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진 씨? 서문유진 씨? 괜찮으세요?"
연이어 목소리에 정신이 깨는 것만 몇 번째인가.
유진은 눈을 꿈뻑이고는 바로 상황 파악을 완료한다.
다리가 아파오는 것을 보니 한순간 균형을 잃고 주저앉았던 모양이다.
무릎이 쑤시는 아픔에 유진은 바로 얼굴을 찡그렸다.
그걸 참아내고는 주춤주춤 일어서서 바지에 묻은 먼지를 턴다. 그리고 표정을 바로잡으면서도 눈은 여전히 찡그린 채 앞에 있는 사람을 노려본다.
그렇다. 지금은 이 목소리의 주인, 즉 눈앞의 안경잡이 남자와 한창 대면 중인 상황이었다.
"갑자기 기절이라니. 트립 상태라도 찾아왔나요? 아니면 너무 분노한 나머지 의식을 유지할 수가 없으셨나요? …아니면 승부가 두려워서 시간이라도 끌고 싶으셨다던가?"
"……두렵기는 누가."
눈빛이 어딘가 변했다. 노려보는 시선은 아까부터 여전했지만, 그의 태도에서 불안감이 크게 줄어든 것을 위저드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새 태도가 바뀌셨네요. 마치 짧은 순간에 결의를 다질 계기가 찾아온 것처럼."
"아니,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다고."
"글쎄. 뭐가 됐든 이 승부가 당신이 잊어버린 것을 떠올리는 데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딱히 잊어버린 건 없어."
"혹시 모르는 일이죠.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저는 다시 한 번 권유하는 바입니다."
부정의 대답이 돌아와도 위저드의 시선은 오히려 기대에 차있는 듯 보였다.
이 사람에게 말로 하는 대답은 딱히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유진은 의심한다.
그나 자신이나 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이 승부는 피할 수 없다. 더이상 피할 생각도 없다.
"그래. 하면 되잖아, 듀얼. 그렇게 날 미친 놈 취급하고 재버워키로 몰아갈 생각이면, 어느 쪽이 맞는지 붙어보자."
전의를 불태우려 하는 그 시선을 위저드는 흥미롭게 들여다본다.
아무리 어둠의 듀얼에 적응해나갔다고 해도, 완전히 받아들일 생각이 없다면 목숨을 버리는 짓 이상으로 여기기 힘들다.
각오로 정신을 무장해나가도 공포를 완전히 떨친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유진이라는 인물도 예외는 아닐 터.
아까까지만 해도 그 공포에 짓눌려가고 있었던 것이 빤히 보이는데, 갑자기 주춤하자마자 태도를 바꿨다.
물론 제 변덕으로 마음이 바뀔 가능성이야 없지는 않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아닌 외적인 요인으로 바뀐 것이라면.
그 정신에 간섭할 무언가가 있다는 것이다. 무언가가 속삭여왔다. 그렇기에 기운을 차리고 자신에게 맞서려 한다.
그 해석에 위저드는 더더욱 흥미가 동했다.
"그런 의미에서 통성명부터. 윌라드 오즈마(Willard Ozma)라고 합니다. 당신 이름은?"
"서문유진."
"멋진 이름이네요. 기억해두죠."
어차피 이름의 주인 중 하나는 세상에서 사라지거나 제 기능을 못하는 꼴이 될 것이다.
그러니 태연히 이름을 대버리고, 그 대신 차라리 가지고 있던 것, 즉 디젠이라도 챙기는 것이다. 물질로 남는 것이 말 뿐인 이름 따위보다 가치있을지 모르니까.
그런 행위의 보람을 이들은 원하는 것일까.
적어도 유진은 여전히 그런 불이해의 극치인 유희에 어울릴 생각은 없다. 제물이 되어줄 생각도 없다.
이렇게까지 뒤틀린 사람들을 보다 보면 그 결심이 흐트러질 일은 없을 것 같다.
안심하고 적대해도 될지도 모른다.
"그 전에 일단 덱부터 조정하시는 게 어떨까요? 방금 듀얼을 저도 흥미깊게 보고있던 터라."
역시 다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관찰이 끝난 덱은 당연히 파훼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그의 말은 귀담아 들어야 마땅하다는 것이 사실.
하지만 만약에 이 말조차 함정이라면 어떨까.
방금 전의 덱이 자신에게 불리하니 다른 덱을 쓰게 만들려고 유도한 것이라면.
이래저래 머리를 굴린 유진은 스스로 합의를 보았다. 사이드 덱을 교체하는 수준으로 지금 덱의 재정비를 거치기로.
잠시 덱을 살피던 유진은 어쩐지 낯선 것을 발견한다.
'이건 또 뭐야? 아, 설마…'
승리 보상으로 주어진 카드 외에도 본 적이 없던 새로운 카드가 엑스트라 덱에서 확인되었다. 역시 방금 전의 체험은 단순한 환영이 아닌 모양이었다.
언제 겪어도 얼떨떨해지는 순간이었지만 유진은 정신을 차려야 했다. 아버지 목소리를 내던 그 무언가가 힘이 되어주겠다는 것이 이런 물질적인 의미였다면, 적어도 지금 상황에서만큼은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 성능을 얼추 확인해놓은 다음에 바로 사용하기로 결심한다.
여기에 방금 듀얼을 통해 겪었던 불리한 포인트를 보완하고자 나머지 카드들도 조금씩 바꿔나간다. 방금 전에 입수한 보상 카드들 역시 확인을 마치고 투입할지 말지 여부를 결정했다.
그렇게 약식으로나마, 하지만 최대한 신중하게 덱 조정을 마쳤다.
"충분히 하셨는지요?"
"아마도. 그 쪽은 안 해?"
"이미 했으니까 걱정 마시죠."
역시 수상하다. 자신이 덱을 바꿀 것을 고려하고 있다면 이 선택이 정답일지 모른다.
그러니 다시 덱을 바꾸는 일 없이 유진은 듀얼의 채비를 마쳤다.
선공 기회는 위저드에게 가버리긴 했지만 아직 그걸로 겁먹기는 이르다.
유진은 새로 생긴 전력이 가져다 줄 가능성에 걸어보기로 했다.
""듀얼!""
[위저드: LP 8000, 패 5장]
[서문유진: LP 8000, 패 5장]
"제 턴이네요. 필드 마법, '폭주마법진'."
두 사람이 서있는 버닥에서 원형의 진이 그려진다. 그것은 마름모를 겹친 듯한 특징적인 문양을 이루며 진 주변에 결계를 세우듯 붉은 아우라를 계속해서 퍼뜨려갔다.
"효과 처리시 덱에서 '소환사 알레이스터'를 패로 가져오죠. 체인 있습니까?"
"…'하루 우라라'."
"어이쿠. 뭐, 괜찮아요."
위저드가 꺼내려는 카드에 대한 지식이 다행이나마 유진에겐 존재했다. 상대가 조금이라도 유리해지는 전황을 막아야 한다.
"패에서 '법전의 대현자(마기스토스 그리모어) 크로울리'의 ①의 효과. 패의 마법사족 몬스터를 묘지로 보내고, 자신을 특수 소환."
[마기스토스 그리모어 크로울리: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800 / DEF 1000]
어쩐지 사용하는 주인과 닮은 인상의 안경잡이 소년이 필드에 처음 나타난다.
"계속 해서 ②의 효과. 자신의 속성을 제가 선언한 걸로 변경할 수 있죠. '바람' 속성을 선언."
[마기스토스 그리모어 크로울리: 어둠 → 바람]
"마법 카드 '소환마술'. 필드의 '크로울리', 묘지의 '알레이스터'를 제외하고 융합 소환. 레벨 5, '소환수 라이딘'."
'알레이스터'의 지팡이처럼 생긴 물체가 위저드의 필드로 출현한다. 어느덧 그 중심으로 하늘에서 벼락이 내리치더니, 벼락 줄기 하나하나가 고체로 승화하듯 형태를 바꾸어나간다.
마침내 그것은 전격이 번쩍이는 검을 든 거구의 기사가 되어 있었다. 기사의 어깨에는 어쩐지 문제의 지팡이가 너로 박힌 듯이 남아있다.
[소환수 라이딘: 전사족 / 바람 / 레벨 5 / ATK 2200 / DEF 2400]
"'알레이스터'가 이미 있었다니…."
"여분이 있으면 좋잖아요? 그럼 묘지로 간 '소환마술'의 ②의 효과. 자신을 덱으로 되돌리고, 제외된 '소환사 알레이스터'를 다시 패로 회수합니다. 그리고 이 '알레이스터'를 통상 소환."
[소환사 알레이스터: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000 / DEF 1800]
'크로울리'가 성장한 듯한 모습의 청년 마술사가 소환수 옆으로 등장한다. 마술사에게는 '라이딘'에 꽃혀있는 것과 비슷한 외형의 지팡이, 그리고 두꺼운 책 한권이 있었다.
"'알레이스터'의 효과로 덱에서 '소환마술' 1장을 패로 추가."
[위저드: 패 2장]
필요한 카드를 챙겨오는 과정을 결국 막지 못했다.
"그리고 '알레이스터'를 링크 마커에 세트. 엑스트라 몬스터 존에 링크 1, '성마의 소녀(마기스토스 메이든) 아르테미스'를 링크 소환하겠습니다."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7.jpg](https://i1.ruliweb.com/img/23/04/09/18764f52546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8.jpg](https://i3.ruliweb.com/img/23/04/09/18764f5232d20b132.jpg)
[마기스토스 메이든 아르테미스: 마법사족 / 빛 / 링크 1 / ATK 800 / 링크 마커 ↑]
마술사가 사라지고서, 최선봉으로 금발을 늘어뜨린 아리따운 소녀 모습의 여신이 출현한다.
"마법 카드 '루드라의 마도서'. 필드에 있는 마법사족인 '아르테미스'를 묘지로 보내고, 2장 드로우."
[위저드: 패 3장]
"그리고 다시 한 번 '소환마술'. 이번엔 묘지의 '아르테미스'와 '알레이스터'를 제외하고 두 번째 융합 소환. 레벨 9, '소환수 메르카바'."
[소환수 메르카바: 기계족 / 빛 / 레벨 9 / ATK 2500 / DEF 2100]
그 여신까지 바로 모습을 감추고서 '라이딘' 이상으로 거대한 규모의 몬스터가 군림한다. 창과 방패를 든 기사, 그리고 그를 태운 채 기사처럼 중갑을 두른 수수께끼의 짐승이 몰고 있는 마차. 그 짐승의 정수리에는 역시 지팡이가 박혀있었다.
"카드 2장을 세트. 턴을 마치죠."
"내 턴, 드로우."
[위저드: 패 0장]
[서문유진: 패 5장]
'메르카바'는 당장 패가 없으니 효과를 쓸 수 없는 상태이긴 하지만, '소환수 라이딘'은 '달의 서'처럼 상대 턴에도 몬스터를 세트시킬 수 있는 효과를 가진 카드. 수비 개념이 없는 링크 몬스터를 대상으로 할 수는 없어도, 대신 링크 소환에 필요한 소재들을 뒷면 표시로 바꿈으로서 방해가 가능하다.
원활한 전개를 위해서라도 우선 치워두어야 한다.
"마법 카드, '정신조작'! 이걸로 '소환수 라이딘'의 컨트롤을…"
"'라이딘'을 릴리스하고, 속공 마법 '법의 성전'을 발동하겠습니다. 이걸로 릴리스한 것과 다른 '소환수'를 융합 소환할 수가 있죠. 불러낼 카드는 '소환수 칼리굴라'!"
'라이딘'의 모습이 사라지고, 그 자리로 '알레이스터'와 같은 로브를 두른 영락한 몰골의 마수가 출현한다. 이걸로 대상으로 지정한 몬스터를 잃은 '정신조작'의 효과가 무위로 돌아간다.
[소환수 칼리굴라: 악마족 / 어둠 / 레벨 4 / ATK 1000 / DEF 1800]
불러낸 결과물의 능력치는 '라이딘'보다도 약하다. 정확히는 '알레이스터'와 겹친다.
하지만 유진으로서는 진흙 씹은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법 카드 '명추리'. 레벨을 먼저 대 봐."
"5가 좋겠네요."
효과가 처리되면서 이번에도 덱의 카드가 스르륵 빠져나간다. 위저드가 저격했을 '레드레이어'가 묘지로 보내지고 나서야 다른 몬스터 하나가 당첨된다.
[초량사 그린레이어: 마법사족 / 바람 / 레벨 4 / ATK 1600 / DEF 1400]
"'그린레이어'의 특수 소환에 성공했으니까, 패에서 '초량' 몬스터 1장을 특수 소환."
[초량사 화이트레이어: 천사족 / 빛 / 레벨 7 / ATK 2400 / DEF 2400]
여기서 '화이트레이어'의 효과를 사용한다면 바로 엑시즈 소환으로 연계가 가능하겠지만, '칼리굴라'의 효과 사용 제한 능력으로 인해 이대로 멈출 수밖에 없다.
역시 '칼리굴라'에 의해 허락된 공격 기회는 1번이니, 지금이라도 그것을 써주기로 한다.
"배틀, '화이트레이어'로 '칼리굴라'를 공격!"
다행히도 리버스 카드가 발동되는 일은 없었다. 덕분에 적에게 뛰어드는 '화이트레이어'의 발차기가 힘차게 '칼리굴라'를 내려찍음으로서 족쇄가 어느 정도 풀렸다.
"메인 페이즈 2. '초량요정 알팡'을 소환."
[초량요정 알팡: 천사족 / 빛 / 레벨 1 / ATK 0 / DEF 0]
"상대가 몬스터 일반 소환했을 때, 함정 카드 '욕망의 거대 거북'을 발동합니다. 그럼 2장을 드로우."
[위저드: 패 2장]
유진은 다시 미간을 좁힌다. 뽑은 것이 전부 함정 카드가 아닌 이상, 이걸로 '메르카바'가 효과를 발동할 수 있는 경우의 가짓수는 2가지.
"'알팡'의 ①의 효과로 '레드레이어'를 지정. 다른 내 몬스터의 레벨을 '레드레이어'와 통일시킨다."
"그럼 '메르카바'의 효과로 체인. 몬스터의 효과가 발동하면, 패에서 몬스터를 묘지로 보내고 그 발동을 무효시킨 다음 제외하죠. '결정의 대현자(마기스토스 베르) 산드리용'을 버리고, '알팡'을 제외하겠습니다."
전차 위의 기사가 오른손에 든 랜스를 '알팡'을 향해 겨눈다. 곧 랜스 끝에 맺히듯 퍼져나오는 빛에 '알팡'은 괴로운 듯 몸을 움츠리다 꺼지듯이 사라졌다.
고작 레벨을 바꿀 뿐인 행위에 체인을 걸긴 했지만, 그 다음에 발동할 효과와 그를 통해 활용할 콤보를 내다 보고서 방금 뽑은 패를 바로 소비했다.
엑시즈 소환에 활용할 중축을 막아버린 만큼 추가 엑시즈 소환 역시 불가능해진 셈이다. 상황이 좋지 않다.
"카드 1장을 세트. 턴 엔드."
"제 턴이네요. 먼저 묘지에 있는 '소환마술'을 되돌리고, 제외되어있는 '알레이스터'를 다시 패로 회수하죠."
[위저드: 패 3장]
[서문유진: 패 0장]
"그럼 '알레이스터'를 다시 소환. 효과로 '소환마술'을 다시 패에 추가. 그리고 2장째 '루드라의 마도서'를 발동해서 '알레이스터'를 묘지로 보내고 2장 드로우합니다."
[위저드: 패 4장]
"다시 한 번 '소환마술'. 묘지의 '알레이스터'와 융합 몬스터인 '칼리굴라'를 제외하고 융합 소환하죠. 소개합니다. 부자유의 속박을 떨치고, 지고의 지식과 하나된 그 모습을! 레벨 9 '소환수 아우고에이데스'!"
천을 둘둘 만 듯한 조형의 첨탑 한 대가 나타난다. 역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건물에 '알레이스터'의 지팡이가 꽂히더니, 곧이어 탑 외부가 뒤틀리며 구조가 바뀌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만에 탑은 붕대를 두른 사람 모습으로 변형되었다.
[소환수 아우고에이데스: 천사족 / 빛 / 레벨 8 / ATK 2000 / DEF 2800]
"특수 소환된 '아우고에이데스'의 ①의 효과. 상대 몬스터 1마리를 파괴합니다. '그린레이어'를 지정."
'아우고에이데스'의 두상에 위치한 눈이 번쩍이더니, 광선을 내리쬐면서 '그린레이어'를 폭파시킨다.
하필이면 공격력이 더 낮은 쪽을 우선 제거한 것은 '화이트레이어'를 먼저 제거하면서 발생하는 효과로 '그린레이어'의 효과가 쓰일 여지를 막아두기 위함이었으리라.
"이어서 '아우고에이데스'의 ②의 효과. 묘지에 남은 융합 몬스터인 '라이딘'을 제외하고, 다음 상대 턴이 끝날 때까지 그 공격력만큼 자신의 공격력에 더할 수가 있죠."
[소환수 아우고에이데스: ATK 2000 → 4200]
"그럼 배틀. '메르카바'로 '화이트레이어'를 공격."
전차의 바퀴가 짧게나마 전진하면서 '메르카바'는 들고 있던 랜스를 힘차게 상대에게 찔러넣는다.
미약한 차로 힘이 밀리던 '화이트레이어'가 전투에서 패하며 사라졌다.
[서문유진: LP 8000 → 7900]
"이 순간, 속공 마법 '초량요청 알팡콜'! 체인은?"
"해야겠네요. '메르카바'의 효과로 패에 있는 '위대한 마도(테우로기어 마기스토스)'를 묘지로 보내고, '알팡콜'을 무효로 한 다음 제외하겠습니다."
"큭, 그럼 묘지로 간 '화이트레이어'의 ③의 효과. 덱에서 2장째 '초량요정 알팡'을 가져온다. 이건?"
"음…, 패스하는 걸로."
패는 확보했다. 하지만 후속을 불러내는 데에 실패한 유진에게 당장 남은 것은 비어버린 필드.
"어차피 지금 꺼낼 만한 카드는 없으시겠죠? 그럼 갑니다. '아우고에이데스'로 다이렉트 어택."
또다시 '아우고에이데스'의 눈 부분이 번뜩인다. 그러나 이번에는 금속의 거상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동체가 서서히 움직이더니, 유진을 향해 손을 뻗은 자세로 바뀌어간다.
곧 신의 천벌이라도 내려지는 듯이, 검지손가락 끝으로부터 굵은 벼락이 뻗어나가 필드의 허공을 가로질렀다.
선을 그리던 벼락줄기는 그 앞에 있는 유진에게 맞부딪히며 살이 익는 고통을 선사해온다.
[서문유진: LP 7900 → 3700]
LP가 반 이상이 깎여나가는 것과 동시에 유진의 입에서 비명이 새어나온다.
연이은 듀얼에서 몬스터에게 얻어맞는 유진이었지만, 그 고통은 좀처럼 적응되지가 않는 것이었다.
설령 진짜로 몸에 남는 고통이 아니더라 해도, 착란이라도 일으킨 듯 신경을 통해 전해지는 싸늘한 감각이 비명을 지르게 만든다.
이번에도 타격을 받은 온몸이 재가 되는 일은 없었지만, 대신 얼얼해지며 열을 일으킨다. 이런 수준의 센서를 탑재한 듀얼 디스크가 있다면 당장 전량 회수조치되어도 모자랄 판이다.
계속 겪고 있다가는 언젠가 맨정신을 유지할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래도 당장 쓰러지지 않을 정도로 버틸 수가 있을 뿐.
"어때요? 이 충격으로나마 떠오르신 게 있나요?"
그런 유진을 향해 위저드가 여전히 친근한 목소리로 물어온다.
유진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아랑곳 않고 새로운 질문을 꺼냈다.
"혹시, 지금 이 순간이라도 남기실 말은 없으신지? 아, 물론 당신이 서문유진이라는 입장에서요."
"닥쳐 봐. 아직 안 끝났잖아."
그래도 트릭스와의 듀얼에서 받은 충격에 비하면 약하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저쪽 역시 전력을 다하고 있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네요. 그럼 카드 1장을 세트하고, 턴을 넘겨드리죠."
"내 턴이야."
[서문유진: 패 2장]
[위저드: 패 1장]
위저드의 필드를 버티는 융합 몬스터들로 인해 2번 정도의 저지가 들어올 것이다.
"'알팡'을 소환. 그리고 릴리스해서 효과를 발동."
"네, 그럼 여기서 '메르카바'의 효과를 쓰겠습니다. 패에 있는 '초전자 터틀'을 버리고, 2번째 '알팡'도 제외."
'알팡'의 리크루트 효과가 전 턴과 똑같은 방식으로 무산된다.
이런 식으로 마지막 기회마저 날려버리기 위해 자신이 소환권을 쓰는 순간까지 패 코스트를 아껴둔 모양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방금 뽑힌 1장이야말로 마지막으로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회.
"좋아, 패를 다썼지. 그럼 상대가 몬스터의 효과를 발동했으니까, 패에서 마법 카드 '삼전의 재'를 발동. 그 중 두번째 효과를 적용한다. 이번 턴까지 '아우고에이데스'의 컨트롤을 가져갈 거야."
'아우고에이데스'의 거체가 순식간에 사라지는가 싶더니 금세 유진의 뒷쪽을 자리잡았다.
"드로우가 아니라 컨트롤 탈취라. 이런, 기껏 공격력을 올린 게 독이 됐네요."
빈말이라는 것을 유진도 알고 있다.
이미 묘지에는 '초전자 터틀'이 잠들어 있으니 얼마나 공격력을 올리든, 어떤 다른 몬스터를 꺼내든 공격을 막을 대비가 되어있으니까.
"어차피 안 통할 공격이라면 별 소용없잖아. 그럼 다른 데에 써야지."
"다른 데라."
하지만 모처럼 확보해놓은 몬스터를 턴이 끝나는 대로 돌려줄 생각 따위는 없었기에, 그리고 마침 '메르카바'의 탄환이 되어줄 패가 없는 것을 알고 있기에 유진은 지금이야말로 기회로 삼기로 한다.
"소환 조건은 토큰 이외의 몬스터 1장. 그럼 '소환수 아우고에이데스'를 링크 마커에 세트."
주운 것이든, 빼앗은 것이든, 낯설게 다가오는 카드라 해도 유진은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기로 한다.
미지의 전력이라는 이유로 꺼려해서야 미지의 승기를 붙잡을 수 없는 것이다. 덱에 굴러갈 성능이 된다면 망설임없는 신뢰를 보낼 가치가 있다.
그것이 이전까지의 듀얼을 통해 확신한 깨달음이었다.
"링크 1 '아카샤 느와르'를 링크 소환."
[아카샤 느와르: 사이킥족 / LINK-1 / 어둠 / ATK 900 / 링크 마커 ↓]
마법의 거상을 소재로 삼으면서까지 나온 것은, 검은 양갈래머리를 늘어뜨리고서 긴 소매의 후드 재킷을 걸친 아담한 소녀였다.
"'아카샤 느와르'의 ①의 효과. 링크 소환에 성공한 이 카드의 속성을 임의로 변경한다. 난 '바람'을 지정."
[아카샤 느와르: 어둠 → 바람]
"계속해서 '아카샤 느와르'의 ②의 효과. 내 필드에 다른 몬스터가 없으면, 자신과 속성이 같은 '아카샤 토큰' 한 마리를 특수 소환할 수 있어."
효과를 사용하겠다는 말을 들은 듯, 검은 양갈래머리의 소녀가 매고있던 가방을 열어 무언가를 꺼낸다.
전구처럼 빛을 뭉쳐놓은 듯한 덩어리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살피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옆으로 휙 던졌다.
중력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붕 떴다가 필드로 안착한 덩어리는 모습을 바꾼다. 하얀 빛은 다른 원색을 배제한 듯 초록빛으로 바뀌어나갔다. 덩어리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그 원시적인 모습 역시 한 마리의 고양이 형상으로 바뀌었다.
[아카샤 토큰: 사이킥족 / 레벨 1 / 바람 / ATK 0 / 수비력 0]
"같은 속성이 둘이라. 오겠군요."
"그래. 바람 속성 몬스터 둘을 소재로, 링크 2 'ET레인저 에어로그린'을 링크 소환!"
[ET레인저 에어로그린: 사이킥족 / LINK-2 / 바람 / ATK 1800 / 링크 마커 ←↑]
"링크 소환에 성공한 '에어로그린'의 ①의 효과로, 덱에서 바람 속성이 아닌 레벨 4 이하의 몬스터를 특수 소환한다. '블루레이어'를 선택."
[초량사 블루레이어: 물 / 사이킥족 / 레벨 3 / ATK 1200 / DEF 2000]
"'블루레이어'의 ②의 효과로 2장째 '초량사 화이트레이어'를 서치. 그리고 필드에 있는 '블루레이어'를 묘지로 보내고, 패에 있는 '화이트레이어'의 ①의 효과로 특수 소환!"
[초량사 화이트레이어: 천사족 / 빛 / 레벨 7 / ATK 2400 / DEF 2400]
"특수 소환됐으니까 '화이트레이어'의 ②의 효과로 덱에서 '초량' 몬스터 1장을 묘지로 보낸다. 레벨 5의 '초량사 레드레이어'를 묘지로 보냈으니까, '화이트레이어'의 레벨도 5로 변경. 여기에 묘지로 간 '레드레이어'의 ②의 효과로, 묘지에서 다른 '초량' 몬스터를 특수 소환한다."
[초량사 화이트레이어: 레벨 7 → 5]
[초량사 그린레이어: 바람 / 마법사족 / 레벨 4 / ATK 1600 / DEF 1400]
그리고 '에어로그린'의 ②의 효과! 필드의 카드 1장을 패로 되돌린다. '메르카바'를 바운스."
패가 남지 않은 이상 '메르카바'는 자신에게 닥쳐오는 돌풍을 막아낼 수 없다. 따라서 일방적으로 휩쓸리며 퇴장한다.
엑스트라 덱에서 나온 융합 몬스터는 엑스트라 덱으로 돌아가니 위저드의 패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엑스트라 덱에서 다시 꺼낼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오히려 그만큼 다시 꺼내기 위한 소비를 강요당하는 셈이다.
한 편, 드디어 유진의 필드에 소재가 갖춰졌다. 절호의 기회다.
그걸 인식하는 순간 머릿속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뇌가 쥐어짜이다 못해 두개골을 뚫을 기세로 터질 것만 같다.
"윽, 으극……!"
호소하고 있다. 지금이라고.
그 아찔한 감각에 잠시 눈을 질끈 감은 유진은 결심했다.
'그래, 알았어. 믿어보면 될 거 아냐.'
확신은 바뀌지 않는다.
'아카샤 느와르'를 썼을 때와 마찬가지로 기회가 있다면 망설일 필요는 없다.
"계속해서 소환 조건은 'ET레인저'를 포함한 몬스터 2장 이상! 나는 'ET레인저 에어로그린'에 '초량사 화이트레이어', 그리고 '그린레이어'를 링크 마커에 세트."
"호오?"
아무리 카드에 견문이 높은 상대라 해도 처음 들어보는 소환 조건일 것이다.
이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는 유니크한 레어 카드. 'ET레인저'라는 카드를 유일하게 가지고 있을 자신조차 지금 막 처음 써보는 카드.
그리고, 이 순간에 앞서 자신을 찾아와준 새로운 전력이니까.
"링크 소환! 우주 너머에서 찾아온 빛의 이방인! 링크 4 'ET레인저 코스모화이트'!"
세 명의 '전사'를 매개로 형성된 애로우 헤드 사이에서 빛으로 이뤄진 사람의 실루엣이 출현한다.
그것이 형태를 되찾으니, 여전히 희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중갑 차림의 인물이 서있었다.
그런 몬스터의 링크 소환을 마친 순간 또다른 변화가 나타난다.
[ET레인저 코스모화이트: 사이킥족 / LINK-4 / 빛 / ATK 2500 / 링크 마커 ↑←↓→]
아직 벌칙을 내릴 때가 되지 않았음에도 유진의 디젠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위저드의 디젠으로 추정되던 책의 커버 너머에서도 빛이 발생하고 있었다.
변화를 일으킨 자신의 책, 그리고 그 변화가 일어난 기점이 된 몬스터를 번갈아 쳐다본 뒤에 위저드가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뭐죠, 그건?"
그 반응은 유진조차도 의외였다.
계속 여유를 가지고 희롱을 거듭하던 양반이, 잠시나마 그 여유를 잃고 진심으로 의문을 내비쳤으니까.
"나도 몰라. 이번이 처음 쓰는 거야."
"어디서 그런 카드를…, 아아."
그러나 그 반응도 잠시, 그 빠른 시간 안에 뭔가를 알아냈는지 긴장이 누그러든다.
"그래, 그런 거였군요. 'ET레인저'라."
"뭔데? 뭘 알기라도 한 거야?"
"평범한 카드가 아니라는 것쯤이야 잘 알았지만, 설마 이런 영역에마저 간섭할 수 있는 존재였다니. 거기다, 제가 그걸 처음으로 목격하는 산 증인이 될 줄이야."
그러다 위저드는 스스로 뭔가를 깨달았는지 다시금 미소를 되찾았다.
"…잘 알았습니다. 인정하죠, 이번에도 헛다리 짚었다는 걸."
"헛다리?"
"네, 당신이 재버워키일리가 없으니까요."
듀얼을 시작한 명목이 되었을 의혹을 제 스스로 깔끔히 부정하는 모습은 유진으로서 당황스럽기만 하다.
"왜 갑자기 그런 소릴?"
"지금 그 카드로 인해 당신과 제 디젠이 사이좋게 비명을 지르고 있지 않습니까."
"비명?"
"저희가 디젠으로 능력을 행사할 때마다 나는 게 빛이긴 합니다만, 지금 이건 명백히 이질적이에요. 어둠이 받아들일 수 없는 빛을 토해내고 있는 겁니다."
여전히 유진의 펜던트와 위저드의 책에서 발한 빛은 꺼지지 않고 있다.
이걸 그렇게 비유하는 것을 보면 분명 뭔가 더 아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ET레인저라…, 혹시, 그 카드들을 쓸 때마다 무슨 느낌 같은 거 없으셨나요?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강하게 충돌해오고 있다던가."
유진은 바로 그동안의 두통이나 맥박 등의 증상을 떠올린다.
자신들의 부름 때문이었다고 방금 전에 '코스모화이트'는 설명해줬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마 그건, 당신의 정신력으로 기동하는 디젠의 에너지, 그리고 그 카드들이 가진 고유의 에너지가 서로 반발 중이었던 겁니다. 이렇게 디젠들이 비명을 지르는 이유 역시, 그런 받아들일 수 없는 에너지의 카드를 억지로 불러내느라 생기는 거부반응인 것이겠죠. 아직 이 게임 자체에 지장이 생길 정도는 아닌 모양입니다만."
"어떻게 그렇게까지?"
"어디까지나 가정이죠."
이미 말도 안 되는 일에 익숙해지려는 유진의 시점에서, 그의 주장이 적어도 말이 안 되는 소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떻게 자신보다도 더 빨리 알아낼 수가 있는가.
"그리고 그런 버그 유발 카드를 게임을 주최하신 분께서 대놓고 꺼내신다니. 아무리 제멋대로인 분이시라지만 그것만큼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가?"
"일단 축하드려야겠네요. 이걸로 당신은 '훈제청어' 신세에서 벗어나신 겁니다."
"그게 뭔 소리야?"
"사냥개의 후각을 마비시키기 위해 훈제 청어를 던져두는 것에서 따온 표현이죠. 저처럼 에너지의 흔적을 찾아 근원을 찾으려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된 미끼. 당신이 그런 존재였다는 겁니다."
"내가 미끼라고?"
정신이 얼떨떨해진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어떤 식으로든 꿈 속을 쳐들어와 말을 걸고 디젠을 놓고 간 시점부터 자신을 미끼로 점찍었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를 유진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이 게임을 시작할 때부터 근본적으로 품어왔던 의문을 내뱉는다.
"어째서? 내가 뭘 잘못했는데? 뭣 때문에 그런 꼴을 당해야 되는 건데?"
"글쎄. 혹시 모르죠. 당신도 모르는 새에 그 분의 미움이라도 산 건지. 아니면 반대로 애정을 받고 있는 것인지."
"애정? 이딴 걸 시켜놓고?"
다른 건 몰라도 후자만큼은 유진으로서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는 가설이었기에 따져든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그 분께서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분이셨다면 애초에 이런 게임을 열 일도 없었겠죠. 오히려 미움받는 건 제 쪽일지도 모르겠거든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저는 초대받아서 온 게 아니니까. 구면일 텐데도 따로 불러주지 않으셨죠. 최소한 제 쪽에서 가는 걸 막지는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이런 게임을 제 발로 들어왔다고 한다. 알고 있는 것은 많아도, 심지어 상식을 깨닫고 있어도 이 자 역시 상식과는 한참 동떨어진 인물이라는 사실을 유진은 다시금 실감한다.
"만약 이 만남도 의도된 것이었다면, 그걸 위해서 제 출입을 허락한 것이었다면 어떨까요. 어둠을 몰아내는 빛을 동원하면서까지 저를 따돌리고 싶었던 것이라면, 그게 미움받는 게 아니고 뭐겠습니까?"
위저드는 잠시 허탈한 듯 웃음을 짓는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 위저드도 아직 본의를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 이 게임의 개최 목적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것처럼.
그럼에도 미움받고 있다는 가설은 반쯤 확정하고 있는 듯 보였는지 유진을 향해 야속해하는 시선마저 보내고 있다.
간신히 올리고 있는 듯 보이는 입꼬리는 역시 가면의 미소나 다를 바 없다는 걸 유진은 깨달았다.
"그래도 결투(듀얼)는 이미 시작됐잖아요. 한쪽이 패배를 맞이하는 순간까지 멋대로 끝낼 수야 없죠. 오히려 잘 됐습니다. 승리해서 그 에너지까지도 확보해가면 되겠네요. 당신의 그 빛이 그 분께 어떤 효과를 보일지 호기심이 생기려 드니까."
안경을 고쳐 쓰는 중에도 위저드는 여전히 미소짓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오히려 진심으로 흡족하고 있는 듯 보였다.
"누구 마음대로."
"아직 당신 턴입니다. 듀얼 속행하셔야죠."
"……"
재버워키만큼일지는 몰라도 충분히 꺼림칙한 사람이다. 유진은 그를 노려보며 생각했다.
아까부터 저 혼자만 알고 있는 소리를 조잘조잘 떠들고 있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고, 그런 말로 자신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이 더욱 꺼림칙했다.
그가 말한 '동료'라는 이들 중에도 같은 감상을 품은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결론적으로 자신이 재버워키라는 의심을 풀기는 했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 깨어난 새로운 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그 사냥을 허락하는 순간 여전히 유진에게 다음이란 없다.
즉, 여전히 서로가 이겨야 할 이유는 남아있는 것이었다.
"'코스모화이트'의 ①의 효과. 링크 소환에 성공하면, 엑스트라 덱에서 다른 'ET레인저' 하나를 링크 소환할 수 있어. 그럼 링크 2 'ET레인저 하이드로블루'를 링크 앞으로!"
[ET레인저 하이드로블루: 사이킥족 / 물 / LINK-2 / ATK 1800 ←→]
[ET레인저 코스모화이트: ATK 2500 → 3000]
"과연. 필드의 다른 'ET레인저' 수만큼 공격력을 강화한단 말이죠."
"그래. 링크 소재로 묘지로 간 '화이트레이어'의 효과로 3장째 '알팡'을 패에 추가. 그리고 '하이드로블루'의 ①의 효과로, 덱에서 물 속성 이외의 레벨 4 이하 몬스터 하나를 특수 소환한다. 여기에, 이 효과로 특수 소환한 '그린레이어'의 ①의 효과로 패의 '알팡'을 특수 소환."
[초량사 그린레이어: 마법사족 / 바람 / 레벨 4 / ATK 1600 / DEF 1400]
[초량요정 알팡: 천사족 / 빛 / 레벨 1 / ATK 0 / DEF 0]
"'하이드로블루'의 ②의 효과로, 필드의 링크 몬스터 1장의 링크 수만큼 덱의 카드를 확인하고 1장을 패로 가져온다. 그럼 '코스모화이트'의 링크만큼 4장을 확인."
[서문유진: 패 1장]
"'하이드로블루', '그린레이어', '알팡'을 소재로 링크 소환. 링크 4 '소명의 신궁-아폴로우사'!"
'코스모화이트'가 펼친 링크 마커 앞으로 은빛 털로 뒤덮인 곰 위를 올라탄 은발의 소녀가 활을 겨누며 나타난다.
"'아폴로우사'의 공격력은 링크 소재 하나 당 800. 지금 사용된 소재 수는 3마리니까 2400이야."
[소명의 신궁-아폴로우사: 천사족 / 바람 / ATK 2400 / 링크 마커 ↑↓↙↘]
[ET레인저 코스모화이트: ATK 3000 → 2500]
결과물로 내놓은 것은 링크 4 몬스터 2마리.
당장 끝장내지는 못하더라도, 몬스터 효과를 막을 수 있는 '아폴로우사'를 꺼냈으니 '초전자 터틀'을 걱정하지 않고 공격할 수 있다.
그렇게 넘어가려는 찰나였다.
"그럼 배틀…."
"배틀 페이즈 개시시에 함정 카드 '리로디드 실린더'를 발동. 이 효과로 덱에 있는 '매직 실린더' 하나를 세트하겠습니다."
"칫!"
그러나 이미 그런것 조차 대비한 듯 위저드는 또 다른 방어 대책을 마련해버렸다.
"이걸로 세트한 카드는 지금 턴에 발동할 수가 있죠. '매직 실린더'의 효과야 당신도 익히 아실 거고."
어떤 몬스터로 공격을 선언하든 그 순간 적지 않은 공격력이 자신에게 되돌아간다. 그것만으로도 치명적인데 '리로디드 실린더'의 효과로 세트된 카드인 이상 그 데미지는 배가 될 것이다.
마치 방금 전에 권총을 겨누며 위협하던 행위를 돌려받는 것만 같았다.
빈 총을 들이댔을 뿐이던 유진과는 달리 지금 세트한 카드는 남은 생명을 앗아갈 실탄이 되리라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였다.
오발이 확정된 공격을 무모하게 속행할 수도 없는 노릇.
"엔드 페이즈에 묘지로 간 '하이드로블루'의 ③의 효과로, 물 속성 이외의 링크 몬스터 하나를 부활시킨다. '에어로그린'을 귀환!"
[ET레인저 에어로그린: 사이킥족 / 바람 / LINK-2 / ATK 1800 ↑→]
[ET레인저 코스모화이트: ATK 2500 → 3000]
"턴 엔드야."
"그럼 제 턴. 묘지의 '소환마술'을 덱으로 보내고, 제외된 '알레이스터'를 회수."
[위저드: 패 2장]
[서문유진: 패 1장]
"'알레이스터'를 소환. 그리고 효과를 사용해서…"
"'아폴로우사'의 ③의 효과. 공격력을 800 내리고, 몬스터의 효과 발동을 무효로 한다."
[소명의 신궁-아폴로우사: ATK 2400 → 1600]
'아폴로우사'가 들고 있던 금빛 활의 시위를 당기자, 그 사이의 허공으로부터 빛줄기로 된 화살이 생겨난다.
시위를 놓으면서 발사된 화살은 '알레이스터'에게로 명중. 하지만 맞은 '알레이스터'는 놀란 듯 움츠러들었을 뿐 여전히 필드에 남았다.
"이런. 그래도 파괴하지는 않죠. 거기다 '아폴로우사'의 공격력도 내려갔고."
그 정도 되는 식견을 가진 자가 이 카드의 효과를 모를리는 없다. 따라서 무효화될 것을 감안하고 '알레이스터'를 일부러 꺼낸 셈이다.
"그럼 마법 카드 '아카식레코드'. 덱에서 2장 드로우하고, 발동 전까지 사용한 카드가 패에 있으면 그걸 전부 제외해야 됩니다. '알레이스터'는 이미 필드에 꺼냈으니까, 제외할 카드가 따로 없는 게 다행이네요."
[위저드: 패 2장]
"계속해서 마법 카드 '절화의 현현(브리트라 마기스토스)'. 묘지에서 레벨 4 이하의 '마기스토스' 하나를 특수 소환합니다. 이 효과로 '마기스토스 베르 산드리용'을 되살리고,"
[마기스토스 베르 산드리용: 마법사족 / 빛 / 레벨 4 / ATK 800 / DEF 1800]
"'산드리용'의 ①의 효과로 덱에서 '마기스토스' 마법이나 함정 하나를 가져오도록 하죠."
"그럼 또 '아폴로우사'의 효과!"
[소명의 신궁-아폴로우사: ATK 1600 → 800]
마찬가지로 '알레이스터' 다음에 나타난 백의의 마녀 역시 화살에 맞지만 그대로 필드에 남았다.
"이것도 당연한 일이겠네요."
새로운 카드를 가져오는 효과가 계속 틀어막혀도 당황하는 기색은 없다.
패 어드밴티지를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몬스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목적임을 유진은 이미 깨달았다.
그 준비까지 막아내지는 못한 것이다.
"같은 레벨의 몬스터가 둘. 설마…"
"네, 융합이 막혔으니 다른 수를 써야겠죠. 저는 레벨 4의 마법사족인 '알레이스터'와 '산드리용' 둘로 오버레이, 랭크 4 '결정의 여신(마기스토스 가디스) 닌아루루'를 엑시즈 소환하겠습니다."
[마기스토스 가디스 닌아루루: 암석족 / 땅 / 랭크 4 / ATK 1800 / DEF 2400 / ORU 2]
"배틀, '닌아루루'로 '아폴로우사'를 공격."
온몸이 투명한 결정으로 이루어진 여신이 사냥꾼을 향해 부드럽게 손을 뻗는다. 손에 앉아있던 결정의 새 한 마리가 날갯짓하더니, 이윽고 여신이 손을 뻗은 방향으로 맹렬히 날아들었다.
몬스터를 사냥할 의무가 있는 '아폴로우사'였으나, 이미 두 번의 효과를 막기 위해 힘을 쓰느라 약해질 대로 약해진 현 상황에서는 그 새의 돌격조차도 막아낼 수 없었다.
결국 부딪힌 새의 몸체가 깨짐과 동시에 '아폴로우사' 역시 격파되어 사라진다.
[서문유진: LP 3700 → 2700]
"몬스터 효과를 막을 족쇄가 사라졌으니, 메인 페이즈 2로 넘어가서 '닌아루루'의 ①의 효과를 쓰도록 하죠. 오버레이 유닛을 1개 써서 묘지에 있는 '알레이스터'를 패로 회수."
[마기스토스 가디스 닌아루루: ORU 2 → 1]
"그럼 카드를 1장 세트. 턴 엔드입니다."
"내 턴."
[서문유진: 패 2장]
[위저드: 패 1장]
'아폴로우사'를 먼저 해치울 것이라는 것 정도야 유진도 상정한 바였다. 오히려 몬스터가 생각보다도 많이 남아있는데다, 뽑힌 패를 보면서 조금씩 승산이 가까워져가는 것을 느낀다
"좋아, '사이킥 싸이크론'! '함정 카드'를 선언하고, 그쪽이 세트한 카드 1장을 파괴한다!"
딱 좋게 '매직 실린더'를 대처할 카드를 뽑은 것이다. 여전히 '초전자 터틀'이라는 방어 수단이 남아있기는 했어도 당장 끝날 수도 있는 카드를 치운 것에 유진은 한 시름 덜 수 있었다.
"함정 카드라는 걸 맞췄으니까 추가로 1장 드로우. 그리고 ''에어로그린'의 ②의 효과로, 이번엔 '닌아루루'를 바운스!"
'아폴로우사'가 사라졌으니 다시 '초전자 터틀'을 무력화시킬 방법은 없다. 결국 필드의 몬스터를 치워버리기로 하면서 묘지의 '초전자 터틀'은 그대로 놔둔 상태.
여기에 추가로 카드를 세트해놓았기까지 했으니, 유진으로서도 이번 공격이 통할지 자신은 없다.
"그럼 배틀, '에어로그린'으로 다이렉…"
"잠깐, 함정 카드 '마법명-"투 메가 세리온". 이걸로 제외된 '소환수' 몬스터를 원하는 수만큼 수비 표시로 특수 소환하겠습니다.'"
[소환수 라이딘: 번개족 / 바람 / 레벨 5 / ATK 2200 / DEF 2400]
[소환수 칼리굴라: 악마족 / 어둠 / 레벨 4 / ATK 1000 / DEF 1800]
이미 막힐 걸 상정하고 내지른 공격이었으나, 이번에도 위저드는 다른 방법으로 벽을 마련하겠다는 듯이 굳이 제외된 몬스터를 불러낸다.
어느 쪽이든 '에어로그린'이 공격을 속행해서 쓰러뜨릴 만한 몬스터는 없다.
"그럼, '코스모화이트'로 '칼리굴라'를 공격!"
위저드는 다른 저항도 없이 그 공격을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칼리굴라'는 대항할 새도 없이 빛의 일격을 받으며 그대로 퇴장.
"메인 페이즈 2. 카드를 1장 세트하고, 턴 엔드."
"제 턴."
[위저드: 패 2장]
[서문유진: 패 1장]
"'알레이스터'를 소환."
[소환사 알레이스터: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000 / DEF 1800]
"효과로 덱에서…"
"'무한포영'!"
"…또 막혔네요. 하는 수 없죠. 3장째 '루드라의 마도서'를 발동해서 '알레이스터'를 묘지로 보내고 새로 뽑겠습니다."
[위저드: 패 2장]
"정 그렇게 다른 볼거리를 원하신다면 또 보여드리는 수밖에. 지속 마법 '삼현자의 서(트리스 마기스토스)' 발동. 그 ②의 효과로 패에서 레벨 4 이하의 마법사족 몬스터 하나를 특수 소환하겠습니다. '절화의 대현자(마기스토스 플레임) 조로아'."
[마기스토스 플레임 조로아: 마법사족 / 화염 / 레벨 4 / ATK 1500 / DEF 1500]
"'조로아'의 ①의 효과로, 필드에 있는 '마기스토스' 몬스터 하나에 엑스트라 덱에 있는 '마기스토스' 몬스터 1마리를 장착할 수가 있죠. 2장째 '마기스토스 메이든 아르테미스'를 '조로아' 자신에게 장착."
불꽃처럼 타오르는 듯한 적발의 남성이 달의 정기를 받은 듯 후광처럼 희미한 빛을 드리운다.
"이어서 '마기스토스'를 장착한 '조로아'의 ②의 효과로 묘지의 레벨 4 이하의 마법사족 몬스터 1장을 골라 특수 소환합니다. 그리고 장착 카드 상태인 '아르테미스'의 ②의 효과로 '마기스토스' 몬스터 1장을 추가."
[소환사 알레이스터: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000 / DEF 1800]
[위저드: 패 1장]
"속성이 다른 레벨 4의 '조로아'와 '알레이스터'로 오버레이. 이번에는 랭크 4 '결정의 마녀(마기스토스 위치) 산드리용'을 엑시즈 소환."
[마기스토스 위치 산드리용: 마법사족 / 빛 / 랭크 4 / ATK 1000 / DEF 2800 / ORU 2]
엑시즈 소환으로 나타난 몬스터는, 결정의 대현자 '산드리용'이 한 층 더한 스케일로 치장한 모습으로 보였다.
유리처럼 투명하던 드레스의 규모가 사람이 입고 다닐 만한 수준을 뛰어넘다 보니 차라리 커튼에 비유해도 좋을 정도였다.
"'위치 산드리용'의 ①의 효과. 오버레이 유닛을 하나 사용해서, 덱에 있는 '마기스토스' 몬스터 1장을 특수 소환하겠습니다."
[마기스토스 위치 산드리용: ORU 2 → 1]
[마기스토스 베르 산드리용: 마법사족 / 빛 / 레벨 4 / ATK 800 / DEF 1800]
"이어서 특수 소환된 2장째 '산드리용'의 효과로, 덱에서 2장째 '브리트라 마기스토스'를 가져오고 바로 발동. 묘지의 '플레임 조로아'를 특수 소환."
[마기스토스 플레임 조로아: 마법사족 / 화염 / 레벨 4 / ATK 1500 / DEF 1500]
"레벨 4 '플레임 조로아'에, 마찬가지로 레벨 4인 '베르 산드리용'을 튜닝. 싱크로 소환, 신의 날개를 얻은 자, 그 도약으로 이 땅에 시작의 화염을! 레벨 8 '절화의 마신(마기스토스 다이몬) 조로아'!"
[마기스토스 다이몬 조로아: 마법사족 / 화염 / 레벨 8 / ATK 2900 / DEF 1500]
"'다이몬 조로아'의 ①의 효과, 싱크로 소환에 성공하면 엑스트라 덱에서 '마기스토스' 몬스터 1장을 장착할 수가 있습니다. '절화의 용신(마기스토스 드래곤) 바흐람'을 지정."
여전히 타오르는 적발을 휘날리는 사나이의 날개에, 보기만 해도 이글이글 타오를 듯한 불꽃이 추가로 깃든다. 등이 익다 못해 재가 되어버릴 만한 고통이 그 자에게는 없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은 염신, 혹은 용신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태로도 보였다.
"'바흐람'을 장착한 몬스터가 전투를 실행하면 그 상대 몬스터는 데미지 계산시에 파괴됩니다. 미세하게 더 높은 공격력이 무의미해지는 셈이죠."
"큭…"
"아직이에요. '다이몬 조로아'를 묘지로 보내고, 패에 있는 '크로울리'를 특수 소환."
[마기스토스 그리모어 크로울리: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800 / DEF 1000]
하지만 기껏 전투에서 지지 않을 태세가 갖춰진 몬스터를 꺼내놓고, 그걸 희생해서 내보낸다는 것은 명백히 더 떨어지는 능력치를 가진 몬스터였다.
그 광경에 유진도 고개를 잠시 갸웃한다.
"뭐 하는 거야?"
"다 생각이 있거든요. 묘지에 있는 '다이몬 조로아'의 ③의 효과. 필드의 '트리스 마기스토스'를 파괴하고, 자신을 묘지에서 특수 소환하겠습니다."
[마기스토스 다이몬 조로아: 마법사족 / 화염 / 레벨 8 / ATK 2900 / DEF 1500]
"그 다음 묘지에서 '베르 산드리용'의 ②의 효과. 자신을 제외하고, 묘지에 있는 '마기스토스' 하나를 제 필드의 '마기스토스'에 장착시킵니다. '바흐람'을 다시 장착."
부활한 마신 '조로아'의 날개에 다시 화염이 깃들며 위엄을 되찾았다.
결과적으로 전력으로 삼을 몬스터 하나가 추가로 생겨난 것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몬스터를 불러낸 이유를 추측하다 유진은 치명적인 사실을 깨닫는다.
"잠깐, 이러면 내 몬스터를 다 처리해도, 남은 공격력으로…"
"네, 끝이죠. 이번 총공격으로."
확인사살로 돌아온 위저드의 대답에 유진의 표정이 더욱 굳어갔다.
"융합, 싱크로, 엑시즈, 그리고 링크…. 엑스트라 덱에 잠든 다양한 가능성을 어떻게 펼쳐나가고 활약시킬 것인가. 그걸 궁리하는 것 또한 듀얼의 묘미가 아니겠습니까. 좋은 경험이었어요."
"……."
마침내 찾아와버린 최후의 순간을 여전히 믿지 못하는 눈치다.
정확히는, 인정할 만한 정신이 남아있지 않다고 봐야 할지도 몰랐다.
"그러니 감사드리죠. 여기 와서까지 물러서지 않은 당신께. 온 힘을 다해 싸우셨던 당신께."
여전히 반응이 돌아오지 않는다.
이 찬사는 진심일까. 비아냥일까. 그걸 헤아릴 여유조차 유진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별다른 대답을 기대한 것은 아닌지, 각오할 시간을 주려는 듯 몇 초간의 정적이 흐르고서야 위저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라이딘'을 공격 표시로 변경. 그리고──"
"아직이야."
그리고 배틀 개시를 선언하려는 순간, 그제서야 유진의 말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방금까지 드러내고 있던 유진의 당황하는 기색이, 지금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다.
"아직이라니요?"
이제 와서 시간 끌기인가, 그런 의혹을 가지려는 순간 위저드는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린다.
이 타이밍에 끼어들만한 이유가 뭐가 있을까.
그 해답을 알려주듯 유진은 본인의 입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몬스터를 5장 이상 소환한 거 맞지?"
"네, 맞습니다만…"
이 구체적인 조건.
위저드는 금세 그 결론을 떠올리면서 조심스럽게 질문한다.
"설마, 그겁니까?"
"맞아. 그 조건에 발동하는 효과니까."
"어이쿠."
짧은 대답이 돌아온 직후 쾌청한 날씨가 찾아왔다.
이미 시야를 분간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지만, 막상 광원이라 할 만한 태양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기에 도시는 새벽처럼 희뿌옇기만 하다. 적어도 결코 맑다고 할 수는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 하늘이 아침을 맞이한 듯 갑자기 밝아온다. 얼핏 태양이 마침내 떠오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현현을 바라보는 두 사람은 그것이 중천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려오고 있음을 알고 있다.
태양처럼 환하게 타오르는 원이 점점 가까이 아래를 향해 급강하하는 것이다.
"필드의 앞면 표시 몬스터를 가능한한 릴리스하고, 패의 이 카드를 특수 소환한다. '원시생명체 니비루'!"
거리가 더 가까워진 지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정말로 '생명체'라고 부르는 게 마땅할지조차 의심스러운 한 덩어리의 운석.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이글거리기 시작한 운석의 불꽃이 주변 공기를 급격히 데우기 시작한다.
늦여름의 기후를 한참 뛰어넘은 열기가 플레이어, 그리고 몬스터를 덮쳤다.
"………!!"
덥다는 감각이 뜨겁다는 통각으로 바뀌어갔다. 눈부신 빛은 안구 자체가 익어버릴 듯한 불꽃으로 승화해나갔다.
그런 고통에 시달릴 여유조차 주지 않겠다는 듯, 머지 않아 운석이 직접 그들 곁에 더한 충격이 되어 찾아온다.
운석이 마침내 바닥에 닿자, 고막을 터뜨릴 듯한 굉음과 함께 땅울 울리는 충격파가 사방을 헤집어나간다.
게임을 진행해나가야 할 플레이어들에게는 지금까지의 대재해가 더없이 실감나는 충격으로 끝날 뿐이지만, 위저드의 필드를 채워나가던 몬스터들은 별개의 이야기.
그들은 그 충격의 여파에 정통으로 휩쓸리며, 저항의 여지조차 없이 가루가 되며 사라져간다. 제아무리 절화의 마신이라도 지구 자체를 강타해오는 불덩어리의 충격에는 버티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대현자들의 절멸이 찾아왔다. 그것은, 새로운 존재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원시생명체 니비루: 암석족 / 빛 / 레벨 11 / ATK 3000 / DEF 600]
"그리고 상대 필드에 '원시생명체 토큰' 하나를 특수 소환. 공격력하고 수비력은 릴리스한 몬스터들의 것을 합한 수치가 된다."
[원시생명체 토큰: 암석족 / 빛 / 레벨 11 / ATK 11100 / DEF 5900]
당연하게도 그 높디 높은 공격력으로 부딪혀올 것을 대비해 유진은 토큰을 수비 표시로 꺼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전개해놓은 진영이 흔적조차 남지 않은 광경에, 위저드는 잠시 허탈해보이는 시선으로 중얼거린다.
"용케 그런 걸 패에 남겨두셨다니."
"그쪽이 전력으로 나서준 덕분이야. 나도 아슬아슬했다고."
방금 전까지 주변을 달구던 열기 때문인지, 구사일생이라는 상황의 긴장 때문인지 유진이 이마에 배인 땀을 닦는다.
"과연, 승부는 끝까지 알 수 없는 법이죠."
'위치 산드리용'의 효과를 써버렸으니 '마기스토스'가 아닌 다른 몬스터를 엑스트라 덱에서 꺼내올 수는 없다.
설상가상으로 '다이몬 조로아'의 부활 효과는 이미 전력 전개를 위해 써버리고 난 다음이었다.
남은 패는 0장.
"저도 아슬아슬했거든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 직면한 것치고 위저드는 여유를 완전히 잃지는 않은 듯 보였다.
"…다른 몬스터가 남았잖아."
"'니비루'의 효과 발동을 선언하신 순간, '라이딘'의 효과를 체인해서 '위치 산드리용'을 뒷면 표시로 돌렸죠. '니비루'의 소환시 릴리스되는 건 어디까지나 앞면 표시 몬스터니까, 보다시피 유일한 생존자가 된 셈입니다."
'앗차.'
세트 카드 주위로 오버레이 유닛이 부유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생존자라는 것이 엑시즈 몬스터라는 것이 티가 난다.
굳이 저 카드를 고른 이유는 가장 수비력이 높은 몬스터라는 점, 다음 턴까지 더 남아있다면 남은 오버레이 유닛을 사용해 전개에 들어가려는 점 등의 계산이 있었으리라.
"그래봤자 남은 거라곤 벽 몬스터 뿐이네요. 이대로 턴을 넘겨드릴 수밖에."
"엔드 페이즈에 묘지로 간 '에어로그린'의 ③의 효과를 발동. 묘지에서 바람 속성이 아닌 링크 몬스터를 특수 소환한다. '하이드로블루'를 부활!"
[ET레인저 하이드로블루: 사이킥족 / 물 / LINK-2 / ATK 1800 / 링크 마커 ←→]
"그럼 내 턴이야! 메인 페이즈로 들어가서 '하이드로블루'의 ②의 효과. 이번엔 자신을 지정을 지정하고, 그 링크 마커 2만큼 2장을 넘겨서 확인."
[서문유진: 패 2장]
수비력 2800, 그리고 5900.
급한 불을 끄기는 했어도, 여전히 버티고 있는 벽들을 일반적인 전투로 전부 해치우기는 까다롭다.
하나라도 남겼다간 새로운 몬스터를 특수 소환해오든, 10000이 넘는 공격력으로 움직이든 다시 자신을 치기 시작할 것이다.
모처럼 잡은 역전의 기회에 쐐기를 박아줘야 한다.
"'탐욕의 항아리'! 묘지의 몬스터 5장을 덱으로 되돌리고 2장 드로우!"
[서문유진: 패 3장]
"'초량사 블루레이어'를 소환. ①의 효과로 덱에서 '레드레이어'를 서치."
[초량사 블루레이어: 사이킥족 / 바람 / 레벨 4 / ATK 1600 / DEF 1400]
"''블루레이어'와 '니비루'를 소재로 엑스트라 몬스터 존에 링크 2 '트로이메어 케로베로스'을 링크 소환."
[트로이메어 케로베로스: 악마족 / 땅 / LINK-2 / ATK 1600 / 링크 마커 ←↑]
"'케로베로스'의 ①의 효과로 패를 1장 버리고 '원시생명체 토큰'을 파괴! 계속해서 묘지로 보낸 '레드레이어'의 ②의 효과로, 묘지에서 '화이트레이어'를 특수 소환!"
[초량사 화이트레이어: 천사족 / 빛 / 레벨 7 / ATK 2400 / DEF 2400]
"'하이드로블루'와 '케로베로스'를 링크 마커에 세트. 되돌린 '코스모화이트'를 다시 링크 소환!"
[ET레인저 코스모화이트: 사이킥족 / LINK-4 / 빛 / ATK 2500 / 링크 마커 ↑←↓→]
"'코스모화이트'의 ①의 효과로, 이번에는 '에어로그린'을 링크 소환."
[ET레인저 에어로그린: 사이킥족 / 바람 / LINK-2 / ATK 1800 ↑→]
[ET레인저 코스모화이트: ATK 2500 → 3000]
"'에어로그린'의 효과로 세트한 '산드리용'을 바운스!"
이걸로 몬스터를 또다시 치우는 데에 성공.
유진은 여전히 개운하지 못한 표정을 짓고서 전투에 들어간다.
"배틀, '코스모화이트'로 다이렉트 어택!"
"묘지의 '초전자 터틀'을 제외하고 이번 배틀 페이즈를 종료하겠습니다."
'됐어!'
예정되어 있던 방어책이 드디어 하연 슈트의 전사가 날리는 공격을 방해해온다.
번뜩이는 정전기의 자극에 '코스모화이트'가 잠시 경직된 후 제 진영으로 돌아가버렸다.
여전히 위저드의 LP는 1점도 내려가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만에 하나를 위해 계속 아껴두었을 방어책을 드디어 쓰게 만든 것이다. 유진은 그런 긍정적인 생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카드 1장을 세트. 엔드 페이즈에 '하이드로블루'의 ③의 효과. 물 속성 이외의 링크 몬스터인 '케로베로스'를 부활."
[트로이메어 케로베로스: 악마족 / 땅 / LINK-2 / ATK 1600 / 링크 마커 ←↑]
"그럼 제 턴."
[위저드: 패 1장]
[서문유진: 패 0장]
새로운 패를 본 위저드가 또다시 불길한 미소를 띄운다.
"뽑혀줘서 다행이네요."
"뭐길래?"
"당신이 그토록 막고 싶어하셨던 카드. '소환마술'을 발동하겠습니다."
"큭…!"
"제 묘지의 '알레이스터', 그리고 당신 묘지의 '초량사 레드레이어'를 제외하고, 레벨 7 '소환수 푸르가트리오'를 융합 소환."
[소환수 푸르가트리오: 악마족 / 화염 / 레벨 7 / ATK 2300 / DEF 2000]
다시 전개된 마법진을 통해 익살스럽다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서로 다른 외형이 특징인 마인 3인조가 한 자리에 튀어나온다.
"'푸르가트리오'의 공격력은 상대 필드의 카드 하나 당 200씩 올립니다. 당신 필드의 카드 수는 현재 4장이니까 800이네요."
[소환수 푸르가트리오: ATK 2300 → 3100]
"그리고 '소환마술'의 ②의 효과. 자신을 덱으로 되돌리고 제외된 '알레이스터'를 패로 회수. 이 '알레이스터'를 통상 소환."
[소환사 알레이스터: 마법사족 / 어둠 / 레벨 4 / ATK 1000 / DEF 1800]
"'알레이스터'의 ②의 효과로 '소환마술'을 패로 가져오고, 다시 발동하겠습니다. 이번엔 필드의 '알레이스터', 그리고 당신 묘지의 'ET레인저 하이드로블루'를 제외하고, 레벨 6 '소환수 코키토스'를 융합 소환."
[소환수 코키토스: 드래곤족 / 물 / 레벨 6 / ATK 1800 / DEF 2900]
거기서 그치지 않고 또다시 나타난 마법진은 또다른 몬스터를 불러들인다.
용의 형상을 지닌 그 마물은, 이번에는 '푸르가트리오'와는 정반대로 온몸이 살을 에는 듯한 냉기로 둘러싸인 얼음덩어리로 이뤄져 있었다.
붉게 번뜩이는 두 눈과 날카로운 이빨이 벌써부터 그 흉악함을 드러내고 있는 것만 같다.
"'푸르가트리오'는 당신 필드의 모든 몬스터를 1번씩 공격할 수 있죠. '코키토스'는 수비 표시 상태에서도 공격이 가능하고요. 이 공격들이 성립만 해준다면 그대로 피날레입니다만,"
굳이 능력을 줄줄이 설명해가면서 자신이 승리할 가능성을 읊는다. 각종 매체에서 삼류 악역들이 으레 자초하고는 하는 실수임을 위저드는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굳이 그 가능성을 입밖에 꺼낸 것은, 이뤄질 가능성을 처음부터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 번 터진 일이 또 한 번 터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그 세트 카드에 또 뭔가 있는 거겠죠?"
"또 맞췄어."
자신에게서 배우기라도 한 듯 유진의 도발적인 미소가 함께 하는 대답에, 위저드가 김이 새는 듯 허탈한 미소를 또 지어보였다.
"패가 0장이니까, 함정 카드 '제로 홀'을 발동한다. 이걸로 필드의 카드를 전부 파괴!"
기습적으로 발동한 함정 카드의 영향으로 허공에 시커먼 구멍이 뚫린다. 구멍은 진공청소기마냥 필드 일대를 버티고 있던 카드들을 물불 안 가리고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니비루'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필드가 청소되어간다.
"당신도 어지간히 카드를 모으셨나 봐요."
"여긴 그럴 기회가 많으니까. 덱 한 두개 짜는 건 금방이겠더라고."
"하긴 그렇습니다."
승패가 어떻게 갈릴지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일은 없으리라.
하지만 위저드가 유진을 상대하면서 계속 살펴보고 있는 바, 적어도 기세에 눌린 듯한 모습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이 지긋지긋한 승부를 어떻게든 끝내버리고 싶다는 일념이 엿보일 뿐.
허공의 구멍이 비로소 역할을 마친 듯 자취를 감추자, 위저드가 감탄인지 탄식인지 알기 힘든 반응을 보낸다.
"역시, 승부란 끝까지 알 수가 없네요."
"내 생각도 그래."
"그러시겠죠. 기껏 기회를 잡아도 눈앞의 적을 전멸시킬 수가 없다니."
"……"
"하물며, 그게 오히려 위기를 부추기는 꼴이 될 줄이야."
유진은 간신히 입에 배려던 미소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눈 앞에는 확실히 버티고 있는 것이 보인다. 여전히 온몸이 얼음으로 뒤덮인, 어쩌면 얼음 그 자체로 이루어졌을지도 모르는 용 한 마리가.
"'코키토스'는 상대 효과로 파괴되지 않는 몬스터. 순간의 선택이 또 행운을 불렀네요."
결과가 이렇게 될 것임을 유진도 알고는 있었다.
그저 '푸르가트리오'의 연속 공격에 차례차례로 LP를 깎이고 패배하느니, 그 연속 공격이라도 막아보자는 선택을 취했을 뿐.
설령 그 결과가 다시 무방비 상태에 처하게 된다는 것이라도 말이다.
"그럼 배틀. '코키토스'로 다이렉트 어택."
[서문유진: LP 2700 → 900]
'코키토스'가 힘차게 내뿜는 숨결은 순수한 냉기였다. 절대영도에 필적하는 숨결에 맞은 몸은 급속도로 감각이 둔해진다.
그리고 점차 몸이 녹으면서 차갑다 못해 뜨거워지는 감각이 찾아왔다. 찢어질 듯한 통각과 함께. '천룡설옥' 때 느꼈던 추위가 직접 몸속으로 강타해오는 것만 같다.
"할 일은 끝났으니 이만 턴을 넘겨야겠는데…, 괜찮으세요?"
그런 고통의 여파에 아직 헤어나오지 못한 유진을 향해 공격을 내린 장본인이던 위저드가 묻는다.
경련을 일으키듯 잠시 부들부들 떨던 유진은 이를 악 물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태였다.
베이고, 찔리고, 얻어맞고, 지져지는 등, 단 몇 분의 순간마다 평생 받을 온갖 폭력을 짧은 순간에 다 맛보았다.
그러고도 감정에 몸을 맡긴 채 용케 버티고 서있는 유진이었으나, 감각기관이 혹사한 나머지 연료가 될 감정마저 LP와 함께 바닥나고 있는 것만 같다.
다리가 균형을 유지하는 것조차 버거워 주저앉을 뻔한 것을 유진은 간신히 딛고서 버텼다.
'아씨, 이러면 안 되는데…'
LP가 남아있으니 아직 듀얼은 끝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몸은 서서히 피로에 잠식되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한계라며 비명을 질러오는 것 같다.
아지트로 돌아오고 나서 휴식을 조금이라도 취했더라면 그나마 더 말짱하지 않았을지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쉴 틈이 오지를 않으니 어쩔 수가 없다. 끝내야 할 승부가 좀처럼 끝나지를 않으니까.
비장의 카드가 될 수 있었을 패를 아낌없이 써대도 상대는 끝까지 버티고 있다.
심신 양쪽으로 피곤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벗어날 수가 없다.
따지고 보면 한시적으로나마 동료가 되어줄 것 같았던 트릭스가 뒷통수를 쳤으니까 이 지경까지 온 것이다.
끝까지 도움이 안 되는 녀석이었다며 유진은 속으로 탓해보았다.
'그래, 알아. 안다고. 약하면 어떻게 되는지, 지면 어떻게 되는지. 근데 어쩌란 말야.'
최후를 앞둔 순간 진심이 드러난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자신을 기만해왔던 그 아이의 언동들 중에서 적어도 그 말 만큼은 진심이었으리라.
하지만 굳이 필요없는 친절이기도 했다. 그런 것 쯤이야 이 환경에 버티다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밖에 없으니까.
지고 싶은 생각은 죽어도 없다. 그럼에도 심신의 피로가 이 승부를 계속해야 되는 의미를 따지게 만든다.
문득 유진의 머릿속은 다시 떠올려버렸다.
큰맘먹고 출전한 대회의 대전 상대에게 쩔쩔매던 상황을. 어쩐지 열받던 상대의 그 미소를.
지금을 버티면 또 뭐가 있을지, 자신이 정말로 이길 수나 있을지 스스로에게 쪼아대듯 묻던 그 순간을.
마치 먼 날의 과거였던 것처럼 기억 속에서 들춰보게 된다.
극한 상황 속에서 정신이 무뎌져가는 나머지, 지금이 그 상황과 별 차이 없지 않을까 하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피곤하시면 쉬는 것도 자유이긴 한데,"
그런 상황에서 머릿속 밖에 있는 목소리가 끼어든다.
잠시 뜸을 들이는 동안 위저드는 그의 상태를 낌새로 다 눈치챈 모양이었다.
"적어도 듀얼이 끝난 다음에 부탁드릴게요. 뭣하면 계속 편안해지는 쪽도 나쁘지는 않을지."
"시끄러워."
그런 조롱을 받아치면서 유진은 숨을 고른다.
그 다음 아직 채 녹지 못한 몸의 감각을 확인하듯, 한 손으로 제 뺨을 찰싹 때렸다.
'아니, 정신 차리자. 어쨌든 지면 다 끝이잖아.'
진다고 해도 다음을 위해 정진할 수 있었던 그 때와 지금을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언젠가 이길 수 있을지 모른다가 아니라, 지금 당장 이겨야 한다.
나약해지는 순간에 패배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엔드 페이즈에 '에어로그린'의 ③의 효과로, 이번엔 '코스모화이트'를 부활!"
[ET레인저 코스모화이트: 사이킥족 / LINK-4 / 빛 / ATK 2500 / 링크 마커 ↑←↓→]
다시금 정신을 추스려가는 유진의 곁에는 방금 되살린 허연 몬스터가 보인다.
아버지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던 수상한 녀석이 힘을 보태주겠다고 하지 않았는가. 함께 하겠다고 말은 해주지 않았는가.
기껏 시작한 첫 공투를 이런 식으로 끝낼 수야 없다.
"그리고 내 턴이야."
앞으로 뽑는 카드에 남은 가능성을 건다. 아무리 치밀하게 과정을 계산한다 해도 그 행위는 도박에 지나지 않는다. 이전에도, 앞으로도, 듀얼을 하는 그는 그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정신을 차츰차츰 갉아먹어가는 운수가 이번에는 어떤 대답을 보냈을 것인가. 유진은 마모되어가는 정신을 부여잡고서 바로 확인해보았다.
[서문유진: 패 1장]
유진은 한 순간 굳어있는 듯 보였다.
그 반응의 의미를 위저드가 살펴보기도 전에, 유진은 답을 바로 드러내버린다.
"속공 마법 '대욕의 항아리'. 이걸로 제외된 각자의 몬스터 중 3장을 주인의 덱으로 되돌린다."
"흠."
발동된 카드에 위저드가 다소 석연찮은 반응을 보낸다.
유진 입장에서 봐도 나올 만한 반응이었다. 그가 쓰는 테마는 덱과 묘지 순환에 기댈 뿐, 제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타입이 아니니까. 전적으로 상대가 제외 관련 카드를 써준다는 전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즉, 이런 카드를 굳이 투입할 만한 이유도 웬만해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트릭스의 듀얼에서 유진은 경험했다. '명추리'를 쓰는 순간 체인 발동된 '응전의 G'의 효과로 덱이 송두리째 제외당할 뻔한 사태를. 그리고, '하루 우라라' 같은 카드가 '무덤의 지명자'나 '무덤 홀' 같은 카드에 의해 무력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관련 인물인 현재 상대 또한 비슷한 방식으로 뒷통수를 칠 수 있다는 우려를 품었기에, 그저 쓸모없는 패로 전락할 수 있다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1장이나마 투입한 카드였다.
그리고, 그 선택이 얼떨결에 하나의 길을 마련해준 것이다.
"되돌릴 카드는 '하이드로블루', '알팡', 그리고 네 묘지의 '알레이스터'야."
"오호라, 그러다 다음 턴에 뽑아버리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
"그런 것까지 고려할 처지가 아니라서. 그럼 1장 드로우."
어차피 1장째든 2장째든 '알레이스터'가 다시 잡힐 가능성을 완전히 떨친다는 것은 불가능. 하다못해 그 역할을 운에 맡기게 한다는 점에서 '대욕의 항아리'는 그 역할을 해내줄 것이다.
"2장째 '명추리'. 레벨 대."
"1로 가죠."
이번에도 '알팡'을 저격하려는 모양이다. 하지만 어떤 레벨을 고르든 '초량'들간의 연계를 통한 엑스트라 덱 전개를 완전히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물론 운만 따라준다면.
"…그럼 이번에 나오는 건 2장째 '레드레이어'. 특수 소환시 ①의 효과를 써서 방금 묘지로 간 '알팡'을 회수. 그리고 '알팡' 소환."
[초량사 레드레이어: 전사족 / 화염 / 레벨 5 / ATK 2000 / DEF 800]
[초량요정 알팡: 천사족 / 빛 / 레벨 1 / ATK 0 / DEF 0]
"또 나와버렸네. 당신이 계속 막으려 했던 카드가."
"호쾌하네요. 스릴이 넘쳐요. 다음 뽑을 카드라는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을 맡기다니. 당신도 진정 즐길 줄 아는 분이셨군요."
실컷 조롱하라지. 유진은 그렇게 속으로 대꾸해주며 여태껏 막혔던 전개를 마저 하기로 한다.
"알팡의 ①의 효과로 자신의 레벨을 '레드레이어'와 통일시키고, 2장을 오버레이! '초량기수 매그너라이거'를 엑시즈 소환!"
[초량기수 매그너라이거: 기계족 / 화염 / 랭크 5 / ATK 2600 / DEF 2000 / ORU-2]
이렇게 2마리의 몬스터를 꺼내는 데에 성공. 하지만 '코키토스'의 수비력을 넘어설 몬스터는 마련하지 못했고, '코키토스'는 상대의 효과 대상이 되지 않으므로 어차피 '매그너라이거'의 효과도 먹히지 않는다.
결국 여기까지였다.
"턴 엔드야."
"제 턴."
[위저드: 패 1장]
"바로 끝내야겠네요."
"좋아!"
추가 전개를 시도하지 않은 것을 보면 적어도 몬스터는 아니다.
덕분에 빠르게 돌아온 턴을 유진은 기꺼이 맞아들인다.
[서문유진: 패 1장]
"'죽은 자의 소생', 이걸로 묘지의 '에어로그린'을 부활! 덕분에 '코스모화이트'의 파워도 올라간다!"
[ET레인저 에어로그린: 사이킥족 / 바람 / LINK-2 / ATK 1800 ↑→]
[ET레인저 코스모화이트: ATK 2500 → 3000]
효과가 안 먹히는 상대라면 정면으로 때려부수는 수밖에.
"배틀! '코스모화이트'로 '코키토스'를 공격!"
현란하게 휘둘러지는 지팡이 끝으로부터 광선이 뿜어져나온다. 그 일격은 기어이 얼음의 몸뚱아리를 분쇄해냈다.
이로써 길이 완벽하게 트였다.
"'에어로그린'과 '매그너라이거'로 다이렉트 어택!"
[위저드: LP 8000 → 3600]
'에어로그린'의 발차기, 그리고 '매그너라이거'의 전신을 맡긴 돌격이 몬스터를 잃은 플레이어에게 작렬한다. 이로써 줄어들 생각을 않던 LP에 처음으로 금이 간다.
드디어 처음으로 길이 열린 셈이다.
"아야야…, 한 방에 몰아치니까 꽤 아픈데요."
'매그너라이거'의 중량에 뺑소니 당하듯 튕겨나갔으면서도, 그는 다시 태연한 모습을 되찾으며 일어선다.
이쯤 되면 그저 허세로밖에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턴 엔드."
"그럼 제 턴이죠."
[위저드: 패 2장]
[서문유진: 패 0장]
이번에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만에 하나 3장을 전부 덱에 투입했을 '소환사 알레이스터'를 뽑았다면 결국 '소환수'는 다시 필드에 현현해버릴 것이다.
하지만 유진에게는 상대 턴에 파괴 효과를 쓸 수 있는 '매그너라이거'가 버티고 있다. 파괴 내성이 있는 '코키토스'를 마침내 격파했으니, 2장째 '코키토스'라도 뜨지 않는 이상 그 파괴 효과에 무너지게 되어있다.
길이 완전히 막히지는 않을 것이다.
"…몬스터를 세트."
그리고 상대가 취한 행동에 유진은 절로 코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 순간 '매그너라이거'의 ②의 효과. 상대 몬스터 하나를 파괴한다."
[초량기수 매그너라이거: ORU-2 → 1]
'매그너라이거'가 입으로 내뿜는 포격에 스러져가는 뒷면 표시 몬스터의 정체는 '마기스토스 그리모어 크로울리'.
자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몬스터였다. 역시 뒷면 표시로 꺼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으리라.
그리고 이제, 그에게 남은 방법은 없는 모양이었다.
"역시, 승부의 세계는 알 수가 없네요. 여기까진가 봅니다."
마지막 몬스터마저 날아가버린 휑한 필드를 앞두고서, 위저드는 여전히 속편해보이는 감상을 내뱉는다.
"당신도 끝나는 게 두렵지 않나요?"
"…뭐?"
"아, 질문할 필요가 없었죠. 끝나는 게 두려우니까 저하고, 그리고 그 전부터 당신을 노린 상대들과 맞서오셨을 텐데."
"갑자기 뭐야?"
"그런데도 유한한 삶이라면 피할 수 없는 게 끝이란 거겠지요. 어떻게 살고 무엇을 누리든 그건 피해갈 수 없습니다."
왜 이런 말을 늘어놓고 있을까.
유진은 이를 유언 비스무리한 소리라 받아들이고 싶었다. 여전히 패에 뭔가가 또 남아있는 상황은 사양이다.
"그런 미래를 앞두고 여태껏 얻어온 걸 아까워하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 욕망에 스스로의 한계를 체감하는 자신이 있습니다. 그런 한계조차 뛰어넘는 뭔가를 이뤄보고 싶었습니다. 그게 잘못일까요?"
"당연히 잘못이지. 그런 게 목적이라면, 하다못해 남한테 도움이 되는 걸 하면 됐잖아."
"글쎄. 모든 이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란 건 없습니다. 누군가가 이익을 보면 다른 누군가는 손해를 보기 마련이죠."
"그래서?"
"제가 해온 일도 분명 누군가에겐 도움이 됐을 거란 의미입니다."
"개소리 집어치고."
유진은 더이상 들을 가치가 없는 궤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든 날 해치려고 했잖아. 그래, 네 말대로 끝나기 싫으니까 너같은 놈들한테 절대 안 질 거야."
"그렇군요. 살아남으려면 넘어야 될 장애물. 즐길 각오를 안 하는 당신께, 저는 그 정도가 고작이겠죠."
마음에도 없어보이는 자학과 동시에 쓴웃음.
"그치만 유감이네요.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은데, 아직 도달해야 할 진실이 남았는데. 턴을 받은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게 미련을 내보이고 있음에도 위저드는 최후의 무기가 될 카드를 쓰지 않는다.
그대로 그는 자신의 차례를 넘기는 것이었다.
"그러니, 당신께 기회를 넘겨드릴 수밖에. 턴 엔드입니다."
"…내 턴이야!"
[서문유진: 패 1장]
다 내려놓은 듯한 저 반응을 믿어도 될까.
유진은 최후의 턴이 돌아온 순간에도 고민해야 했다.
위저드에게 남은 패는 딱 1장. 만약에 저쪽도 '니비루'같은 카드가 남아있는 것이라면 쓸데없이 소환을 남발해서 기회를 주는 짓은 삼가기로 한다.
요컨대, 그냥 공격한다는 뜻이다.
"배틀, '에어로그린'으로 다이렉트 어택!"
[위저드: LP 3600 → 1800]
저항은 없다.
그렇다면 다음 한 방은 정말로 최후의 일격이 될 것이다.
"끝이야! '코스모화이트'로 다이렉트 어택!"
이번 듀얼에 앞서 새롭게 추가된 전력인 '코스모화이트'.
그는 마침내 그 듀얼에서 질기게 버텨오든 적에게 최후의 심판을 날리고자 날아든다.
그러나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고개를 다시 든 위저드의 얼굴에 내비치는 것은 아직 거두지 않은 미소였다.
"──뭐, 지겠다는 말은 안 했지만요."
"!?"
"당신이 쓴 '제로 홀'처럼 자신의 패에 다른 카드가 없을 경우, 패에 있는 이 카드를 발동할 수 있습니다."
공격 선언은 이미 내뱉은 뒤였다.
늦었다며 숨이 멎으려는 찰나,
"함정 카드, '최후로의 동반'."
"…뭐!?"
예상밖의 카드명을 들은 유진은 당황한다.
"지금 이 공격으로 제 LP가 0이 되는 순간, 이 효과로 서로의 LP는 0이 됩니다."
'0'이라는 키워드가 그의 입밖으로 나온 직후, 발동된 카드의 이미지가 불길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이내 카드는 폭발하면서 주변의 시야를 가리기 시작했다.
폭풍이 온몸을 휩쓸자, 유진은 신음을 흘린 끝에 바닥으로 주저앉는다.
[서문유진: LP 0]
[위저드: LP 0]
'이게 무슨…?'
무승부.
어둠의 듀얼에서 겪으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한 사태에 유진은 전율하고 있었다.
혼란스럽다. 앞으로 자신은 어떻게 될지 잠깐의 짐작하기가 싫어진다.
아무 일도 없을 것인가, 아니면 저 자와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인가.
주저앉은 몸은 다시 일어서지 못한 채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여지껏 기력을 짜내며 버텨온 몸이 드디어 한계라고 부르짖는 모양이었다.
"또 아슬아슬했어요. 제 때 안 뽑혔으면 어떻게 됐을지."
"왜 그런 걸?"
"글쎄요. 실수로 들어갔나?"
같잖은 변명이다. 그럼에도 무슨 꿍꿍이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불안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만약 그런 카드를 쓸 바에 평범하게 공격에 대비한 카드를 준비해 놓았더라면, 자신이 패배할 가능성은 더욱 늘어났을 것이다.
"어쨌든 답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모양입니다. 감사드려야겠네요."
"답…, 이라고?"
"뭐겠습니까. 재버워키가 누군지에 대해서죠. 소거법을 적용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 말은 진심일까. 아니면 끝을 앞둔 자가 발버둥으로 내뱉는 허언일까.
어쨌든 LP가 0이 되었으니 끔찍한 결과가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였으나, 1분이 가깝도록 시간이 지나도 특별한 변화는 없다.
디젠에서도 별다른 반응은 느껴지지 않고, 위저드 쪽에서 벌칙을 주려는 기미도 없다.
정말로 듀얼은 이렇게 끝난 모양이었다.
다시금 혼란이 찾아오는 유진의 머리를 진정시키려는 듯이 위저드가 또 뜻밖의 발언을 꺼낸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부터 찾아뵐 분이 있거든요. 괜찮으시다면 같이 찾아가 주시겠습니까?"
아마도 재버워키로 점찍어 놓은 인물을 찾아가려는 것이리라.
물론 재버워키가 누군지는 유진 역시 궁금하긴 마찬가지다. 알아냈다고 한다면 그 정체를 같이 알고 싶은 마음이야 있다.
하지만 이 말을 과연 믿어야 할까. 그러기엔 함정이라는 티가 너무나 역력하다.
사실이라고 해도 유진을 먼저 상대하도록 시켜서 클리어를 위한 제물로 만들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니 선뜻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내가 왜? 방금 전까지 싸워놓고?"
"걱정 마세요. 당신이 그 분이 아니란 걸 확인한 이상 당장 재도전할 일은 없으니까."
'당장'이라는 말이 괜히 거슬리는 것을 기분 탓으로 여겨야 할지 유진은 망설인다.
어찌 됐든 아무 일 없다는 것을 확인한 탓인지 몸의 피로는 더욱 심해지는 모양이었다.
"따라만 가 준다면 여러가지가 해결될 겁니다. 잘하면, 이 게임을 끝내는 것도 가능하겠죠."
"설마, 그걸 내가?"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거 봐, 하고 유진이 생각하려는 찰나였다.
"되도록이면 당신이 무사했으면 좋겠거든요."
다음으로 들리는 말은 유진으로서 영문을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재버워키가 아닌 사람을 해치기는 싫다? 그런 뜻이라면 이미 자신을 거치기 전에 상대했을 희생자들은 뭐가 된다는 말인가.
더구나 계속해서 가벼운 모습만 보이는 그가 그럴 인정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어째…, 서…?"
"확신이 들어서요. 미궁을 빠져나가기 위한 실마리. 나아가 장벽을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 당신이야말로 그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재버워키의 것과 비슷한 에너지를 풍기는 디젠을 갖고 있다는 점을 통해 자신을 실마리로 여기고 있다. 그러니 함께 행동할 생각이다.
유진은 그의 제안을 그런 의미로 판단했다.
"어쩌시겠어요? 선택은 당신 몫입니다만."
거부할리가 없다.
위저드의 질문에는 그러한 속내가 담겨있는 듯 보였다.
그런 뻔히 내다보이는 질문을 유진은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한계를 맞이한다.
의식이 끊어진 몸은 그대로 털썩 엎어졌다.
----
또 몇 달만의 업로드입니다.
대체 저거 넣겠다고 얼마를 미룬거람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1.png](https://i2.ruliweb.com/img/23/04/09/18764ee6cdb20b132.pn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2.jpg](https://i2.ruliweb.com/img/23/04/09/18764ef6ae5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3.jpg](https://i2.ruliweb.com/img/23/04/09/18764efee69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4.jpg](https://i1.ruliweb.com/img/23/04/09/18764f1309f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5.jpg](https://i2.ruliweb.com/img/23/04/09/18764f13300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6.jpg](https://i1.ruliweb.com/img/23/04/09/18764f34efc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9.jpg](https://i2.ruliweb.com/img/23/04/09/18764f66bd1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10.jpg](https://i1.ruliweb.com/img/23/04/09/18764f716f3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11.jpg](https://i2.ruliweb.com/img/23/04/09/18764f7191f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12.jpg](https://i1.ruliweb.com/img/23/04/09/18764fa26aa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13.jpg](https://i2.ruliweb.com/img/23/04/09/18764fad7af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14.jpg](https://i2.ruliweb.com/img/23/04/09/18764fbfe1e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15.jpg](https://i2.ruliweb.com/img/23/04/09/18764fcdeb0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16.jpg](https://i1.ruliweb.com/img/23/04/09/18764fd4ff5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17.jpg](https://i2.ruliweb.com/img/23/04/09/18764fee09b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18.jpg](https://i3.ruliweb.com/img/23/04/09/1876502fda7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19.jpg](https://i1.ruliweb.com/img/23/04/09/18765039f5b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20.jpg](https://i3.ruliweb.com/img/23/04/09/1876503a11b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21.jpg](https://i1.ruliweb.com/img/23/04/09/18765045c40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22.jpg](https://i3.ruliweb.com/img/23/04/09/1876506dbda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23.jpg](https://i3.ruliweb.com/img/23/04/09/187650757cc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24.jpg](https://i2.ruliweb.com/img/23/04/09/1876508a59b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25.jpg](https://i3.ruliweb.com/img/23/04/09/187650960a8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26.jpg](https://i3.ruliweb.com/img/23/04/09/1876509ed93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27.jpg](https://i1.ruliweb.com/img/23/04/09/187650a9e9f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28.jpg](https://i1.ruliweb.com/img/23/04/09/187650adf47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29.jpg](https://i3.ruliweb.com/img/23/04/09/18765103ce3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30.jpg](https://i3.ruliweb.com/img/23/04/09/18765112d7e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31.jpg](https://i2.ruliweb.com/img/23/04/09/18765117653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32.jpg](https://i1.ruliweb.com/img/23/04/09/1876513f338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33.jpg](https://i2.ruliweb.com/img/23/04/09/1876513f98e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34.jpg](https://i2.ruliweb.com/img/23/04/09/18765159ec8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35.jpg](https://i3.ruliweb.com/img/23/04/09/18765176947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36.jpg](https://i1.ruliweb.com/img/23/04/09/1876517b3e4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37.jpg](https://i3.ruliweb.com/img/23/04/09/1876518728f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38.jpg](https://i3.ruliweb.com/img/23/04/09/1876519a49e20b132.jpg)
![[팬픽] 유희왕 D-GEN TURN-21 ②_39.jpg](https://i1.ruliweb.com/img/23/04/09/187651bc35020b132.jpg)
(IP보기클릭)211.198.***.***
이 정도 성의라면 늦게 올려도 인정이라 생각합니다
(IP보기클릭)58.143.***.***
(IP보기클릭)121.173.***.***
드로우 부스팅 카드 많다?!
(IP보기클릭)211.198.***.***
이 정도 성의라면 늦게 올려도 인정이라 생각합니다
(IP보기클릭)58.143.***.***
| 23.04.09 18:35 | |
(IP보기클릭)121.173.***.***
드로우 부스팅 카드 많다?!
(IP보기클릭)58.143.***.***
패가 모자라 패가 모자라 | 23.04.09 18:50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