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졸리니 탄생 100주년을 맞아 영미권에서는 기념 회고전이 쭉 열리고 있다. 몇 년 전에 파졸리니의 '악명 높은' 유고작을 보고 또 파졸리니의 데뷔작을 보았다. 아마 작년 여름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한 것으로 알고있다. 100주년이라던가 그런 짜잘한 기념으로 2010년도부터 바빴다. 2017년부터 이어진 부고 소식. 2차대전 후 베이비부머 세대 거장 뮤지션들이 줄줄히 사망했다. 클래식계도 그렇다. 마리스 얀손스의 사망 소식 등등. 앞으로도 다른 이런 일이 쭉 생길 것이다. 나는 사실 여기서 의무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사람들의 음악을 알고있는 한 사람으로써. 하지만 의무감에 도취되어 위험한 사람같이 행동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사에 두드러지는 현상중에 하나는 이탈리아에는 시인을 겸한 영화인이 있다는 것이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도 시와 관련이 있고 오늘 얘기할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도 그렇다. 반면 한국에서는 소설가의 영향력이 있었다. 김승옥과 최인호의 소설과 영화 시나리오가 그렇다. 이 두 사람의 글은 한국의 시대정신이었다. 1920~30년도 일제하 한반도의 문예운동이나 카프운동은 문학인과 영화인의 만남으로 이루어졌고 유명하다시피 심훈은 영화에 일가견이 있던걸로 유명했다. 뉴 아메리칸 시네아스트중 한 명인 하길종 감독도 빼놓을 수 없다. 글 감각 영화감각 모두 가지고 있었다. 다만 부각이 되지 않은 것은 한국영화가 겪은 취급도 있겠으나 지식인들이 활동하던 잡지들이 강제 폐간되는 일이 언론통폐합이라는 이름하에 일어나고 결국 이런 발행물들이 사라져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전 시대의 당대 지식인들의 말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이다. (유현목 감독도 감수성으로 문예영화를 찍었지만 문학을 창작하기 보다는 실험영화쪽에 비중이 크다고 생각한다.)
(사족, 이지만 시를 영화로 만들 수 있다면 그것도 나름 재미있었을거라고 생각도 든다. 사실 뤼케르트의 시가 말러의 가곡 등으로 만들어지는 등 시가 가곡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김수영 시를 영화로 만들면? 김수영 시인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실험영화같지 않을까?)
영화도 영화세계도 독특하다. 워낙 독특해서 부감이 되어 초월한 이미지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순전히 탁월한 예술적 효과 때문이다. 독특한 작품들도 많다. (욕은 아니고) 매너리즘도 없다. 끝내 그를 테러로 죽음으로 몰고간 살로 소돔의 120일까지도.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사회파라는 양식을 가지고 만들어진 작품들이 있다. 이들 작품은 '절제된' 양식으로 산업적인 희비극의 피카레스크를 보여준다. 현실이 그럴 수도 있다는 이름하에. 하지만 파졸리니는 다르다. 성숙된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의 영화세계는 그 지점에서 독특한 결정을 한다. 나는 파졸리니라는 인간의 숭고함을 여기서 느낀다. 파졸리니는 영화에도 빠삭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내 파졸리니의 글이 적힌 책이 책상에 놓여있다.) 그러면서도 대다수의 영화광같이 자기의 예술적 언어를 다소곳이 설명하고 자기의 영화이론을 만들고 당대 고다르의 영화를 비평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나는 오랜만에 잠시 내려놓았던 내 순수한 문화 애호가의 눈을 다시 가지게 된다. 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이 아카토네라는 영화를 보며 나는 초기작을 보는 기쁨도 누린다. 대가들의 조언 중에 하나는 이동 샷을 남발하지 말라는 것이다. 근데 나는 이 몇 개의 이동 샷, 트래블링 샷이 나올 때 기분이 좋았다. 뭔가 활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작곡가들의 후기 교향곡, 브루크너 7 8 9번과 말러의 8 9 10번 교향곡같이 같은 작곡가인데 뭔가를 초월한 것과는 다른 '쾌감'이랄까. 음 이건 내 개인적인 감상이긴 하다. 또 작품 세계를 아우르는 테마들과 쇼트들도 보인다. 리얼리즘에 관해서도 생각해볼 거리가 있다. 사실주의는 예술을 바라보기 때문에 얼마든지 예술을 위한 예술이 얼마든지 될 수도 있다. 굳이 사회적이라고 해서 사회적 표면에만 머무를 필요도 애당초 없다. (이런 부분이라면 김기영 감독의 리얼리즘도 해당될 수 있을 것이다. 화녀의 장르적 쾌감이 그렇듯이.) 이런 부분도 확인할 수 있어 좋았다. 거칠기도 하다. 하지만 감수성도 철철 넘친다. (요즘은 감수성때문에 국가예산을 쓰기도 하는 시대 아닌가.)
내용은 어둡다. 뭐 네오 리얼리즘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그렇다. 동정의 여지가 없는 독특한 영화라고도 한다. 나는 그런 다르지만 결국은 같은 획일적인 어휘 남발보다는, 감정선과 인물과 이야기를 조형하는 방법을 보고 싶다. 파졸리니라는 사람이 얼마나 성숙된 시선을 가진 천재인지. 내용은 운명을 향해 나아가는 촌동네의 인물들 이야기이다. 이렇게 보면 단순할 수 있겠으나 참 지휘가 잘 되어있다. 네오 리얼리즘이나 영화의 내용이나 구성상 어떤 선입견을 요구하게 된다. 이게 어떤 이야기를 하기에는 무언가를 조그맣게 한정짓게 한다. 하지만 좋은 의미로 이런 것들은 산산조각난다. 뭐 박찬욱 영화 같기도 하다. 모던하다. 연기력도 좋다. 페데리코 펠리니를 얘기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난 지금은 파졸리니가 더 강렬하다고 느낀다. (네오 리얼리즘의 흐름에도 각기 다른 대가들의 터치가 흘러서 폭 넓은 감상을 하는 기쁨을 누린다. 20세기 만세!) 이번에 나는 파졸리니라는 사람에 매력을 느낀다.
(다만,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자신의 책에서 파졸리니 중후반기 영화에서 편집이 누더기 조각같다고 불만을 표현한 바는 있다.)
감독 자체가 교양이 흘러넘쳐서 그런지 문화적으로 참 읽힐게 많아 흥미롭다. 이렇게 보면 된다. 클래식 음악도 흥미롭게 쓰인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음악이라던가. 바흐 음악에 인간의 모든 것이 집약되어있다고 하는데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런 것을 느끼기도 한다. 바흐 바흐 관용구처럼 이야기를 하지만, 새삼 바흐 음악 속에 담겨있는 것이 이렇게 참 진한 농축액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마 이런 선곡을 즐겨하는 거 같다. 하긴 전설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도 그의 영화에서 연기를 하기도 했으니까. (클래식 좋아하는 분들 중에 영화 좋아하는 분들 있으면 영화 속의 클래식이라는 테마로 접근해보는 것도 좋다. 잉그마르 베르히만의 영화에서도 클래식이 나오는데 이렇게 접근하면 흥미롭다. 심지어 베르히만의 마지막 영화 제목은 음악 양식중에 하나인 사라방드이다.)
이 영화 크레딧에는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나온다. 조감독을 맡았던 베르톨루치나 후에 세르지오 레오네와도 영화를 찍는 토니오 델리 콜리 등. 특히 토니오 델리 콜리의 '얼굴' 클로즈업은 이 사람이 후에 '얼굴의 지리학'을 만드는 사람이였다는 것을 확인하게 한다. 또 조감독이었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파졸리니는 영화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한다'고 소감을 남긴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