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튼 지부 자유 해방단 소속인 렘 브란트.
그는 최근 살면서 겪은 일 중 가장 혼란스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야 쓰레기, 빨리 안 치워?”
“무, 뭘 말입니까?”
“저기 있는 쓰레기 말이야, 아 너도 쓰레기니 버릴 때 너도 쓰레기통에 들어가렴.”
“…….”
금발 머리의 주근깨 있는 소녀의 명령에 렘 브란트는 어쩔 수 없이 청소를 했다.
무려 자유 해방단의 소속으로 있는 자신이 고작 땅콩만한 소녀의 말을 들어야 한다니.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지만, 자신에게 명령을 내리는 저 소녀는 평범한 소녀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장난을 자주 칠 것 같은 천진난만한 소녀지만, 실상은 자신의 동료들을 몽땅 다 죽여 버린 이방인이었다.
그 끔찍한 난리 통에서 자신은 운 좋게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그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스스로의 이름을 아르실이라고 밝힌 이방인 소녀는 침대에 편히 누워 손가락 하나로 렘 브란트에게 지시를 내렸다.
“야, 저쪽도 쓰레기 있잖아, 빨리 치워, 쓰레기.”
“아, 알겠습니다.”
“창틀에 먼지 쌓인 거 봐, 똑바로 안 해?”
“머, 먼지요? 어, 없는 데요?”
렘 브란트는 당황했다.
자신이 아까 전에 청소한 창틀인데 치울 게 더 있나?
의아해하는 렘 브란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르실은 창틀에 다가가 손가락 끝으로 창틀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손가락에 묻은 미세한 먼지를 가리키며 아르실은 짜증을 냈다.
“자, 봐봐! 이렇게 먼지가 있잖아!”
“…….”
“왜 말이 없어? 쓰레기 주제에 내 명령을 안 따를 거야?”
“따, 따르겠습니다.”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자신에게 찾아오는 건 죽음이었다.
그냥 죽는 것도 아닌 저 미친 소녀에게 조종당해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버리는 비참한 최후.
죽기 싫은 렘 브란트는 이 악물고 청소했다.
청소하는 렘 브란트를 보며 아르실은 뭐가 또 불만인지 투덜거렸다.
“재미없어, 정말로, 가온이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그 가온이라는 분은 이방인 하운드를 잡으러 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응, 분명히 잘 해내고 올 거야, 가온은 대단하니깐.”
“이방인을 잡을 수 있다니.”
창틀을 깨끗이 청소하는 렘 브란트는 아르실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들은 게 정확하다면 가온이라는 소년은 이방인이 아닌 평범한 소년이었다.
나라에서 손꼽히는 기사도 아니고 어린 소년이 이방인을 상대할 수 있다니.
렘 브란트는 믿기지 않지만, 그걸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으니 속으로 생각했다.
‘이방인들은 거짓말도 잘 치는 군.’
“거짓말? 내가 거짓말 할 거 같아?”
“허, 허억?”
렘 브란트가 속으로만 생각한 걸 아르실이 귀신 같이 알아냈다.
렘 브란트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닫고는 급히 사과했다.
“아, 아닙니다, 그, 그게 아니라.”
“되도 않는 변명은 하지 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히 보이니깐.”
“…….”
렘 브란트는 입을 다문 채 다시금 실감했다.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저 어린 소녀가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생각하는 것조차 멈춘 렘 브란트를 노려보던 아르실은 피식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쫄지 마, 그런다고 안 죽이니깐.”
“저, 정말입니까?”
“네가 가온을 욕하는 생각을 했으면 당장 스스로의 혀를 자르게 했겠지만, 운이 좋았네.”
아르실은 미소를 지은 채 살갑게 말했다.
상냥한 표정과는 달리 나오는 말은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렘 브란트는 십년감수한 표정을 지었다.
아르실은 안도하는 렘 브란트에게 능청맞게 물었다.
“이방인이 그렇게 무서워?”
아르실의 캐물음에 렘 브란트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순수하기 그지없는 소녀의 눈은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는 거 같았다.
아르실은 턱에 손을 괸 채 렘 브란트의 속내를 대신 말했다
“하긴 무섭겠지, 일반인에겐 없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살인에 거리낌도 없는 미친 자들이니깐.”
“제, 제 생각을 어떻게.”
“뻔하지.”
아르실은 키득거렸다.
자신의 생각마저 들통 나자 렘 브란트는 패닉에 빠졌다.
온 몸이 발가벗겨진 기분이다.
아르실은 연신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너무 이방인을 높게 받드는 거 아니야? 이방인도 무적은 아니라고?”
아르실은 자신의 팔뚝을 보여주며 손가락으로 살점을 만졌다.
근육 하나 없는 말랑 말랑한 어린 소녀의 팔뚝.
자신의 연약한 팔뚝을 보여주며 아르실은 재차 말했다.
“이방인은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신체 능력은 육체 본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 한 마디로 기회만 잘 노리면 한 방에 죽일 수 있다 이 말이지.”
“기회만 잘 노리면 된다니, 말이 쉽지 그게 가능한 겁니까?”
“충분히 가능해, 이방인들은 방심을 엄청 잘 하거든.”
“방심이요?”
렘 브란트는 두 눈을 크게 뜬 채 되물었다.
렘 브란트는 얼빠진 표정을 짓자, 아르실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그 못 믿겠다는 표정은? 이걸 굳이 설명해줘야 해?”
“부, 부탁드립니다.”
“성격 좋은 주인인 내가 참아야지, 딱 한번만 설명한다?”
아르실의 말에 렘 브란트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분고분한 렘 브란트의 모습에 아르실은 표정을 조금이나마 풀은 채 설명을 했다.
“나 같은 이방인의 능력은 무궁무진하고 쓰면 쓸수록 능력이 강해져 하지만, 부작용인지 능력을 쓰면 쓸수록 힘은 강해지지만, 동시에 마음의 구멍이 생겨.”
“네?”
렘 브란트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에 구멍이라니 가슴팍에 구멍이라도 생긴다는 건가.
렘 브란트의 표정을 응시하던 아르실은 자신의 머리를 손가락 끝으로 톡톡 건드리며 간단히 요약했다.
“정신에 이상이 생긴다고.”
“아.”
“처음엔 아주 작은 구멍이지만, 능력을 쓰면 쓸수록 그 구멍은 커져가면서 이방인은 나태해지고 자제력을 잃어, 보통 성격이 바뀌지만, 심하면 광기에 젖은 살인마가 되기도 하고.”
이야기를 하던 아르실의 입가가 조금씩 뒤틀렸다.
단순한 미소가 아닌 광기어린 미소였다.
아르실의 표정을 유심히 지켜보던 렘 브란트는 돌연 소름이 끼쳤다.
광기에 젖은 살인마는 멀리 있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작은 소녀 또한 이미 여러 명을 무참히 죽인 살인마였다.
잔뜩 겁을 먹은 렘 브란트의 이마에 아르실은 딱 밤을 날리며 한 소리 했다.
“사람 말 하는 데 자꾸 딴 생각 할래?”
“으윽, 죄, 죄송합니다.”
어린 소녀가 날린 딱밤치곤 몹시도 아팠다.
렘 브란트는 이마를 감싼 채 괴로워했다.
그런 렘 브란트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아르실은 결론부터 말했다.
“하여튼 모든 이방인들은 다 하나 같이 나사가 풀려 있어, 그 틈만 잘 찔러 넣으면 죽일 수 있다는 말씀! 물론 예외는 있지만.”
“예외요?”
“그래, 두 가지 경우야.”
아르실은 손가락 두 개를 펼쳤다.
“능력의 부작용을 뛰어넘어 괴물이 된 이방인은 틈을 노려도 쉽게 죽지를 않아.”
“두 번째는요?”
“방심을 잘 안하는 그나마 정신이 멀쩡한 이방인이지.”
그 말을 하는 아르실의 표정은 의미심장했다.
어떤 이방인이든 능력을 쓰는 이상 망가지는 건 필연이다
최강이라고 자칭하던 루 아르케는 진즉에 미쳤다.
그에 견주는 힘을 가진 미르는 미치지 않기 위해 힘의 사용을 자제하다 당하고 말았다.
방심하지 않는 이방인은 그녀로선 본 적 없는 유형의 이방인이다.
하지만 정말 만약의 그런 이방인이 있다면?
아르실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가온이 상대하는 이방인이 그런 이방인이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딸랑!
방울 소리가 울리며 주위에 퍼져나갔다.
토벌대 앞에 선 하운드는 당당하고 오만하게 외쳤다.
“내 이름, 하운드, 이방인, 살고 싶으면, 꿇어라, 전부.”
하운드의 외침에 병사들은 일제히 몸이 굳었다.
처음에 패기 있게 달려가던 병사들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신의 대장을 일격에 죽인 하운드라는 존재 앞에서 병사들은 패닉에 빠졌다.
“마, 말도 안 돼, 다, 단장이 한 방에 죽었어.”
“그냥 짐승이라며! 저게 이방인이라고?”
“이거 꿈이지? 우리보고 저런 걸 상대하라고?”
“무, 무서워, 나, 도망갈래.”
도망가고 싶어도 두려움 때문에 몸이 굳었다.
이도저도 못하는 병사들을 응시하던 하운드는 짧게 말했다.
“꿇어라, 전부.”
하운드의 위세에 병사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누구도 저 앞에 거대한 짐승에게 저항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을 빼고 말이다.
“와, 말하는 짐승은 처음 보는데? 안 그래 준?”
“그냥 짐승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이방인이야.”
병사들 뒤에서 두 이방인은 한 마디 씩 하며 하운드에게 다가갔다.
다른 사람들하고는 다르게 하운드를 전혀 겁내지 않았다.
밖에 돌아다니는 애완동물을 보는 것 마냥 가볍게 대했다.
카시아는 하운드의 하얀 갈기를 보며 흥분했다.
“저 백색 털 좀 봐봐! 저걸로 코트 짜면 예쁘겠는 걸?”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라 카시아, 저런 가죽은 카펫으로도 못 만들어.”
“헹, 그거 아쉽네, 쓸모없으면 그냥 죽여야겠지? 그 전에 일단 숨을 곳이 없게 만들어야지!”
화르르르륵!
카시아의 손에서 불꽃 채찍이 나왔다.
그걸 본 하운드가 처음으로 반응했다.
“채찍, 불꽃, 느껴짐, 이질적인 힘, 너도, 이방인?”
“짐승치곤 눈치가 빠르네?”
카시아는 가볍게 불꽃 채찍을 휘둘렀다.
처음 보였을 때 불꽃 채찍의 길이는 겨우 2미터.
그러나 막상 휘두르니 그 길이는 수십 미터까지 늘어났다.
휘리리릭!
어마어마한 길이의 불꽃 채찍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주위를 휩쓸었다.
채찍에 닿은 초목들은 순식간에 불에 타 잿더미가 되어버렸다.
깔끔해진 주위를 보며 카시아는 조소를 지었다.
“좋아, 이제 제대로 날뛰어 볼까? 어이 거기 짐승, 지금이라도 순순히 항복하면 이 카시아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고통 없이 보내줄 게.”
“헛소리, 이방인, 살고 싶으면, 꿇어라.”
“이 짐승 새끼가?”
하운드의 말에 카시아는 바로 발끈했다.
그녀의 입가가 뒤틀리더니 쥐고 있던 불꽃 채찍이 더욱 불길을 발했다.
화르르륵!
불길이 얼마나 센지 그녀의 주위에 있는 땅에서 열기가 피어오를 정도였다.
엄청난 열기지만, 카시아의 구릿빛 피부는 멀쩡했다.
열기를 피해 카시아에게서 살짝 떨어진 준은 고개를 내저으며 그녀를 만류했다.
“진정해, 상대는 우리와 같은 이방인이다.”
“하! 저딴 짐승 새끼가 나와 동격일 리가 없어! 크기가 커도 어차피 짐승! 죽이면 그만이야! 나 말릴 생각하지 마!”
카시아의 격분한 외침에 준은 말리지 않았다.
말릴 사람도 없으니 카시아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손에 든 불꽃 채찍을 높게 든 채 거칠게 말했다.
“자 울부짖어라 짐승 새끼야!”
화르르르륵!
채찍을 휘두르자 하늘을 수놓은 불꽃 채찍이 바람보다 빠르게 하운드에게로 날아갔다.
콰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