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의 초반부.
19세기의 어느 천재 시간 여행자는 타임머신을 만들어 먼 미래로 모험을 떠난다.
시간이 가속하며 건물들이 생겼다가 사라지고, 태양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빛의 띠가 되고,
정신 차려 보니 도착한 시점은 80만 년 후.
후텁지근한 기후에 푸르른 초원과 숲만 끝없이 늘어진 런던이었다.
이 시점의 인류는 죄다 조그마하고 중성적인 '일로이' 로 진화한 상태였는데,
시간여행자를 보고 소나기 타고 태양에서 떨어진 거냐(...)라고 물어볼 정도로 바보같고,
인내심도 호기심도 경계심도 뭣도 없었다.
문제는 얼마 후 타임머신이 쥐도새도 모르게 사라져 버려서 시간 여행자는 미래에 고립되는데,
탐사하면 탐사할수록 이상한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능이라곤 없는 일로이들은 이상하게 다들 옷과 신발을 가지고 있었고, 좀 낡았지만 큰 궁전 비슷한 건물에 살고 있었다.
더 이상한 건 묘지나 화장터 등 죽음에 관련한 시설도 없었고,
그것만 아니라 그냥 늙은 일로이 개체 자체가 존재하질 않았다.
시간 여행자는 곧 더 이상한 사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지표면 곳곳에는 정체불명의 우물과 탑이 있었고,
우물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공기와 탑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등으로 추측했을 때
뭔가 지하에 대규모 환기 시설이 존재하는 게 확실했다.
그리고 흰 털로 뒤덮힌 또 다른 원숭이 같은 종족이 기계장치로 가득한 지하에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몰록이라는 육식성 인류로, 빛을 무서워하고 더 공격적이었다.
문제는 이 세상에 가축으로 쓸 만한 동물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리고 모든 일로이들은 지하로 연결된 시설을 언급하기만 해도 공포와 혐오에 질려 달아났고, 특히 어두운 걸 엄청나게 무서워했다.
이 부분의 묘사는 내용을 다 알고 있어도 무서워질 정도로 생생하다.
뭐 너무 유명한 책이라 다들 대충 알고는 있겠지만,
일로이는 끝없는 향락과 안락에 물들어 가축으로 퇴행한 상류층의 후손,
몰록은 지하세계로 내몰렸다가 식량이 떨어지자 퇴행한 상류층을 잡아먹기 시작한 노동자의 후손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이건 시간 여행자가 추측한 결론이긴 한데, 대충 99%는 맞을 듯.
사실 몰록도 좀 똑똑하다 뿐이지 주먹질에 머리가 부서질 정도로 나약해진 건 마찬가지라 그냥 인류 자체가 퇴행한 상태.
소설에서 삭제된 분량에선 시간 여행자가 더 더 먼 미래로 가서 토끼인지 캥거루인지 모를 기묘한 생명체로 퇴화한 인류와,
그런 인류를 잡아먹는 10미터짜리 지네를 보기도 한다.
기술과 자본주의에 대한 대책없는 오만과 낙관에 경종을 울리는 내용이고,
그리고 더 넓게 잡아 시간 속에서 인류라는 종의 보잘것없음을 보여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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