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보고, 이틀을 보고, 사흘을, 또 나흘을 보고. 이제는 벌써 닷새 째. 매일같이 노가쿠를 보라고 초대받은 유카리는 이제 노가쿠의 노만 들어도 질색을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쿠레이 신사로 피신해서 레이무에게 제발 자신을 숨겨달라고 애원하기까지 했다. 물론 레이무는 평소대로의 엄살이라 생각해서 약간 거들떠봤을 뿐이다. 결코 숨겨주지는 않았다.
“꺄아아아아아악! 살려줘! 나 진짜 못 보겠어! 지루하단 말이야아! 같은 내용만 벌써 다섯 번째야! 오타쿠들도 굿즈는 소장용, 감상용, 포교용으로 세 개만 사는데 난 무려 다섯 번이라고! 살려줘 레이무! 진짜로!”
“와, 나 유카리가 이러는 건 처음 봤어.”
눈을 한계만큼 키워서는 버둥대는 유카리를 레이무가 신기한 눈치로 보았다. 유카리는 가만히 보기만 하는 레이무에게 다시 한 번 절실히 도움을 청했다.
“아니 동물원 우리 속의 동물을 보는 눈처럼만 보지 말고!! 레이무, 도와줘어어!”
“반응 재밌다. 이렇게 며칠만 더 굴려봐.”
“아니이이이이이이이!!”
툇마루에 앉은 채인 레이무는 턱을 괴곤 풉킥풉킥 웃어댈 뿐이다. 평소에 과장된 유카리의 행동이 골릴 때 이렇게 재밌는 걸 잘 몰랐었는데. 앞으로는 조금씩 놀려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코코로는 무표정이지만 나름은 충격을 받은 분위기였다. 유카리를 꽉 붙잡고 있던 양손을 툭 힘없이 놓치면서 어벙한 채로 입을 열고 있었다.
“어- 그렇게 재미없었어?”
“아니, 그건. 같은 장면을 몇 번이고 쭉 보게 되니까 재미있다 생각되던 것도 좀 재미가 줄었다는 거고...... 재미는, 그래! 재미는 있는데 다양성이 없잖아!”
뭐라 뭐라 중얼중얼. 부채를 이마에 갖다 대고 신중한 고민을 하던 모습을 보이던 유카리가 이제는 부채를 코코로에게 겨누며 당당하게 주장했다.
“그래! 시나리오의 다양성을 좀 늘려봐! 한 극장에서 한 영화만 방영하지는 않듯이, 노가쿠사라면 어떤 노가쿠이든지 능숙하게 할 줄 알아야 하는 거지! 그러니까 새로운 노가쿠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봐줄게!”
“봐주는 거지?”
“……그, 음, 그래. 봐줄게!”
“알겠어! 그동안 기다려!”
들뜬 감정을 표하는 건지 기뻐서 그런 것인지 코코로는 팔을 휘둘러댔다.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빠르게 신사 밖을 빠져나갔다. 유카리는 그걸 보며 잠시 한숨을 돌렸다. 오랜만에 당황한 탓인지 진땀까지 나서, 머리를 쓸어내리고는 레이무의 옆에 앉았다. 이제는 하쿠레이 신사조차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에 통탄을 하며 레이무에게 불평불만을 내뱉었다.
“이럴 땐 너무 민폐 끼치지 말라고 내 편 좀 들어주면 안 돼....?”
“너도 저 정도로 끈질겨.”
“아니 우리는 서로가 좋잖아! 일심동체정도잖아! 지금의 난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건데에...!”
“그러면 거절을 똑바로 하지 그랬어.”
“착한 유카리는 그런 거 못해요......”
‘지랄을 한다...’
레이무가 가늘게 뜬 눈으로 유카리를 슬그머니 보았다. 시선이 들키지는 않도록 찻잔을 들어 올리며 시선이 분산토록 했다. 차를 한 잔 홀짝, 들이마신 레이무가 짧게 숨을 고르며 다음 말을 했다.
“뭐, 저러면 며칠 뒤쯤에 다시 나타날 텐데 말이야.”
“에이~ 설마 그렇게 빨리겠어? 영화 하나 만드는데 몇 년이 걸리고, 소설 하나 집필하는데 몇 개월이 걸리는데. 더군다나 가면연극인 노가쿠라면 몇 개월은 걸리겠지! 그 때까지는 자유를 만끽하면 될 거야!”
“과연 그럴려나.”
말을 마친 레이무가 다시 차를 홀짝였다. 옆에서는 유카리가 불길한 소리 말라며 핀잔을 주고 있었다. 사망플래그를 쌓아버린 듯하다고 불길해하는 유카리를 보며, 레이무는 이제 다시 신사가 시끄러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나 하였다.
스즈나안의 접객실은 요즘 따라 사용량이 꽤나 늘은 편이다. 그것은 인간으로 변장한 샤메이마루 아야가 모토오리 코스즈와의 만남을 개인적으로, 또 주기적으로 해온 탓이다. 그것은 오늘이라고 해서 딱히 다르지는 않았다. 현재진행형으로 접객실 의자의 빈자리를 아야가 채운 채였다. 아야는 탁에 놓인 컵을 보고는 씨익 웃었다. 이건 자신이 주었던 선물이었다. 유용케 사용해준다는 점에서 아야는 아주 작은 행복을 느꼈다.
“죄송해요! 정리까지 도와주셨는데, 이런 것밖에 대접을 못해드려서...”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제가 좋아서 한 일인걸요. 코스즈 양이 미안해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도….”
아 귀엽네. 수줍어하는 코스즈의 모습을 보던 아야는 감정이 둥실둥실 뜬다는 소리를 이제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아까 전, 청소하던 도중에 양측의 실수로 손가락이 맞닿는다거나, 무너지는 책장에서 몸을 던져 구출해준다는, 다소 플래그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을 아쉬워하던 감정이 훌렁 날라갔다. 그래, 맞아. 운명적 사건 같은 건 필요 없을 지도 몰라. 이렇게 호감도를 차근차근히 쌓아가기만 하면 되는걸. 입으로는 아빠미소를 지었다.
“아. 그, 그러면 조금 있다가 같이 외출이라도 하실래요? 최근에 용돈을 많이 모아놨어요! 항상 사주시기만 하셨는데, 그러니까! 이번에는 제가 사드릴 테니까!”
“좋아요. 그러면 이걸 다 마시면 바로 가는 걸로….”
오랜만에 코스즈 쪽에서 받아본 제안이다. 감격에 겨워 아야는 단숨에 뜨거운 커피를 들이마시려고 했다. 아주 기분이 좋았다. 벌써 아야의 머릿속에서는 한창 뜨거운 데이트를 하는 자신의 모습이 연상되고 있었다.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그런 행복한 고민이 주류다. 방해만 없었더라면 좋았을 터다. 구체적으로는, 지금 가게 앞쪽에서 울린 땡그랑 종소리 같은.
“아, 네!”
‘…….’
참아 아야. 손님이잖아. 응, 손님이잖아. 보통은 손님 쪽에도 신경을 쓰는 게 당연한걸. 이런 데에다 질투하면 못 써 샤메이마루 아야. 그렇게 아야는 수도 없이 되뇌었다. 결코 질투의 감정에 빠져서 얼굴을 우그러트리거나, 불편함을 표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감정을 추스를지 모르면 저널리스트라는 이름이 아깝…, 아 어차피 요즘은 거짓말쟁이 신문쟁이라 욕먹는구나.
그렇다면 상관없지. 어차피 다른 텐구들이 아는 것도 아니고. 생각만 하던 아야의 몸이 어느샌가 이 행복한 시간을 방해한 인간의 낯짝을 직접 보겠다는 목적을 위해 코스즈를 따라가고 있었다. 가게의 판매대로 들어서, 아야가 본 것은 수많은 책장에 한창 눈길을 주고 있는 코코로였다. 코코로는 아야와 코스즈가 나타난 것을 보고는 물었다.
“저기, 여기에 노가쿠에 관한 서적이나 기록 같은 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