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거 같은데... 말해보세요.”
정보세계의 관례를 무시하고 들이닥칠 정도면
심각하거나 절박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에메랄드 시티 개발계획이 신실크로드와 관계가 있니?”
“신실크로드?
아, 케이뱅크의 아라시아철도계획
아니 올림푸스가 주도하는 유니콘 프로젝트 추가 연결계획 말이군요?”
아프리카-아시아횡단열차,
줄여서 아라시아.
북아프리카경제동맹
즉 케이뱅크는
유럽과 러시아를 배제한 신 新실크로드계획을 은밀히 추진 중이었다.
야심만만한 헤이워드는
유럽테러전쟁의 여파로 혼란한 강대국을 최대한 속였다고 믿지만
강대국은 괜히 강대국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헤이워드는
올림푸스의 압력 아닌 압력으로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아라시아와 유니콘을 연결하는 것을 동의했다
키리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난색이지요?
하만 씨.
신실크로드가 성공하면
직접 수혜를 받는 이란을 살찌울 텐데요?”
“그렇겠지. 하지만...”
“하지만, 종파엔 타격이 있을 거라고 우려하는군요?”
하만이 말끝을 흐리자
키리토가 속말을 대신 해줬다.
“아저씨 나라는
아직도 8세기에 머물러 있나요?
한심하군요.
한심해요.”
“한심해도 어쩔 수 없다.
안 그러면 무너질 테니까.”
79년 일어난 혁명 이전 이란은
친미국가이자 중동에서 가장 진보된 자본주의국가였었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전근대적인 종교국가로 후퇴해버렸다.
키리토는 피식 웃었다.
70년대 이란여성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다녔을 정도로 개방적이었다.
뭐 원리주의의 득세로 공공장소에서 애정행각은 사라졌지만
사우디처럼 여성이 운전하지 말란 법은 이란엔 없었다.
그 사우디조차
근래 여성운전이 법으로 통과됐으니
이슬람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부는 건 사실이다.
“또 다른 혁명을 두려워하는 건가요?”
“평의회는
여성인권 따윈 인정하지 않을 거다.”
철도든 도로든 국경이 다시 개방되면
문화의 융성은 피할 길이 없었다.
아무리 이슬람율법을 강조하고 세뇌하더라도
일탈은 젊음의 특권이다.
“평의회가 완고하다면... 철길을 내주지 않으면 그만이잖아요?”
키리토의 반문에
하만은 정말 몰라서 묻느냐는 눈빛을 던졌다.
“그랬다간 당장 고립되겠지.
더군다나
내부에선 다시 세계화가 고개를 드는 중이기도 하고.”
이란은 오랫동안 고립되어왔었고
그 원인을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란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높이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오일? 한계가 있다.
핵개발? 반감만 키웠다.
남은 건 지리적 이점이다.
감사하게도
이란의 지정학적 위치는
동서 혹은 남북으로 어디든 연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중국의 일대일로와 맞물려 시너지를 낼 경우 국제무대에서 엄청난 발언권이 생기리란 판단이 섰다.
그러나 한편으론
전면적인 국경개방에 따른 문화충돌과
혼란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요?”
“완충지대가 필요하지.”
“그 말은?”
“언더월드와 협력체계를 구축한 그 에메랄드 시티 계획에 참여하고 싶다는 것이
우리 쪽의 부탁이다.
단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이 겹치는 곳이어야 하지만.”
“그건 너무 뻔뻔한데요?”
답정너도 아니고,
키리토는 이란정부의 의도대로 끌려갈 생각은 없다.
그렇다고
공짜로 준다는데 거절할 맘도 없었다.
"양보할 수 있는 부분은 양보하겠다. 콜로서스.”
“흠.”
키리토는 고심에 잠기다가
곧 눈동자를 빛냈다.
“그럼 이렇게 하지요?
이란 북서부 3개 주를 쿠르드에게 양도하는 거에요.”
“쿠르디스탄을 인정하란 거니?”
하만은 놀람의 탄성을 터트렸다.
“솔직히 골치 아프잖아요?
안 그래요?”
“그렇긴 하지만... 터키나 이라크는 어쩌고?
우리가 인정한다고 해도 그쪽에서 반대하면
거의 내전 수준의 국지전이 발발할지도 모르는데.”
“아저씨도 알겠지만
케이뱅크의 계획은
중국의 일대일로와는 조금 차이가 있어요.”
“알아. 터키를 배제했지.”
보통 21세기 실크로드 하면
중앙아시아와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들어가거나
러시아 시베리아를 관통하는 대륙횡단열차를 떠올렸다.
그러나 헤이워드가 구상한 신은
바로 아랍을 직접 공략했다.
유럽패권이 완전히 배제된 셈이다.
‘북아프리카철도를 완성하면
그 뒤엔 해안을 따라 남쪽으로 확장할 계획이겠지.’
아프리카대륙을 아우르는 거대한 철도망.
성공하면이란 단서가 붙지만
어쨌든
그 가브리엘 밀러의 맨토인 필그림 헤이워드의 꿈은 컸다.
재미있는 친구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갈 계획의 시작과 끝은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필그림 헤이워드는 계획의 시작도 못 보고 죽을 수도 있었다.
“아저씨라면
자기 나라를 배제하는 걸 두고 보겠어요?”
“아니지.”
“그렇지요?
그게 정상이에요.”
국익에 반하는 걸
전부 적대행위로 간주하는 게 정보기관의 본능이다.
애국심은 합리적인 사고와는 항상 부딪쳤다.
“ISIS로 불안한 중동의 정국이
다시 철도문제로 시끄러워지면 누가 제일 좋아할까요?”
곰곰이 생각에 잠겼던 하만이 입술을 뗐다.
“이스라엘?”
“맞아요.
거기가 제일 좋아하겠지요.
더군다나
북아프리카로 철로를 내려면
어쨌든 이스라엘을 거치지 않곤 어렵거든요.
협력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요.”
“그럼?”
“너구리 헤이워드가 그걸 고려하지 않았을까요?
아마 조만간 발표가 있을 거에요.”
이스라엘은 펄쩍 뛰겠지만
아카바 만 하구를 잇는 건설사에 길이 남을 초대형교량건설이
곧 발표될 것이다.
수 킬로미터 운하도 뚫고 인공섬도 만드는 시대니까.
다만 문제는.....언제나 돈이다.
“쿠르디스탄을 인정하면... 제가 이란을 보증해 드리지요.”
하만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콜로서스 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쿠르드를 위해서 말이니?”
“왜 상관이 없어요?”
의외로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쿠르디스탄 산악지대와 고원지대는 석유뿐만 아니라 수자원도 풍부했다.
터키가 쿠르드의 독자노선을 인정할 수 없는 이유기도 했고
주변국과의 마찰도
결국은 물과 같은 천연자원 때문이다.
키리토는 씩 웃었다.
이슬람 이단이면 어떻고 기독교 이단이면 어떤가?
무교인이자
지구 전체를 관찰하는 초인류이자
세계 전체를 관리하고 조율하는
빌더버그 위원회의 삼인위 중 한 명인 그에겐
다 똑같은 호갱, 아니 고객님들이다.
어떻게 보면
거대한 규모에 비해
중심세력이 미약한 쿠르드 같은 이들이
이용해먹기 편했다.
누군가
그 소년의 속마음을 들여다봤다면
기겁했을 것이다.
“다 미래의 충성스런 고객님들인데.”
모이자! 기도하자! 돈 내라! 집짓자!
“저는 신앙인을
마음 깊이 존중한다고요.”
믿음이야말로
훌륭한 불로소득 아닌가?
그리고
그런 키리토와 하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올림푸스는
저 소년은
역시나
그 소드 아트 온라인이라는
가상 세계 속에서
2년이나 안식년을 지냈으면
저 사기꾼도 등쳐먹을
교활하고 못된 성격 좀 죽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변한 데가 없군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말없이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는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홀짝이면서
전화를 들어서
호텔에서 대기 중인
모리 일등육좌에게 연락을 취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역사상
아니 세계 역사상 최대의
대강탈 아니
대도둑 작전을 시작하기 위해서!!!!
******
키리토의 박물관과 미술관투어가 끝나고
호텔에서 여정이 마무리되었을 때
DGSE 감시팀의 보고를 받은 르메르 국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은 의구심이 솟아났다.
'J'avais l'impression que quelque chose allait exploser.'
(뭔가 터트릴 것 같은 뉘앙스였는데.....)
키리토
아니 콜로서스는
절대 빈말하지 않는다.
‘Quoi ?’
(뭘까?)
난입한 이란정보부와 관련 있을까?
키리토와 올림푸스와의 만남을 끝낸 하만은
프랑스 밖으로 추방됐다.
그는 DGSE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였고
이란정보부도 조용히 철수했다.
“Verifier la meme ligne que Coleridge.”
(콜로서스의 동선을 다시 확인해 봐.)
“Chef, trois fois.”
(국장님. 벌써 세 번이나.)
“Verifiez.”
(확인해.)
“D'accord.”
(알겠습니다.)
상관의 히스테릭한 반응에
수행비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휴대폰을 들었다.
‘Silvestre, pourquoi est-ce que....’
(실베스트르놈은 왜 쓸데없이 나대서는...)
모든 것이
가브리엘 밀러를 뒤에서 움직이던
그 실베스트르의 입방정 때문이다.
건실한 프랑스기업인들을 부추겨
자금을 끌어 모으더니
엉뚱하게
일본에 다 때려 박았다.
그때는
그러려니 했다.
프랑스 정부가
필요할 땐
더러운 일을 처리해주는 해결사인
가브리엘 밀러와 실베스트르를 위해
오히려 편의도 봐줬었다.
문제는
일본의 오션 터틀 테러 이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사실
일본에 테러가 일어나고
그 뒤에 터진 부분때문에
일본과 미국 행정부가 엿을 먹은 것은
솔직히 고소한 부분도 있다.
따지고 보면
유럽이 난장판인 근본적인 원인은
중동을 들쑤셔놓은 미국이
그 상처를 제대로 봉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색은 못했지만
사실 기분은 좋았다.
반아프리카원주민에다
프렌치꼴통인
란셀 스트로스모우 (실베스트르) 가
그 일에
비밀리에 자금을 지원하고
일본 내의 연줄 중 하나인
오션 터틀 공격을 묵인한
중의원 의원들과 연관이 되었다는 것이
가브리엘 밀러의 입을 통해서
콜로서스와 올림푸스
그리고
아틀라스에게 알려진 것도 모자라서
콜로서스 (키리토) 가
비밀리에
자신이 맡고 있는
미국 국가 연구 분석 위원회 (NRAG) 쪽을 통해서
미국 정부 측에 다 알려 버리고
결국
그 정보들이
미국과 일본의 상층부에 보고가 되기까지는 말이다.
‘Meme si on m'a traite d'injustice.
J'ai salue mon pays......’
(아무리 부당대우를 받았어도 그렇지.
(아무리 부당대우를 받았어도 그렇지.
조국을 엿 먹이다니...)
공식적인 항의는 아니라고 해도
양키와 일본에게 당한 모욕은
르메르 평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흉악한 테러리스트로 전 세계에 낙인찍힌 가브리엘 밀러의 후원자가
한때나마 프랑스 고위관료였다는 사실은
씻을 수 없는 죄악이다.
뭐
이번 오션 터틀 스캔들로
백악관을 제외하고는
훅 가버린
미 의회와 행정부와 비교하긴 어렵지만
엘리제궁도 한바탕 피바람이 불었다.
프랑스의 선봉장 DGSE는 즉시 수습에 나섰다.
그러다
이 사건이
변절한 고위관료 한 명만 엮인
간단한 일이 아님을 알았다.
유럽과 북미를 주름잡는
굵직굵직한 사교모임과 재벌, 왕족, 귀족가문 등
수많은 유명인이 수두룩하게 얽힌 것이다.
거기에
그 가브리엘 밀러와 실베스트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비밀조직의 일원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더욱 골치아프게 일이 꼬여버렸다
만약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면
파장은 쓰나미처럼 전 세계를 덮치리라.
언더월드로 인한
일본과 미국의 혼란은 일도 아니었다.
어쩌면
성난 시민들에 의해
제 2의 프랑스 대혁명이 재현될지도 몰랐다.
‘Merde!’
(망할!)
프랑스 정부와 DGSE는
이 사건을 묻으려 총력전을 펼쳤는데
재수가 없는 건지
아니면 운명인지
키리토가 냄새를 맡아버렸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써 암살명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La premiere chose, c'est que le temps s'ecoule.’
(일단 모르쇠로 일관하며 시간을 끈.)
앞으로의 대책을 강구하던 르메르의 고심은
부하의 부름에 끊어졌다.
“Chef !”
(국장님!)
시큰둥한 얼굴로 물러서던 비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엄청난 위자료를 두드려 맞은 이혼남을 닮은 표정으로 다가왔다.
“Pourquoi ?”
(왜)
“Il a disparu !”
(없어졌답니다!)
“Qu'est-ce qui est parti ?”
(뭐가 없어져?)
반문하는 와중에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Des oeuvres !”
(작품들이!)
(작품들이!)
수행비서의 얼굴은
위자료폭탄을 맞은 이혼남을 넘어
나치에게 나라를 잃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Le Louvre, l'Orce, le Pont-Neuf !
J'ai tout pris !
Toutes les œuvres exposees ont disparu !”
(루브르, 오르세, 퐁피두!
다 털렸답니다!
전시된 작품들이 몽땅 사라졌습니다!)
“Quel chien !”
(그게 무슨 개!)
개소리냐고 호통을 치려던 르메르는
마지막 말을 삼켰다.
‘콜로서스!’
유명박물관과 미술관의 철통같은 최첨단보안을 뚫고
강탈이 가능한 건
이 세상에
그 소년을 포함한 단 셋 뿐이다.
워싱턴D.C.의
백악관, 팬타곤을 비롯한
미국의 모든 정부기관의 보안시스템도 무력화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그들만이 가능한 일이다.
여 보란 듯이 박물관투어를 나선 이유가 있었다.
“Merde !”
(빌어먹을!)
거친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르메르는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그의 말이 맞다.
꼼짝없이 매달리게 생겼다.
단축번호를 누르면서도
르메르는 수행비서에게 소리쳤다.
“Controle-toi !”
(정보통제해!)
이 사실이 밖으로 새어나갔다가는
오션 터틀 테러로
양키와 일본에게 당한 치욕은
별로 치욕스럽게 느껴지지도 않을 것이다.
다행이라면
박물관과 미술관의 개장시간이 끝난 이후라는 점이다.
“Agent de securite, conservateur,
Tous ceux qui sont au courant de ce fait doivent l'attraper !”
(경비원이든 큐레이터든
(경비원이든 큐레이터든
누구든 이 사실을 아는 자는 다 잡아들여!)
국치 國恥,
그야말로 나라망신! 개망신이다.
(IP보기클릭)223.62.***.***
(IP보기클릭)39.114.***.***
힘을 쓰는 방법보다 훨씬 고상하면서도 우아한 방법입니다. | 20.09.14 09:30 | |
(IP보기클릭)203.210.***.***
감사합니다. | 21.07.29 21:38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