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스터 유성의 7일 10화 호연의 사막
“사막이 있는데요?”
다음 날 아침.
보라시티를 나온 우리는 111번 도로와 112번 도로의 경계에 서서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건너가려면 건너갈 수야 있긴 합니다. 이게 있다면요.”
혹시 몰라 챙겨 오길 잘했다. 가방에서 고고고글을 꺼내 손에 들었다.
예전에 선인왕과 밤선임에 대해 연구할 때 산 건데,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길은 험하지만 단풍마을로 가는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죠.”
“엄청 험해 보이는데요?”
치아나는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에 살짝 들어갔다가 순식간에 모래범벅이 되어 나왔다.
“꺄앗!”
“괜찮아요?”
“아, 네. 괜찮아요. 으으, 그냥은 못 가겠네요. 시간을 안 아끼는 쪽은 어떤데요?”
112번 도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치아나의 고개도 따라 돌아간다.
“이쪽 길을 따라서 저기 보이는 불꽃샛길을 지나서 가는 길입니다. 대충 두 세 시간 정도 더 걸릴 거예요.”
“으음, 그럼 그냥 사막을 건너죠. 그 고글을 끼면 되는 거죠?”
“그러기엔 문제가 하나 있어요.”
혹시 몰라 챙겨 오길 잘했지만, 가방에 고고고글은 하나밖에 없다.
“한 사람 것밖에 없거든요. 고글이.”
“네? 그럼 어떡해요? 그 불꽃샛길로 돌아가야 해요? 누구 남는 고글 빌릴 사람 없어요?”
“그런 사람이 어디에... 아!”
그러고 보니 이곳은 111번 도로다. 지금쯤이라면 분명 근처에 있을 것이다.
“빌려줄지는 모르겠지만, 가능성은 있는 사람이 있어요.”
빌리기는 싫지만.
“누군데요?”
치아나에게 대답하려는 그때.
“우릴 찾으셨나요? 레인 관장님?” “우릴 찾고 계시군요! 레인 관장님!”
등 뒤에서 두 명의 목소리가 함께 들렸다. 언제나 기운찬 사람들이다.
“드디어 우리 인터뷰를 받아주실 마음이 드신 건가요?” 바로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아니, 잠깐만요. 조금만 조용히 해줘요. 제발!”
크게 한 번 호통을 치자 두 사람은 갑자기 조용해졌다. 표정은 왠지 활짝 웃고 있지만.
“저, 관장님? 이 분들은?”
“우선 소개부터 하죠. 이 두 사람은 리포터 마리와 카메라맨 다이. 제, 스토커같은 사람들입니다.”
“스토커라니!” “스토킹이 아닙니다.”
“저흰 그저 저널리즘을 가졌을 뿐이라고요.” “취재 본능이 넘쳐날 뿐입니다.”
마리와 다이는 이쪽을 향해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이댔다.
“등화도시에서 안 나오시기로 유명한 우리 레인 관장님께서 111번 도로까지 오시다니!
그것도 미모의 여성과 함께! 이건 정말 특종이에요!”
“그런 거 아닙니다. 관장 업무의 일환으로, 그래, 이 아가씨의 호위를 하고 있는 거예요.”
자기 소개할 타이밍인 것을 알아차린 치아나는 꾸벅 허리를 숙였다.
“치, 치아나라고 합니다. 관장님께 신세지고 있습니다.”
“오오, 독특한 성함이시군요!” “호연 출신이 아니신 걸까요?”
“그러고 보니 관장님께서도 호연 출신이 아니시죠?” “타향에 사는 사람끼리의 인연인가요?
“두 분을 찾은 용건은 그게 아니고.”
이대로 가다간 이 둘의 페이스에 말려버린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혹시 남는 고글 있으세요? 사막을 건너가려 하는데.”
“고글이라면!” “예비의 예비까지 가지고 있죠!”
“어디든지 달려가는 취재팀이니까요!” “사막에도 취재할 일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잘 됐네요. 그러면 하나만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
이 질문에 마리와 다이는 조금 고민하는 표정을 짓다가 둘이서 수군대더니 다시 이쪽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그 손에는 어느새 고글 하나가 들려 있었다.
“물론이죠! 하지만 공짜는 아닙니다!” “공짜가 아니니 대가를 지불하셔야 하죠!”
“대가...? 대여비를 내라는 건가요?”
치아나는 아직 이 두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마리와 다이가 말하는 대가라 함은,
““저희와의 인터뷰를 요청하는 바입니다!””
당연히 이거다. 지금까지는 온갖 핑계를 대며 피해왔는데, 결국 이렇게 되나.
“이렇게 좋은 기회가 오다니!” “고글 하나로 레인님의 인터뷰면 싼 거죠!”
마리와 다이는 신이 났는지 계속 떠들었다.
“칼로스 지방 출신의 관장 레인과의 독점 인터뷰!” “이번 달 월간 호연 표지는 정해졌군요!”
“월간 호연? 그게 뭔가요?”
치아나가 갸우뚱하며 물었다.
“월간 호연이라고, 이 분들이 기사를 쓰는 잡지가 있어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도 발행되고 있었을 것이다.
“30년도 더 된 전통 있는 잡지입니다!” “질 좋은 소재로 인쇄해서 잘 헤지지 않는답니다!”
내용이 아니라 내구성을 자랑하는 건가.
“뭐, 좋습니다. 하죠. 인터뷰.”
마리와 다이가 건넨 고글을 받았다.
“오오! 그럼 지금 바로!” “인터뷰를 시작해도 될까요?”
“아니, 지금은 안 됩니다.”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대는 둘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다른 손으로는 치아나를 가리켰다.
“아까 말했죠? 관장 업무의 일환으로 이 아가씨의 호위를 하고 있다고. 인터뷰는 이 일이 다 끝나고 할게요.”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았다.
“방해하신다면 공무집행방해입니다.”
라고 못할 것도 없다. 관장은 일단 공무원이니까. 내 말을 들은 마리와 다이는 움찔하며 손에 든 장비를 뒤로 뺐다.
“그, 그래도 약속하신 거예요?” “녹음도 해놨으니 발뺌하시면 안 됩니다?”
그걸 또 녹음한 건가.
“네네, 알겠어요. 일이 끝나면 연락드릴게요. 아, 고글은 잘 쓸게요. 가죠, 치아나씨.”
불만이 있어 보이는 둘을 뒤로 하고 112번 도로 사막을 향해 걸어갔다.
***
“휴우, 지치는 분들이었네요.”
“바로 헤어졌으니 망정이지 인터뷰까지 했으면 내일 출발했을 지도 모릅니다.”
“으으, 그건 좀 곤란한데요.”
모래 바람 앞에 선 치아나가 말했다.
“안 그래 보이지만 사실 서둘러야 하니까요. 고글은 감사하지만요.”
안 그래 보이는 건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문제는 고글만이 아니다.
“고글은 둘째 치고, 그 옷으로는... 잠시만요.”
치아나의 복장은 팔다리가 다 드러나 있다. 가방에서 적당히 바람막이를 꺼내, 손에 든 고고고글이랑 같이 치아나에게 건넸다. 마리와 다이에게 받은 고글은 내가 쓰기로 했다.
“오호라, 확실히 이러면 모래가 들어오지 못하겠네요.”
치아나는 옷을 받아들어 주섬주섬 입었다. 그 다음엔 고글을 낀 채 획획 고개를 돌렸다.
“와, 이거 좋은데요?”
“무리인 부탁일 수도 있는데.”
나 역시 고고고글을 따라 쓰면서 말했다.
“사막 지역에서는 되도록 말을 하진 마세요. 입에 모래 들어가니까.”
“그게 왜 무리인 부탁이에요! 그 정도는 참을 수 있거든요?”
“그러시다면야.”
가방을 다시 둘러멨다.
“근데, 비도 많이 오는 호연에 왜 이런 사막이 있는- 우우왓, 퉤퉤! 으으으.......”
물어볼 줄 알았다만, 최소한 사막을 나가서 했으면 했다. 그래도 질문을 들은 이상, 무시하기도 힘들다.
바다가 육지보다 넓은 호연이다. 비도 매년 충분히 내린다. 조금만 생각해도 호연에 사막이 있다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위를 둘러보다 적당한 바위를 가리켰다. 치아나는 금방 의미를 알아차리고는 나를 따라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확실히 밝혀진 건 없지만, 그래도 가장 그럴 듯한 가설은 알고 있습니다.”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손으로 입을 감쌌다. 내가 하는 걸 보고 치아나도 그걸 따라했다.
“호오, 그게 뭔가요, 관장님?”
“저기 굴뚝산이 보이시나요?”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다른 손으로 저 멀리를 가리키자 치아나는 손가락을 따라 굴뚝산을 보았다.
굴뚝산에서는 지금도 화산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굴뚝산은 보시다시피 화산이에요.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엔 용암 분출 같은 것도 있었죠. 그때 용암이 이곳까지 흘러들어온 뒤 굳어서 화강암 지대가 되었는데 그게 풍화되어 이렇게 된 거죠.”
“네? 화강암이면 바위 아닌가요? 바위가 다 갈려서 사막이 되었다고요?”
적절한 지적이다. 해안가라면 모를까, 이런 곳에서 이 정도로 화강암이 풍화되기는 어렵다.
“자연적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그런데도 왜 이렇게 사막이 되었느냐. 당시 여기에 서식하고 있던 땅 타입 포켓몬들이 그 바위지역을 자신들이 살기 좋은 환경으로, 그러니까 모래가 많은 지형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에요.”
자연적으로는 이런 지형이 생길 리가 없다. 그렇다고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니 포켓몬들의 영향이라는 뜻이다.
“포켓몬들이? 이 넓은 지형을 다 모래로 만들었다고요?”
“한 마리라면 힘들었겠지만, 여럿이 모여서 이뤄낸 일이죠.”
저 멀리서 얼핏얼핏 밤선인이나 톱치 같은 모습이 일렁거린다. 바다가 압도적으로 넓은 호연지방에서 저런 포켓몬이 살아남기란 제법 고단할 것이다.
“한 마디로, 모두 함께 바라는 대로 세계를 바꿨다... 그런 가설입니다.”
“세계를 바꿨다.......”
말하고 나니 왠지 부끄러운 표현이다. 예전에 읽었던 논문의 표현을 그대로 쓴 것뿐이니까 내 잘못은 아니다.
“궁금증은 해결됐나요? 그럼 다시 출발합시다.”
바위 뒤에서 나오니 순식간에 모래먼지가 세차게 휘몰아쳤다.
“정말.......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요.......?”
치아나가 한 말은 모래바람에 파묻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네? 방금 뭐라고?”
바위 뒤에서 나온 치아나는 입을 꾹 다문 채 그저 고개만 좌우로 흔들 뿐이었다.
“아니에요. 서두르죠!”
모래를 헤치며 걸어오는 치아나를 보며 나는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p.s.
1) 3세대의 배경인 호연지방은 일본의 규슈를 모티프로 만든 지방입니다만, 규슈엔 사막이나 사구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돗토리 사구는 주고쿠 지방입니다.) 그래서 적당히 해석했는데 혹시 관련된 정보가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2) 마리와 다이 콤비는 오리지널 캐릭터가 아니라 실제 게임 내에 등장하는 트레이너입니다. 자세한 건 나무위키에서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