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의 갑충 부대>
"야, 그 얘기 들었어? 옆반에 있던 그 전쟁 고아인 애 말이야, 며칠 전에 쓰러졌다며?"
"걔 맨날 책상에 엎드려서 자길래, 그 날 보건실로 실려다는 말 들었을 땐 그냥 꾀병 부리는 건가 싶었어. 근데 알고 보니 잠을 며칠동안 안 자서 그랬다니...."
"얼마나 학교 가기 싫었으면 잠을 안 자고 버티냐...."
시현이 다니던 학교는 얼마 전에 일어난 사건 때문에 시끌벅적했다. 사건이 일어난 건 시현이 대희 쌤과의 듀얼을 치르고 난 그 다음주. 그날 시현은 선생님의 출석 확인에도 대답하지 않고 엎드려 있었다. 아무리 시현이 평소에 학교에서 의욕 없는 모습을 보여줬다지만, 선생님의 말도 제대로 안 듣는 모습이 언짢았는지 선생님은 그를 직접 앞으로 불러내려 했다. 그렇게 시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비틀거리며 선생님에게 다가간 순간.... 시현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사실 시현은 듀얼에서 충격패를 당한 그날부터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래서 아침과 낮은 물론이고 늦은 밤이 되어도 잠들지 않기 위해 억지로 버티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거기다 사건 며칠 전부터 장마 기간이었기에 하루 종일 비가 내린 바람에, 갑자기 떨어진 기온 차로 시현이 지독한 감기에 걸린 것도 확인되었다. 결국 시현은 병가 처리되어 학교에 나오는 대신 보육원에서 간호를 받으며 지내게 되었고, 몸 상태가 안 좋으면 진작에 말했어야지 하는 선생님의 질타는 덤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학원 역시 한동안 가지 못했다. 보육원장에게 전화를 빌려 학원에 연락했는데, 그때 전화를 받은 건 장기 쌤이었다. 몸이 아파서 당분간 학원을 쉬어야겠다는 말을 꺼냈더니 쌤이 어디가 아프니, 지금은 좀 어떻니,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 등.... '괜찮니'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말을 표현만 다를 뿐 결국 같은 의미의 말들로 반복하며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만큼 자신이 걱정되었다는 건가. 하지만 어서 병이 낫기를 바라는 선생님의 바람이 무색하게, 시현은 오늘도 이불과 한몸이 되어 시체가 된 것처럼 누워있었다.
-"시현, 몸 상태는 좀 어때?"
-"......."
-"물었으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냐. 정 말하는 것도 힘들면 고개라도 움직여서 괜찮으면 끄덕끄덕, 아니면 도리도리라도...."
그러나 시현은 대답 대신 몸을 옆으로 돌려서 이불을 뒤집어 쓸 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시현이의 활기를 되찾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라이고우는 어제 아지트로 가던 길에 들었던 사람들의 말을 떠올렸다.
-"시현, 그거 들었어? 너가 썼던 새 카드들, 이제 실물로 발매되어서 공식 듀얼에서도 문제없이 쓸 수 있어. 어때, 감기 다 나으면 한 번 써보고 싶지 않아?"
그러나 라이고우의 기대와는 달리 시현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물론 이건 라이고우가 시현이 겪은 우울증의 원인을 패배로 인한 충격 혹은 바렐스워드를 쓴 게 잘못이라고 생각에 생긴 불안함이라고 단정해서, 핀트를 잘못 잡았기에 일어난 당연한 상황. 그러나 시현이 여태껏 자신의 속마음을 밝힌 적이 없었기에 라이고우는 이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유시현! 정말 이래도 대답 안 할 거야??"
그러자 그제서야 시현이 힘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안해, 라이고우.... 내가 기껏 비공인 카드까지 썼는데도 처참하게 진 패배자인 것도 모자라,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한 채 누워있어서 에너지도 못 줘서...."
-"참나, 또 그 소리야? 그러지 말고 네 상태를 말해보라니깐? 내 말 못 알아 들어??"
-"아니 그게 아니라.... 아... 미안해...."
그러는 사이 시현은 얼굴을 완전히 베개쪽으로 돌린 채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벌벌 떨고 있었다. 갈 곳을 잃고 떨리는 눈빛부터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몰라 일단 미안해만 반복하는 목소리까지, 겁에 질려 멀쩡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유시현...."
-"미안해, 미안하니까 이제 그만...."
-"그러지 말고 내 말 좀...."
-"정말 미안....."
"유시현! 날 봐!!!"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한 라이고우는 갑자기 돌발 행동을 벌였다. 카드 상태에서 시현 주위에서 꼼지락거리는게 답답했는지 느닷없이 실체화를 해서 누워 있는 시현 위로 올라탄 것이었다. 시현과 이불 사이에 라이고우가 껴있는 모습은 옆에서 봤을 땐 꼭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처럼 보였다.
"안 되겠다, 텔레파시로만 주고받으니까 진정성이 안 느껴지나 보지? 이렇게 된 이상 직접 얼굴을 맞대고 본격적인 대화를 해야 겠군. 내 표정을 좀 봐야 고구마를 수십 개는 입에 쑤셔넣은 듯한 내 답답함을 알겠지. 안 그래, 시현?"
"잠깐 라이고우, 이러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그러니까, 빨리 가자고! 지금까진 너가 힘든 거 아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나도 더이상은 못 참겠어."
라이고우는 누워있던 시현을 입으로 물어서 그대로 들어올렸고, 그렇게 시현은 거의 납치되다시피 둘만의 대화 공간인 화장실로 가게 되었다. 잠시 후, 라이고우는 마음으로는 문을 부숴버릴 기세로 쾅 닫아버리고 싶었지만, 너무 소란을 피우면 안 되었기에 뒷발로 화장실 문을 살짝 밀어 닫고는 시현의 코앞까지 다가가 조목조목 이르는 목소리로 경고했다.
"고개 들고 똑바로 바라봐, 유시현. 내가 참다참다 도저히 못 견뎌서 하는 말인데, 너 계속 이딴 식으로 굴었다간 계약이고 뭐고 다 때려칠 줄 알아. 이건 진심이야. 네가 그 날 이후로 기분 안 좋은 건 나도 이해하고 있고, 감기 때문에 몸져 누워서 기분이 더더욱 안 좋은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 근데, 그런 너의 불평불만을 듣는 내 기분은 생각 안 하냐? 넌 그걸 한 두번도 아니고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마다 지겹도록 반복재생하고 있어. 내가 아주 밥 안 주면 울고 토라지는 세 살 배기인 줄 아나 보지? 내가 널 걱정해주는 데도, 넌 알아주는 체도 안 하고 징징대면서 늘 같은 말만 하고 있고.... 정말 돌아버리겠어."
"......."
"물론, 내가 너랑 계약한 주된 이유는 너에게서 에너지를 얻어먹기 위해서이긴 하지. 근데, 네가 계속 이런 식으로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하루종일 우울해있으면 내가 입맛이 나겠냐? 이유가 어찌 됐든 우린 한동안 계속 만나야 할 사이인데, 너의 패배자 타령은 나뿐만 아니라 너도 지치게 만들어! 그러니까 작작 궁시렁대라고!!"
이 말을 듣자 시현은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눈에서 닭똥처럼 동그랔 눈물을 연신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그냥 편하게 울게 해줄까 싶기도 했지만, 너무 크게 울었다간 어디서 아이들을 지켜볼 지 모르는 보육원장이 이상하게 여겨서 들킬 수도 있으니 울음보를 터뜨리기 전에 시현을 진정시키기로 했다.
"울지 마! 뭘 잘했다고 울어대?"
그러면서 라이고우는 옆에 놓여있던 휴지 두루마리를 낚아채, 몇 장을 뜯어내서 시현에게 건냈다. 시현이 눈물을 닦고 붉어진 눈시울로 라이고우를 바라보자, 안쓰러움을 느꼈는지 그는 전보다 훨씬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날 밥만 밝히는 눈치없는 녀석으로 만들지는 말아줘. 이건 진짜로 네가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야. 도움 안 되는 자기비방만 하지 말고, 너의 힘든 점이 뭔지 똑바로 말해. 꼭 나한테 하는게 아니여도 되니까 저 학원의 선생님이든 잘 난 선배든, 아무한테나 좀 알려주란 말이야! 난 어떻게든 널 도와주고 싶은데, 너가 그렇게 마음의 문을 닫고 혼자 움츠리고 있으면 문제의 원인을 모르니까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잖아."
시현은 그 말에 눈물을 완전히 그친 후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럼.... 내 얘기도 하나 들어줄래? 이번엔 네가 말하는 패배자 타령 아니니깐...."
"그래, 어디 한 번 들어보지."
"이건 내 가족 얘기야. 내게 있어선 정말 죽어서라도 만나고 싶을 정도로 그리운 존재이지만, 내 꿈에 수시로 나와서 날 괴롭히는 애증의 대상이기도 하지."
"애증의 대상이라고....?"
당장이라도 보고 싶을 가족일텐데, '애증'이라는 단어 선정에 의아함을 느낀 라이고우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일단 시현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기로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시현의 부모님은 어릴 적부터 함께 한 시간이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주말에, 그것도 가끔씩 여유가 생길 때마다 집에서 지내거나 외식을 하러 가는 정도였고, 평일엔 늦은 밤까지 집에 오지 않았다. 누나 말로는 두 분 다 일자리가 있는 데다 그곳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렇게 생활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렇게 부모님은 시현과 함께 한 기억이 적었던 반면, 누나는 어릴 적 시현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그녀는 오랬동안 집을 비운 부모님 대신에 여러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물론, 친구가 없는 시현이를 위해 자신의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서 같이 놀아주기도 하는 등 따스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조만간 훌륭한 듀얼리스트로 성장할 것이란 말까지 들었기에, 누나를 동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상 경력도 주니어 지역 리그 우승 몇 번에, 작년 대회엔 전국 단위라 훨씬 힘들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4강까지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오죽하면 그 바쁘다는 부모님도 누나가 여러 듀얼 대회에 나갔을 땐 꼭 직접 보러간다고 말했을까.
"이야, 이 집안은 듀얼리스트의 피가 흐르는 건가? 혹시 너희 부모님이 무슨 출생의 비밀 같은 거 안 가르쳐 줬어?"
"아니.... 그런 건 없고, 우리 부모님은 딱히 듀얼을 안 했어. 누나가 유독 듀얼에 재능이 있었던 거지."
"네가 지금까지 한 듀얼을 보면 너도 듀얼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왜 이걸 허락을 안 해준담.... 근데 혹시 누나가 무슨 덱 썼는지는 기억나? 만약 기억이 난다면 누나의 플레잉스타일에 영향을 받았을 법도 한데."
"쓴 덱이 여러가지이긴 한데, 공통적으로 융합 소환을 주력으로 쓰는 덱이야. 이 중에서 특히 자주 썼던 건 '섀도르'랑 '문라이트'였나.... 여러가지 덱을 굴려서 그런지 플레잉스타일도 날마다 달랐어."
"그럼 네가 쓰는 덱이나 플레잉스타일이랑은 연관이 그닥 없네. 아, 애초에 바렐 덱은 동쪽 군인이 쓰던 카드이기도 했고. 그래서, 넌 대체 왜 그동안 듀얼을 못한 거야?"
앞서 말한 이유들 때문에, 부모님께 여러번 누나처럼 듀얼하고 싶다고 졸라댔던 적도 있었다. 처음엔 아직 나이가 너무 어리단 이유로 거절당했다. 비록 시현은 누나랑 겨우 1살 차이밖에 안 났지만, 그래도 내년이면 듀얼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고 부모님의 말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설레어하는 동안 내년에 시현의 생일이 다가오자, 시현은 부모님께 이제 1살 더 먹었으니 듀얼하게 해달라고 부모님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이번엔 듀얼하느라 학업에 손을 놓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하며 시험 점수가 잘 나오면 다시 생각해보겠단 말을 했다. 조금 섭섭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였기에, 평소엔 대수롭지 않게 넘기던 시험에 거의 목숨을 걸다시피 진지하게 임했다. 어떤 시험이든 부모님이 마지노선으로 언급한 90점 이상은 맞는다는 생각으로....
"그래서, 어떻게 됐어?"
"결국엔 다음 내 생일이 오기 전에 성공했어. 노력이 결실을 이뤘다고 해야 하나...."
"오, 이런 말은 좀 무례할지도 모르겠지만 평소 너의 모습을 생각하면 좀 의외네. 그냥 수업 시간에도 엎드려 자길래 공부하고는 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설마 이것도 이미 다 아는 내용이라서 그런 거였나?"
"음.... 처음 시작했을 땐 마냥 쉽지만은 않았어. 처음엔 원래 열심히 안 하던 공부를 붙들려고 하니 당연히 잘 안 되었지. 때론 공부가 뜻대로 안 되는 날도 있어서 몇 번 좌절도 하고, 하루는 일부러 무리해서 12시까지 잠을 안 자고 공부하는 객기를 부리다가 부모님께 혼난 적도 있고...."
그렇게 모든 과목에서 90점 이상을 받고 이 정도면 되겠지 싶어 시험지를 부모님께 보여준 후 다시 물었다. 그러나.... 듀얼하는데 필요한 덱이랑 듀얼디스크, 그리고 듀얼 전문 학원까지 다니기엔 부모님의 현재 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약속을 다음해로 미루게 되었다. 그 다음해에도 같은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 다음다음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쯤 되니 부모님에 대한 시현의 믿음은 금이 가고 말았다. 왜 날 끝까지 몰라주는 거지? 혹시 전에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 시현은 어떻게든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보려 했지만 답이 나올 리가 만무했다. 어떤 날은 부모님이 자신을 내쫓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도 해봤다.
"네가 그 정도로 노력을 했는데도 허락 안 해주다니... 그럼 좀 더 적극적으로 물어볼 수도 있었잖아? 솔직히 너가 한 걸 봐선 듀얼하게 해주는게 맞는데."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있었어. 하지만.... 그때의 부모님의 분위기를 봐선 도저히 못하겠더라."
"대체 왜....?"
"그건......"
어느날 시현은 늦은 밤에 들린 소란에 잠에서 깼다. 분명 집 곳곳의 불이 모두 꺼져있어야 할 밤이었는데, 이상하게 거실에만 불이 켜져있었다. 시현이 들키지 않게 조심스레 방문을 열어 문틈 사이로 본 것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역정을 내며 싸우는 모습이었다. 싸우는 모습을 몰래 보던 중 들켜서 다시 방으로 들어가야 했었기에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우리 이러려고 결혼했나' 같은 소리가 나온 걸 봐선 엄마아빠도 집이 삶의 터전이 아닌, 퇴근 후 잠깐 들르는 장소가 된 이런 생활 방식에 지친 것으로 보였다. 가족 분위기가 이런데, 시현의 듀얼하고 싶다는 말이 그들의 귀에 들어올 리는 더더욱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이혼까지 생각했을 정도로 싸웠다고....?"
"물론 그 말이 완전 진심은 아니였을 거야. 매일같이 싸운 건 아니고 유독 그날 서로 감정이 솟구친 거라 그런지, 결국 며칠 뒤엔 서로 울면서 껴안더라. 그때 완전히 화해를 한 거였다면 참 좋았을 텐데.... 그 뒤로도 몇 번씩 크고 작은 일로 마찰이 생겨서 여전히 불안했어."
그리고 시현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올해는 그나마 시현을 챙겨주던 누나마저 점점 같이 지내는 시간이 줄어들었던 것이다. 누나가 중학생이 되면서 늘어난 학업과 숙제를 이유로 오랬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은 것이었다. 방문을 두드리며 같이 애니를 보거나 놀자고 말해도 돌아온 대답은 늘 정해져 있었다. 그렇게 시현은 평일에는 하루종일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올해 가을..... 제대로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평생 혼자서 살게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고.
"지금도 종종 이런 생각이 들어. 부모님이 서로 싸운 것도 그렇고, 누나가 더이상 나랑 같이 시간을 보내지 않았던 것도, 그리고 전쟁으로 모두들 내 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도.... 이렇게 내 주변 사람들이 자꾸만 사라지는게 어쩌면 다 나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모른다고.
대희 쌤이랑 듀얼했을 때도 누나의 환영을 봤어. 괴한들이 누나한테 듀얼을 걸고 있었는데, 나보곤 뒤도 안 보고 도망치라고 했지. 근데, 난 이 장면을 그날 밤, 그 다음날 밤에도 계속 반복해서 봤어."
"한 마디로 악몽인 셈이군...."
"응, 마치 꿈 속의 누나는 내가 가족들이 죽어나갈 동안 아무것도 못한 걸 강조라도 하려는 건지 그 말만 계속 반복했어. 유시현은 아무것도 못하고 비겁하게 도망친 겁쟁이다, 아무리 듀얼을 해서 날고 기어도 결국 누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그래서 난.... 크흑....."
시현은 숨 쉬기 버겁다는 듯 가슴을 주먹으로 연신 두들겼다. 점점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는 것을 보아, 라이고우는 시현이 얼마나 심적으로 고통을 받았을 지 짐작할 수 있었다.
"난 말이야, 지금까지 듀얼을 즐기면서 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난 그저 듀얼에서 얻은 승리로 이런 죄책감을 잠깐이나마 덜어내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던 거였어. 그리고 그 날은.... 내 모든 걸 쏟아부었는데도 처참하게 지면서, 지금까지 쌓아올렸던 내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기분이었어.
그 날 이후론 난, 그냥 모든게 무서웠어. 사람들도 라이고우도 듀얼도.... 내 내면 속에서 끊임없이 나를 탓하는 목소리들이 메아리처럼 울려퍼져서, 뭐든지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또다시 다른 사람들에게 버림받을까봐...."
시현은 말을 끝내고나선 조용히 고개를 떨구었다.
"얘기가 길었네. 표정 보니까 그날부터 하루종일 기분 안 좋아지는 얘기들만 해서 많이 언짢았나 보구나. 미안...."
"아냐, 시현. 내가 듣고 싶었던게 바로 이거야. 이런 불편한 얘기를 누가 들어주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너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네 고통을 몰라. 모르면 아무리 네가 힘들어보여도 명확한 해결책을 줄 수 없어. 그러게 되면 너만 답답해질 뿐이고. 이렇게 해서라도 네 심정이 뭔지 밖으로 토해내서 참 다행이야."
시현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되니 오히려 미안해야할 건 역시 나군. 괴로워하는 널 위해서 해줄 수 있는게 거의 없어서...."
"아니야, 라이고우. 덕분에 왠지는 몰라도 말하기 전보다는 마음이 조금은 더 편해진 것 같아. 지난 주에 걸렸던 감기도 이제 많이 괜찮아졌고. 그래서...."
시현은 그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주머니에서 덱 케이스를 꺼냈다.
"오늘은 학원에 가볼까 해. 가서 듀얼까지 할 지는 아직 못 정했지만, 네 말대로 내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보고 싶거든."
"좋아, 그것 참 잘 됐군."
하루종일 보육원에 틀어박혀 있다가 오랜만에 나와서 그런가, 분명 다른 사람들에겐 초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이었을 바깥 공기가 시현에게는 색다른 상쾌함으로 느껴졌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가 새하얀 입김과 함께 숨을 내쉬어보니 좀 더 어깨가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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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이 보육원을 나선 시각은 오후 2시. 아직 선생님이 수업을 시작하기 전이다. 아니나 다를까 학원 안에는 수업을 위한 자료를 준비 중이던 장기 쌤이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시현아! 오랜만이구나. 몸은 다 나았어?"
"네, 이제 감기도 거의 다 나았어요."
"그래? 정말 다행이다! 근데 평소보다 좀 일찍 왔네? 아직 수업 시작하려면 한참 멀었는데, 그때까지 심부름만 하려고?"
"아, 그게.... 실은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시현은 말하기 전 침을 한 번 꿀꺽 삼켰다. 과연 선생님 앞에서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선생님이 그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혹시 시간이 된다면, 지금 저와 상담 가능할까요? 실은 제가 요즘 듀얼 관련해서 고민이 좀 있어서...."
"좋아, 때마침 시간도 많이 남았겠다, 선생님으로서 학생의 고민을 안 들어줄 순 없지. 그럼 저쪽 교실로 가서 얘기하자."
그렇게 선생님과 단 둘이서 앉게 되었을 때, 순간 무엇부터 말해야 할 지 몰라 머릿속이 복잡하게 꼬여버렸다. 대희 쌤과의 듀얼부터? 아니면 그 날부터 계속 꿨던 악몽 얘기부터? 아니, 그것부터 말했다간 당장 학원 같은 건 그만두게 하고 정신과 같은 곳에 보내기라도 하는 건 아닌가...
시현이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자 선생님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듀얼 관련 고민이라면.... 혹시 저번에 대희 씨랑 한 듀얼 때문에 생긴 고민이니?"
"네....."
"대희 씨 말로는 네가 듀얼에서 진 것 때문에 많이 속상해했다고 하던데, 듀얼에서 졌다고 너무 상심해할 필요 없어. 너도 그렇고 여기 다니는 다른 학생들도 그렇고, 전부 배우는 단계잖니? 그리고 그 중에는 학원에 온 지 반년이 지나도록 승급을 한 번도 못한 병훈이도 있지만,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 아직 여기 있는 모두가 가공 전의 원석인 만큼, 지금 당장은 부족하다고 느껴져도 시현이라면 분명 나중엔 지금보다도 훨씬 뛰어난 듀얼리스트가 될 거라고 믿어."
아, 그냥 여기서 알겠다고 하고 상담을 끝날까? ..... 아니다, 언제까지 스스로를 속이기만 할 건가? 여기서도 이렇게 무섭다고 움츠려들기만 한다면, 다음엔 몸져 눕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선생님, 조언은 정말 감사하지만.... 사실 제 고민은 단순히 듀얼의 승패에 달린게 아니에요. 이 말을 진작에 했어야 했지만, 꺼내기 어려운 주제라 여태껏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요."
시현은 선생님의 커다래진 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면에 있던 모든 것을 털어냈다. 듀얼 중 뿐만 아니라 꿈 속에서도 가족들의 환영을 본 것과 잠들지 않기 위해 억지로 버티다가 학교에서 쓰러진 일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그러는 사이 선생님의 표정은 심각해지다 못해 경악하여, 아예 한 손으로 입을 막을 정도로 놀란 모습으로 변했다.
"제가 어렸을 땐 듀얼을 하고 싶어서 안달이었어요. 듀얼로 여러 대회를 휩쓸고 다닌 누나를 동경한 것도 있고, 저도 잘하면 주변의 또래들이나 부모님에게 좀 더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그랬는데.... 이젠 무엇을 위해 듀얼을 했는지도 떠오르지가 않아요. 먼저 떠나간 가족들의 환상을 볼 때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을 정도의 분노가 제 몸을 지배하는 것 같아서 괴로워요. 결국 제가 지금까지 듀얼해온 것들도.... 전부 트라우마를 악화시킬 뿐인 무의미한 짓인가요? 역시 저 같은 건 그냥 살아있는게...."
다시 생각해봤을땐 왜 그랬는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우울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조금 과격한 표현을 썼다. 순간 아차싶어서 고개를 든 순간.... 뜻밖에도 선생님은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져있어 시현은 깜짝 놀랐다.
"아니야, 그렇지 않아.... 시현이가 한 듀얼들은.... 전부 무의미하지 않아."
장기 쌤은 고개를 격하게 휘저은 후, 시현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보통 이런 상황에선 안기는 쪽이 눈물을 흘리며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게 일반적인데, 자신보다도 눈물을 더 많이 흘리는 선생님을 보고 시현은 적잖게 당황했다.
"시현이가 여태껏 듀얼하면서 처음 보는 사람들을 만난 것도, 이렇게 내 앞에서 얘기를 털어놓은 것도 전부 네가 용기를 낸 덕분이야.
이런 말이 너에게 믿길 지는 모르겠지만.... 실은 선생님은 여기 학원에 들어오기 전에 시현이처럼 힘든 일을 여러번 겪었어. 그땐 모든게 낯선 타자에서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하려고, 홀몸으로 딸을 데리고 여러 곳을 떠돌아다녔는데.... 여기 대희 쌤과 만나기 전까진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털어놓지 못했어. 만난 후에도 상처를 극복한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장기 쌤은 오래 전 남편을 잃은 모양이었다. 지금까진 그저 시현의 부모님처럼 바빠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시현 못지 않게 기구한 삶을 살아왔었다.
"선생님은 시현이가 듀얼로 남을 해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듀얼 덕분에 시현이가 선생님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과 이어져서,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거야. 누구나 살다보면 힘든 순간이 있고, 때론 좌절할 수도 있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보다도 더 힘든 일을 겪고도 지금까지 희망을 잃지 않은 시현이가 정말 강인하다고 생각해. 그동안 수없이 아픔을 견디느라 수고했고, 이런 속마음을 몰라줘서 정말 미안해...."
이때의 선생님의 말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심이었다는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처럼 소중한 사람을 잃었던 사람인만큼, 그 괴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럼..... 전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선생님은 시현이가 망설인 시간보다도 더 오래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일단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선생님은 시현이가 듀얼을 잠깐 쉬고, 상담이든 약물 치료든 일단 먼저 안정을 취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하지만 정말로 네가 괜찮다고 한다면, 듀얼하는 걸 말리지는 않을게. 선생님도 시현이가 듀얼을 아주 좋아한다는걸 잘 아니까. 시현이는 어떻게 하고 싶니?"
시현은 선생님에게 대답하기 전 라이고우에게 물었다.
-".....라이고우, 넌 어떻게 생각해?"
-"(하, 듀얼 너무 오래 쉬면 그 녀석에게 또 혼날 텐데....) 아, 일단은 나도 장기 쌤처럼 너의 생각에 맞춰주려고. 네 몸 상태는 네가 제일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라이고우의 생각까지 확인한 시현은 잠깐의 침묵 끝에 대답했다.
"일단 저도 선생님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듀얼 말고 다른 방법으로 우선 휴식기를 가지고 싶은데... 대신 한 가지 부탁만 더 들어줄 수 있을까요?"
"그래, 무슨 부탁이니?"
"지금 선생님이랑 듀얼하고 싶어요. 휴식기를 가지기 전의 마지막 듀얼에서 초심을 되찾을 수 있다면, 나중에 다시 복귀했을 때 좀 더 두려움을 떨쳐낼 힘이 생길 것 같아서요."
"초심을 찾기 위한 듀얼이라.... 때마침 시현이가 학원에서 처음으로 상대한 것도 나였지.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구나.
대신, 듀얼 시작하기 전에 약속 하나만 하자. 첫번째, 듀얼에서 지더라도 이것이 진짜 전쟁이 아닌 게임임을 인지하고, 담담하게 털고 일어서는 연습하기. 두번째, 듀얼 중에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선생님에게 꼭, 바로 알려주기. 알겠지?"
"네, 약속 꼭 지킬게요!"
시현은 또다시 새어나올 뻔한 눈물을 닦으면서, 장기 쌤이 내민 새끼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며 미소를 지었다.
"좋아, 시현이가 각오가 되었다고 하니 나도 전력으로 맞부딪혀주겠어. 레벨 테스트용 덱인 디지털 버그가 아닌, 클래스 승급 심사에 쓰는 내 '진짜 덱'으로 말이지!"
양쪽의 듀얼디스크 기동음과 함께 코인이 재빠르게 회전하자, 금색과 검은 색을 오가며 변하던 면이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앞면.... 뒷면..... 앞면.........
시현의 시선이 앞면에 그려진 용의 눈과 마주쳤다.
"듀얼!!"
《TURN 1》
"패에서 속공 마법 [퀵 리볼브]를 발동! 덱에서...."
마법을 발동한 순간, 장기 쌤의 디스크에 빨간 불이 들어왔다. 설마 저번처럼 [증식의 G]를 발동할 셈인가? 그렇다고 해도 현재 패가 썩 좋지는 않은 상태라 최소한의 견제만 세우고 턴을 넘길 생각이였던지라 큰 문제는 아니라고 여겼다.
"그럼 [퀵 리볼브]에 체인해 패의 몬스터 효과를 발동!"
역시나, 선생님의 패에서 카드 1장이 떨어지자 검은 빛깔의 바퀴벌레가 듀얼디스크를 기어올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증식의 G]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큰, 길거리에서나 볼 법한 대형견의 크기와 맞먹는 바퀴벌레였다.
"이 카드는 상대가 몬스터를 특수소환하는 마법 카드를 발동했을 때 특수 소환할 수 있지. 나와라, [응전의 G]!
그리고, 이 효과로 특수소환한 이 카드가 필드에 존재하는 한, 묘지로 보내지는 카드는 묘지로 가지 않고 제외돼."
묘지 자원이 중요한 자신의 덱을 노리고 넣은 카드인가. 이럼 [천구의 성각인]을 꺼내봤자 링크 소재가 몽땅 제외되어서 손해를 볼게 뻔한 상황. 하지만 시현에게도 대책이 없는 건 아니였다. 바로 소재가 묘지로 보내지지 않는 엑시즈 소환.
"카드 1장을 세트하고, 세트한 [팬텀 나이츠 셰이드 브리간딘]을 발동! 자신 묘지에 함정 카드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이 카드는 세트한 턴에도 발동할 수 있습니다. 이 카드를 레벨 4의 일반 몬스터 취급해 특수 소환한 후, 레벨 4인 트레이서와 브리간딘을 오버레이!
엑시즈 소환, [크로노다이버 리단]!
전 카드 2장을 세트하고 턴 엔드입니다."
{유시현 LP 8000, 패 1장 홍장기 LP 8000, 패 4장}
《TURN 2》
"자, 간다! 드로우!"
"스탠바이 페이즈, [크로노다이버 리단]의 효과로 상대 덱 맨 위의 카드를 엑시즈 소재로 흡수합니다!"
흡수된 카드는 [인잭터 단셀]. 전에도 쓴 적 있던, 인잭터의 키 카드다. 분명 이번엔 레벨 테스트 때와는 다른 덱을 쓴다고 했는데, 저 카드는 여전히 들어있는걸 봐선 곤충족 덱인 건 전과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패에서 [비틀트루퍼 스카우트 버기]를 일반 소환하고 유발 효과 발동! 덱에서 또다른 스카우트 버기를 불러오지. 그리고 곤충족 몬스터가 소환되었으니 체인 2로 패의 [비틀트루퍼 스케일 폭탄]의 효과도 발동! 이 카드를 특수소환한다!"
스케일 폭탄은 상대 필드의 몬스터가 효과를 발동하면 곤충족 몬스터 1장을 릴리스하고 그 몬스터를 파괴할 수 있다. 즉, 만약 여기서 그대로 놔둔다면 리단의 효과는 봉인된 것이나 마찬가지. 장기 쌤은 사실상 리단의 효과를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셈이였다.
"그럼 거기에 체인해 리단의 효과를 발동합니다! 타임 리와인드!!"
리단이 톱니바퀴 모양의 포탈을 타고 사라진 사이, 필드에 먼저 나온 첫번째 버기의 몸에 시곗바늘 문양이 새겨졌다.
"소재 중 몬스터 카드를 제거했으니 자신을 엔드 페이즈까지 제외하고, 함정 카드를 제거한 것으로 상대 필드의 앞면 표시 카드 1장을 덱 맨 위로 되돌립니다!"
방금 문양이 새겨진 스카우트 버기는 시선은 앞으로 향한 채 장기 쌤의 몸 뒤쪽으로 이동하며 점점 흐릿해지다가 이내 사라졌다. 꼭 몬스터를 과거로 보낸 것만 같은 연출이였다.
물론 장기 쌤은 그 정도는 이미 예상했다는듯 망설이지 않고 엑스트라 덱의 몬스터 1장을 꺼냈고, 필드 중앙에 푸른 회로가 생성되었다.
"[응전의 G]와 스카우트 버기를 링크 마커에 세트! 나와라, 링크 2! [비틀트루퍼 암드 혼]!
이때, 필드에서 묘지로 보내진 [응전의 G]의 효과로, 공격력 1500 이하의 땅 속성 곤총족을 가져오겠어!"
"그럼 저도 그 효과에 체인, 속공 마법 [합승]! 드로우 이외의 방법으로 카드를 패에 넣을 때마다 1장 드로우합니다!"
"[합승]이라.... 하지만 [증식의 G]에 비하면 드로우는 적게 주는 편이지. 그 정도론 내 전개를 막을 순 없어! [응전의 G]의 효과로 덱에서 [공진충]을 가져온 후*, 암드 혼의 기동 효과를 발동! 방금 패에 넣은 [공진충]을 일반 소환!"
(*: [합승] 효과로 1장 드로우.)
[공진충]이 필드로 나오자마자 곧바로 푸른색의 회로가 필드 위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공진충과 스케일 폭탄이 빨려들어간 후 등장한 몬스터는... 모습이 굉장히 낯익은 녀석이었다.
"곤충족 몬스터 2장을 소재로 [인잭터 피코팔레나]를 링크 소환! 이 때 공진충과 피코팔레나의 효과를 각각 발동! 피코팔레나의 효과로 패 1장을 버리고 덱의 곤충족 몬스터 1장을 암드 혼에게 장착시키겠어."
결국 올 게 왔다. 저 카드로 아마 카드명 제약이 없는 파괴 효과를 가진 [인잭터 호넷]을 장착하려 하겠지. 장기 쌤과 듀얼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인잭터를 떠올릴 정도로, 시현에게 그 카드들의 불도저와도 같은 돌파력은 죽었다 깨어도 잊지 않을 만큼 충격과 공포였다.
"그럼 패의 [환창룡 판타즈메이]의 효과를 발동합니다! 이 카드를 특수 소환한 후, 카드 3장을 드로우한 후 패 2장을 덱으로 되돌립니다!"
"판타즈메이.... 저번에 레벨 테스트 때에도 나온 적 있는 몬스터네. 그럼 묘지로 보내진 [공진충]의 효과로 덱에서 [비틀트루퍼 스팅기 랜스]를 가져오고*, 피코팔레나의 효과로 장착할 몬스터는 [인잭터 호넷]!"
인잭터의 뛰어난 전개력이라면 시현의 필드를 모조리 뚫어버리고도 남기에 몇 장 안 되는 드로우 같은 건 신경 안 쓰고 게임을 닫을 생각인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호넷까지 모인 상태에서 계속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는 터. 그래서 드로우로 패에 잡힌 '이 카드'가 필요한 때였다.
"같은 세로 열에 카드가 3장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패에서 이 카드를 특수소환할 수 있습니다!"
시현이 패의 카드 1장을 꺼내들자 같은 세로열에 나열된 암드 혼, 피코팔레나, 그리고 장착되어있는 호넷이 붉은 빛을 내며 그 카드를 향해 신호를 보냈다.
"패의 [철기룡 티아마톤]을 특수소환하고 효과 발동! 이 카드와 같은 세로열인 다른 카드를 전부 파괴합니다!"
티아마톤이 소환된 세로열에는 그것의 발동 조건을 만족시킨 3장의 카드가 나란히 서있었고, 티아마톤이 경고음을 내며 천천히 입에 달린 총구를 전개시켰다.
"그 발동에 체인해 패에서 속공 마법 발동!"
붉은 빛으로 빛나던 암드 혼이 난데없이 내려온 하얀 실에 꽁꽁 싸매이더니, 온몸이 그대로 커다란 고치 안에 들어가버렸다.
"[초진화의 고치]는, 장착 카드를 장착한 곤충족 몬스터를 릴리스하는 것으로 덱에서 곤충족 몬스터 1장을 특수소환할 수 있지. 호넷을 장착한 암드 혼을 릴리스하고.... 나와라, [궁극변이체 곤충 여왕]!!"
잠시 후, 고치가 황금빛으로 빛나더니... 안에서 무언가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이 꿈틀거리다가, 가느다란 더듬이와 다리가 하나하나 밖으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치가 완전히 벗겨지면서 암드 혼과는 전혀 다른 곤충이 천천히 날개를 펼쳐냈는데, 마치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는 듯한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이 카드가 필드에 존재하는 한, 자신 필드에 다른 곤충족 몬스터가 존재하면 자신 필드의 곤충족 몬스터는 효과로는 파괴되지 않고 상대 효과 대상도 되지 않아. 그러니 피코팔레나는 그대로 필드에 남게 되지!"
대상 대성과 파괴 내성을 부여하는 몬스터라.... 파괴 위주의 견제 효과가 많은 시현의 덱을 저격할 목적으로 넣은 카드인 것 같았다. 저 내성을 뚫을 수 있는 카드는 일부 바렛들의 탄환 효과나 천구의 성각인, 바렐로드의 컨트롤 탈취 정도이니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여도 상당히 까다로운 존재였다.
"자, 그리고 묘지의 곤충족 몬스터 3장을 제외하는 것으로 묘지의 암드 혼은 전장으로 돌아오지. 이 때, 암드 혼의 효과로 게임에서 제외된 [공진충]의 효과도 발동! 덱에서 곤충족 몬스터, [고키폴]을 묘지로 보내겠어.
이어서 [고키폴]의 효과도 발동! 이 카드가 묘지로 보내졌으니 덱에서 레벨 4의 곤충족 1장을 패에 넣고, 그게 일반 몬스터라면 그 몬스터를 특수 소환함과 동시에 그보다 높은 공격력을 가진 상대 필드의 몬스터 1장을 파괴할 수 있지!"
현재 같은 세로열에 위치한 엑스트라 몬스터 존의 사용을 봉인하고 있는 티아마톤을 치울 셈인가. 그럼 이 카드를 쓸 타이밍은 지금 뿐이였다.
"함정 카드, [성유물로부터의 자각]! 티아마톤과 판타즈메이를 소재로 [천구의 성각인]을 링크 소환합니다!"
성각인의 공격력은 0이니 어떤 일반 몬스터를 가져오든 이 카드를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성각인의 상대 카드를 패로 되돌리는 효과는 대상을 지정하지 않으니 웬만한 효과 내성은 통하지 않아 높은 링크의 몬스터를 꺼내는 것도 억제할 수 있었다.
"흠.... 그렇게 나온단 말이지. 그럼 덱에서 [B•F 속사의 알바레스트]를 가져올게.*
이어서 패의 [비틀트루퍼 스팅기 랜스]의 효과를 발동, 내 묘지의 [고키폴]과 네 묘지의 [바렛 트레이서]를 덱으로 되돌리고 이 카드를 특수 소환한다!"
비록 덱으로 돌아간 트레이서는 바렛 싱크론으로 앱소루터를 다시 소환해 서치할 수 있어 큰 문제는 아니였지만, 만약 덱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다른 바렛을 서치한 후 [리볼부트 섹터]로 최대한 많은 바렛을 소생시킬 수 있어서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그 후, 소환에 성공한 스팅기 랜스의 효과로 [비틀트루퍼 랜딩]도 가져오고*....... 이제 배틀 페이즈."
저번 레벨 테스트에선 선보이지 않았던 '비틀트루퍼'라는 테마는 링크 몬스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덱인 것 같다. 이 기세대로라면 더 높은 링크의 몬스터도 나올 법한데.... 아무래도 고링크 몬스터가 엑덱으로 돌아가면 손해가 크니 이 턴에는 최대한 필드를 굳히고 턴을 넘기겠다는 의도로 보였다.
"간다! 궁극변이체 곤충 여왕으로 천구의 성각인을 공격!"
"성각인의 효과 발동! 이 카드를 릴리스하고, 궁극변이체 곤충 여왕을 주인의 패로 되돌립니다! 그리고 릴리스된 성각인의 효과로, 덱에서 [요성룡 라르바우르]도 특수 소환!
라르바우르의 효과로 패 1장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덱에서 [체크섬 드래곤]을 패에 넣겠습니다. 그리고 방금 패에서 버린 [앱소루터 드래곤]의 효과로 [바렛 싱크론]도 서치!"
이어서 피코팔레나가 라르바우르를 파괴하기 위해 채찍을 휘두르자, 시현의 패에서 [체크섬 드래곤]이 튀어나와 커다란 양쪽 날개로 시현을 감쌌다. 라르바우르가 파괴된 후, 스팅기 랜스가 몸통에서 기다란 독침을 쏘았지만 체크섬의 몸체는 약간의 흠집만 났을 뿐 뚫리지 않았다.
{유시현 LP 8000-> 9200}
"체크섬의 수비력은 2400.... 이번 턴은 어쩔 수 없이 넘기지만, 1턴 버텨냈다고 안심해선 안 될걸? 내 전개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깐!
메인 페이즈 2, 마법 카드 [비틀트루퍼 랜딩]을 발동! 방금 패로 돌아간 궁극변이체와 필드의 스팅기 랜스를 하나로 통솔, [비틀트루퍼 크루엘 새턴]을 융합 소환!
크루엘 새턴의 효과로 덱에서 [비틀트루퍼 플로트 스팅]을 패에 넣고*.... 다시 한 번 링크 소환! 소환 조건은 곤충족 몬스터 2장 이상, 암드 혼과 피코팔레나를 링크 마커에 세트!"
2마리의 곤충이 회로에 빨려들어가면서 하단에 3개, 상단 중앙에 1개의 링크 마커가 붉게 물들었다.
"나와라, 링크 4! 가로막는 적들을 꿰뚫는 난공불락의 요새! [비틀트루퍼 인빈시블 아틀라스]!"
다른 링크 몬스터들보다도 더 큰 회로에서 빠져나온건, 콘마이 본사 빌딩과 맞먹는 크기를 자랑하는 장수풍뎅이 형태의 돌격 요새. 비록 저것이 실제 크기가 아닌 솔리드 비전을 통해 과장되게 표현된 연출이라는 것을 시현은 알고 있었지만, 저 기다란 6개의 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땅이 흔들리는 듯한 충격이 일어나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자기자신의 효과로 특수소환된 암드 혼은 필드에서 벗어나면 게임에서 제외되지. 하지만 여기서 크루엘 새턴의 또다른 효과! 곤충족 몬스터가 제외되면, 제외 상태인 비틀트루퍼를 필드로 복귀시킬 수 있어. 이걸로 방금 제외된 암드 혼을 다시 필드로 불러낸다!
그리고 인빈시블 아틀라스의 기동 효과, 내 필드의 곤충족 1장을 제물로 바치는 것으로, 덱에서 다른 원군 하나를 불러오거나 아틀라스의 공격력을 강화할 수 있지. 난 크루엘 새턴을 릴리스하고, [비틀트루퍼 라이트 플레퍼]를 특수 소환!"
양손에 치료약과 붕대를 든 채 잠자리에 타고 있는 또다른 곤충이 필드에 내려앉았다. 모습을 보아 의무병으로 보이는 이 몬스터는 몸이 뒤집어진 채 땅바닥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2마리의 비틀트루퍼를 잡아채 옮겼다.
"그럼 소환에 성공한 라이트플레퍼의 효과로, 게임에서 제외된 스카우트 버기와 스케일 폭탄을 회수할게. 이어서 묘지의 [프레잉 맨티스]를 게임에서 제외해 [베이비 사마귀 토큰] 1체를 소환하고, 그것과 암드 혼을 소재로 [세라핌 파피용]을 링크 소환! 그 후 그 링크 소재만큼 이 카드에 카운터를 놓지. 파피용의 공격력은 자신에게 놓인 카운터 1장 당 200 올라."
{세라핌 파피용 ATK: 2100-> 2500}
마지막으로 메인 페이즈 2, 묘지의 [초진화의 고치]를 제외하고 효과 발동. 묘지의 [인잭터 피코팔레나]를 덱으로 되돌리고 1장 드로우.
카드 1장을 세트하고, 난 이걸로 턴 엔드야."
턴이 끝남과 동시에 포탈이 열리며 리단은 필드로 다시 복귀했다.
{유시현 LP 9200, 패 5장 홍장기 LP 8000, 패 5장}
《TURN 3》
"드로우 페이즈, 드로우!"
"스탠바이 페이즈, [세라핌 파피용]의 효과로 카운터를 1개 제거하고 [응전의 G]를 특수소환하겠어. 그리고 곤충족 몬스터가 소환된 것으로 패의 [비틀트루퍼 스케일 폭탄]도 특수소환!"
스케일 폭탄을 통해 전개를 견제할 셈인가, 시현은 필드를 유심히 바라보던 중 [응전의 G]가 유독 눈에 띄었다. 필드에서 묘지로 보내지면 공격력 1500 이하의 땅/곤충을 서치, 그리고 이것과 작명법이 비슷한 카드 1장이 있었다. 바로 [증식의 G].
그렇다, 스케일 폭탄의 (2)번 효과로 [응전의 G]를 릴리스해서, 상대가 몬스터를 특수소환할 때마다 1장씩 드로우하는 가장 성가신 패트랩인 [증식의 G]를 직접 서치해올 작정이였던 것이다. 이러면 기껏 서치해온 [바렛 싱크론]을 함부로 일반 소환할 수 없을 터.
"자, 스탠바이 페이즈인데 리단의 효과는 쓰지 않는 거야? 운이 좋으면 마법이나 함정을 흡수해서, 드로우를 보거나 스케일 폭탄의 효과를 강제로 뺄 수 있는데 말이야."
"...... 쓰지 않아요. 어떻게든 필드의 몬스터 효과를 쓰면 [응전의 G]를 릴리스해서 [증식의 G]를 갖고 오려는 거잖아요."
"아이고, 이걸 안 속는 구나. 역시 내 수제자라니깐! 하지만 그걸 알아도 이 필드를 돌파하는 건 쉽지 않을 걸?"
[증식의 G]가 벌어다주는 어드밴티지가 얼마나 많은 지는 전에 직접 겪어본 적 있기에, 일단 지금은 최대한 필드의 몬스터의 효과를 발동하지 않고 전개해 저 스케일 폭탄부터 전투로 치워야 했다. 하지만 라이트플레퍼의 효과로 공격을 한 번 막을 수 있고, 전 턴에 세트한 [비틀트루퍼 플로트 스팅] 때문에 몬스터 효과도 봉인된 상황인데 어떻게 전개를 해야 하지....? 그 때 시현의 머릿속에서 한 가지 묘수가 번뜩였다. 전에 콘마이에게서 받았던 '그 카드'라면....
"먼저 리단과 체크섬 드래곤을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2, [아이:피 마스카레나]!
그리고 속공 마법 [퀵 리볼브]를 발동, 덱에서 [바렛 코더]를 특수소환합니다!"
장기 쌤의 듀얼디스크에서 잠깐 불이 들어왔다가 이내 사라졌다. 뭔가 찜찜했지만, 일단 뭔지는 몰라도 지금 쓸 수 있는 카드는 아니겠지.
"링크 2인 마스카레나, 바렛 코더와...."
지금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건 링크 4의 바렐 몬스터 뿐이다. 그리고 그걸 뽑는데에 필요한 몬스터는 적어도 3장 이상. 하지만.... 이 카드가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패의 [바렐로드 R 드래곤]을 링크 마커에 세트! 나와라, 링크 4! 닫힌 세계를 꿰뚫는 폭풍! [바렐로드 드래곤]!"
"여기서 바렐로드를 바로 꺼냈다고?!"
선생님도 바렐로드가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카드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겠지만, 필드에 몬스터가 얼마 없는 상황에서 일반 소환은 물론 플로트 스팅의 사용을 유도하기 위해 다른 몬스터의 효과를 발동하는 일도 없이 뽑을 거라곤 예상 못한 모양이다.
"배틀, 바렐로드로 스케일 폭탄을 공격! 이때, 바렐로드의 효과를 발동! 필드의 몬스터 1장의 공격력과 수비력을 500 내립니다! 안티 에너미 바렛!"
바렐로드의 (2)번 효과에 대해 상대는 카드 효과를 발동할 수 없다. 즉, 상대의 공격 선언에 반응하는 라이트플레퍼는 지금 효과를 써야 했지만 바렐로드에 체인할 수 없으므로 그대로 타이밍을 놓친다. 그리고 스케일 폭탄이나 플로트 스팅 역시 이 효과에 간섭할 수 없었다.
"바렐로드의 공격! 천뢰의 바렐 캐논!!"
링크 4까지 꺼낸 것 치고는 다소 심심한 공격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패 매수나 자원이 상당히 밀리는 상황에서 최선의 방도는 어떻게든 전개 도중 [증식의 G]를 던지는 것을 막는 것 밖에 없었다. 그것까지 허용해버리면 뒤가 없다.
"메인 페이즈 2, 마법 카드 [카오스 테리토리]를 발동해 패의 [휘광룡 세이퍼트]를 묘지로 보내고, 덱에서 [혼원룡 레비오니아]를 패에 넣습니다. 이제 묘지의 성각인, 체크섬, 리단 3장을 제외해서 [혼원룡 레비오니아]를 특수 소환!
소환에 성공한 레비오니아의 효과로 상대 필드의 카드 2장을 파괴합니다!"
자신 필드에 비틀트루퍼가 존재해야만 플로트 스팅을 사용할 수 있었기에, 선생님의 입장에선 카운터 함정을 쓸 마지막 기회였다.
"그럼.... [비틀트루퍼 플로트 스팅]으로 체인! 그 발동을 무효로 하고 파괴하겠어."
하지만, 시현은 이 효과가 막혀도 큰 손해는 보지 않았다. 아직 묘지에 잠들어 있는 카드가 하나 있으니까.
"자신의 몬스터가 상대에 의해 파괴되었으니, 묘지의 [요성룡 라르바우르]가 소생합니다! 그리고, 라르바우르 자기 자신을 대상으로 하여 효과 발동!"
"그렇게는 안 될 걸! 패에서 몬스터 효과 발동!"
선생님이 패에서 카드 1장을 듀얼디스크에 꽂아 넣는 대신, 손목 스냅으로 그 카드를 라르바우르에게 던졌다. 라르바우르에게 그대로 적중하여 꽂힌 카드를 보고 의아해하던 그때, 카드가 전갈 형태의 기생충으로 변해 숙주의 몸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 좀 더 가까이 다가가 살핀 순간 시현은 움찔했다. 이미 완전히 기생충에게 몸을 빼앗긴 건지 라르바우르의 초롱초롱했던 눈이 징그러운 곤충의 겹눈으로 변해있었던 것이다.
"[기생충 파라노이드]를 장착한 몬스터는 곤충족이 되고, 그 몬스터가 곤충족 몬스터를 대상으로 하여 발동한 효과는 무효화돼. 또 곤충족 몬스터를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어서, 원래는 이 카드를 타점 높은 몬스터로 스케일 폭탄을 치우려고 할 때 쓰려고 했지만.... 하필이면 바렐로드는 몬스터 효과 대상이 되지 않는 효과를 가졌단 말이지!"
사실 시현이 전투에 특화된 바렐스워드를 놔두고 바렐로드를 뽑은 건, 저번 대희 쌤과의 듀얼에서 생긴 일 때문에 쓰기 꺼린 것도 있지만.... 드문드문 체인 반응이 걸리는 선생님을 보고 뭔가 더 있다는 짐작이 본능적으로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두 번의 듀얼에선 활약은 커녕 등장조차 못한 바렐로드가 이번엔 오랜만에 에이스다운 모습을 보여준 셈이었다. 만약 바렐로드가 아닌 바렐스워드를 꺼냈더라면... 기껏 뽑은 링크 4 몬스터가 아무것도 못하는 깡통이 되었을 것이다.
"[바렛 싱크론]을 일반 소환하고 효과 발동, 묘지의 [앱소루터 드래곤]을 소생합니다!"
원래는 라르바우르로 스트라이커를 먼저 뽑고, 서치해온 섹터로 바렛 1체를 소생시킨 후 성각인을 다시 꺼내려 했지만.... 라르바우르가 곤충족이 된 탓에 엑덱에 어둠 속성 제약을 거는 바렛 싱크론을 미리 꺼내게 되어 성각인은 포기해야 했다. 필드가 조금 부실해지겠지만 어떻게든 견제를 마련하는 수밖에.
시현이 거침없이 카드를 움직이자, 먼저 싱크론이 회로를 통과해 [스트라이커 드래곤]으로 변했다. 그리고 뒤이어 곤충족이 된 라르바우르가 스트라이커에게 장전되자, 폭발이 일어남과 동시에 묘지의 [바렛 싱크론]이 시현의 손으로 다시 돌아왔다. 뒤이어 스트라이커와 앱소루터가 회로에 빨려들어가면서, [데린저러스 드래곤]이 엑스트라 몬스터 존에 흰 연기를 내뿜으며 등장했다.
"묘지로 보내진 앱소루터의 효과로 [바렛 트레이서]를 가져오고, 필드 마법 [리볼부트 섹터]를 발동해 패의 바렛 2장을 특수소환합니다. 이어서 묘지의 [휘광룡 세이퍼트]를 제외해 R 드래곤을 패로 회수하고, 싱크론을 소재로 [수호룡 피스티]를 링크 소환. 그 후 피스티의 효과로 제외 상태인 세이퍼트를 다시 불러냅니다!"
인빈시블 아틀라스는 공격력이 3000 이하이면 대상 내성과 파괴 내성을 가지기에 당장은 치우지 못하지만.... 적어도 다른 몬스터를 소환하는 것을 방해할 수는 있었다.
"세이퍼트의 기동 효과, 패의 R 드래곤을 묘지로 보내고 [듀얼윌 드래곤]을 서치. 그리고 묘지의 R 드래곤의 효과로 발동해 피스티를 파괴하고 자기자신을 패로 회수합니다.
이어서 트레이서, 세이퍼트를 소재로 [소운바렐 드래곤]을 링크 소환, 패의 듀얼윌을 버리고 [세라핌 파피용]을 파괴합니다! 그리고 이 효과로 링크 몬스터를 파괴했으니, 묘지의 바렛 3장이 소생!"
순식간에 시현의 필드를 몬스터 6체가 꽉 채웠다. 일단 소운 바렐의 효과를 쓴 후에는 링크 2 이하의 몬스터를 불러낼 수 없으니... 시현의 머릿속이 훨씬 더 바빠졌다.
"소운바렐과 싱크론을 링크 마커에 세트! 소환 조건은 토큰 이외의 몬스터 2장 이상! 링크 3, [트로이메어 유니콘]!
유니콘의 효과로 패 1장을 버리고 [응전의 G]를 덱으로 되돌립니다. 그리고, 이때 유니콘이 바렐로드와 상호 링크 상태였으니 추가로 1장 드로우!"
골칫거리였던 응전의 G까지 치웠으니 다음은 이 몬스터를 부를 차례였다. 링크 소환 같은 룰 특수소환엔 이만한 카드가 없었다.
"묘지의 듀얼윌을 제외해 [헤비 트리거]를 서치하고, 발동! 그리고 여기에 트레이서의 효과도 체인!"
[바렛 코더]와, [헤비 트리거]가 폭발하면서 튀어나온 [익스플로드바렛 드래곤]이 함께 푸른 입자로 흩어지자, 8개의 푸른 불꽃이 마법진을 둘러쌌다.
"바렛 코더와 익스플로드바렛 2장을 릴리스 대신 파괴하는 것으로, [바렐로드 R 드래곤] 강림!
그리고 마지막으로, 묘지의 [카오스 테리토리]를 제외해 [천구의 성각인]을 엑스트라 덱으로 되돌리고 1장 드로우. 카드 2장을 세트하고, 엔드 페이즈에 바렛 몬스터의 유언 효과로 덱에서 [매그너바렛 드래곤]을 특수소환합니다. 전 이걸로 턴 엔드."
{유시현 LP 9200, 패 0장 홍장기 LP 8000, 패 2장}
《TURN 4》
"내 차례야, 드로우!"
"스탠바이 페이즈, 매그너바렛을 대상으로 바렐로드의 효과를 발동합니다! 안티 에너미 바렛! 그리고 여기에 매그너바렛의 효과를 체인! 상대 필드의 몬스터 1장을 묘지로 보냅니다!"
물론 매그너바렛을 장전한 바렐로드가 겨냥한 몬스터는 인빈시블 아틀라스였다. 이걸로 장기 쌤의 필드엔 몬스터가 라이트플레퍼 1장밖에 남지 않은 것은 물론, 다른 비틀트루퍼를 불러내는 것도 막아냈다.
"그럼 패에서 [B•F 속사의 알바레스트]를 일반 소환하고 유발 효과 발동, 묘지의 [인잭터 단셀]을 소생시키겠어. 그리고 단셀의 효과로 묘지의 [인잭터 호넷]을 장착. 자, 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지는 이미 알고 있겠지?"
"그렇게 두진 않아요, 트레이서의 효과로 [트로이메어 유니콘]을 파괴하고 덱에서 [바렛 리차저]를 특수 소환! 그리고 유니콘이 파괴되었으니 리차저를 묘지로 보내고 묘지의 마스카레나를 소생, 그 후 마스카레나의 효과로 링크 소환을 실행합니다!"
그 말과 동시에 마스카레나와 데린저러스가 회로로 빨려들어가며 4개의 링크 마커를 붉게 물들였다. 링크 2 몬스터 2장으로 나올 수 있는 링크 4의 몬스터.... 시현의 덱에서 나올 수 있는 건 그것 1장 뿐이었다.
"나와라, 링크 4! [토폴로직 폭탄 드래곤]!!
이 순간, 드래곤족 몬스터가 효과로 묘지로 보내졌으니 묘지의 [영묘의 수호자]를 특수소환하고, 토폴로직의 강제 효과가 발동됩니다! 풀 오버랩!! 그리고 여기에 [스퀴브 드로우]의 효과를 체인!"
잠깐의 경고음 이후 트레이서에게서 일어난 작은 폭발이 한 번, 그리고 토폴로직의 날개에서 일어난 거대한 충격파가 또 한 번, 필드를 휩쓸었다. 그렇게 토폴로직 이외의 몬스터는 전멸한 것으로 보였으나.... R 드래곤은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헤비 트리거]의 효과에 의해 엑스트라 덱에서 특수 소환된 몬스터의 효과를 받지 않은 것이었다.
한편, 분명 아무것도 남지 않아야 할 장기 쌤의 필드에도 붕붕거리는 곤충의 날갯짓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여기에다 토폴로직의 효과를 쓸 거라 예상했어. 그럼 난 파괴된 알바레스트의 또다른 효과 발동, 덱에서 B•F 몬스터 1장을 특수 소환하지. [B•F 독침의 니들]을 특수 소환!
소환에 성공한 독침의 니들의 효과로 덱에서 [B•F 필중의 핀]을 가져오고, 이 카드도 자신의 효과에 의해 특수 소환해. 그 후, 필중의 핀의 효과로 상대에게 200 데미지를 준다!"
{유시현 LP 9200-> 9000}
벌이라기엔 너무나도 작고 앙증맞은 부리를 가진 몬스터가 시현의 손등에 내려와 그대로 침을 쏘았다. 딱히 찔렸다는 기분도 들지 않을 정도의 약한 효과 데미지를 받았을 땐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뒤이어 또다른 독침 하나가 시현의 머리 위를 지나갔다.
"그리고, 독침의 니들의 또다른 효과. 필중의 핀을 제물로, 상대 필드의 몬스터 1장의 효과를 마비시키지. 물론 대상은 R 드래곤이야!"
이렇게 되면 믿었던 R 드래곤의 소환 무효 효과도 무용지물인 상황. 그래도 링크 앞에 몬스터가 소환될 때마다 광역 파괴 효과가 발생하니 적어도 높은 링크의 몬스터를 뽑는데에 지장을 줄 수는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묘지의 곤충족 3장을 제외해서 [비틀트루퍼 암드 혼]을 소생하고, 기동 효과 발동! [비틀트루퍼 스카우트 버기]를 일반 소환해서, 덱에서 또다른 스카우트 버기를 불러낸다! 그리고, 난 스카우트 버기 2장으로 오버레이 네트워크를 구축! 엑시즈 소환, [No.3 지옥선왕 로커스트 킹]!"
링크 소환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선생님은 갑자기 엑시즈 소환을 했다. 심지어 그 엑시즈 몬스터를 꺼낸 자리는 다름아닌 토폴로직의 링크 마커 앞.
"토폴로직의 효과는 강제 효과지? 상대 필드의 몬스터가 효과를 발동했으니, 로커스트 킹의 효과 발동! 엑시즈 소재를 1개 제거해 토폴로직의 효과를 무효로 하고, 로커스트 킹의 표시 형식을 변경하겠어.
그리고 로커스트 킹의 또다른 효과로, 묘지의 곤충족 1장을 소생한다! 물론 내가 소생할 몬스터는, 내 페이버릿 카드 [인잭터 단셀]!"
저번 대희 쌤과의 듀얼 때도 그렇고, 토폴로직은 먼저 필드에 꺼내놓으면 이상할 정도로 효과를 역이용당하는 신세였다. 효과가 강력한 만큼 쓰기 까다롭게 설계된 탓인가....
"단셀의 효과로 묘지의 호넷을 장착, 그리고 호넷을 묘지로 보내고.... 우선 거슬리는 저 세트 카드부터 파괴해주지!"
호넷의 기다란 독침이 세트 카드를 그대로 꿰뚫었으나.... 어째서인지 폭발로 인해 생긴 연기가 걷힌 후 시현의 마/함 존엔 카드가 오히려 1장 늘어난 상태였다.
"세트된 [거울의 힘 런처]가 상대 효과로 파괴되면, 이 카드와 [성스러운 방어막 거울의 힘]을 세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효과로 세트한 카드는 세트한 턴에도 발동할 수 있어요."
"여기서 거울의 힘이라니.... 하긴 레벨 테스트 때 선생님이 저 카드에 쎄게 데였었지. 이 정도면 작정하고 노린 것 같은데 말이야?"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엔 이르다. 호넷의 파괴 효과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으니까.
"장착된 호넷이 묘지로 보내졌으니 단셀의 효과 발동, 덱에서 [인잭터 센티피드]를 특수 소환! 그 후, 단셀과 독침의 니들을 소재로 [인잭터 피코팔레나]를 링크 소환해, 패 1장을 버려 센티피드에게 [공진충]을 장착시키고, 센티피드의 효과로 묘지의 호넷도 장착시키지. 그리고 호넷을 묘지로 보내고 장착되어있는 공진충을 파괴한다!
이때, 공진충의 효과와 센티피드의 효과가 2번 발동해서, 각각의 효과로 덱에서 [비틀트루퍼 스팅기 랜스], [인잭터 기가 맨티스], [잭트라이크-홍황] 이 3장을 가져오지."
효과 1번 썼을 뿐인데 카드 3장을 가져오다니... 벌써부터 숨이 막히는 전개 속도였다.
"피코팔레나의 효과로 묘지의 라이트 플레퍼, 세라핌 파피용, 인빈시블 아틀라스를 덱으로 되돌리고 1장 드로우. 그리고 암드 혼과 피코팔레나로 다시 인빈시블 아틀라스를 링크 소환한다!
이어서 센티피드에게 패의 [인잭터 기가맨티스]를 장착하고, [잭트라이크-홍황]을 발동! 덱에서 2장 째의 단셀을 불러오고, 센티피드와 기가맨티스의 효과에 의해 덱에서 [인잭터의 마검 잭트칼리버]를 패에 넣고 묘지의 또다른 단셀을 소생하지."
"패의 스팅기랜스의 효과로 내 묘지의 스카우트 버기와 네 묘지의 매그너바렛을 덱으로 되돌리고 이 카드를 특수 소환, 그 후 소환에 성공한 것으로 덱에서 [비틀트루퍼 포메이션]을 서치!
그리고 묘지의 [비틀트루퍼 랜딩]의 효과로, 곤충족 2장을 제외해 이 카드를 패에 넣어. 그리고 이때 제외된 [공진충]의 효과로 [고키폴]을 묘지로 보내고, [고키폴]의 효과로 [비틀트루퍼 어썰트 룰러]를 서치.
이제 [비틀트루퍼 랜딩]을 발동, 센티피드와 스팅기 랜스를 소재로 [무사충단의 중기병]을 융합 소환!"
게처럼 큰 등딱지를 가진 곤충 위에 탑승한 갑충 기사 앞에서, 장기 쌤의 필드에 서있는 2명의 단셀 중 하나가 호넷의 독침을 총에 장착했다. 여기서 원본 거울의 힘이 파괴된다면.....
"단셀의 효과로 호넷을 장착, 그리고 호넷의 효과로 우선 [리볼부트 섹터]부터 파괴할게. 그리고 장착된 카드가 묘지로 보내졌으니 단셀의 효과로 2장 째의 센티피드도 특수소환!
마찬가지로 새로 소환된 센티피드의 효과로 호넷을 장착, 이번엔 R 드래곤을 파괴할 거야. 토폴로직은 마스카레나를 소재로 꺼냈으니 호넷이 안 통할 테고. 맞지?"
선생님은 세트 카드보다는 이미 필드에 존재하는 앞면 표시 카드들을 우선적으로 정리해갔다. 잘못 찍었다간 덱에서 2장 째의 성방이 깔릴 테니 신중하게 접근하려는 의도겠지.
"여기서 다시 또다른 단셀의 효과를 사용해서 묘지의 호넷을 장착, 하지만 이번엔 효과를 바로 쓰진 않을 거야. 지금 몬스터 존이 가득 차서 단셀의 리쿠르트 효과를 못 쓰거든. 그래서, 여기서 [무사충단의 중기병]의 효과를 발동! 자신 필드의 곤충족을 포함하는 필드의 몬스터 2장을 게임에서 제외하지. 난 센티피드와 토폴로직 폭탄 드래곤을 제외하겠어!"
센티피드의 희생으로 메인 몬스터 존 하나가 비어버리자마자 그의 복수라도 하려는 건지 곧바로 호넷의 독침이 세트 카드 1장을 꿰뚫었다. 파괴된 카드는.... [거울의 힘 런처]. 그리고 덱에 있는 2장 째의 성방이 추가되면서 시현의 필드의 세트 카드가 3장이 되었다.
이어서 단셀의 효과로 불려온 3장 째의 센티피드가 호넷을 발사해 성방 하나를 파괴했지만, 아직 또다른 성방이 남아있었다.
"이번 턴엔 게임을 못 끝내겠지만, 그렇다고 턴을 그냥 넘겨줄 순 없지. 우선 인빈시블 아틀라스의 효과로 센티피드를 릴리스하고 라이트플레퍼를 덱에서 특수 소환, 소환 성공 시 효과로 스팅기 랜스와 스케일 폭탄을 패로 회수할게."
선생님의 말대로,성방을 제거하지 못할 것을 대비한 건지 링크 몬스터인 인빈시블 아틀라스와 중기병을 제외한 나머지 몬스터들은 전부 수비표시였다. 거울의 힘 런처를 또다시 파괴하기 전 공격 표시로 꺼낸 센티피드를 릴리스한 것도 아마 이 때문이겠지. 그 둘을 제외한 나머지 몬스터들은 공습에 대비라도 하듯 몸을 엎드렸다.
"인빈시블 아틀라스와 중기병은 각각의 효과에 의해 상대 효과로는 파괴되지 않지. 이 2장으로 다이렉트 어택이다!"
거대 요새가 적진에 있는 시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다 말고 자리에서 멈췄다. 그리고 요새에 탑승한 수많은 부대원들이 하나같이 모습을 드러내 석궁을 시현을 향해 조준했다.
철컥..... 피융!! 공기를 가르는 매서운 소리와 함께 수많은 검은 점들이 하늘을 메웠다. 저게.... 다 화살이라고? 공격에 완전히 압도된 그때, 전까지는 맑았던 하늘이 핏빛으로 물들고 여기저기서 회색 안개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분명 평범한 화살이었어야 할 검은 점들에서 붉은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일찍 쏜 '화살' 몇 개가 시현의 앞쪽에 떨어졌을 땐 버섯 구름 모양의 폭발이 시현의 앞을 가렸다.
또 시작이다. 지금 이 상황을 그날의 기억과 겹쳐본 것이다.
"[성스러운 방어막 거울의 힘] 발동! 상대 필드의 공격 표시 몬스터를 전부...."
시현은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사적으로 거울의 힘을 사용했지만.... 방어막은 시현을 전혀 보호해주지 못했다. 화살들은 소나기처럼 쏟아져내려와 얇은 방어막을 손쉽게 박살내고는 그대로 시현에게 박혔다.
"윽.... 으윽...."
{유시현 LP 9000-> 3500}
시현이 잠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난 자리 주위엔 폭발의 잔재에서 나온 불씨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리고 저 불씨들은 진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패닉 상태에 빠진 몸이 진짜라고 여기고 있는 탓인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유독가스라도 마신 것처럼 목이 타들어가는 통증이 느껴졌다.
"메인 페이즈 2, 라이트플레퍼와 단셀을 소재로 2장째의 암드 혼을 링크 소환. 그 후 묘지의 곤충족 1장을 제외하는 것으로 패의 [비틀트루퍼 어썰트 룰러]를 특수 소환, 그리고 암드 혼과 어썰트 룰러를 소재로 [세라핌 파피용]을 다시 링크 소환하겠어. 링크 소재는 2장, 따라서 카운터가 2개 쌓이지."
"이제 [인잭터의 마검 잭트칼리버]를 2장 째의 단셀에게 장착, 그리고.... 소환 조건 확인, 장착 카드를 장착한 수비력 2000 이상의 곤충족을 릴리스! 나와라, [완전체 그레이트 인섹트]!!"
장기 쌤의 머리 위로 인빈시블 아틀라스의 크기와 맞먹는 나방이 날갯짓과 함께 거센 돌풍을 일으키며 필드 위로 날아올랐다. 소환 조건으로 보건대 분명 레벨 테스트용인 디지털 버그 덱에서도 충분히 꺼낼 수 있던 카드였지만, 그땐 등장하지 않은 건 그만큼 실전에서 쓸 법한 강력한 효과를 가졌다는 뜻일 것이다.
"이 카드는 전투로는 파괴되지 않고, 필드 존에 카드가 존재하면 서로의 베틀페이즈 중에 1번, 상대 필드의 몬스터를 전부 파괴할수 있어. 그리고 필드 마법은 좀 전에 미리 준비해놓았지! "
그 말과 동시에 선생님의 필드에 [비틀트루퍼 포메이션]이 발동되며, 장기 쌤의 몬스터 뒤로 수많은 보병들이 마치 개미 떼처럼 먼지를 일으키며 필드 앞으로 전진했다. 일단 지금은 메인 페이즈 2이기에 저 군대들이 양쪽 필드를 나누는 경계선을 넘어오는 일은 없었지만,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치 마지막 턴이라고 경고하는 듯한 압박을 받았다.
"그럼 엔드 페이즈, 내 필드에 공격력 3000 이상의 곤충족이 존재하니 묘지의 곤충족 1장을 제외하는 것으로 [비틀트루퍼 플로트 스팅]은 내 필드로 다시 세트돼. 난 이걸로 턴 엔드."
어찌저찌 턴을 받았지만 현재 상황은 최악이었다. 선생님의 필드엔 보이는 것만 해도 몬스터 효과를 무효로 하는 로커스트 킹과 세라핌 파피용의 효과로 소생시킬 독침의 니들, 그리고 몬스터를 제외시키는 중기병이 있었다. 그리고 세트된 카드는 무려 카운터 함정에, 패엔 묘지의 몬스터를 덱으로 되돌리는 스팅기 랜스와, 자체적으로 소환되어 필드에서 효과를 발동한 상대 몬스터를 파괴하는 스케일 폭탄도 있었다.
반면 시현의 필드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태에, 이번 턴에 파괴된 매그너바렛의 유언 효과도 스팅기 랜스에 의해 저지당했다. 안그래도 승산이 보이지 않는데, 지금도 시현의 눈앞에선 살려달라고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어 도저히 듀얼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였다.
"시현아, 괜찮은 거 맞니? 듀얼을 계속할 수 있으면 손이라도 들어줘."
이 끔찍한 비명들 속에서, 시현이 오랬동안 일어서지 못한 것을 본 듯한 선생님의 목소리도 희미하게 들리긴 했지만.... 그것만으론 다시 일어날 힘이 나지 않았다. 곧 다가오는 드로우 페이즈를 위해 카드에 손을 갖다대려고 해도 몸이 완강하게 거부하며 겁에 질린 듯 잔뜩 움츠려버렸다.
"시현아, 우리 뇌는 마치 청개구리 같아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 할 수록 오히려 그게 머릿속에 각인되어서 더 괴로워져. 그러니까, 반대로 살면서 시현이가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려 보는 건 어때?"
하지만 시현은 '행복'이라는 말에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 전 이제 행복하다는게 뭔지도 잘 모르겠어요. 가족들이 살아있던 과거에도 전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겁쟁이였어요. 듀얼이든 뭐든 주위의 인정을 받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타인이 두려워서 가장 친한 사이인 누나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말조차 못한 그런 한심한 존재였는데.... 전 지금도 듀얼은 하고 있을 지 언정 그 학원에 있는 몇시간을 빼면 그때랑 달라진게 없어요. 그러게, 이젠 제 듀얼을 지켜봐줄 사람들도 다 떠나고 주변엔 아무도 없는 지금 듀얼을 실컷 해봐야 무슨 의미가....."
"아니, 의미없지 않아. 비록 가족들은 먼저 갔더라도, 앞으로 계속 혼자일 거란 소리는 아니니까! 시현아, 네 뒤를 봐!"
그러자 솔리드 비전으로 생성된 필드 마법의 풍경 속에서, 뜻밖의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아니 누군가들이 교실 안으로 들어오고 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시현에게 있어 반가운 얼굴들도 있었다.
"우리가 듀얼하고 있던 사이에 학원 친구들이 들어왔어. 자 얘들아, 다들 시현이를 위해 한 마디씩 보태주자!"
선생님에 말에 수많은 인파들 사이로 병훈이 가장 먼저 비집고 들어와 입을 열었다.
"시현아,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해! 너는 스스로가 과거와 비교해서 달라진게 없다고 생각할 지 몰라도, 사실은 이미 넌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 선생님이 듀얼은 하나의 대화라고 가르쳤어. 듀얼은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플레이어들이 얼굴을 마주 보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라고! 그러니까, 네가 지금까지 한 수많은 듀얼들이 네가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는, 살아있는 증거야!"
"도움을 요청하는 건 절대 부끄러운 짓이 아니야. 힘들 때가 있으면 뒤를 돌아봐, 나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널 지켜봐주고 있잖아! 우린 언제든지 준비되어있어!"
시현과 초면인 다른 아이들은 처음엔 머뭇거리다가, 병훈이와 류 선배가 선봉장이 되어 격려하는 것을 보고 다들 짧게나마 한 마디씩 응원의 말을 건냈다. 분명 살펴보면 힘내, 포기하지 마 같은 별거 아닌 단순한 말들인데, 어째서인지 이 말들이 모이니까 알 수 없는 힘이 몸에 들어오는 것 같았다. 뭔가.... 마음이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나도 짧게나마 보태자면.... 내가 지금까지 에너지를 받으며 지켜봐온 넌 여기서 무너질 사람이 아니야. 난 안다, 네가 나보다 정신적으로 더 강한 존재라는 걸. 그러니 이제 와서 기죽을 필요 없어! 넌 너의 듀얼을 계속하면 돼!"
-"라이고우.... 정말 고마워. 이번 듀얼은, 여기 수많은 사람들과 널 위해서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게."
모두의 응원을 받은 후 시현은 등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을 받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말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을 정도로.
{유시현 LP 3500, 패 2장 홍장기 LP 8000, 패 3장}
《TURN 5》
"간다..... 드로우!!"
시현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간절한 목소리로 카드를 뽑았다. 카드를 쥔 손이 땀에 젖을 정도로 떨리는 순간..... 시현의 덱은 그의 의지에 답해주었다. 지금 이 상황을 타개할 비장의 카드가 나온 것이었다.
"마법 카드 [아르테미트 슬레이]! 엑스트라 덱의 [바렐로드 F 드래곤]을 묘지로 보내고, 그것과 종류가 같은 몬스터.... [무사충단의 중기병]을 엑스트라 덱으로 되돌립니다!"
"그리고, 묘지의 [휘광룡 세이퍼트]를 제외하는 것으로 효과 발동, [혼원룡 레비오니아]를 회수합니다. 여기에 체인?"
여기서 패의 스팅기 랜스의 효과를 쓰면 저 효과를 불발시킬 수 있다. 하지만 시현에겐 아직 공개되지 않은 패가 2장 있고, 지금 묘지에 빛 속성 몬스터가 남지 않았으니 레비오니아를 꺼낸다 한들 필드에 타격을 줄 수는 없다. 아마 견제를 빼기 위한 미끼일 것이라고 생각한 장기는 별다른 체인을 걸지 않았다.
"그럼 묘지의 어둠 속성 몬스터 3장을 제외해 레비오니아를 특수 소환, 그 효과를 발동합니다! 상대 패 1장을 무작위로 덱으로 되돌립니다!"
"소용없어! 네가 필드의 몬스터 효과를 발동한 순간 로커스트 킹의 효과가 발동한다! 그 효과를 무효로 하겠어!"
로커스트 킹의 효과를 쓴 후 자기자신의 표시형식을 바꾸면 묘지의 곤충족 1장을 소생시킬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노리는건 [궁극변이체 곤충 여왕]을 다시 불러내는 것. 그렇게 되면 필드의 곤충족은 광범위한 내성을 갖게 되어 돌파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 패에서 속공 마법 발동!"
시현의 필드에 발동된 카드에서, 묘지에 잠들어있던 바렐로드와 F드래곤이 나란히 총구에서 포격을 가했다. 바렐로드가 쏜 탄환은 [궁극변이체 곤충 여왕], [B•F 독침의 니들], [고키폴]을 꿰뚫었고, F 드래곤이 쏜 탄환은 폭발하며 세라핌 파피용을 화염으로 뒤덮었다.
"아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베이오넷 퍼니셔]는, 필드/묘지의 '바렐' 몬스터의 종류에 따라 다른 효과를 적용합니다. 묘지에 링크 몬스터인 바렐로드와 융합 몬스터인 F 드래곤이 존재하니, 상대 묘지의 카드 3장을 제외하고 상대 필드의 몬스터 1장을 제외했어요."
"그럼.... [세라핌 파피용]의 효과로 독침의 니들이라도 살리려고 했는데 왜 체인이 걸리지 않은 거지?"
"자신 필드에 공격력 3000 이상의 몬스터가 존재하면, 이 효과에 대해 체인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자 장기 쌤은 로커스트 킹의 울음소리에 무력화된 레비오니아를 바라보았다. 아, 진작에 이걸 노린 거구나. 이럴 줄 알았으면 스팅기 랜스의 효과를 쓰는 거였는데, 하며 후회했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상황이었다.
"근데.... 몬스터를 제외할 거면 견고한 효과 내성을 가진 인빈시블 아틀라스를 제외시키지, 왜 하필 소생시킬 몬스터도 없어진 [세라핌 파피용]을 고른 거야?"
"그러게. 매그너바렛 같은 걸로 치우려 해도 스케일 폭탄이나 플로트 스팅으로 격발을 저지할 수 있을 텐데."
듀얼을 지켜보던 아이들이 의아해하는 와중에도 시현의 눈빛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걸 본 장기는 속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저건 절대로 실수가 아니라 의도한 것일 거라고. 하지만 무엇을 의도한 건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이어서, 묘지의 [바렐로드 F 드래곤]을 제외하는 것으로 어둠 속성 링크 몬스터 1장을 소생시킵니다! 대상은.... [아이:피 마스카레나]!"
"그럼 그 발동에 체인해 [비틀트루퍼 스팅기 랜스]의 효과를 발동, 이 카드를 특수 소환하고 네 묘지의 마스카레나를 덱으로 되돌리겠어! 그리고, 내 필드에 곤충족이 특수소환되었으니 패의 스케일 폭탄도 특수 소환!"
선생님은 마스카레나를 소재로 내성을 가진 상위 링크의 몬스터를 꺼내는 것을 막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시현은 이걸 노렸다. 바로 엑스트라 덱에 몬스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곧 리볼부트 섹터의 효과로 가득 찰 필드의 몬스터를 치울 최적의 카드를 다시 보충하는 것.
물론 선생님도 역전을 위해선 섹터가 필수라는 것을 알기에, 무조건 카운터 함정을 [스트라이커 드래곤]에 쓸 것이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시현은 마지막 패를 힘껏 뽑아들었다.
"묘지의 어둠 속성 몬스터 1장을 제외하는 것으로 패의 [휘백룡 와이버스터]를 특수 소환하고, 와이버스터를 링크 마커에 세트! 링크 1, [스트라이커 드래곤]!
스트라이커의 효과를 체인 1, 와이버스터의 효과를 체인 2로 발동합니다!"
"앗, 이렇게 되면...."
이 체인 순서는 대희 쌤과의 듀얼에서도 썼던 '체인 꼬기'라는 잡기술이었다. 하지만 [금지된 일적]으로 무력화 당했던 저번과는 달리, 이번엔 카운터 함정의 효과를 회피해 [리볼부트 섹터]를 가져올 수 있게 해주는 묘수가 되었다.
"스트라이커의 또다른 효과를 발동, 자기자신을 파괴하고 묘지의 [바렛 리차저]를..."
"스케일 폭탄의 효과를 발동, 자신을 릴리스해서 스트라이커를 파괴하겠어!"
[바렛 리차저] 역시 바렐로드 같은 대형 몬스터를 되살릴 수 있는 비장의 수단 중 하나이긴 했지만, 오늘은 미끼 역할이었다.
"패의 [암흑룡 코라프서펜트]를 특수소환한 후, 레비오니아와 암흑룡을 소재로 마스카레나를 다시 링크 소환! 그 후 [리볼부트 섹터]를 발동! 현재 몬스터 수 차이는 3, 따라서 3장의 바렛을 소생합니다!
그리고 [바렛 트레이서]의 효과 발동, [리볼부트 섹터]를 파괴하는 것으로 덱에서 다른 바렛을 특수소환합니다! "
"..... [비틀트루퍼 플로트 스팅]을 발동, 그 발동을 무효로 하고 파괴하겠어."
좀전까지만 해도 어디 한 번 와보라는 듯 당당하게 발동 선언을 하던 선생님이 말끝을 흐렸다. 여기서 효과를 쓰지 않는다해도 덱에서 마함을 제거할 수 있는 탄환인 [오토바렛 드래곤]을 불러와 강제로 쓰게 만들테니까. 이걸로 남은 견제 수단은 완전체의 필드 클린 효과 뿐.
"바렛 2장을 소재로 [부스터 드래곤]을 링크 소환, 그 후 묘지의 [바렐로드 R 드래곤]의 효과로 부스터 드래곤을 파괴하고 묘지의 바렛 1장을 패에 넣습니다. 여기서 파괴된 부스터 드래곤의 효과로.... 돌아와라, [수호룡 피스티]!
이어서 R드래곤의 효과로 패에 넣은 [바렛 싱크론]을 일반 소환하고, 묘지의 익스플로드바렛을 소생! 그리고.... 마스카레나, 싱크론, 익스플로드 3장을 링크 마커에 세트! 나와라, 닫힌 세계를 베어가르는 열풍! [바렐스워드 드래곤]!!"
"저게 새로 출시된 바렐 링크 몬스터....?"
"정말 멋지다! 게다가 효과도 강력해! 나도 저런거 있었으면...."
바렐스워드의 소환을 처음 본 아이들의 감탄에도 시현은 표정 변화없이 듀얼디스크의 화면을 연타하며 피스티의 효과를 사용했다. 바렐스워드도 강력한 건 맞지만, 이 상황에선 그것만으론 부족하니까.
피스티와 바렐소드의 링크 마커가 붉게 빛나며, 그것들이 가리키는 몬스터 존에 드래곤의 실루엣이 서서히 드러났다.
"여기서 어떤 몬스터를 살려야 할까? 지금 링크 몬스터인 인빈시블 아틀라스를 제외하면 전부 수비 표시인 몬스터 뿐이라 바렐소드 하나만으론 부족해.... 아, 바렐로드로 공격 선언 시에 우선권을 이용해 효과 발동을 틀어막고 완전체의 컨트롤을 가져가 역으로 광역 파괴를 날리면...."
"아니지, 병훈아. 바렐로드의 두 가지 효과는 동시에 쓸 수 없어. 게다가 완전체의 효과는 배틀 페이즈 중이라면 언제든지 쓸 수 있어서 공격 선언하기도 전에 효과로 쓸려나갈 거야."
선배의 말대로 바렐로드는 이번 최후의 공격에선 쓸 수 없었다. 이제 엑스트라 덱에서 꺼낸 적 없는 카드는 단 1장. 아마 다들 이 남은 1장이 스카라이트라 예상하고, 바렐스워드로 약간의 전투 데미지를 입히는 것 정도가 최후의 발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수호룡 피스티]의 효과로 특수소환할 몬스터는.... 제외 상태인 [듀얼윌 드래곤]!"
하지만.... 원래 비장의 수단이라는 건 모두의 예상을 빗나가는 순간 등장하는 법. 피스티의 효과로 나온 것은 뜻밖에도 듀얼윌이었다.
"여기서 듀얼윌이라고?! 하지만 융합 몬스터인 F드래곤은 이미 사용했는데... 결국 더이상 할 게 없어서 마지막 전개쇼로 하얗게 불태우려는 건가...."
"솔직히 이 상황을 어떻게 이겨? 엑덱도 1장이고, 패도 다 써버렸는데..."
병훈을 비롯한 다른 아이들은 시현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류선배는 뭔가 짚이는게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듀얼윌의 효과로 가져올 [라피도 트리거]의 효과로 뽑을 몬스터는 선배가 준 카드 중 하나였으니까.
"듀얼윌의 효과로 묘지의 바렛 몬스터, 익스플로드와 싱크론 2장을 소생, 그 후 묘지의 이 카드를 제외하는 것으로 [라피도 트리거]를 패에 넣고 발동! 전 피스티와 싱크론을 파괴합니다!"
붉은 빛으로 물든 피스티와 푸른 빛으로 물든 싱크론이 회오리치며 섞이자, 위협적으로 빛나는 붉은 수정들 사이에서 여러 식물의 줄기가 돋아났다. 그리고 줄기들 사이에서도 가시가 돋아난 굵은 덩굴들은 이빨과 발톱의 형태로 변하며 점점 용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융합 소환! 지금이야말로 숨겨둔 독니를 드러내며, 나타나라! [스타브 베놈 퓨전 드래곤]!!
스타브 베놈의 효과로, 자신의 공격력을 상대 필드의 특수소환된 몬스터 1장의 공격력만큼 올립니다. 인빈시블 아틀라스의 공격력을 더해, 스타브 베놈의 공격력은 3000 상승!"
{스타브 베놈 드래곤 ATK: 2800-> 5800}
"그리고, 스타브 베놈의 또다른 효과! 상대 필드의 레벨 5이상의 몬스터 1장의 효과를 얻습니다. 제가 선택할 카드는 [완전체 그레이트 인섹트]!"
이번엔 스타브 베놈의 몸에서 돋아난 촉수가 완전체를 붙잡더니, 빨대로 마시듯 완전체의 에너지가 촉수를 통해 스타브 베놈에게 전달되었다. 그러자, 스타브 베놈의 몸에서 곤충의 날개가 돋아나는 괴이한 변이가 일어났다. 완전체의 힘을 완전히 흡수했다는 뜻이었다.
"앗, 이렇게 되면....! "
"오히려 장기 쌤의 몬스터가 더 위험해졌어! 게다가 바렐스워드랑 스타브 베놈은 파괴 내성까지 얻었잖아! 보통 초융합으로 꺼내서 효과 복사를 이렇게 쓸 줄은 몰랐는데...."
아이들의 말대로, 분명 바렐스워드 혼자만으로는 라이프를 전부 깎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시현에게도 지금 이 듀얼을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있고, 바렐스워드에게도 새로운 동료가 힘을 보태주고 있으니까. 선생님 말대로, 시현은 더이상 혼자가 아니였다. 그러니까... 이번엔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바렐스워드의 효과로 익스플로드바렛을 대상으로 지정하고, 그때 익스플로드바렛의 효과를 발동! 이 카드를 파괴하는 것으로 양쪽 플레이어는 2000 데미지를 받습니다!"
{유시현 LP 3500-> 1500 홍장기 LP 8000-> 6000}
"그리고 이제 배틀 페이즈! 완전체가 된 스타브 베놈의 효과로, 상대 필드의 몬스터를 전부 파괴합니다!"
"비록 효과는 없겠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퇴장할 순 없지. 그럼 나도 완전체의 효과를 발동! "
[완전체 그레이트 인섹트]가 날개를 펄럭이며 날카로운 돌풍을 일으켰으나, 스타브 베놈이 일으킨 돌풍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칼날처럼 날카롭게 불어닥친 바람은 곤충들의 날개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말았다. 반면 원본 왼전체가 일으킨 바람은 바렐스워드는 마스카레나의 효과에 의해, 스타브 베놈은 [라피도 트리거]의 효과 때문에 전혀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한편 인빈시블 아틀라스는 무적의 요새라는 이름에 걸맞게, 강풍에 다리를 후들거리면서도 끝내 쓰러지지 않고 버티는 데에 성공했다. 하지만, 다음 먹잇감을 노리는 시선으로 날카로운 독니를 드러낸 스타브 베놈에겐 그저 작은 벌레 한 마리에 불과했다.
"그러고 보니, [라피도 트리거]의 효과로 특수 소환한 몬스터는 엑스트라 덱에서 특수소환된 몬스터만 공격할 수 있지.
아....! 그래서 일부러 인빈시블 아틀라스를 남겨둔거야! 그래야 스타브 베놈의 공격으로 전투 데미지를 줄 수 있으니까!"
자신이 먹잇감이 된 걸 알고 인빈시블 아틀라스는 후퇴를 시도했지만,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상황이었다. 스타브 베놈이 효과 복사를 통해 얻었던 곤충 날개를 찢어버리고는 전신에서 붉은 전류를 길쭉한 현관처럼 내뿜기 시작한 것이다.
"스타브 베놈으로 인빈시블 아틀라스를 공격! 더 인베이전 오브 프레데터즈!"
굶주린 독룡이 입에서 뿜어낸 브레스에 결국 서서히 타들어가다 다리가 하나씩 힘이 풀려 완전히 무너져내리면서, 선생님이 무적이라고 자부하던 돌격 요새는 자신보다 더 큰 포식자에게 함락당하고 말았다.
"끄윽.... 자신 필드의 곤충족 몬스터가 파괴된 것으로, [비틀트루퍼 포메이션]의 효과에 의해 자신 필드에 비틀트루퍼 토큰 1체를 특수소환한다!"
{홍장기 LP 6000-> 3200}
불타는 요새 속에서도 홀로 살아남은 곤충 병사 하나가 용감하게 앞으로 나서서 완전히 무방비해진 장기 쌤을 온몸으로 감쌌지만... 그런 희생은 그 용기가 무색하게도 오히려 바렐스워드를 더 강력하게 만드는 짓이었다.
"그럼 계속해서 바렐스워드로 토큰을 공격! 이 순간, 바렐스워드의 효과에 의해 자신의 공격력을 상대 몬스터의 공격력 절반만큼 올립니다!"
{바렐스워드 드래곤 ATK: 3000-> 3500}
곤충 병사가 힘없이 바렐스워드의 칼날에 꿰뚫린 후, 바렐스워드는 다시 한 번 포효하며 칼날을 곤두세웠다. 그 모습은 저번 듀얼에선 제대로 못했던 공격을 마무리한다고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턴 바렐스워드는 자신의 효과에 의해 2번 공격할 수 있습니다! 가라, 플레이어에게 다이렉트 어택! 전광의 바렐소드 슬래시!!"
{홍장기 LP 3200-> 0 듀얼 종료}
듀얼이 끝나고 솔리드 비전이 작동을 멈추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병사들의 갑옷과 무기가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더이상 시현을 괴롭히던 수많은 환각과 환청도 듀얼 필드와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정말, 애초에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정말 대단해... 여태껏 우리들의 승급을 가로막던 장기 쌤을 쓰러뜨렸어!"
"판단도 판단이지만 드로우 운도 굉장하네. 어떻게 그 상황에 필요한 카드만 딱딱 뽑는 거지?"
"그나저나, 방금 공격 정말 멋지지 않았어? 애니 속 주인공처럼 한 턴 만에 라이프를 전부 깎아서 역전승을 했어! 그 와중에 스타브 베놈의 효과도 알차게 써먹고! 이게 주인공의 듀얼이 아니면 뭐겠어?"
아이들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하나같이 박수를 치며 시현과 장기 쌤에게 찬사를 보냈다. 전에도 시현과 듀얼을 했던 병훈이의 들뜬 모습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류 선배도 뒤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시현아, 이번 듀얼은 정말 수고 많았어. 이건 단순한 승리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네 자신과의 싸움에서의 승리야. 전에도 강했지만, 이제 시현이는 상처를 극복하고 더 강해졌으니깐."
"저도.... 여기 있는 모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 하나뿐인 소중한 친구에게도...."
그 말을 라이고우는 흠칫했는지 덱 케이스 안에서 1번 덜컥거렸다가, 존재를 들킨 건가 눈치 보여서 그런지 다시 잠잠해졌다.
-"라이고우, 혹시 내 말 듣고 부끄러웠어? 갑자기 너답지 않게 식사평이 없네."
-"아, 아니! 쑥스러운거 아냐. 그냥... 음.... 고마워."
이제 더이상 바렐스워드는 시현만의 비밀도 아니였고, 분노와 폭주의 상징도 아니였다. 그리고 앞으로 시현이 만들어낼 카드들도 그렇고.
듀얼이 끝난 후 시현은 다짐했다. 이젠 예전의 소심한 유시현과 이별하고 더 성숙해진 유시현이 되기로. 그리고 이건 부모님을 위해서도, 누나를 위해서도 아닌 시현 자신의 삶을 위한 다짐이었다.
'비록 지금은 멀리 떨어져있어도, 분명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 응원해줄 거라고 믿고 있어. 먼저 하늘로 올라간 엄마, 아빠.... 그리고 어딘가에서 살아있을 지도 모르는 누나... 이젠 혼자서도 당당하게 살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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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번 화도 무사히 투고 완료했군요. 저번 화에서 나온 예고대로, 이번 화는 시현이가 상처를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그려봤습니다. 여기에 덤으로 초심을 되찾는 듀얼인 만큼 1화에 나왔던 성방도 깜짝출연했고요. (비록 활약은 별로 못했지만....)
그리고 이번 듀얼은 히든 에이스 역할로 스타브 베놈, 잠깐만 나오긴 했지만 크로노다이버 리단, 역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르테미트 슬레이까지.... 류선배가 소개해준 카드 중 몬스터 쪽은 붉은 눈을 빼면 웬만해선 다 나왔네요. 카이베르트는.... 원래 8화에서 쓰려다가 로그가 변경되면서 결국 유기했습니다. 소개해놓고 안 나오는 건 좀 그렇긴 한데... 이래서 플랜B가 중요한 겁니다.
또, 어떻게 보면 이번 편이 tri-ally 이야기의 첫 전환점이기도 한데, 여태껏 나온 글들이 등장인물과 배경 소개였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주연들의 과거를 풀고 곧 다가오는 대회 예선전이 시작할 때이거든요! 시현의 잃어버린 기억, 라이고우의 과거, 그리고 저번 화부터 꾸준히 언급된 시현의 누나의 행방까지.... 풀 이야기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대회 편인 만큼 신캐들도 여럿 나올 거고요.
휴.... 과연 제가 소개드린 것 중에서 올해 안에 어디까지 쓸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이 글은 번외편(9.5화)에서 계속됩니다.
로그 오류나 오타 지적 등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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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전쟁이 휴전 상태일 뿐 아직 안 끝났고, 흑막도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걸 생각하면 과거보다 앞으로 일어날 전개가 더 암울하다는건 슬픈 사실이지만.... 일단 모처럼 멘탈 회복 했으니 당분간은 힘내야죠! | 26.02.02 20: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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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02.02 20:1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