '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해 일단 큰 소리는 쳤지만, 기척을 죽이고 따라오던 수준급의 미행솜씨를 보아하니 실력은 적어도 중상급 이상일 것이다. 피할 수 있는 싸움 분위기는 아닌 것 같고...
쌍검의 위력을 알기 때문에 근접전은 생각하고 있지 않았었지만, 문제는 저쪽의 보우건이었는데.
' 어떻게 할까... '
어차피 둘다 공격을 막기엔 불리한 무기이기 때문에 쌍검쪽이 먼저 근접전으로 대응하려 달려들 것이다.
결국 보우건도 저격모드로 견제하다 한방 날릴 속셈 같은데, 적어도 일단은 자기편이 꽤 신경이 쓰이겠지.
순간 판단이 결정되었다.
" 좋아! "
빠른 손놀림으로 일단 보우건을 산탄총으로 가득 장전했다. 적어도 단발탄환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피하지 못할 걸 알고 쌍검도 그리 가까이 오지는 못하겠지. 상황을 봐서 같이 날려버릴 계산이었다.
" 덤벼라! "
안나가 먼저 뛰쳐 나갔다.
" 이봐, 코르도. 우리 계속 이러고만 있어야 하는거야? "
" 놔둬. 조장님 두분이 같이 가셨으니, 별 일 없을거야... 구경하다 다 끝나면 뒷처리만 하면 되지 뭐. "
" 일단 보고하러 간 리오를 먼저 기다리자. "
주점에서 안나에게 시비를 걸던 그 패거리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창피하고 분했다.
하지만, 아까 그 아가씨의 기백이나 빠른 손놀림을 보니 보통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상급조장에게 보고는 했었지만, 아직도 찝찝한 기분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것도 상대가 여자인데도 손도 못 써보고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이것 봐. 아무리 그래도 가봐야 하지 않을까? "
" 사실 나도 그 생각이야. 계집애 하나보고 괜히 쫄 필요는 없잖아? "
" 그래도 블론디건 이라는데, 우리가 안 건들길 잘한게 아닐까? "
" 진짜 그 블론디건이라면 조장 형님 둘로 될 일도 아니잖아... "
" 아... 정말 고민되네... "
겁많고 머리나쁜 하급조원들이 모여있으니 아까부터 계속 갈등을 때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끙끙 대는 것 같더니, 결국 한 명이 일어났다.
"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구. 만약 블론디건이 아니라면 끝장은 우리가 봐야 하는거고. "
" 맞다면 그냥 솜씨나 구경해 보자 이거지? "
" 좋아. 가보자. "
" 만약 별것도 아닌데, 조장 둘이 못 당한다면 잘하면 서열도 바뀌겠는데? "
" 헤헤헤헤... "
그들은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장비를 챙겨들고 일어났다.
일단은 먼저 간 조장 둘을 도와줄 생각이었지만 상황을 봐서 조장 둘의 부상이 만만치 않으면 그대로 같이 끝장내 버리고 자신들이 조장서열을 차지 할 심보였다. 진짜 블론디건이 아니라도 상관 없었다. 그냥 아까 주점에서 여러사람 앞에서 당한 치욕을 만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대로 앉아 있을 수 만은 없었다.
그 패거리들은 조장이 사라진 방향으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장 둘이 아무리 강하다지만, 상대는 이미 이 바닥에서 소문이 자자한 블론디건이다. 자신들이 도착할 때쯤 아마도 두 상대는 이미 지쳐 있거나 한쪽은 이미 무너지는 분위기겠지. 어느쪽이든 좋아. 그들에겐 결국 남는 건 조장을 엎어버리고 서열을 차지하거나 아까 당했던 창피에 대한 보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에서 칼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근처에서 싸움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 흠... 아무래도 가까운 곳에서 벌써 한판 붙고 있는 모양인데? "
" 꽤 멀리까지 조용한 곳으로 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빨리 들킨 모양이군. "
일단 자세를 낮추고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사방을 둘러보다, 문득 나무뒤에서 쪼그리고 싸움을 보고 있는 테오를 발견했다.
" 어. 저놈은 뭐야... "
역시나 쉽게 끝날 싸움은 결코 아니었다.
실제적인 공격은 쌍검을 든 키다리가 검기를 휘날리며 공격을 해오고 있었지만, 정작 신경이 쓰이는 건 뒤쪽의 보우건이었다. 쌍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총알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안나는 무척 난감해 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자에게는 무거운 장비를 들고 견제하며 피하는것도 시간문제지만 뒤쪽의 보우건도 대충 겨냥하며 여유를 부리는 척 보였으나, 눈매는 발사의 순간만을 노리는 사냥꾼의 모습이었다.
" 파방! "
일단 산탄 한발을 날렸다. 물론 충분히 퍼져나갔겠지만, 상대방은 이미 눈치를 챈듯,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조준 조차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탄피 한발이 튀어나오며 재장전 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쌍검쪽을 향해서 한방 더 크게 발사를 했다. 하지만, 어림 없었다. 총구가 노리는 스피드를 이미 계산하고 있는 듯, 안쪽으로 파고들어 최대한 산탄의 범위를 좁혀서 피하는 것이었다.
" 이 놈... 역시 보우건의 파트너라 뭔가 달라. 맹훈련이 없이는 불가능한 움직임이다... "
감탄할 사이가 아니었다. 쌍검이 피하는 척하면서 보우건에게 발사 사거리를 자연스럽게 넘기는 것이었다.
' 아차! '
" 타앙~ "
본능적으로 옆으로 구르며 안나는 총탄이 등언저리를 스쳐지나는 것을 느꼈다.
다시 자세를 바로잡기는 했지만, 총탄이 아슬하게 스치는 오싹함에 잠시 다리가 풀리는 듯 휘청거렸다.
" 큭큭큭큭... "
쌍검은 칼을 서로 비벼대며 갈고 있는 듯 도발을 하고 있었고, 보우건쪽도 이미 여유만만하게 총구에서 피어나는 연기를 불고 있었다.
" 이봐이봐... 긴장하지마. 이 정도라면 블론디건 이라는 이름이 아깝잖아. "
" 고작 딱총 따위나 들고다니는 기집애가 뭘 하겠어? 여태 제대로 된 상대를 못 만났던가... "
" 쳇, 말 조심해... 저 여자는 라이트일지 몰라도 이쪽은 가벼운 딱총이 아냐. 그래도 파워급인 헤비계열이란 말이지. "
" 크큭... 알았어. 알았어. "
이쪽은 이미 무시당하고 있는 분위기인지 떠드는 폼만큼 상대는 일류급 이상이었다. 아무리 무기가 다른 파트너지만, 그 정도의 움직임으로 패턴을 바꿔가며 한방을 노린다는 건 실전에서는 보통 솜씨론 힘든 일이었다.
여유롭게 둘을 맞상대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적어도 정공법은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 그렇다면... '
장전되어 남은 산탄은 일단 두 발. 슬며시 상대방의 눈치를 보는 듯 총을 크게 세우고 탄피를 걷어냈다.
" 이봐, 라파엘. 남은 탄수는 몇 발 같아? "
뭔가 의식이 되었는지, 안나를 노려보던 쌍검이 뒤의 보우건을 든 동료에게 소리를 쳤다.
" 아무리 봐도 일반 쇼트건이야... 산탄이라면 잘해야 두발이지. "
" 좋아, 기회는 두 번 밖에 없다는 이야기군. "
" 결국 블론디걸도 탄환이 없으면 쓸데없는 이름 뿐이니까. "
확실히 동급의 무기를 가진 적인만큼 이쪽의 사정은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공격력이 훨씬 더 뛰어난 동료가 앞에서 견제를 해주며 자신에게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으니 아무 생각없이 조준만도 가능할 것이다.
쌍검은 일단 이쪽의 공격을 먼저 피하고 여유롭게 마무리를 할 생각인지 다가오지 않고, 기회를 보는 듯한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표정의 안나... 하지만, 입가엔 마치 무언가를 알리려 하던 생각이 적중했다는듯한 조용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간다! "
쌍검쪽이 먼저 칼을 쥐고 뛰어오기 시작했다. 이에 안나는 조준도 제대로 하지 않는 폼으로 돌격해 오는 쌍검쪽으로 산탄을 한 발 더 날렸다. 뛰어오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옆으로 피하는 쌍검. 한바퀴 휙 구르더니 착지를 하자마자 안나에게 소리쳤다.
" 뭐냐. 이 생각없는 지금 공격은. 내가 피하지 못할거라 생각했나, 아니면 싸움을 포기한건가? "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오른쪽의 쌍검을 어깨에 탁탁 두드리며 물어보는 쌍검....
" 쿠로노! 넌 제발 싸움중에 쓸데없는 말 지껄이지마. 빨리 처리해 버려. "
" 아. 미안미안... 갑자기 이게 김빠지게 만들잖아. "
눈가를 찡그리며 별로라는 듯한 제스처를 남기는 쌍검쪽은 양칼을 한번 휘리릭 돌리더니 다시 돌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 한번의 공격후엔 여유인가... 재미있는 버릇이군. '
힘들어하는 듯한 표정을 내비치는 안나... 하지만, 입가엔 아직도 뭔가를 뜻하는 듯한 웃음이 남아있었다.
안나의 뭔가 다른 생각을 눈치채지 못한 듯, 쌍검쪽은 다시 돌진할 생각으로 자세를 크게 낮췄다.
" 간다! 잘 막아 보라구 아가씨! "
철컥! 탄피를 걷어내며 마지막 탄환으로 뭔가를 노리는 듯한 안나. 이에 응수할 기세로 다시 쌍검이 돌진해 왔다. 급습해 오던 쌍검이 근처로 다가온 순간, 안나는 마지막 탄환을 조준하여 쌍검에게 발사했다!
" 타앙~ "
" 어림없다! "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이번엔 앞쪽으로 재빠르게 구르며 피해버린 쌍검의 사내는 돌진과 공격을 한번에 끝내버리려는 듯, 빼내어 든 두손의 쌍검을 모아 안나에게 재빠르게 뛰어 들었다.
" 쳇~ "
마지막 탄환이 떨어진 안나는 일단 쌍검의 돌진 공격을 피하기 위해 옆으로 피했으나, 애초부터 찌르기가 쌍검의 공격목표가 아니었다.
안나가 옆으로 구르자 마자 그대로 시선을 따라가며 포착을 하는 쌍검은 칼을 양쪽 사각지대로 벌리며 안나의 왼쪽 팔을 닿을듯 말듯 베어 버렸다.
" 아악~ "
옆으로 구르던 안나는 결국 양쪽으로 벌리며 공격을 하는 쌍검을 피하지 못하고 당해버렸는지 등을 내보이며 왼쪽팔을 감싸쥐고 있었다.
공격이 맞아떨어진 걸 알았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던 쌍검.
" 푸하하하. 내 쌍검의 공격을 간단하게 피하려 하다니... 여태 무식한 대검만 받아 보았었나? "
크게 다친 듯 등을 내보이고 있는 안나에게 여유를 보이는 쌍검의 사내. 뒤쪽의 동료에게 소리를 쳤다.
" 라파엘. 이 녀석 팔을 다친거 같아. 이제 무기 쓰기는 글렀는데? 어떻게 가지고 놀지? "
보우건 사내도 경계하던 자세를 풀고 천천히 다가왔다.
" 흠... 산탄은 4발밖에 장전이 안 되는걸 잊으셨나 ? 싸우면서 탄 계산도 못하는 바보일 줄이야. "
" 이 녀석 처리하고 나면 두목한테 칭찬 좀 두둑히 받겠는 걸? 애초에 이 녀석도 리스트에 있었잖아. "
뭔가 알수 없는 말을 나누며 그들은 서서히 안나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팔의 부상이 심한듯,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안나...
그 뒤에 다가와 칼을 치켜든 쌍검과 총부리를 겨누고 있던 보우건의 사내는 조용히 말했다.
" 자, 이젠 마지막이다... "
' 탕... '
한 발의 총성이 숲속을 메아리 쳤다.
" 안되겠다. 내가 직접 찾아봐야 겠군. "
밖으로 나간 테오가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4인분이 넘을법한 음식을 혼자서 겨우 처리하고 테오를 기다리며 소화나 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돌아오실때가 되자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너무 늦는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 와... 배부르네. 몸이 무거우니 움직이는게 일이군. 그나저나 도대체 이거 어떻게 찾아봐야 되는거야? '
일단 밖으로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데,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카츠는 기가 찼다. 난감한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카츠에게 한 무리의 사냥꾼들이 급하게 어딘가로 뛰어가는게 눈에 띄었다.
' 저녀석들은...? '
분명히 주점안에서 본 패거리 들이었다. 좋은 냄새를 풍기는 분위기는 아닌 놈들인지라, 카츠는 아까의 금발머리 소녀와의 일을 생각해 냈다. 혹시... 라는 생각에 일단은 따라가 보기로 했다.
마침 그 시각, 촌장 할아버지는 주점에 도착하고...
할아버지와 엇갈린채 테오는 그 사냥꾼들을 쫓아 가고 있었다.
" 헉... 헉... 너... 비겁하게... "
안나의 보우건 총구에서는 회색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쌍검을 들었던 사내는 이미 쓰러져 있었고, 보우건의 사내도 옆구리를 감싸쥐며 피를 흘리고 있었다.
" 관통탄이었나... 어느 사이에... "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보우건의 사내는 안나에게 총을 겨누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 네놈 동료의 검을 내가 정말로 피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나? "
" 그럼... 다친 척 하면서 탄창을 갈고 있었단 말이냐? "
" 미안하지만, 쓰러진 놈 실력도 만만찮더군. 이쪽도 예상외의 부상이다. 하지만, 계획대로 했을 뿐이야. "
" 제길... 비... 비겁하게. "
" 애초에 2:1 상대로 싸움을 건 네놈들에겐 비겁이라는 말은 안 어울리는데? "
하지만, 아직도 억울 하다는 듯 보우건의 사내는 소리쳤다.
" 만약 네가 몰래 탄창을 갈때 우리가 진작 끝장내 버리려 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었겠나! "
" 네놈들의 쓸데없이 폼잡는 여유가 없었다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도박을 해봤을 뿐 치사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냐... "
안나는 천천히 보우건을 어깨에 돌려 메었다. 팔에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 듯...
" 저 놈도 치명상은 아닐거다. 빨리 병원에 데려가라. "
" 쓸데없는 동정은 질색이다. 죽이든 살리든 말든 니 마음대로 해라. "
" 그럼, 이걸로 대신하지... "
안나는 보우건의 사내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안나가 다가오자 눈을 질끈 감는 보우건의 사내...
' 콰악~ '
" 으으아악........!! "
안내가 피를 흘리고 있는 보우건 사내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 쓸데없는 총알 낭비는 질색이다. "
옆구리를 감싸쥔 채 쓰러진 사내를 뒤로 하고 다시 발걸음을 계속 하려던 안나.
하지만 곧 무언가를 발견한 듯 멈춰섰다.
거기에는 아까의 애꾸가 테오의 목에 팔을 휘감고 얼굴에 칼을 들이댄채 다른 패거리와 웃고 있었다.
' 도대체 이 녀석들이 어디에 간거지... '
주점밖으로 나온 촌장 할아버지는 의아해 졌다. 주점의 종업원 아가씨 말로는 가끔 일어나는 건달들의 작은 행패 빼고는 특별한 일도 없었는데, 얌전히 식사를 기다리던 덩치좋은 청년(테오를 말하는 듯)이 먼저 뛰어 나가더니, 조금 있다 나온 어마어마한 분량의 음식을 혼자서 다 먹어치운 다른 청년도 곧 밖으로 나갔다는 것이었다.
' 내 이놈들을 그냥... '
만나기만 하면 가만히 두지 않을거란 촌장 할아버지의 얼굴은 잔뜩 역정을 낼 기세였지만, 마음 속은 은근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조용한 코콧트 마을과는 다르게 이 곳 도시에서는 어떠한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돌아다니다니는 것도 어린 베르나르 형제에겐 꽤 위험한 상황이었다.
' 아무튼, 요놈들을 먼저 찾아봐야겠군... '
카츠와 테오를 찾기 위해 할아버지도 부지런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주점에서 본 그 불량한 패거리 들은 여지없이 테오의 목을 조이며 칼로 위협을 하고 있었다.
" 뭘 어떡하자는 이야기냐... "
안나가 귀찮다는 듯 말하자, 이내 껄껄 웃는 애꾸눈의 사냥꾼...
" 별 뜻은 없어. 어차피 서로 빚진게 있는 모양인데, 이쪽이 조금 손해본 듯 해서 말야... "
" 아까처럼 설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얌전한 구석도 있는데? 아무튼, 이 녀석 피보기 전에 그 총부터 내려 놓는게 좋을 거야... "
테오를 붙들고 그 불량 패거리들은 안나를 협박하고 있었다.
" 난 또... "
별 일 아닌 것처럼 한 번 피식 웃고는 안나는 그대로 갈길을 가려는 듯 뒤를 돌았다.
" 사람 잘못 골랐다. 지금 붙잡고 있는 그 놈은 나랑 전혀 상관할 바 아니야... "
테오와 불량 패거리가 그대로 두고 걸어가며 안나는 말했다.
" 크하하하... 낡은 수법이군. 신경 안 쓰는 척 하다 뒤통수 치려고? 그쪽은 우리가 전문이야. 후후후후! "
" 아... 정말 귀찮게 하네. 네놈들 꽤나 의심 많구나? "
안나와 불량 패거리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패거리들 뒤에는 카츠가 몰래 접근하고 있었다.
먼 발치에서 누군가를 몰래 쫓아가는 테오를 발견하고 오다가 앞서 가던 그 불량 패거리들이 테오를 붙잡고 위협하는 걸 발견하고는 내내 숨어서 기회를 엿보던 참이었다.
' 저 녀석, 왜 저러고 있는거야. 그리고 저건 아까 그 아가씨 아냐...?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
아무튼, 일단은 테오를 구해내는게 급선무였다.
" 저기... 이봐요! "
금발의 아가씨는 걸음을 멈춰서며 뒤를 돌아 테오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랬지...
새초롬한듯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눈빛에 테오는 일단 할 말을 잃어 버렸다.
하지만, 숲속의 일을 떠올리며...
" 혹시... 불팡고와 싸울 때 거들어 주신분 아닌가요? "
" 싸울 때...? "
" 네. 마지막 위험할 때 분명히 누군가 총으로 그 멧돼지를 쓰러뜨린거 같았거든요. "
" 그럼, 난 아니군... 내가 도와준 사람은 멧돼지에게 정신없이 쫓기던 어떤 바보였으니... "
" ............. "
자존심 때문에 돌려 말한 상황을 직설적으로 들어버리니 약간은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일단은 그 때 도와 준 사람이었다는 것은 틀림 없었다.
" ............ "
" 무슨 할 말이 있어서 부른 것 아닌가...? "
" ............ "
" ............ "
일단 무슨 말을 해야겠다 생각했지만, 테오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 할 말 없으면 그냥 간다. "
어깨에 멘 보우건을 다시 추스려 메고 금발의 아가씨는 홱 돌아서 버렸다.
뚜벅 뚜벅 가던 길을 계속 가려는 듯 걸어가는데, 그 앞을 테오가 가로막았다.
" 저, 일단 그 때는 감사했습니다. "
" ........... "
" 그리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 때의 빚은 꼭 갚겠습니다. "
" 됐어! 그런 거 들을려고 한건 아니니... 어차피 그 땐 내가 좀 괴롭힌 놈들이라 화가 나 있기도 한참이니 내 탓이기도 하지. "
" .......... "
" 그럼, 나 간다. "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 그 아가씨는 그냥 사람들 틈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 실례지만, 이름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
또다시 느닷없는 테오의 외침에 그 아가씨는 멈춰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 ...안나... "
" ... 네?? ... "
" 안나 리비에르... "
" 저는 테오... "
" 건 별로 상관 없고, 이제 더 이상 나한테 볼 일은 없겠지?
" ........... "
" 귀찮은 건 별로 안 좋아하는 성격이야. 이만 실례~. "
싸늘한 말투로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그 아가씨... 아니 안나는 사라졌다. 그리고 뒷모습을 그냥 쳐다보고 있던 테오. 다시 발걸음을 돌려 주점을 향하려는데...
문득 건너 모퉁이에서 안나의 뒤를 쫓아가고 있는 낮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 저 사람은... '
주점안에서 테오의 밥까지 먹고 있던 카츠... 슬슬 테오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 이 녀석... 갑자기 나가더니 왜 여태 돌아오지 않는거야...? 할아버지 오시기 전에 안 돌아오면 내가 골치가 아프게 됐는데...? '
웬 아가씨의 황당한 말에 테오가 어째서 이상한 반응을 보이며 따라서 나갔는지 물을 사이도 없었다.
하지만, 멧돼지 사건을 운운하는 걸 보니 혹시나 며칠전에 있었던 바티스와의 숲속 사건을 말하는 건가...
나름대로 추리는 해보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조금 복잡해지려 하고 있었다.
테오의 과민 반응도 신경이 쓰이려 하지만, 할아버지와의 시장일 때문에 피곤해서 생각하기도 귀찮아졌다.
' 뭐, 어린애도 아니니 알아서 돌아오겠지. 제발 빨리 오기나 해라... '
나름대로 여유를 가지려 하는 카츠의 앞에는 아직도 음식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 요놈이... 자기가 많이 먹는다고 잔뜩 시켜놓고 나보고 이걸 다 어떻게 처리하라고... '
카츠는 손도 댈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멍하니 수저만 들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그렇다면 정말 소문이 맞는 모양이군. "
촌장 할아버지는 현역 사냥꾼 시절 오랫동안 함께 해온 옛 전우의 말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그렇다네... 이젠 토벌괴물들도 지능적이라 요즘 같이 사냥이 힘들 때는 으례 생겨날 수 있는 법이지. "
" 하지만, 동료들의 뒤를 치다니... 그게 있을 법한 일이기나 하냔 말이지... "
" 동료이기에 앞서 사냥꾼도 즐기는게 아닌 먹고 살아남는 직업일세. 하지만, 그 생존의 방법이 위험해지면 결국 다른 수단을 선택하기 마련 아닌가... "
아주 오래전 어릴 때부터 사냥꾼으로써 80여년 긍지를 지켜왔던 촌장 할아버지는 믿을 수 없었다.
아무리 예전보다 사냥을 해서 보수금 받는 일이 힘들어진다고 하지만, 이젠 정식 의뢰도 받지 않고 다른 사냥꾼들의 먹이를 채가거나 싸워서 지친 그들을 뒤치기 하는 방법을 쓰는 파렴치한 놈들이 있다니...
" 다른 정보는 전혀 없는 건가? "
" 아쉽지만, 이게 다일세... 워낙에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놈들이라... 두목은 커녕 하급부하 한명도 전혀 알 수 없는 놈들 뿐일걸세. "
" 으음... 아무래도 이건 쉽게 지나칠 문제가 아닌거 같군. "
" 그렇지. 사실 지금까지는 몇몇 뜨내기 사냥꾼이나 피해를 본거 같아 그들 나름대로의 프라이드가 있기 때문에 쉬쉬하면서 공공연히 퍼지는 걸 숨겨는 왔지만, 곧 대규모로 번지게 될거야. "
" 아무래도... 더 커지기 전에 뿌리를 뽑는 방법밖에는 없다는 이야기겠지? "
" 그렇다네. 곧 성지에서 비밀리에 임무가 코콧트로 전달이 될거 같네. 영주님께서도 이 일의 심각성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계신 모양이야. "
" 오지 않아도 상관없네. 늦는다면 내 손으로 직접 발령을 해서 토벌작전을 사냥꾼들에게 수주할까 생각하던 참이었으니... "
" 자네의 생각은 알겠지만, 일단은 조금 더 기다려보게. 이건 기분만으로 처리해야 할 일은 아닌거 같아. 만약 작전에 들어간다면 사냥꾼 한둘로는 어림도 없는데, 자네 혼자서 그걸 책임진다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 조만간 성지에서 코콧트마을에 토벌령이 내려진다니 들리는대로 바로 전달해 주도록 하지. "
" 알겠네. 자네 몸이 불편하다는 건 알지만, 이번에 신세 한 번 져야겠네. 참... 그런데, 그 조직의 이름은 알 수 있겠는가...? "
" 스탄 이라는 이름을 쓴다고 들었네... "
촌장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 왜, 또... 무슨 일이야? 감사 인사라면 아까 걸로 충분한 거 같은데. "
" 그게 아니라... "
안나와 부지런히 뒤를 쫓아왔던 테오가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 아까 주점에서의 그 놈들이... 아무래도 저기에서 진을 치고 있는거 같은데요? "
" 누구 말이야...? 혹시 아까의 애꾸 패거리들? "
" 네... 분명히 그 패거리 중 한명이 당신의 뒤를 쫓길래 저도 따라가 봤더니, 안나씨의 가는 방향을 보고 패거리들에게 연락하는 거 같아서... 알려 드릴려고... "
" 흠... 그래? 일단, 고마워. 좋은 거 알려줘서... "
어깨에 메어진 보우건을 내려놓는 안나... 그리곤 허리에 차여있는 탄창 몇 개를 꺼내어 털어보더니, 보우건에 장전하고는 다시 어깨에 둘러멨다. 계속 가던 쪽으로 가려는데, 테오가 급히 말렸다.
" 잠깐, 혹시 그 놈들과 싸우실 겁니까? "
" 그래야지. 피하는 건 적성에 맞지도 않고... "
" ......... "
" 정보 고마워. 이젠 너도 네 갈길 가봐야지? "
이젠 테오가 귀찮은 듯 뒤도 보지않고 갈 길을 가는 안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던 테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대검을 가져오는게 좋았었나... 짐꾼들에게 그냥 보내는게 아니었는데...
' 아무래도 일단 쫓아가봐야겠다. 진 빚은 갚아야지. "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안나의 뒤를 쫓아가고 있는 테오... 혹시나 아까의 패거리들이 언제 안나에게 공격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한 생각에 조바심을 내며 쫓아가고 있었다.
그 뒤에 아까부터 둘을 지켜보고 있는 그림자를 모른 체...
마을 외곽으로 갈수록 점점 지나다니는 사람들 수도 적어지고... 하나 둘씩 나무가 나타나더니, 숲속의 한 공터가 나타났다. 그 곳에 멈춰선 안나...
" 아까부터 요란하게 쫓아오는거 같던데... 슬슬 나오실까? "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가운데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만 숲을 에워싸고 있었다.
나무가지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이 조금씩 흔들리기만 했을뿐...
" 좋아, 그럼, 가벼운 인사라도 해두지! "
'철컥'
어깨에 메어진 보우건을 익숙한 솜씨로 빠르게 조준 자세를 취하는 안나. 쉴 틈도 없이 나무 숲의 한 군데에 갑자기 한 방의 유탄을 발사했다.
타앙....
소리와 함께 바람을 가르는 유탄이 숲속 나무의 한 가운데 박혔다.
펑...펑...
유탄의 폭발소리와 함께 사방 여기저기에서 잽싸게 튀어나오는 그림자들... 제법 높은 나무에서 뛰어내린 듯 했지만, 깃털처럼 가볍게 안나의 근처에 착지를 했다.
유탄의 탄피를 제거하며 여유있는 표정으로 안나가 물었다.
" 쫀쫀하게 숨어서까지 따라온 이유가 뭐냐? 데이트 신청은 아닌거 같고... "
" 하하하, 눈치가 제법인데? 아무래도 아까 그 꼬맹이 덕분에 긴장했나 보군 "
" 그 정도의 미행솜씨론 세살짜리도 속이긴 힘들지. 숨어서 싸우는 게 내 특기인데 상대를 잘못 골랐어. "
상대는 둘이었다.
제법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진 푸른 눈의 사내였는데, 양 손에는 쌍검이 쥐어져 있었고 다른 한 명도 제법 키가 커 보였는데, 안나와 같은 보우건을 사용하고 있었다.
" 하급부하 몇 놈이 우는 소리를 하길래 버릇이나 고쳐주려고 따라와 봤더니, 이거 꽤 큰 놈이군. "
" 후후후. 마음에 드는데? 설마 블론디건일 줄이야... "
" 그러니까, 니들 결국 아까 별 볼일 없던 술집 패거리들 두목이라는 이야기 아냐. "
상대는 이미 안나를 알고 있는 듯 했다. 귀찮아 죽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마를 찡그리는 안나.
" 나도 제법 인기인인 모양이군. 미안하지만, 난 쥐새끼들한테는 흥미 없어. 사인은 미뤄두지. "
" 하하하... 이 아가씨 좀 보게. 이 상황에 제법 큰 소리치는 걸 보니 배짱 하나는 제법인데? "
" 어디 그 배짱만큼 실력도 있는지 솜씨 좀 보여 주실까? "
여유있게 한바탕 웃더니 둘은 금새 긴장한 표정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역시나 쌍검이 이쪽을 근접전으로 견제를 하다 기회가 오면 보우건이 마무리를 할 모양이었다.
' 쌍검은 그렇다 치더라도 보우건쪽은 좀 곤란한데...? 저쪽의 탄환수나 종류도 모르겠고... '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해 일단 큰 소리는 쳤지만, 기척을 죽이고 따라오던 수준급의 미행솜씨를 보아하니 실력은 적어도 중상급 이상일 것이다. 피할 수 있는 싸움 분위기는 아닌 것 같고...
쌍검의 위력을 알기 때문에 근접전은 생각하고 있지 않았었지만, 문제는 저쪽의 보우건이었는데.
' 어떻게 할까... '
어차피 둘다 공격을 막기엔 불리한 무기이기 때문에 쌍검쪽이 먼저 근접전으로 대응하려 달려들 것이다.
결국 보우건도 저격모드로 견제하다 한방 날릴 속셈 같은데, 적어도 일단은 자기편이 꽤 신경이 쓰이겠지.
순간 판단이 결정되었다.
" 좋아! "
빠른 손놀림으로 일단 보우건을 산탄총으로 가득 장전했다. 적어도 단발탄환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피하지 못할 걸 알고 쌍검도 그리 가까이 오지는 못하겠지. 상황을 봐서 같이 날려버릴 계산이었다.
" 덤벼라! "
안나가 먼저 뛰쳐 나갔다.
" 이봐, 코르도. 우리 계속 이러고만 있어야 하는거야? "
" 놔둬. 조장님 두분이 같이 가셨으니, 별 일 없을거야... 구경하다 다 끝나면 뒷처리만 하면 되지 뭐. "
" 일단 보고하러 간 리오를 먼저 기다리자. "
주점에서 안나에게 시비를 걸던 그 패거리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창피하고 분했다.
하지만, 아까 그 아가씨의 기백이나 빠른 손놀림을 보니 보통 솜씨가 아닌 것 같았다. 일단 상급조장에게 보고는 했었지만, 아직도 찝찝한 기분에서 헤어나오질 못했다.
그것도 상대가 여자인데도 손도 못 써보고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 이것 봐. 아무리 그래도 가봐야 하지 않을까? "
" 사실 나도 그 생각이야. 계집애 하나보고 괜히 쫄 필요는 없잖아? "
" 그래도 블론디건 이라는데, 우리가 안 건들길 잘한게 아닐까? "
" 진짜 그 블론디건이라면 조장 형님 둘로 될 일도 아니잖아... "
" 아... 정말 고민되네... "
겁많고 머리나쁜 하급조원들이 모여있으니 아까부터 계속 갈등을 때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끙끙 대는 것 같더니, 결국 한 명이 일어났다.
" 모르겠다! 일단 가보자구. 만약 블론디건이 아니라면 끝장은 우리가 봐야 하는거고. "
" 맞다면 그냥 솜씨나 구경해 보자 이거지? "
" 좋아. 가보자. "
" 만약 별것도 아닌데, 조장 둘이 못 당한다면 잘하면 서열도 바뀌겠는데? "
" 헤헤헤헤... "
그들은 자기들끼리 낄낄거리며 장비를 챙겨들고 일어났다.
일단은 먼저 간 조장 둘을 도와줄 생각이었지만 상황을 봐서 조장 둘의 부상이 만만치 않으면 그대로 같이 끝장내 버리고 자신들이 조장서열을 차지 할 심보였다. 진짜 블론디건이 아니라도 상관 없었다. 그냥 아까 주점에서 여러사람 앞에서 당한 치욕을 만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대로 앉아 있을 수 만은 없었다.
그 패거리들은 조장이 사라진 방향으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장 둘이 아무리 강하다지만, 상대는 이미 이 바닥에서 소문이 자자한 블론디건이다. 자신들이 도착할 때쯤 아마도 두 상대는 이미 지쳐 있거나 한쪽은 이미 무너지는 분위기겠지. 어느쪽이든 좋아. 그들에겐 결국 남는 건 조장을 엎어버리고 서열을 차지하거나 아까 당했던 창피에 대한 보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에서 칼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근처에서 싸움이 벌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 흠... 아무래도 가까운 곳에서 벌써 한판 붙고 있는 모양인데? "
" 꽤 멀리까지 조용한 곳으로 갈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빨리 들킨 모양이군. "
일단 자세를 낮추고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사방을 둘러보다, 문득 나무뒤에서 쪼그리고 싸움을 보고 있는 테오를 발견했다.
" 어. 저놈은 뭐야... "
역시나 쉽게 끝날 싸움은 결코 아니었다.
실제적인 공격은 쌍검을 든 키다리가 검기를 휘날리며 공격을 해오고 있었지만, 정작 신경이 쓰이는 건 뒤쪽의 보우건이었다. 쌍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총알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안나는 무척 난감해 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자에게는 무거운 장비를 들고 견제하며 피하는것도 시간문제지만 뒤쪽의 보우건도 대충 겨냥하며 여유를 부리는 척 보였으나, 눈매는 발사의 순간만을 노리는 사냥꾼의 모습이었다.
" 파방! "
일단 산탄 한발을 날렸다. 물론 충분히 퍼져나갔겠지만, 상대방은 이미 눈치를 챈듯,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조준 조차 힘들게 만들고 있었다. 탄피 한발이 튀어나오며 재장전 되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쌍검쪽을 향해서 한방 더 크게 발사를 했다. 하지만, 어림 없었다. 총구가 노리는 스피드를 이미 계산하고 있는 듯, 안쪽으로 파고들어 최대한 산탄의 범위를 좁혀서 피하는 것이었다.
" 이 놈... 역시 보우건의 파트너라 뭔가 달라. 맹훈련이 없이는 불가능한 움직임이다... "
감탄할 사이가 아니었다. 쌍검이 피하는 척하면서 보우건에게 발사 사거리를 자연스럽게 넘기는 것이었다.
' 아차! '
" 타앙~ "
본능적으로 옆으로 구르며 안나는 총탄이 등언저리를 스쳐지나는 것을 느꼈다.
다시 자세를 바로잡기는 했지만, 총탄이 아슬하게 스치는 오싹함에 잠시 다리가 풀리는 듯 휘청거렸다.
" 큭큭큭큭... "
쌍검은 칼을 서로 비벼대며 갈고 있는 듯 도발을 하고 있었고, 보우건쪽도 이미 여유만만하게 총구에서 피어나는 연기를 불고 있었다.
" 이봐이봐... 긴장하지마. 이 정도라면 블론디건 이라는 이름이 아깝잖아. "
" 고작 딱총 따위나 들고다니는 기집애가 뭘 하겠어? 여태 제대로 된 상대를 못 만났던가... "
" 쳇, 말 조심해... 저 여자는 라이트일지 몰라도 이쪽은 가벼운 딱총이 아냐. 그래도 파워급인 헤비계열이란 말이지. "
" 크큭... 알았어. 알았어. "
이쪽은 이미 무시당하고 있는 분위기인지 떠드는 폼만큼 상대는 일류급 이상이었다. 아무리 무기가 다른 파트너지만, 그 정도의 움직임으로 패턴을 바꿔가며 한방을 노린다는 건 실전에서는 보통 솜씨론 힘든 일이었다.
여유롭게 둘을 맞상대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적어도 정공법은 통할 상대가 아니라는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 그렇다면... '
장전되어 남은 산탄은 일단 두 발. 슬며시 상대방의 눈치를 보는 듯 총을 크게 세우고 탄피를 걷어냈다.
" 이봐, 라파엘. 남은 탄수는 몇 발 같아? "
뭔가 의식이 되었는지, 안나를 노려보던 쌍검이 뒤의 보우건을 든 동료에게 소리를 쳤다.
" 아무리 봐도 일반 쇼트건이야... 산탄이라면 잘해야 두발이지. "
" 좋아, 기회는 두 번 밖에 없다는 이야기군. "
" 결국 블론디걸도 탄환이 없으면 쓸데없는 이름 뿐이니까. "
확실히 동급의 무기를 가진 적인만큼 이쪽의 사정은 잘 알고 있었다. 더구나 공격력이 훨씬 더 뛰어난 동료가 앞에서 견제를 해주며 자신에게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있으니 아무 생각없이 조준만도 가능할 것이다.
쌍검은 일단 이쪽의 공격을 먼저 피하고 여유롭게 마무리를 할 생각인지 다가오지 않고, 기회를 보는 듯한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 표정의 안나... 하지만, 입가엔 마치 무언가를 알리려 하던 생각이 적중했다는듯한 조용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간다! "
쌍검쪽이 먼저 칼을 쥐고 뛰어오기 시작했다. 이에 안나는 조준도 제대로 하지 않는 폼으로 돌격해 오는 쌍검쪽으로 산탄을 한 발 더 날렸다. 뛰어오던 속도보다 더 빠르게 옆으로 피하는 쌍검. 한바퀴 휙 구르더니 착지를 하자마자 안나에게 소리쳤다.
" 뭐냐. 이 생각없는 지금 공격은. 내가 피하지 못할거라 생각했나, 아니면 싸움을 포기한건가? "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오른쪽의 쌍검을 어깨에 탁탁 두드리며 물어보는 쌍검....
" 쿠로노! 넌 제발 싸움중에 쓸데없는 말 지껄이지마. 빨리 처리해 버려. "
" 아. 미안미안... 갑자기 이게 김빠지게 만들잖아. "
눈가를 찡그리며 별로라는 듯한 제스처를 남기는 쌍검쪽은 양칼을 한번 휘리릭 돌리더니 다시 돌진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 한번의 공격후엔 여유인가... 재미있는 버릇이군. '
힘들어하는 듯한 표정을 내비치는 안나... 하지만, 입가엔 아직도 뭔가를 뜻하는 듯한 웃음이 남아있었다.
안나의 뭔가 다른 생각을 눈치채지 못한 듯, 쌍검쪽은 다시 돌진할 생각으로 자세를 크게 낮췄다.
" 간다! 잘 막아 보라구 아가씨! "
철컥! 탄피를 걷어내며 마지막 탄환으로 뭔가를 노리는 듯한 안나. 이에 응수할 기세로 다시 쌍검이 돌진해 왔다. 급습해 오던 쌍검이 근처로 다가온 순간, 안나는 마지막 탄환을 조준하여 쌍검에게 발사했다!
" 타앙~ "
" 어림없다! "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이번엔 앞쪽으로 재빠르게 구르며 피해버린 쌍검의 사내는 돌진과 공격을 한번에 끝내버리려는 듯, 빼내어 든 두손의 쌍검을 모아 안나에게 재빠르게 뛰어 들었다.
" 쳇~ "
마지막 탄환이 떨어진 안나는 일단 쌍검의 돌진 공격을 피하기 위해 옆으로 피했으나, 애초부터 찌르기가 쌍검의 공격목표가 아니었다.
안나가 옆으로 구르자 마자 그대로 시선을 따라가며 포착을 하는 쌍검은 칼을 양쪽 사각지대로 벌리며 안나의 왼쪽 팔을 닿을듯 말듯 베어 버렸다.
" 아악~ "
옆으로 구르던 안나는 결국 양쪽으로 벌리며 공격을 하는 쌍검을 피하지 못하고 당해버렸는지 등을 내보이며 왼쪽팔을 감싸쥐고 있었다.
공격이 맞아떨어진 걸 알았다는 듯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던 쌍검.
" 푸하하하. 내 쌍검의 공격을 간단하게 피하려 하다니... 여태 무식한 대검만 받아 보았었나? "
크게 다친 듯 등을 내보이고 있는 안나에게 여유를 보이는 쌍검의 사내. 뒤쪽의 동료에게 소리를 쳤다.
" 라파엘. 이 녀석 팔을 다친거 같아. 이제 무기 쓰기는 글렀는데? 어떻게 가지고 놀지? "
보우건 사내도 경계하던 자세를 풀고 천천히 다가왔다.
" 흠... 산탄은 4발밖에 장전이 안 되는걸 잊으셨나 ? 싸우면서 탄 계산도 못하는 바보일 줄이야. "
" 이 녀석 처리하고 나면 두목한테 칭찬 좀 두둑히 받겠는 걸? 애초에 이 녀석도 리스트에 있었잖아. "
뭔가 알수 없는 말을 나누며 그들은 서서히 안나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팔의 부상이 심한듯,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안나...
그 뒤에 다가와 칼을 치켜든 쌍검과 총부리를 겨누고 있던 보우건의 사내는 조용히 말했다.
" 자, 이젠 마지막이다... "
' 탕... '
한 발의 총성이 숲속을 메아리 쳤다.
" 안되겠다. 내가 직접 찾아봐야 겠군. "
밖으로 나간 테오가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4인분이 넘을법한 음식을 혼자서 겨우 처리하고 테오를 기다리며 소화나 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돌아오실때가 되자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너무 늦는게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 와... 배부르네. 몸이 무거우니 움직이는게 일이군. 그나저나 도대체 이거 어떻게 찾아봐야 되는거야? '
일단 밖으로 나왔지만, 어디로 가야할지 몰랐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데,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카츠는 기가 찼다. 난감한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카츠에게 한 무리의 사냥꾼들이 급하게 어딘가로 뛰어가는게 눈에 띄었다.
' 저녀석들은...? '
분명히 주점안에서 본 패거리 들이었다. 좋은 냄새를 풍기는 분위기는 아닌 놈들인지라, 카츠는 아까의 금발머리 소녀와의 일을 생각해 냈다. 혹시... 라는 생각에 일단은 따라가 보기로 했다.
마침 그 시각, 촌장 할아버지는 주점에 도착하고...
할아버지와 엇갈린채 테오는 그 사냥꾼들을 쫓아 가고 있었다.
" 헉... 헉... 너... 비겁하게... "
안나의 보우건 총구에서는 회색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쌍검을 들었던 사내는 이미 쓰러져 있었고, 보우건의 사내도 옆구리를 감싸쥐며 피를 흘리고 있었다.
" 관통탄이었나... 어느 사이에... "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보우건의 사내는 안나에게 총을 겨누지도 못하고 무릎을 꿇고 있었다.
" 네놈 동료의 검을 내가 정말로 피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나? "
" 그럼... 다친 척 하면서 탄창을 갈고 있었단 말이냐? "
" 미안하지만, 쓰러진 놈 실력도 만만찮더군. 이쪽도 예상외의 부상이다. 하지만, 계획대로 했을 뿐이야. "
" 제길... 비... 비겁하게. "
" 애초에 2:1 상대로 싸움을 건 네놈들에겐 비겁이라는 말은 안 어울리는데? "
하지만, 아직도 억울 하다는 듯 보우건의 사내는 소리쳤다.
" 만약 네가 몰래 탄창을 갈때 우리가 진작 끝장내 버리려 했다면 결과가 어떻게 됐었겠나! "
" 네놈들의 쓸데없이 폼잡는 여유가 없었다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도박을 해봤을 뿐 치사한 것도, 특별한 것도 아냐... "
안나는 천천히 보우건을 어깨에 돌려 메었다. 팔에는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 듯...
" 저 놈도 치명상은 아닐거다. 빨리 병원에 데려가라. "
" 쓸데없는 동정은 질색이다. 죽이든 살리든 말든 니 마음대로 해라. "
" 그럼, 이걸로 대신하지... "
안나는 보우건의 사내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안나가 다가오자 눈을 질끈 감는 보우건의 사내...
' 콰악~ '
" 으으아악........!! "
안내가 피를 흘리고 있는 보우건 사내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 쓸데없는 총알 낭비는 질색이다. "
옆구리를 감싸쥔 채 쓰러진 사내를 뒤로 하고 다시 발걸음을 계속 하려던 안나.
하지만 곧 무언가를 발견한 듯 멈춰섰다.
거기에는 아까의 애꾸가 테오의 목에 팔을 휘감고 얼굴에 칼을 들이댄채 다른 패거리와 웃고 있었다.
' 도대체 이 녀석들이 어디에 간거지... '
주점밖으로 나온 촌장 할아버지는 의아해 졌다. 주점의 종업원 아가씨 말로는 가끔 일어나는 건달들의 작은 행패 빼고는 특별한 일도 없었는데, 얌전히 식사를 기다리던 덩치좋은 청년(테오를 말하는 듯)이 먼저 뛰어 나가더니, 조금 있다 나온 어마어마한 분량의 음식을 혼자서 다 먹어치운 다른 청년도 곧 밖으로 나갔다는 것이었다.
' 내 이놈들을 그냥... '
만나기만 하면 가만히 두지 않을거란 촌장 할아버지의 얼굴은 잔뜩 역정을 낼 기세였지만, 마음 속은 은근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조용한 코콧트 마을과는 다르게 이 곳 도시에서는 어떠한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돌아다니다니는 것도 어린 베르나르 형제에겐 꽤 위험한 상황이었다.
' 아무튼, 요놈들을 먼저 찾아봐야겠군... '
카츠와 테오를 찾기 위해 할아버지도 부지런히 어디론가 사라졌다.
주점에서 본 그 불량한 패거리 들은 여지없이 테오의 목을 조이며 칼로 위협을 하고 있었다.
" 뭘 어떡하자는 이야기냐... "
안나가 귀찮다는 듯 말하자, 이내 껄껄 웃는 애꾸눈의 사냥꾼...
" 별 뜻은 없어. 어차피 서로 빚진게 있는 모양인데, 이쪽이 조금 손해본 듯 해서 말야... "
" 아까처럼 설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얌전한 구석도 있는데? 아무튼, 이 녀석 피보기 전에 그 총부터 내려 놓는게 좋을 거야... "
테오를 붙들고 그 불량 패거리들은 안나를 협박하고 있었다.
" 난 또... "
별 일 아닌 것처럼 한 번 피식 웃고는 안나는 그대로 갈길을 가려는 듯 뒤를 돌았다.
" 사람 잘못 골랐다. 지금 붙잡고 있는 그 놈은 나랑 전혀 상관할 바 아니야... "
테오와 불량 패거리가 그대로 두고 걸어가며 안나는 말했다.
" 크하하하... 낡은 수법이군. 신경 안 쓰는 척 하다 뒤통수 치려고? 그쪽은 우리가 전문이야. 후후후후! "
" 아... 정말 귀찮게 하네. 네놈들 꽤나 의심 많구나? "
안나와 불량 패거리들이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패거리들 뒤에는 카츠가 몰래 접근하고 있었다.
먼 발치에서 누군가를 몰래 쫓아가는 테오를 발견하고 오다가 앞서 가던 그 불량 패거리들이 테오를 붙잡고 위협하는 걸 발견하고는 내내 숨어서 기회를 엿보던 참이었다.
' 저 녀석, 왜 저러고 있는거야. 그리고 저건 아까 그 아가씨 아냐...? 도대체 무슨 상황일까... '
아무튼, 일단은 테오를 구해내는게 급선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