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 동방 환상광시곡 - 1. 신데렐라 케이지 (3)
아나타는 웃음을 얼굴에서 지웠다. 아나타의 무표정한 눈동자가 레이센을 응시했다. 레이센은 아나타의 얼굴에서 아무런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마치 시체를 보는 듯 했다. 붕대 사이로 보이는 창백한 피부가 더욱 그렇게 보이게 만들었다. 심지어 눈동자의 초점까지 흐렸다. 빛이 하나도 없는 눈동자. 죽은 눈깔이라는 말이 무척이나 어울렸다. 움직이지 않을 것 같던 입술이 서서히 벌어졌다.
"결국 용건은 그거였나요?"
"알고 있었던 모양이네요."
"식사를 가지고 와서 식사를 권하길 망정 재미없는 남자와 농담 ㅁㅁ기나 하고 있었다는 건…… 다른 목적이 있었단 소리나 다름 없죠. 아아, 그러고보니까 밥이 다 식었겠네요."
아나타는 얼굴 만큼이나 무감정한 말투로 말했다. 레이센은 경계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장난은 그만둬요. 알 거 다 아는 그 말투. 거짓말을 하려면 제대로 하는 게 어때요?"
"거짓말 아니에요."
"하아?"
레이센은 어이없다는 듯이 아나타를 노려보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침착한 거죠? 거기다가 코스프레니 교복이니 뭐니 알건 다 알고 있잖아요?"
"그게 문제였나요."
아나타는 쓸쓸하다는 듯이 말하려고 했지만 표정도, 말투도 무감정했다. 덕분에 레이센은 아나타를 경계하는 기색을 풀 수 없었다. 어색하게 연기하는 걸로 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나타는 2초 동안 레이센을 바라보기만 하다가 한숨을 쉬었다. 레이센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아나타를 제압할 준비를 몰래 갖추었다.
아나타가 말했다.
"예. 사실 기억상실증은 거짓말이에요."
"역시나였군요."
레이센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왜 거짓말을 한 거죠?"
"그건…… 아무래도 사실을 말해도 레이센이나 에이린이 믿어주지 않을 거 같아서요."
"저희를 못 믿는 건가요?"
"믿을 만한 사람이면 믿었죠. 하지만 난 레이센이나 에이린을 몰라요."
레이센은 어처구니 없었다. 이러나저러나해도 죽을 뻔한 아나타를 살려낸 건 에이린이었다. 생명의 은인을 대놓고 못 믿겠다고 하니, 레이센은 아나타의 뻔뻔함에 할 말을 잏었다. 그걸 아는 지 모르는 지 아나타는 이어서 말했다.
"레이센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지만 죽은 사람보단 살아있는 사람이 더 가치있는 법이죠. 만약 임자 없는 사람이 있다면 살릴 만한 가치가 있겠죠?"
"무슨 소리에요?"
"개소리는 아닙니다. 설명하자면 에이린이 저를 다용도로 팔아먹으려고 살려준 거 일 수도 있다는 거죠. 아, 어쩌면 실험체로 써먹을 지도 모르겠네요."
"……."
레이센은 입을 다물었다. 보란 듯이 사람을 의심하는 사람 앞에서 뭐라 해야할까? 우린 그런 사람이 아니다? 한 번만 믿어봐라? 그도 아니면 속는 셈치고 믿어봐라? 레이센은 고개를 저었다.
"……못 믿겟으면 어쩔 수 없죠."
"그게 싫어요."
"예?"
"내가 레이센과 에이린을 믿을 수 밖에 없다는 것."
레이센은 상대방을 미치광이 취급하는 듯한 눈동자로 아나타를 쳐다보았다.
"그렇잖아요? 전 레이센과 에이린을 믿을 수 밖에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별 다른 수도 없는 걸요."
"……그래서 결론이 뭐에요?"
오락가락하는, 그리고 앞뒤가 맞지도 않는 것 같은 아나타의 말에 레이센은 머리가 아파지는 것 같았다. 아나타는 결심했는지 숨을 크게 들이내쉬고는 하고는 말했다.
"사실대로 말할테니, 웃지만 말아줘요."
"알았어요."
레이센은 여전히 미심쩍은 듯한 말투로 대답하며 아나타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아나타가 말했다.
"……전 사실 다른 세계에서 왔어요."
*
"……."
"……."
침묵이 흘렀다. 아나타는 더이상 설명이 필요하냐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레이센은…… 아나타가 이어서 말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아나타가 말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다른 세계에서 왔다. 설명은 그걸로 충분했다. 사람을 충분히 미치광이 취급할 수도 있고, 혹은 넓은 아량에 발휘해 믿어줄 수도 있고. 그렇지만 레이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아나타가 말하길 기다렸다. 둘 모두 서로 말해주길 기다렸기 때문에 끝이 기약되지 않은 정적이었다.
결국 먼저 이상한 점을 느낀 레이센이 말했다.
"에? 그게 끝이에요?"
"……예? 그게 끝이라니요?"
아나타는 멍하니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이때까지 시체같이 생기 없고 무감정한 얼굴에 처음으로 떠오른 생동감있는 표정이었다. 레이센은 '겨우?'라고 말할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것 말이에요. 설마 그런 걸로……."
레이센은 뒷말을 흐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푸훗! 아아, 이제야 이해되네요. 아나타는 다른 세계에서 온 걸 감추기 위해서 기억을 잃은 척을 한 거죠?"
"……."
아나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레이센은 그런 아나타를 보고 웃음을 간신히 참아가며 말을 이었다.
"난 또 뭐라고. 아나타,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환상향엔 그런 일이 자주 있거든요."
아나타의 눈이 커다래졌다.
"자주 있다고요?"
레이센은 짐짓 진지해졌다.
"예. 자주 있어요. 이 곳, 환상향에서는."
'환상향은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레이센의 말과 동시에 어느 목소리가 아나타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단지 기억이, 목소리가 뇌리를 스쳐지나간 것이지만, 그건 매우 예리했다. 그 예리함에 베이기라도 한 것인지 머릿 속이 욱씬거렸다. 하지만 아나타는 그 기색을 내색하지 않고 레이센의 말을 경청했다.
"환상향은 그러니까…… 인간이나 요괴, 아니면 신과 같은 존재들이 모여사는 곳이죠. 그러다보니까 당연히…… 아나타?"
레이센의 말이 이어질수록 욱신거림이 점점, 아니 기하급수적으로 심해졌다. 머릿 속을 날붙이로 그어버리고, 송곳으로 찔러버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나타는 살짝 정색만 할 뿐 아픈 기색을 전혀 내비추지 않았다. 하지만 정색이라는 그 약소한 차이를 레이센은 이상하게 느꼈다.
레이센이 아나타를 불렀지만 참는 것이 한계였던 아나타는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나타의 정신은 고통을 버텨냈지만 육신은 그러지 못했다. 급기야 육신은 의식의 끈을 놓아버렸고 미아가 되버린 아나타의 의식인 무의식을 향해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어느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뒤따랐다.
'그것을 원치 않는 자라도 말이죠.'
주인을 잃어버린 아나타의 몸은 힘없이 쓰러졌다. 아나타는 그걸 의식하지 못한 채 그저 뇌리에 울리는 목소리가 참으로 얄밉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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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쓰면서 느끼는 거지만 주인공 이름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하면서 후회하게 되는 군요. 당장 유곽이라도 건설해야될 거 같은 기세인데 어떡하나 주인공 고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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