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대륙 최남단에 위치한 [엘프 타운]의 위용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끝없이 펼쳐진 산과 숲, 엘프들이 타지사람들을
경계하며 만들어낸 무수히 많은 함정들과 마법들을 통과하여 이곳까지 도착한 사람들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일
것이다.
애시당초 대륙 남단은 사람의 발이 끊긴지 굉장히 오래되었다. 지금에 와선 대륙의 역사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지역이
많아서 대륙쪽에서는 정보가 끊긴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아마 이 근처의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무지하고, 또
관심도 없겠지. 방금까지 내가 그랬고 지금 몇없는 정보갱신의 기회를 마음껏 느낄 예정이다. 켈베르트의 후임을 맡은
나는 운이 정말 좋다.
거의 원시우림같던 세계에 놀라울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들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모여있었다. 특징적인 것은
소위 엘프 양식이라 불리우는 정교하고 화려한 엘프 특유의 화려한 건축물들과 셀수없을 정도로 고대부터 자라온 거대한
나무들이 뒤엉키듯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다.
책이 사람에게 지식과 간접경험을 선물해주지만 이런 광경은 육안으로 공간에서 느껴야만 알수있는 웅장함이 있다.
생각해보면 꼬마 시절에 켈베르트를 따라왔을때 이후 처음으로 와보는 것 같다. 역시 머리가 커지니 인식되는 정보량도
많아서, 더 많이 보이고 더 많은 놀라움을 주고 있다.
[...정말...놀랍군.]
[그런가?]
코룬은 이쪽 사람이지만 종종 밖에서도 마주치기 때문에 이들의 고향이 어느정도로 발달된 문명인지 잊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오만한 인간들이 엘프 타운이라는 소박한 이름으로 부를 뿐이지 사실은 엘다리알이라는 이름이 엄연히 있는 대도시
였다.
대도시라고 할까. 대륙에서 보기 힘든 희귀종족인 하이엘프들이 밀집되어 있는 유일무이한 곳인만큼 내부에는 크고 작은
다른 지형을 포함하는 정체불명의 지역들과 호수, 수도라고 부를만한 중심지까지 포괄하고 있을터였다.
최신정보 제로의 그 미지의 대도시가, 지금 바로 앞에 있는 것이다.
...잊었던 모험가의 영혼이 천천히 불이 붙고 있다.
[...수,수도까지 가도 되는거야?]
떨리는 마음으로 묻자 코룬은,
[슬프지만 <세레네레아의 성소>는 커녕 근처도 접근불가능이야. 잊었나? 넌 인간이잖아. 외부인이고.]
라고 답한다.
[...쳇]
[하하. 그렇게 슬픈 얼굴 하지마]
코룬이 다시 유쾌하게 하하 웃으며 나에게 따라오라며 손짓한다. 엘프 타운이 바로 코 앞인데, 반짝반짝 가능성의 보물상자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코룬이 인도하는 곳은 외곽으로 빙 돌고돌아 이상한 곳으로 빠져들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는게 아니었나..]
[그렇게 간단한게 아니야.]
[꽤나 대단한 집안의 아가씨인가 보군]
[그런 셈이지.]
[나참...]
담배도 못 피우고 고생이다. 손과 입이 근질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조화와 평화를 사랑하는 자연친화적인
엘프들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계급은 존재한다. 영향력이 있는 귀족가문도 존재하고, 애시당초 통치자가 여왕이니 어찌되었든
인간 사회와 비슷한 면은 있는 것이다.
아마도 아가씨로 통칭되는 이번 케이스의 주인공은 상당한 집안의 인물일 것이다. 도시내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인적이 없는
곳에서 기다린다는 것은 주목받기를 꺼려한다는 것이고 최대한 시작부터 끝까지 알려지지 않고 해결되기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여왕을 지지하는 13개의 강력한 대가문들이 있다고 들은적이 있다. 아마 그중 하나가 아닐까.
[...]
[...다왔어 고생시켜서 미안하군]
생각보다 한참을 따라가서 걸음이 멈춘 곳은 정말로 엘프타운이 너머에 보일뿐 외딴 숲속의 작은 나무집 한채가 있는 곳이었다.
근방이나 높은 나무에서 경비를 보는듯한 이들의 시선조차 없는, 거의 잊혀진듯한 장소인것 같았다.
낡은 나무집 밖에는 두명의, 코룬과는 판이하게 다른 말그대로 엘프다운 늘씬하고 큰 키의 미남미녀가 서있었다.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인상을 가지고 있다. 예사롭지 않은 인상과 복장은 분명히 보통의 경비병이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코룬이 묘하게 깍듯하게 인사하면서 뭔가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언어로 이야기하더니, 곧 눈짓을 하여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찌를것 같이 싸늘한 두 미남미녀의 시선을 모른척하고 코룬을 따라 들어가자, 그곳에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소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5.
이름을 밝히길 꺼려하는 엘프 아가씨는 예상대로 몰래 이곳으로 온것인지 눈에 띄지 않으려는 크고 허름한 느낌의 후드가 달린
로브를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봐도 옷과 다른 귀족 특유의 곱상한 외모를 하고 있는 소녀였다.
인간의 기준으로 보면 10대 소녀같은 느낌이지만 아마도 엘프니까 나보다 나이가 많은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녀는 코룬이 전해준
이야기답게 차분하고 얌전한 느낌이었다. 그녀는 내가 그녀를 순간적으로 관찰하듯 조심스럽게 주저하듯 나에 대해 짧은 시간동안
내 인상에서 뭔가 읽어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에..음..아가씨에 대한 이야기는 대충 코룬에게 간단하게 들었습니다. 목소리가 돌아왔다고 하더군요.]
[...그렇습니다.]
인상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목소리 자체에 이질적인 느낌은 없었다.
이방인인 나를 대하기 떄문에 살짝 불안정해보이긴 하지만 의사소통에도 전혀 문제가 없는 훌룡한 대륙공통어 발음이다.
[잠깐 실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가 입을 벌려보이게 해 살펴보았지만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하긴. 이쪽은 전문가들이 이미 살펴보았겠지.
[뭐랄까.. 대충 보기에는.. 문제가 있기 보다는 이유는 몰라도 목소리가 돌아온 것뿐이니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문제가 있습니다.]
[...?]
[...목소리가 들려요.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줍니다. 머릿속에서. 매일. 잠이 들기전까지 계속.]
[...목소리?]
[예. 끊임없이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듣고 있으면...마치 보이는 것 같아요. 진실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목소리는 말해요.
이 사실을 말하라고. 알리라고.]
[지금도?]
[지금은 목소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들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입을 다물면, 곧 다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할겁니다.]
...독특하군.
짚이는데가 전혀 없어서 나는 턱을 좀 긁적거리면서 곤란해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라고 하는거죠?]
[...]
그녀의 이야기는 코룬의 말처럼 정말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었다.
요약하면,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이몬이라는 녀석으로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신같은 존재라고 하는 것 같았다.
다이몬은 왜인지 뭔가를 계속 가르쳐주고 싶어하고 이야기하고 싶어하여 그녀가 알려준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한
계속 말을 걸어 잠들기 전까지 계속 무언가를 예언하듯 이야기한다고 했다.
이야기 자체는 전혀 와닿지 않는 것으로, 세계에는 다섯 시대가 있고 각각 황금의 시대, 은의 시대, 청동의 시대, 영웅의 시대,
철의 시대가 있었다는 신화와 역사가 섞인듯한 이야기와 각각의 시대에 사는 종족들에 대해 말해주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데에 행해야될 행동강령에 대해 힘주어 말하고는 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고통은 이런 설교, 혹은 정보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주입되는 것으로, 이것을 멈출 방법은 들은 내용을 누군가에게
말하거나 잠에 드는 것 외에는 없었다는 것이다. 목소리를 얻었지만 그녀가 어쩔수 없이 토해내는 말들은 명백히 이 세계의
상식에 통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이 감각을 알고 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존재할리 없는 것과의 접촉,
다른 세계의 지식과 상식이 전혀 상관없는 그녀에게 흘러들어오고 있음을.
이것은 의사가 치료할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마법이 기적과도 같다지만 마법사가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세계의 오류]라고 하는 것이다.
켈베르트의 뒤를 이어 나. 지노가 해야되는 일이다. 세계가 저지른 오류를 지우는 것이 우리들. 교정사(矯正師)의 일인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들이 <악마증명의 꽃>,<증명부재의 꽃> 혹은 그냥 <거짓말쟁이 꽃>이라고도 부르는 녀석일 가능성이
큽니다.]
[...예?]
[있을 수 없는 계절, 있을 수 없는 외딴 곳에 자라나 접촉한 자에게 이세계를 보여주는 녀석입니다. 아가씨처럼 말을 못하는
사람에게는 목소리륻 돌려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게 합니다.]
[...이세계?]
[음..이해하기 힘드시겠지만... 없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요컨대 우리들이 부르는 이름처럼 거짓말을 마구 욻어대는
녀석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하...]
어리둥절한 그녀였지만 나는 말을 계속 이었다.
[맹인에게는 시력을 돌려주지만 보이는 것은 이곳이 아닌, 원래는 볼수 없는 다른 곳을, 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에겐 청각을
돌려주지만 들리는 것은 원래는 듣지 못하는 것들을 들려준다고 합니다. 아가씨는 말을 못했기 떄문에 목소리를 들려주었지만
다행히라고 할까. 강제적으로 말하게 강요했을뿐 의사소통이 가능했네요.]
아마도 다른 장애를 갖고 있었다면 다른 형태로 이상한 증상이 발생했을 것이지만 그나마 되찾은 것이 목소리여서 상황파악이
가능할 수 있었다. 분명 청각이나 시력 쪽이었다면 피해자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체 고통받았을 것이고 교정사와 만날 확률은
극히 낮았을 것이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치료할 방법은 있는건가요?]
그녀는 불안정한 목소리로 다급하게 물었다.
그녀를 이해한다. 우리들이 대하는 [오류]는 일반인의 상식을 초월해있는 것들이니까.
[치료할 방법은 있습니다. 다만...]
[다만?]
[...되돌려받은 목소리를, 다시 꽃에게 돌려주셔야 합니다.]
[...목소리를...]
잔혹한 섭리다.
결핍된 것을 행운과 불행으로 채워주며 나타난 기적은 다시 결핍으로, 원래로 돌려놔야만 차단시킬수 있다.
[결정할 시간은 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길 떠나면 제가 언제 다시 이곳에 올수있을지와, 아무래도 이 꽃에 접촉한 사람들은
끝없이 어떤식으로든 들어오는 정보들과 그것을 어떤식으로든 밖으로 알려야 한다는 강요로 인해 쇠약해져 오래 살지는 못한
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번거로운건 필요 없어요.]
[네?]
[...지금 바로 이 지긋지긋한 것을 없앨수만 있다면 목소리따위 상관없어요.]
[...괜찮으시겠습니까?]
나는 뭔가 결심한듯 끄덕이는 아가씨를 한번, 옆의 코룬의 얼굴과, 너머의 경비 두명을 번갈아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엘프 아가씨는 그런 나와는 달리 확고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쭉 벙어리였어요. 늘 혼자고 분했고 외로웠지만... 그래도 이제는 언제나 함께 해온 고요와 고독이 그립게
느껴져요. 평화롭다고까지 여겨져요. 이제...해방되고 싶어요.]
그녀는 힘없는 웃음을 지었다.
나는 코룬을 한번 보고는, 어린 엘프 소녀의 결심을 존중하기로 했다.
6.
치료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엘프 경비 두명과 코룬이 낡은 나무집에 아무런 소음이 들어오지 않게 소리차단의 마법을 걸어주었고 나는 가지고 있던
반음석(反音石) 조각 하나를 물약과 함께 주어 마시게 했다.
먹이게한 돌은 특수한 것으로 꽃의 이야기를 상쇄시켜줄 것이다. 물약 역시 특수한 것이지만 효과는 같이 마신 물건의 효과를
조금 올려주는 것과, 약간의 카페인같은 것으로 각성효과를 가지고 있어 잠이 드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었다.
나머지는 그녀가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완벽한 무음의 시간을 최대 12시간동안 견뎌내야 했다는 것이다. 시시각각 상황을
지켜봐야하기 떄문에 나 역시 동석해야 했으므로 어떠한 소리도 내면 안되는 것은 나에게도 고통이었지만 나는 그래도 익숙한
숙련자. 그녀에게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었다. 잠을 자면 큰 숨소리나 뒤척이는 소리가 날수도 있으니 맑은 정신으로 서로
인내해야만 했다.
도움이 될까 싶어서 내부에 작은 소음을 최대한 나게 하지 않는 차음안개약도 풀어두었다.
오래된 나무집 안은 하얀 안개 속에 완벽한 고요가 찾아왔고 그녀와 나는 떨어진체 앉은체 서로를 응시했다.
긴 침묵 속에,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차분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참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오랜만에 찾아온 고요가
그녀의 말처럼 반가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는 그녀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다는 것이다.
친했다면, 다 끝난다음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아 그럴 나이가 아닌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반대로 이쪽이 졸려서 잠에 빠지는게 아닐까 위태로웠던 순간. 그녀의 입에서 서서히 황금빛으로 빛나는 꽃이 뻗어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소리가 미치지 못하자 밖으로 도망쳐나온 것이다.
당황하는 그녀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소리를 내지 않고 참고 있었다. 나는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갖다대며 조심스럽게 앞에 꺼내놓은 실크
보자기를 들고 그녀에게 다가가 천천히 그것을 담아, 포장하듯 그것을 덮었다.
그것으로 끝.
[하아....끝났습니다....]
푸하 참았던 숨을 내쉬면서 나는 보자기를 상자에 담아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제서야 코룬과 경비병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뭔가
말하려다가,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음을 깨닫고 작게 놀랐다가, 곧 홀가분한, 기쁜듯한, 그러나 슬픈듯한 여러 감정이 섞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7.
어느덧 해가 서서히 지고 하늘이 주홍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돌아가려는 나에게 코룬이 따라왔다.
[가는건가? 바래다주지.]
[당연하지. 길안내 안해주면 미아가 되버린다고]
[하하하..]
왔던 길들을 따라 걷는 동안 다시 한번 가깝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엘프타운, 아니 엘다리알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예술적인
건물들의 흰색벽들이 노을과 같은 색으로 물들여져 가거나 아니면 아에 빛을 반사해서 황금처럼 빛나고 있었다.
[언제쯤 저런곳에 들어가볼수 있는거야.]
[너희들의 마음이 열릴떄까지.]
[너희들이겠지.]
걷고 걸어, 드디어 코룬과 처음에 쉬었던 산길까지 올수있었다. 여기서부터는 혼자서도 돌아갈수 있다.
하늘은 색을 바꿔 밤의 장막을 드리우기 전 보랏빛을 얼굴을 하고 있었다.
코룬이 준 엘프 빵을 으적으적 씹으면서 내가 말했다.
[그러고보면 나이야 나보다 많겠지만 엘프 나이로 보면 어린 편이었지? 그 엘프 아가씨.]
코룬이 하하 웃으며 대답했다.
[아직 어린 분이시지. 너희들로 치면 대충 십대 중반 정도가 아닐까]
[...그릇이 크군. 나라면 그렇게 어른스럽지는 못했을거야.]
나는 그녀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지은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
어린 시절 쌍둥이인데도 건강했던 누나를 보고 열등감을 받으며 자랐을 것이고, 목소리를 잃은 병으로 주변 사람들도
서서히 떠나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고, 그렇게 모든것을 채념하고 받아들이려는데 이상한 기적이 일어나 목소리가
돌아오고...
꽃이 말하는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들은 많은 이들을 당황시켰을 것이다. 그녀가 말하는 다이몬이라는 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이며 이 세계에서, 창조의 나무. 유그리드실을 신봉하는 엘프들의 사회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위험한
발언들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녀의 신분이 높을수록 파장은 커졌겠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입을
닫자니 끊임없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녀가 견딜수가 없었을 것. 그 고생은 나따위가 가늠할 수 없었을 정도로 컸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므로써 다시 과거의 몸으로 돌아간 것도.
[됐어. 여기서부터는 혼자 돌아갈수 있어.]
내가 기지개를 펴며 말했다. 그러자 코룬이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 조심해서 가게. 언젠가 다시 봤을땐 금발로 염색했으면 좋겠군.]
[금발이 아름답다는건 엘프와 우리쪽 왕국의 백인우월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야.]
[그런가? 이해할수가 없군.]
[이해를 좀 해. 대륙 동쪽에는 흑발밖에 없다고 알려져있다고.]
[넌 서방인. 임페리아 인이잖아.]
[시끄러. 자 그럼 다음에 보자고.]
[그래.]
코룬과 내가 서로 돌아왔던 길로 걸어갔다.
나는 그동안 참았던 담배를 드디어 꺼내 물어태울수 있어 엄청난 만족감에 잠겨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코룬이 나를 멈춰세웠다.
[이봐! 지노!]
[...?]
연기를 내뿜으며, 내가 고개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릇이 크다고 했지. 그럴수밖에! 그거 아나? 우리 엘다리알의 여왕은 실은 쌍둥이 동생이 있다네!]
[...쌍둥이? 동생?]
[자 그럼!!]
유쾌하게 웃으며 사라져가는 코룬의 뒷모습을 쳐다보며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그런가..왕족이었나...]
그거야 엄청난 인물일수밖에.. 생각하면서,
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걷고 또 걸었다.
8.
대륙에서 유일하게 하이엘프들이 모여사는 신비의 도시. 엘프 타운. 아니 엘다리알에는 이후로도 그 자리
그곳에서 엘프들만의 왕국을 이어갔다.
그동안 자애롭고 온화한 전대의 여왕들과는 다르게 왈가닥 여왕으로 악명이 높았던 엘다리알의 여왕. 엘리드라사
= 엘레미르엔 = 아라드리엘은 거주 영역을 확대하자는 <황금의 혈통>이라는 조직의 부축임 속에 점차 마음이 흔들려가고
대륙 남부에 변화의 징조를 일으켜갔다.
그녀에게 쌍둥이 동생이 있다는 사실은 엘다리알 내에도 사실 왕족과 극소수의 귀족집단들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여왕의 동생.
아이네리아 = 엘레미르엔 = 아르드리엘의 이름은 자유롭지만 영향력을 확실히 가지고 있던 여장부 스타일의 누나 덕분에 이후에도
역사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복잡한 세상과 신분에 상관없이 조용하게 자신만의 보폭으로 세상을 살아갔다고 한다.
여전히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성격은 밝게 바뀌어 그녀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상냥했으며 점차 그녀의 주변에도 사람이 모이게
되었고 여왕인 엘리드라사도 바쁘지 않을때면 그녀의 정원에 찾아와 같이 조용한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자매끼리의
소원했던 사이도 조금씩 나아졌다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렇게 몇년 후. 원래부터 몸이 약했던 아이네리아는 편안하게 잠이 들듯 세상을 떠났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꽃이 만발한 봄날의 정원이 바라보이는 침대에서.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