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 2에 최종회 방영 당시 나온 <집단적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은 시청자들에게 큰 혼란을 불러왔습니다. 아무래도 노이타미나의 고질병인 1쿨 11화라는 고집때문에 자세한 설명은 고사하고 본편의 이야기만 풀어가기에도 바빴을 것입니다. 어쩌면 후속작을 위한 떡밥으로 남겼을 지도 모를 일이구요. 실제로 작년 11월 노이타미나 발표 당시 '극장판을 마지막으로 사이코패스 시리즈는 끝났다'라는 언급과 달리 최근 인터뷰를 보면 '사이코패스는 계속된다'라고 답했죠. 극장판의 성공으로 크게 고무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 계속된다는 것이, 후속작이 계속 된다는 것인지, 혹은 소설이나 게임, 코믹스와같은 미디어 믹스 (혹은 외전) 가 계속 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죠.
세계관 설명과 사회를 구성하는 개인의 고독을 다루었던 1기에 비해, 2기는 사회 그 자체를 다룹니다. 아카네가 사는 세계에서 사회란 곧 시빌라 시스템이죠. 더 나아가 말하면 사회, 즉 개개인이 모여 집단을 이룬 카무이를 다루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여기서 애니메이션에는 나오지 않았던 카무이 키리토에 대해 살짝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공식 설정집인 <사이코패스 프로파일링>을 보면, 카무이 키리토는 자신을 포함한 총 8명의 친구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카무이는 그 친구들의 성격과 장래 희망 등을 파악한 후 '친구들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면 되었을 모습'을 상정하여 행동하게 됩니다. 냉정해야 할 상황에서는 평소 냉정했던 A라는 친구의 모습을, 슬플 때에는 타인에게 감정이입을 잘 했던 B라는 친구의 모습을, 화가 날 때에는 매우 거칠었던 C라는 친구의 모습을 꺼내들어 그들을 대신해 감정을 표출합니다. 11화 중반부에 아카네와 카무이가 긴 통로를 걸어가면서 대화를 나누던 씬이 있습니다. 그 때 카무이는 자신을 이루는 친구들의 모습으로 계속 바뀌며 아카네와 대화를 나누죠. 하지만 다중인격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카무이는 그 친구들의 <인격>을 마음대로 스위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의인화하여 그 친구들을 드러내고 있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카무이는 자신을 제외한 7명의 친구를 늘 마음속에 담고, 그들과 함께 인생을 살아왔던 것입니다. 카무이가 여러 방면에서 빠삭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도, 그들의 삶을 대신해서 살아주려는 고집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카무이는 지금껏 살면서 '행복하지 않았던 순간이 없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매우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이지만, 다시 태어나면 되고싶은 것이라는 질문에는 '비행기 사고를 당하지 않았던 나'라는 대답을 합니다.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스스로의 영역에 갇혀 살아온 카무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길게 돌아왔습니다만, <집단적 사이코패스>를 간단히 정의해보고자합니다. 이것은 상술했던 공식 설정집 <사이코패스 프로파일링>에 적혀 있던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저의 개인적인 의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공식 설정집에도 어렵지는 않지만 그 안에 내포된 뜻을 파악하기에는 어려운 소위 논문과 같은 설명이 주를 이루었습니다만, 공식 설정집과 애니메이션에서 나누었던 대화등을 종합하여 고려해보니 나름 납득이 가는 가설이 세워졌습니다.
먼저, 사이코패스2에서 언급이 된 '전능자의 패러독스'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것은 사이가 조지와 아카네의 대화에서 나온 이론으로써 '전지전능한 신은 자신이 들지 못하는 무거운 돌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모순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모순에 비해 해결 방법은 간단합니다. 무거운 돌을 만든 뒤에 자신이 드는 순간에만 가볍게하면 되는 것이죠. 이렇게하면 '명목상' 신의 전능함도 손상되지 않을뿐더러 못하는 것이 없다라는 완전함에도 손상이 가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집단적 사이코패스>의 열쇠가 됩니다.
지금껏 시빌라 시스템은 한 개인을 '독립된 개인'으로써 판단했습니다. 즉, 그가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행사라더라도 주변 환경과는 상관없는 '절대적인 개인'이라는 근거 기준으로 판단을 내렸죠. 그래서 그들이 처리하지 못하는 이레귤러가 계속 생겨날 때마다 그들은 그 이레귤러를 받아들임으로써 (즉, 돌을 가볍게 만듦으로써) 다시 완전성을 유지하는 척을 했습니다. 하지만 카무이가 나타났습니다. 카무이는 엄연히 '독립된 개인'이 아닌 '집단'입니다. 시빌라 시스템이 지금껏 '집단'을 기준으로 삼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집단을 기준으로 삼으면 하나의 집단인 '시빌라 시스템'도 그 심판 대상이 되기 때문이죠. 그들은 '개인'이라는 기준하에 시스템 그 자체를 아예 '예외'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어떻게 카무이가 인식이 되었나 그 연산 과정이 중요하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매우 불친절하게 이러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카무이를 인식한 이후 시빌라 시스템이 스스로의 범죄 계수를 높이는 요인들을 지워가는 과정도 정확한 설명이 이루어지지 않았구요. 카무이와 아카네의 대화도 불친절하기 짝이 없습니다. 마치 '블레이블루'를 보는 것 같았죠. 시청자들은 아무 것도 모르는데 등장인물들은 매우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는 상황입니다.
<집단적 사이코패스>는 <집단>이 기준입니다. 절대적 기준인 개인에 비해 집단은 상대적 개념이죠. A라는 사람을 예로 들어봅시다.
지금껏 A라는 사람은 그 개인이 '기준'이 되어 어떠한 상황에서 도미네이터를 들이대도 같은 범죄계수를 나타냈습니다. 심지어 A가 다니던 회사에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더라도, 그것이 그 개인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 범죄적 기질이 없다면 그 사람은 클리어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집단을 '기준으로 삼아봅시다. A라는 사람은 회사를 다니면서 운동을 다니고, 또 여러 동호회 모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A라는 사람은 이렇게 나뉘어질 수 있습니다.
1. 개인으로써의 A
2. 회사라는 집단 내에서의 A
3. 운동을 하는 집단 내에서의 A
4. 동호회 모임 (집단) 내에서의 A
이제 A에게 도미네이터를 들이대겠습니다.
B는 개인으로써의 A의 사이코패스를 측정하고 싶어합니다. 이 때 범죄계수는 50입니다.
C는 회사 집단내의 A의 사이코패스를 측정하고 싶어합니다. 이 때 범죄계수는 110입니다. (회사에서 괴롭히던 사람이 있었다는 가정 하에)
D는 운동 집단내의 A의 사이코패스를 측정하고 싶어합니다. 이 때 범죄계수는 30입니다.
E는 동호회 집단애의 A의 의 사이코패스를 측정하고 싶어합니다. 이 때 범죄계수는 40입니다.
이런 식으로 상대적인 '집단'이 기준이 되어버리면 A라는 사람의 사이코패스는 그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극심한 변화를 나타내게 됩니다.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의 '평균치'로써의 사이코패스가 측정되는 것이지요. 개인이 클리어해도 집단으로는 클리어하지 않을 가능성이 열리게 된 것이죠. 2기 마지막 회에서 카무이가 시빌라 시스템에게 총구를 들이댔을 때 시스템 전체의 범죄계수는 300이었습니다. 그리고 시빌라 시스템은 '시빌라 시스템 내에서 상대적으로 범죄계수가 높은' 사람들을 제거함으로 범죄계수를 0으로 떨어뜨렸죠. 즉 이제는, '면죄체질자라도 하더라도 그 기준 집단이 무엇이냐에 따라 범죄계수 측정이 가능해진 것'입니다. 무엇보다 상대적이니까요. 면죄체질자들도 개인으로써는 범죄계수가 0이라고 해도, 그들만 모아두고 보면 그들 가운데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들이 존재하겠지요. 카무이가 국가 정보 DB에서 '면죄체질자 (AA)'의 정보를 알아간 것도 면죄체질자를 집단으로 잡기 위한 사전 준비였다고 생각합니다. 면죄체질자라는 개념 자체를 모른다면 그를 하나의 기준으로 삼을 수도 없을테니까요 :)
마지막 화에 카무이가 아카네에게 '너가 총구를 들이대면 다른 색이 될 지도 몰라'라고 하자 아카네는 혼란스러워하며 '난 너처럼 아무 부탁이나 막 들어주지 않아'라는 대사를 하지요. 처음에는 아카네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몰랐지만 저 가설을 세우고 나니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즉, 그 총구를 들이대는 사람이 측정을 하고픈 사람의 기준을 누구로 잡느냐에 따라 색이 달라지게 됩니다. 만일 총구를 들이대는 사람이 악의를 가지고 집단 기준을 이상하게 잡아버리면, 아무리 선량한 사람이라도 범죄계수가 높다는 이유로 처단할 수 있게되는 것이지요. 극단적으로 말해서 한 독재자가 권한을 가지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잡아버리면 합법적으로 정적들을 처리할 수도 있게 된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독재자가 처벌을 받겠지만요) 혹시 '일본 전체'를 기준으로 삼아버리면? 전례에 없는 대량학살이 일어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시빌라 시스템을 '시빌라 시스템'이라는 기준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잡아버리면, 시빌라 시스템 전체를 심판 대상으로 없애버릴 수도 있는 아주 무서운 개념이지요. 아카네가 다른 사람들의 부탁으로 한 사람을 '처단'할 생각을 먹는다면? 카무이같은 대량 학살도 헛소리는 아닐겁니다.
적극적 퇴화로 얻은 진화를 통해 시빌라 시스템은 또 다른 완전성을 획득함과 동시에 자신이 '신이 아니게 될 가능성'도 내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1기에서 부각되었던 '개인의 고독'과 '면죄체질자 측정'건은 해결이 되었습니다. 만일 마키시마보다 카무이가 먼저 나타났었더라면 마키시마는 또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인터뷰에서 나왔던것 처럼,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만 읽는 문학소년이 되었을지도 모르고, 코가미도 아카네 곁에 있었을지도 모를 노릇이죠. 하지만 이제 문제는 '사회 (즉, 집단)적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겠지요. 만일 이것이 공표가 된다면 사람들은 개인의 사이코패스를 맑게 유지하게 위해 '자신들이 속하는 일정 사회 집단 내에서 상대적으로 사이코패스가 흐린 사람들'을 추출해 비난하는 마녀사냥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빌라 시스템의 우려 속에 아카네가 마지막으로 한마디 던집니다.
사회가 개인의 미래를 정하는 것이 아니야. 개인이 사회이 미래를 선택하는 거야.
아마 3기가 나온다면 이 <집단적 사이코패스>의 악용 사례가 나오겠네요. 전술했듯 그 집단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사이코패스 측정 결과가 달라지므로 악의만 가진다면 무고한 일반 시민도 처단할 수 있는 지옥도가 펼쳐질 수도 있으니까요. 1기를 처음 보았을 때에는 시빌라 시스템이 사라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1기와 2기 그리고 극장판 (누설은 아닙니다.)을 모두 본 바로는, 이렇게 모자란 부분을 채워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따지면 사회적으로 모자란 부분을 꼬집으면서 무수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내용이 결코 가볍지는 않으니 스토리를 쓰는데에 다소 애로사항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이 가설에 대한 고찰은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고, 틀린 부분이나 모자란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극장판 개봉이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사이코패스 고찰 붐이 한번 더 일어났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남겨보았습니다 :D 끝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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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네이터를 든 누군가가 악용만 하면 충분히 헬게이트를 열 수 있다는 점에서, 감시관이나 집행관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고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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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을 위해 개개인을 클리어하게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다른 사람을 비난할 것인가. 아카네는 전자를 생각했고, 시빌라는 후자를 생각했죠.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일어나 가능성이 훨씬 크다고 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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