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너의 좋아함은 진정으로 좋아함인가? – 욕망과 진정한 좋아함의 차이
1. 프랑스의 인류학자인 르네 지라르 (René Girard)는 '희생양 이론'을 통해 ‘사회적 배제’ ‘만장일치의 폭력’ ‘다수에 의한 소수 탄압’ ‘욕망의 사회성과 모방’, 그리고 ‘희생양’ 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희생양 이론은, 시스템의 존속을 위해 우리들과 다른 존재를 희생양으로 지목하여 사회에서 배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대상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우리와 같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즉 각각 이질적인 존재들이 시스템 안에서 동화되지않는다면 , 그 시스템에서 그 존재를 배제함으로써 시스템의 안정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이 이론이 유리 쿠마 아라시를 이해하는 데 상당 부분 연관이 되어있음을 알 수있을 것입니다.
2. 유리 쿠마 아라시에서 끊임없이 되풀이 해서 던지는 질문은, ‘너의 좋아함이란 결국 너 자신이 중심이 되는 욕망인가, 아니면 좋아하는 대상이 주체가 되는 진정한 좋아함인가’입니다.
욕망의 중심은 본인이며, 진정한 좋아함은 대상 그 자체를 중심으로 합니다.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좋아한다고 말할 때는 그 대상이 우리의 욕구를 만족시켜주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건 좋아함의 무게 중심이 상대방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곰이 인간을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입니다. 사회 구성원을 억지로 동화시키려는 시스템도 욕망을 바탕으로 하고있습니다. 즉, 투명한 폭풍은 ‘누군가를 나와 똑같이 만들어 개성을 말살하겠다는 욕망’을 바탕으로 합니다. 대상이 나의 것이 되기를 바라는 소유욕을 바탕으로하는 모든 관계들도 사실 욕망을 바탕으로 한다고 볼 수있습니다.
이사장의 좋아함도 일종의 수집벽, 좋아하는 대상을 박제화 하듯이 고정화해서 서랍에 넣어두겠다는 소유욕을 바탕으로합니다.
“우리가 욕망 혹은 열정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연히 혹은 가끔씩 모방적인 것이 아니고 그야말로항상 모방적이다.
우리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욕망은 아주 사회적인 것이다.”
(르네 지라르, 『그를 통해 스캔들이 온다』 중에서)
이러한 모방적 욕구를 통해 사회적으로 동화되지 않는, 뭔가 다른 존재들은 쉽게 배제의 대상으로 지목됩니다. 르네 지라르는 욕망의 충돌로 인한 갈등이 증폭화되고, 사회 공동체의 위기가 있을 때, 사회는 희생양을 준비해서 안정을 도모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역사상 이러한 예는 많이 있습니다. 마녀 사냥이라든가, 나치독일의 유태인 학살, 그외에도 각종 소수자에 대한 탄압도 이에 해당합니다.
유리 쿠마 아라시에는 다양한 욕망의 충돌이 있습니다. 인간 여자아이를 먹기 원하는 곰의 욕망이 있고, 분위기에 적응 못하는 아이를 사회적 악으로 규정해서 배제하고자하는 욕망이 있습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존재는 유리조노입니다.그는 자기 자신의 욕망의 발현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그 시스템을 십분 활용합니다. 즉 시스템의 형성 기저에 깔려있는 숨겨진 욕망을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유리조노입니다.사실 그 이후 등장한 초코는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시스템을 맹신하는 후계자에 불과합니다.
유리조노는 사후에도 긴코의 욕망이라는 형태로 등장해서 곰이 가진 본래의 욕망은 즉 사람 (쿠레하) 를 먹는 것이라는 것을 긴코에게 상기시키죠. 사실, 욕망이라는 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이것에 저항한다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흰 백합과는 구별되는 욕망의 상징, 검은 백합, 여기서는 유리조노를 나타냄)
물론 긴코의 순수함은 스스로 내면에서 자신의 좋아함 속에 숨어들어있는 욕망을 배재해냅니다. 이것을 두개의 분리되는 계단으로 묘사한 이쿠하라 감독의 연출력은 대단합니다!
우리쿠마 아라시에서의 순수한 좋아함은 쿠레하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스미카나, 사람을 먹고자하는 본능적 욕망을 포기하고 쿠레하를 살리기위해 거짓말을 하는 긴코, 그리고 긴코의 사랑을 응원하기 위해 희생하는 루루의 모습에서 잘 드러납니다.
순수한 좋아함은 상대방이 나를 인정해주고 사랑해주기를 바라는 것보다는 먼저 적극적으로 사랑을 주는 것을 의미하기도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룬이 마지막 화에서 한 대사, "약속의 키스를 그냥 바라기만하는 것보다 내가 먼저 하면 되는 거였어." 라는 말의 의미도 다시 생각해볼 만합니다.
쿠레하는 성장형 주인공입니다. 즉, 12화의 중반까지의 쿠레하는 좋아함을 포기하지않고, 주변에 동화되지않으려는 의지를 통해 투명한 존재가 되지않으려는 노력을 하나, 진정한 좋아함의 의미 (즉 욕망이 아닌, 순수한 대상에의 동화라는 좋아함)를 아직 깨닫지 못한 상태입니다. 긴코가 자기와 같은 '인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타인을 자신과 똑같이 만들어 그 본래의 개체가 가진 특성을 말살하겠다는 것으로, 사실 투명한 폭풍으로 묘사되는 사회적 배제와도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즉, 좋아하지만, 욕망이 배제되지않은 두가지 계단을 함께 걷고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는 본인 또한 단절의 희생양이면서 동시에 단절 (곰vs. 인간)을 실행하는 주체가 됩니다. 그리고 쿠레하의 분노의 방향이 사회적 배제, 시스템에 대한 것이 아니라 ‘곰’ 에 대한 것이라는 것도 특기할 만합니다. 물론 12화 중반까지의 쿠레하의 이러한 태도는 1. 정보의 부족 내지는 왜곡 (누가 어머니를 죽였는가) 와 2. 본인의 기억 상실 (상대방이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욕망 실현에 대한 댓가)로 부터 옵니다.
유리 쿠마 아라시의 극 후반 말기, 자기 자신을 깨뜨리는 것이 곧 단절의 벽을 깨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은 쿠레하의 각성과 성장은 이쿠하라 감독의 전작인 우테나의 성장과도 닮아있습니다. 우테나에게 있어서 세계의 혁명은 우선 자기 자신의 틀, 껍질을 깨고 나오는 데에서 시작합니다. 우테나의 주제는 오프닝과 엔딩의 가사, 그리고 등장인물들에 의해 자주 인용되는 데미안의 한 구절,즉 '알에서 깨어나 세계 밖으로 나가기 위해 투쟁하는 새' 등에서도 드러나고, 스토리 라인에서도 드러납니다. 다시말해, 변혁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의 틀을 깨고 나와야한다는 것이지요. 좁게는 여성의 자아와 역할에 대한 고정 관념에서의 해방이지만, 더 넓게 내적 혁명으로서의 한 인간의 성장으로도 볼 수있겠습니다.
주인공인 우테나가 가지고 있는 이중성과 모순 (본인의 자아와 여성적 역할에 대한 기대 사이)등은 그녀 스스로가 어린 시절에 겪은 일의 일부분만을 기억하고, 더욱 더 중요한 나머지 부분을 무의식적으로 억눌러왔다는 점에서도 드러납니다. 이러한 모순은 다양한 사건을 통해서 도전받고 극복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결투까지도 우테나는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었지요. 가장 충격적인 반전이라할 수있는 38화 마지막에서의 안시의 대사는 우테나가 스스로 완전히 그 내적 모순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는 절망적인 외침입니다.
즉, 두 작품에서 여주인공의 기억은 부분적으로 소거되거나 왜곡되어있으며, 이러한 기억의 소거/왜곡이 주인공의 성장을 억누르는 한 요인이 됩니다.
이 두 작품에서 등장하는 계단의 의미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유리 쿠마 아라시와 우테나에서 계단은 각각 건물의 옥상 (유리 쿠마 아라시)과 결투 장소 (우테나)로 이어집니다. 이 장소는 시련의 장소이자 시험의 장소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틀을 깨어부수는 장소입니다.
이 작품이 가지는 사회적 의미는, 개인의 욕망이나 순수한 좋아함도 재판을 통한 승인의 과정을 거쳐간다는 점입니다. 즉, 인간 활동의 기본적인 모티브인 욕망이나 좋아함도 결국 사회의 system 안에서 수용되거나 평가받고 승인된다는 점입니다. 이 작품이 일반적인 백합 장르와 차별되는 점도 이러한 사회적 함의를 보여준다는 것에서 옵니다. 이러한 요소때문에 유리 쿠마 아라시는 비유와 상징이 많은 진지한 퀴어 영화같다는 느낌도 듭니다.
대사의 반복이나 뱅크신은 이쿠하라 감독의 특유의 서명 같은 것으로, 악곡의 후렴구와 같다고 생각하면됩니다.
아쉬운 점은 호흡이 빠른 전개이다보니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 교류보다는 사건의 진행이 우선화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2쿨이었다면, 조금 더 여유있는 전개나 심리 묘사가 가능했었을텐데... 아쉽습니다.
ps. 저에게 이 리뷰를 쓰도록 권유해주신 '재미소년'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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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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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감사합니다. 오타쿠로서, 사실 이런 작픔을 만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하는 것도 있지만, 긴장하게 하는 플롯의 반전이라든지, 시각적 스타일이라든지 여러 면에서 대단히 훌륭하다는 말 밖에는... 혹시 사탕의혼님도 기회가 된다면 감상하시고 나서 의견을 나눠주시면 감사! | 15.04.01 11: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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