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모코우는 무의식의 심연에 빠진 자신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무의식은 말그대로 심연이었다. 한 치의 틈도 없이 새까맣고 끝없이 고요했다. 그 속에서 자신 외에 인지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자신을 인지할 수 있더라도 그것은 자각몽 같았다. 술에 취한 것처럼 정신은 모호했다. 기억도 엉망진창이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단 한 가지는 기억하고 있고, 명확했다. 무의식에 빠진 자신은 언젠가 의식을 향해 부상할 것이다. 육체가 죽더라도, 바다에 빠진 익사체처럼 결국엔 떠오를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은 죽지 않으니까. 그걸 수도 없이 겪어 왔으니까.
……우!
모코우는 의아해했다. 여긴 분명 무의식의 심연.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야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렸다. 그 목소리는 어디서 오고 있는 것일까?
……코우!
모코우는 깨달았다. 자신은 무의식의 심연에서 부상해 의식을 향해 떠오르고 있는 중이었다. 무의식의 심연에서 자신을 인지하고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는 무의식의 밖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서서히, 하지만 느릿하지 않게 모코우의 정신은 무의식에서 벗어났다.
"모코우!"
후지와라노 모코우는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익숙한 청년의 금방이라도 울려고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는 분명 아까 마을에 데려다주었던 케이네의 제자였다. 청년은 모코우가 깨어나자 여전히 울듯한 얼굴로 말했다.
"모코우! 괜찮은 건가요!"
"……괜찮아."
물론 완전히 괜찮은 건 아니었다. 죽지 않더라도 몸은 고통을 기억한다. 죽고 살아나더라도 죽기 전의 고통은 앙금처럼 남아있다. 하지만 그 고통 덕분에 모코우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죽어본 기억은 처음이었다.
모코우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 그것이 걱정되는지 청년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하긴 모코우의 몸은 겉으로 아무 문제 없어보이더라도 그녀는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로 피웅덩이 위에 쓰러져 있었다. 상처가 없다고 걱정이 되지 않을 리가 없다.
"어떻게 된 일인가요? 아니 그것보다 정말로 괜찮아요? 이렇게 사방이 피투성이인데……."
"내 피 아냐."
"네?"
"집으로 돌아가는데 어떤 요괴가 덤비더라고. 그래서 혼 좀 내줬지. 이 피는 그 요괴의 피야."
"그렇군요…… 그런데 왜 여기에 쓰러져 계셨나요?"
"음…… 좀 피곤하더라고 그래서 잠시 잤어."
모코우는 거짓말을 하는 한 편 자신을 죽인 청년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이라고 믿을 수 없는 힘, 그리고 화염을 뚫고 자신을 순식간에 죽여버린 일격. 아니, 그건 일격이 아니었다. 그녀의 몸에 남은 고통의 앙금이 그걸 알려주었다. 그 외에 짐작해낼 수 있는 건 없었다. 바깥에서 왔다는 것 말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청년이지만 언젠가 찾아낸다. 그리고 복수한다. 어차피 그녀에게 시간은 지겹도록 남아있다. 그래서 모코우는 그 청년에 대한 건 우선 잊고 눈 앞에 있는 청년에게 집중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하늘을 보아하니 아직 저녁은 되지 않았다. 즉, 죽고나서 시간이 그렇게 많이 흐르지는 않았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연회는 아직까지도 진행 중이어야 할테고, 이 청년은 그 연회에서 실컷 먹고 마시고 즐기고 있어야 한다. 설마 연회로 끌고 가기 위해 자신을 찾으러 왔다가 죽어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일까?
하지만 청년을 표정을 보고 그런 형편 좋은 이유로 찾아온 것이 아닐 것 같다는 짐작이 들었다. 자신이 한 거짓말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즉석에서 생각해낸 거짓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텐데 청년에게 그것은 안중에도 들어오지 않은지 미심쩍은 감정 하나 없이 침울했다. 청년은 어떻게 말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우선 입을 열었다.
"그게…… 선생님에게……."
모코우는 거의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온몸의 신경과 관절이 비명을 질렀지만 거기에 귀를 기울여줄 여유는 더이상 없었다. 모코우는 청년의 팔을 잡고 그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가면서 들을게!"
*
서당의 마당은 아침부터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북적했다. 연회가 시작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지만 그 전에 스승인 카미시라사와 케이네에게 일찍부터 안부 인사를 하기 위해 모여든 것이다. 그래서 케이네는 이른 아침부터 옆집 처녀에게 시집을 가려는 청년이나, 아직 젖을 떼지 못한 아이를 데리고 부부, 그리고 배우자를 떠나보낸 늙은 제자를 만나야했다. 매우 바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기 때문에 별로 상관 없었다.
그리고 해가 중천에 뜨자 슬슬 연회 준비가 시작되었다. 사실상 케이네를 위해 준비된 연회이기 때문에 케이네가 할 일은 없었고, 그녀의 제자들도 그녀에게 일을 맡기려 하지 않았다. 케이네가 무언가 도와주려고 하면 그들은 격렬히 거부하며 쉬고 있으라고 했다. 그래서 케이네는 몇몇 제자들과 서당에서 잡담을 나누었다. 과거에 있었던 추억이나 현재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등. 케이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즐거웠다.
향기로운 술 내음와 흥겨운 노랫소리가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할 때쯤, 연회가 시작되었다.
"헤헤, 케이네 선생님은 늙지를 않으시네요. 모코우 누님도 그렇고."
어느 청년이 케이네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옆에 있던 선배(?)가 그 청년의 가벼운 어투를 지적했지만 케이네는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청년이 꺼낸 다른 이름 때문에 아쉬움을 느꼈다. 모코우도 이 연회에 참여했으면 좋을텐데.
물론 케이네도 모코우가 어째서 이 연회에 오지 않는 지 알고 있었다. 이 연회는 그녀를 위해 그녀의 제자들이 벌인 것이다. 연회가 진행되는 동안엔 모코우에게 많은 신경을 써줄 수가 없다. 모코우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져다 준다면 그것은 제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코우가 이 연회에 오길 바라는 이유는 간단했다. 모코우가 다른 사람들과 인연을 갖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어떤 일이라도 겪었는지 모코우는 다른 사람과 인연을 맺는 것을 거부했다. 케이네는 마음 속으로 한숨을 쉬고 아쉬움을 구석으로 밀어두었다.
연회가 진행될 수록 더욱 커져갔다. 거의 행사가 되다시피한 그 연회는 케이네의 제자들 뿐만이 아니라 제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참여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그것을 반겼다. 연회가 커질 수록 케이네에 대한 보답이 커지는 것이라고 생각됬기 때문이다.
그리고 케이네는 서당에서 나와 연회가 진행 중인 곳을 여기저기 둘러보며 늦게 찾아온 제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어떤 감각도 그녀를 심심하게 하지 않았다. 막 제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다른 곳으로 가보려던 케이네는 어떤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 것을 느끼고 흠칫했다. 술이나 고기 냄새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음식 냄새도 아니었다. 그것은 선지 냄새와 비슷했다.
'피 냄새?'
육즙을 완전히 빠지지 않은 채 덜 익은 고기라면 피 냄새가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케이네는 그것이 가축의 피에서 나는 냄새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제자들이 이렇게 많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녀가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녀는 오래 살 수 있었는가? 그녀가 요괴이기 때문이다. 비록 보름달이 뜨지 않는 날엔 인간이나 다를 바 없지만 그래도 그녀는 요괴다. 그리고 그 요괴의 피가 지금 나는 피 냄새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었다.
인간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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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글오글!
과연 케이네에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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