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심복마저 괴로워하지만, 하운드의 신경은 오로지 가온에게 향해 있었다.
“직접 힘으로 도망 못 가게 누르는 수도 있지만, 그랬다간 자칫 터질 수도 있으니, 내 나름의 배려다.”
“크윽!”
“권속은 단순히 예 아니오로 되는 관계가 아니다, 이방인인 내가 원하고 대상인 권속이 굴복해야만 이루어지는 관계다, 넌 나를 인정했어도 내게 굴복하지 않았다, 그러니 내게 굴복해라!”
쿠우우우우!
하운드의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질수록 가온의 표정이 일그러져간다.
반쯤 무릎을 꿇은 막심은 땅에 달라붙은 가온을 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으윽, 간접적으로 영향 받는 데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직접적으로 기운에 짓눌리는 저 꼬마는 죽을 만큼 아플 게 분명할 터, 그런데 왜 고집을 부리는 거야!”
막심은 이런 고통에도 버티는 가온을 보며 이해하지 못했다.
노예로서 살아오지 않은 막심이 알 리가 없다, 막심 자신은 이렇게 아픈 고통이 가온에겐 노예 시절에 질리도록 겪었던 것들이라는 것을.
‘이 정도는 참을 만해.’
하운드의 기운에 움직이지는 못해도 버틸 수는 있지만, 계속 이대로 누워만 있는 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있는 가온의 머릿속에 슬며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이대로 항복할까.’
정면승부로는 이기지 못하는 상대다, 여기서 이대로 죽을 바에는 정말로 권속이 되는 게 최선일 수도 있다.
그때였다.
흔들리는 가온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밝은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포기는 배추나 셀 때 쓰는 말이야 가온! 어떤 상황이 와도 포기하지 마, 의지가 꺾이지 않는다면 넌 뭐든지 할 수 있을 거야.
그립고도 그리운 그녀의 목소리, 산장에서 있던 한 달 간의 생활 속 기억의 파편이 가온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바보같이 밝고도 밝아, 뭐든지 긍정적으로 말하는 그녀였다.
그때 자신은 미르의 저 말에 무슨 대답을 했을까.
이 상황에서 생긴 가온의 궁금증을 기억 속 미르가 답해주었다.
-어? 노예가 뭘 하겠냐고? 그런 말 좀 하지 말라니깐, 가온 넌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대단해, 그러니깐 나중에 네가 나보다 강해지거나 대단해지면 나 좀 도우라고, 흐흐흐 골수까지 뽑아먹을 꺼야, 아무튼 너도 나처럼 맨 손으로 장작을 팰 수 있다니깐! 너도 할 수 있다고! 아앗! 진짜 맨손으로 내리치면 어떡해! 피, 피야! 빨리 아르실에게…… .
기억 속 그녀의 목소리가 흐려진다, 활발하고 장난기 넘치던 그녀의 말과 행동들.
좀 더 듣고 싶은데, 조금이라도 그녀와의 기억을 회상하고 싶은데.
그래, 그녀를 구하면 모든 게 해결 될 일이다.
그녀의 목소리도 다시 들을 수 있다.
굳이 힘들게 회상하지 않아도 그녀를 볼 수 있다.
‘……아직 쓰러져선 안 돼.’
여기서 눈앞의 강대한 적에게 굴복할 순 없다.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가온은 주먹을 강하게 쥔 채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여기서 항복할 순 없어……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이면 끝이야.”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걸 보아하니 한계인가 보군, 그러다 정말 죽는다, 네가 구해야해겠다는 그녀의 얼굴조차 못 보고 죽을 셈이냐? 어서 굴복해라 가온.”
은근한 말로 권유하는 하운드의 말에도 가온은 흐트러짐이 없었다.
가온은 어떻게든 움직이려보려고 하지만, 역시 힘들었다.
이 압박을 이겨내려면 더한 고통이 필요하다, 온 몸을 짓누르는 이보다 더한 고통, 노예인 가온에겐 너무나도 쉬운 문제였다.
가온은 옴짝달싹 못하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다행히 몸은 꼼짝 못해도 손 정도는 움직일 수 있다.
조금씩 움직이는 가온의 손이 향한 곳은 목에 새겨진 각인, 그 각인으로 향하는 가온의 손의 움직임은 일체의 망설임도 없었다.
파지지직!
목에 손을 갖다 대자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전신에 퍼졌다.
“크으으으윽!”
수십 수백 개의 바늘이 온 몸을 찔러대는 고통과 이전에 없던 타오르는 것 같은 감각까지 느껴진다.
죽을 만큼 아프지만, 이가 갈리도록 악물고 두 주먹을 피나도록 쥔 채 참았다.
‘이, 이 정도면 움직일 수 있어!’
각인을 건드렸다고 가온을 압박하는 하운드의 기운이 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하운드의 기운이 자신을 압박하고 있지만, 각인을 건드린 탓인지 아무런 압박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통으로 발작하는 몸의 반동을 이용해 천천히 손과 팔을 피고 다리를 구부린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가온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던 막심은 입을 벌린 채 가는 눈 까지 번쩍 뜨며 놀라워했다.
“저, 저 자식 대체 어떻게 하운드님의 힘을?”
“크으으으윽!”
가온은 온 몸에 핏대를 세운 채 괴로워하면서 신음성만큼은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런 가온을 찬찬히 보던 하운드는 짜증내거나 놀라워하지 않았다.
하운드는 도리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작게 미소를 지으며 가온을 칭찬했다.
“네 녀석이라면 뭔가 보여줄 줄 알았다, 그래도 이건 좀 대단하군, 내 기운을 온전히 받아내고서 온 몸이 성하지 않은 곳이 없을 텐데 몸을 일으키다니.”
“크, 크으으으윽!”
“아까 목을 건드리던데 막심이 말한 노예의 각인이 그거더냐? 고통으로서 내 압박을 견뎌 내다니 바보 같다해야할지 비범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말은 할 수 있냐?”
“크으그으극, 큭, 크으윽, 후, 후욱, 허, 허어억.”
하운드의 물음에 가온은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달궈진 바늘이 온 몸을 찌르는 것만 같았다.
마냥 느낌만은 아닌지 일어난 가온의 몸은 피투성이었다.
하운드의 기운으로 짓눌렸던 탓에 막혔던 혈관들이 각인의 부작용으로 인한 갑작스러운 팽창으로 버티지 못하고 터진 것이다.
“허, 허억, 허억.”
과다출혈에 머리가 어지럽고 힘이 없지만, 가온은 억지로 몸에 힘을 주었다, 쓰러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눈에 돋보였다.
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꿋꿋이 버티는 가온을 본 막심은 할 말을 잃었다.
저건 고작 사춘기도 안 왔을 꼬맹이도, 천하디 천한 노예도 아니었다.
막심은 허탈하게 웃으며 가온에 대한 평가를 바꾸었다.
“제대로 미친 꼬맹이야.”
경악하는 막심과는 달리 하운드는 더욱 기뻐했다.
“훌륭하다, 그러나 여전히 말하기 힘들어 보이는 군, 힘들면 쉬어라, 몇 분 정도의 유예 정도는 줄 터니.”
“허, 허억, 유예는 무슨, 불어오는 눈바람 때문에 몸이 상쾌해서 만끽 좀 한 것뿐이야.”
“큭큭, 허세 하나는 인정해주지, 그래서 어쩔 거지?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내 권속이 되지 않는다면 난 널 죽일 거다.”
“허, 허억.”
가온은 힘겹게 눈을 들어 하운드를 바라보았다.
적인 가온에 대해 더욱 높게 평가하지만, 적으로 돌아선다면 죽이겠다는 단호한 눈빛이었다.
하운드의 살기어린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가온은 피로 물든 채 바르르 떨고 있는 주먹에 힘을 쥐었다.
전보다 더 심해진 각인의 부작용으로 온 몸이 죽을 듯이 아파온다
아픔에 정신을 놓고 아무 말이나 했다간 죽을 게 분명했다.
말 한 마디만 잘못해도 죽는 지금, 그걸 알면서도 도망치거나 포기하지는 않는다, 미르가 그랬으니깐, 포기하지 말라고.
심호흡을 하며 가온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제부턴 직진뿐이다.’
고통을 참으며 가온은 힘없던 표정을 지우고 자신만만하고 능글맞은 표정을 지은 채 당당히 말했다.
“그래, 인정할 게 하운드 넌 내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야.”
“인정했다는 녀석 치곤 굴복한 것 같지가 않은데.”
“협상이야, 이것만 받아준다면 진심으로 너에게 충성할게.”
“제안? 웃기지도 않는 군, 협상이라는 단어의 뜻을 모르는 거냐, 아님 내가 짐승이라고 놀리는 거냐, 협상은 대등한 전력상에서 이루어지는 거다, 네 놈은 저기 하찮은 말튼 성과 버러지들이 나와 맞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한층 더 살벌해진 하운드의 기색은 당장이라도 가온을 짓누를 것처럼 보였다.
목숨을 잃을 수 도 있는 험악해진 분위기에도 가온은 아무렇지도 않은 채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정정할게 제안이야, 너에게 해 될 거 없는, 받지 않는 게 바보 같은 제안이지.”
“제안이라는 말도 아깝다. 당장 굴복이나 해라.”
“아까 네가 말했지, 왜 굳이 이 고생을 하면서 왔냐고, 보여주기 위해서야, 하운드 너에게 바칠 쓸 만 한 놈을.”
“흠?”
선물이라는 말에 하운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화나거나 싫어하는 기색이 아닌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가온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손을 들어 세 기사와 싸우고 있는 하밀부르크를 가리킨 채 물었다.
“어때 저 녀석? 꽤 쓸 만하지 않아? 비록 자유 해방단의 단장에 불과하지만, 세 성의 유명기사들과 싸워서 버티는 녀석이라고, 수백 명이 넘는 병사들을 한 번에 날려버리기도 하고.”
항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