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어크 섀도우스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일본을 배경으로 하면서 새삼 일본풍 게임 나올 때마다 나오는 한탄인
'왜 한국풍 게임은 안나올까요' 가 다시 보이기 시작해서
그거 관련해서 블로그에 쓴 글을 정리해보는 글임.
여기는 간략하게 적을 거고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맨 위 링크를 참고해주셈
맨 밑에 3줄요약도 있음
일단 해외에서 일본풍이 인기가 많은 것은 외국인들이 보기에 비주얼이 매력적이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일본풍' 이 무엇인가가 타 문화권에서도 대충 어렴풋이 알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어서 그런 거임.
예를 들어서 뭐 파푸아뉴기니에 일본 사무라이 갑옷보다 훨씬 간지나는 갑옷이 있다고 해서 서양인들이 뉴기니풍을 찾아보겠음?
즉 일본풍이 무엇인가가 유명하고 널리 알려져 있다는 점이 핵심임.
당장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일본 역사나 갑옷 양식 같은거 잘 모른다고 해도 일본풍이라고 하면 대충
'벚꽃, 기모노, 화려한 갑옷, 일본도, 사무라이, 닌자' 정도는 금세 떠오르지 않음?
그러면 여기에 대해서 항상 나오는 말이 있음.
"사무라이 닌자가 뭐 별거 있음? 우리나라도 개마무사 화랑 선비 있지 않음?"
"그거 다 특별한 거 없는데 일본애들이 포장 잘해서 그런거 아님? 왜 우리나라 만화가/게임사/영화인들은 이런거 안만들어서 홍보를 못함?"
근데 여기서 생각해볼게 있음.
일본애들은 서양애들이 '재팬' 이라고는 암것도 모르는 노베이스 상황에서
그냥 무작정 "사무라이 멋져요 닌자 개쩔어요" 이야기하기만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서양인들이 갑자기 오우 쏴무롸이 오우 닌좌~쉬노비~ 하면서 일뽕을 치사량까지 주입하더니
맨 위 어크 짤처럼 서양 회사에서 게임 만드는데도 일본풍이 잘 살아날 정도로 일본 문화를 열심히 공부하게 된 걸까?
저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어어어엉얼대 아님.
우선 이 짤들을 한번 보자.
각각 맨 위는 일본 고전영화, 중간은 나루토, 3번째는 엘든링에 나오는 사무라이들임.
창작물이라는 특성상 100% 완벽한 고증을 살린 것은 아니고, 특히 나루토 엘든링은 아예 판타지지만
아무나 데려다 놓고 야 이거 3개 다 같은 나라 문화를 묘사한 거 같냐? 고 물어보면
나루토는 살짝 애매하긴 한데 그렇다고 답할 가능성이 높음.
왜냐? 약간씩 디테일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 일본식 갑옷의 개성(사각형 어깨방어구, 다스베이더 철모스러운 투구, 색깔 있는 끈으로 장식성을 살린 디자인 등), 기모노, 일본도라는 기본적인 큰 틀은 똑같이 가져가고 있기 때문임.
즉 일본애들은 창작을 하더라도 실제 고증을 100% 배제하지는 않았고, 최소한 자국에서 사용한 물건을 기반으로 디자인을 했기 때문에
장르와 성격이 전혀 다른 창작물들을 보더라도 일정한 공통점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임.
그리고 이 '일정한 공통점'이 5~60년대 황금기의 일본 고전영화를 시작으로 90년대 드래곤볼을 필두로 쏟아져나온 수많은 일본 만화, 일본 게임 등에서 수십 년간 꾸준히 누적되었고
이 수십 년간 누적된 공통점들을 통해 외국인들이 아 일본풍은 이렇구나! 라는 것이 주입되었던 것임.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위 사진 3개는 전부 다 여말선초 배경 드라마임.
맨 위에 육룡이 나르샤는 전형적인 중국식 명광개 갑옷이고
중간 정도전은 딱 고증 잘 지킨 여말선초 경번갑이고
맨 아래 나의 나라는 전형적인 한국 퓨전사극식 어깨뽕 판타지 갑옷임.
고증이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이걸 한국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봤을때 이거 3개가 같은 시대, 같은 나라 배경이라고 하면 그렇구나~ 하고 납득이 갈 것 같음? 내가 볼땐 절대 아닌데?
고증만 따지면 위에 일본애들이 만든 것도 안 맞는거 많음.
근데 일본은 최소한 자기들이 실제로 썼던 것들을 기반으로 디자인을 하기 때문에 고증에 맞지 않더라도 최소한 이게 일본 배경이라는 거, 혹은 같은 시대 배경이라는 거 정도는 삘이 오지만
우리나라는 사극 소품 만들때 우리나라에서 썼던 걸 기반으로 디자인한다 뭐 이런 최소한의 선이 전혀 없다 보니 똑같은 시대 똑같은 나라 똑같은 인물을 다루는 사극인데도 스크린샷 쭉 늘어놓으면 같은 나라인지조차도 알기 힘든 상황이다 이거임.
즉 우리나라에서 만드는 우리나라 배경 사극도 이런 상황인데, 외국인들이 어떻게 '한국풍' 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흔히 인터넷에서 이야기하는 흑길동 같은걸 만들 수 있겠느냐 이 말임.
여기서 끊으면 아 그래서 고증 왜 안지키냐고~ 하는 흔하디 흔한 역덕의 한탄으로 끝날 수도 있는데(당장 내가 막 한복 고증한 그림 그리고 그래서 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료가 없다거나, 혹은 나는 고증보다는 멋을 추구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최소한 일본애들처럼 자국에서 썼던 걸 기반으로 디자인을 했다면 한국풍이라는게 어느 정도 정립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는 것임.
예를 들어서 고려시대, 진짜 자료 없거든?
근데 이 드라마처럼 '아 고려시대 자료없네~ 걍 내맘대로 창작하고 서양거도 섞어야지~' 하는 아무 근본 없는 창작으로 가기보다는
최소한 고거전처럼 '아 고려시대는 자료 없으니까, 그나마 자료 있는 시대 중에 고려랑 제일 가까운 여말선초 갑옷 기반으로 소품 만들어야겠다' 정도는 해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것임.
나 실제로 고거전의 완성도 자체는 엄청 깠는데
최소한 물질적인 부분 고증은 이전 사극들에 비하면 상당히 진전이 있었다고 봄.
아 물론 일본은 한참 이전부터 서양에 널리 알려진 나라였지만, 한국은 사실상 잊혀진 나라에 가까웠다는 역사적인 배경도 크게 작용한 건 맞음. 당장 인상파 화가들도 우키요에 영향 엄청 받았고.
다만 그런 역사적인 배경까지 이야기하자면 한도끝도 없이 길어질 거 같아서 부득이하게 미디어 매체에 등장하는 고증으로 한정해서 글을 썼음.
간략하게 쓴다고 쓴건데 어째 블로그 글이랑 길이는 별 차이 없는 거 같네 그래도 읽어줘서 감사하오
3줄 요약
1. 외국에서 일본풍 게임이 많이 나오는 것은 일본풍이 인기가 많아서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일본풍이 무엇인지 잘 알려져서 그런 것임.
2. 근데 일본이라고 일본 스고이 무작정 외친 것이 아니라 고증에 있어서 최소한의 선을 지켰기 때문에 일본풍이라는 게 생겨난 것. 즉 영화를 보나 만화를 보나 게임을 하나 다 비슷비슷한 기모노에 갑옷 입고 나오니까 아 이게 일본풍이구나! 라는게 확립된 것.
3. 반면 한국은 같은 시대를 다룬 드라마를 나열해봐도 이게 같은 시대인지 전혀 감이 안 잡힐 정도로 디자인이 중구난방이라 이게 한국풍이구나 라는게 정립이 잘 안 됨. 하지만 고거전의 고증에서 보이듯 차츰 나아지고는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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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특히 조선이 귀족문화를 많이 억누른 나라라서 더 그런거도 없잖아 있는듯 삐까번쩍한 갑옷과 무기를 들고 액션활극을 찍는 작품은 좀 안어울리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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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라이크류겜처럼 어둑어둑한 다크판타지 게임이라면 덜 화려한 한국 무구가 어울리긴 한데, 이거는 솔직히 개발 난이도가 많이 높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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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리웹-731952
ㅇㅇ 그래서 본문 막판에도 사실 일본이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와 한국이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의 차이 생각하면 누적된 기간 차이가 너무 커서 어쩔 수 없는 면도 있지만 그거까지 이야기하자면 글이 너무 길어져서 부득이하게 창작물 고증 쪽에만 포커스를 두고 썼다고 했음 | 24.05.17 23:1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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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특히 조선이 귀족문화를 많이 억누른 나라라서 더 그런거도 없잖아 있는듯 삐까번쩍한 갑옷과 무기를 들고 액션활극을 찍는 작품은 좀 안어울리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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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bettabloos
프롬라이크류겜처럼 어둑어둑한 다크판타지 게임이라면 덜 화려한 한국 무구가 어울리긴 한데, 이거는 솔직히 개발 난이도가 많이 높아서... | 24.05.17 22:3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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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가 복식 쪽에 관심 많아서 막 고증 그림도 그리고 그래서 아는데 엄밀히 말하면 조선 전기까지는 의복 문양 같은 것도 기술이 발전하면서 오히려 이전 시대보다 더 화려하고 정교해지는 게 분명히 있음. 미디어 매체만 보면 삼국시대가 막 알록달록 엄청나게 화려한 옷을 입는 것처럼 나오는데 실제로는 삼국시대에는 직물 짜는 기술이 정교하지 못해서 원, 삼각형, 사각형 등 도형을 집어넣는 수준에 그쳤지만(역설적으로 이게 오히려 현대의 미니멀리즘 감성에 맞아서 더 이뻐 보일 수는 있음), 조선 전기에는 금사를 활용한 정교한 무늬를 수놓은 비단까지 발전했고 실제로 일본에 온 예수회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의 기록을 보면 일본인들이 임진왜란 당시 약탈해온 조선의 수놓은 옷가지를 두고 '이렇게 정교한 세공은 내 살아 생전 처음 봤다' 고 써놓기까지 했음. 물론 17세기 소빙기와 호란의 영향으로 피폐해진 뒤에는 그런 풍조가 다소 사그러들기는 하지만, 대중들에게 흔히 알려져 있는 '사치스러운 귀족문화 고려 vs 소박한 유교문화 조선' 이라는 구도가 반드시 들어맞지는 않는다는 것임.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비교 역시 마찬가지인데, 조선 역시 자개장이나 화각공예 등 고려청자 못지않게 사치스럽고 화려한 공예품이 분명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옛날 유물이라고 하면 나전칠기보다는 도자기가 우선적으로 떠오르다 보니 그런 것들이 안 알려진 게 분명히 있음. 물론 그렇다고 흔히 알려진 구도가 아예 틀린 것은 아니고 조선이 유교의 영향으로 사치를 경계하여 주변국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소박해진 것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인식과 괴리된 구석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임. 개인적으로는 이게 미디어 매체의 영향이 크다고 봄. 조선은 소박하고 백의민족이고 사치를 경계하고 뭐 이런 이미지가 하도 강하다 보니 미디어 매체에서도 화려한 유물보다는 소박한 유물을 베이스로 소품을 디자인할 때가 많고, 서사 역시 통쾌한 승리 뭐 이런 것보다는 주로 정부는 무능한데 민초의 힘으로 극복하거나 수탈에 시달리는 백성 같은 구도로 짤 때가 많다보니 더더욱 조선시대는 검소한 풍경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음. 반면 조선 이전 왕조들은 강대국에 맞선 한국의 자존심, 통쾌한 승리 뭐 이런 컨셉이 잡힐 때가 더 많고, 조선시대와는 달리 비주얼이 낯설어서 일부 역덕들 제외하면 고증 가지고 태클이 크게 안 들어오다 보니 걍 제작진이 소품을 마음껏 화려하게 만들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비주얼이 훨씬 사치스럽고 과시적으로 짜여짐. 서사도 마찬가지고. | 24.05.17 23:26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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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중국 일본과 구별되는 한국만의 풍이 분명히 있는데 이걸 이때까지 역사 컨텐츠 제작자들이 잘 살려내지 못해서, 서양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도 한국풍 솔까 중국풍이랑 비슷하지 않음? 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음....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다고 생각함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들로는 남녀 가릴 것 없이 귀걸이, 목걸이, 반지 등 화려한 장신구를 하는 풍습, 삼국시대 조우관에서 조선시대 주립까지 이어지는 깃털 달린 모자, 대도시-평원 이미지가 강한 중국과 높디 높은 요새 이미지가 강한 일본과는 달리 산성 위주로 이루어진 풍경, 중국 일본보다 훨씬 다양한 모자(이건 최근에 넷플 드라마 킹덤 때문에 좀 주목받긴 했음) 등등을 꼽아볼 수 있을듯? | 24.05.18 02:38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