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4호
나는 서울 외곽의 한 오래된 원룸 건물에서 2년째 자취 중이다. 회사와 가깝고 월세도 싸서 만족하며 살고 있었다. 건물은 5층짜리였고, 나는 403호에 살았다. 복도 끝, 바로 옆방이 404호였는데, 입주 이래로 단 한 번도 그 방에 사람이 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항상 불이 꺼져 있었고, 우편함은 텅 비어 있었다.
사실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원룸 건물에 빈 방 하나쯤 있는 건 흔한 일이니까. 그런데 6개월 전부터 404호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가구를 끄는 듯한, 바닥을 긁는 듯한 소리. 처음엔 윗층 소리겠거니 했다. 그런데 밤마다, 꼭 새벽 2시만 되면 그 소리가 들렸다. 벽 너머, 바로 옆에서. 내가 TV를 껐을 때 더 또렷하게 들렸다.
처음 며칠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무시했다. 하지만 소리는 점점 길어지고, 다양해졌다. 누가 벽을 손으로 두드리는 듯한 ‘툭툭’ 소리, 무언가를 바닥에 던지는 소리, 가끔은 숨소리처럼 느껴지는 낮은 숨결까지. 어느 날은 잠결에 누가 벽 너머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 같은 소리도 들었다. 희미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지훈아…”
나는 겁이 났다. 관리실에 문의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404호요? 그 방은 아직 빈 방이에요. 열쇠도 관리실에서 보관 중이고요.”
나는 믿을 수 없었다. 직접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 방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은 없었다.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나는, 복도 CCTV라도 볼 수 없냐고 물었다. 관리인은 약간 망설이다가, 다음 날 녹화본 일부를 보여주었다.
그날 밤, 영상에는 내가 자던 그 시각. 복도에 아무도 없어야 할 그 시각에, 누군가가 404호 문 앞에서 서성이는 장면이 찍혀 있었다. 허리가 굽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으며, 얼굴은 화면 밖으로 어둠 속에 묻혀 있었다. 그 존재는 403호, 즉 내 방문을 쳐다보고 서 있었다.
“혹시… 다른 층 입주민이 장난 친 건 아닐까요?” 관리인은 그렇게 말했지만, 그 존재는 분명히 문틈에서 나온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404호 우편함에 무언가 들어와 있었다. 낡은 엽서 한 장. 누렇게 바랜 그 엽서에는 붉은색 펜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넌 내 자리를 뺏었어."
엽서를 본 이후, 나는 밤마다 눈을 제대로 붙일 수 없었다. 매일 새벽 2시, 여전히 어김없이 들려오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는 점점 더 뚜렷하고 가까워졌다. 마치 벽 너머가 아니라, 내 방 안 어딘가에서 나는 것처럼.
하루는 미친 듯한 소리에 견디다 못해 새벽 2시에 일어나 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건물 전체가 적막했다. 엘리베이터도 멈춰 있었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404호 문 앞에 조심스레 다가갔다.
문 손잡이에 손을 올리자, 서늘한 기운이 손끝에 스며들었다. 문은 잠겨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귀에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와.”**
등줄기가 얼어붙었다. 나는 황급히 403호로 뛰어 들어왔다. 방문을 잠그고, 불을 켠 채로 아침까지 깨어 있었다.
그날 이후, 내 방에서도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휴대폰 알람이 혼자 울렸다. 내가 설정하지 않은 시간에. 새벽 2시.
그 다음엔 벽에 걸린 시계가 이상하게 움직였다. 새벽 2시가 되면 초침이 멈췄다가,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 회사에서 돌아온 나는 내 책상 위에 익숙한 엽서 한 장을 발견했다. 이번엔 검은 잉크로 쓰여 있었다.
> “왜 아직도 여기 있어?”
나는 곧바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사라도 해야 했다. 하루라도 더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그런데… 나가려는 날, 건물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관리실에서 관리인이 나를 불렀다.
“지훈 씨, 404호 열쇠 가져가신 거… 오늘 반납하셔야죠.”
나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저… 열쇠 안 가져갔어요.”
관리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아니에요. 어제 지훈 씨가 직접 사인하고 가져가셨어요. CCTV에도 찍혔던데요?”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내 핸드폰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번호는 ‘404’. 통화 버튼을 누르자, 수화기 너머로 누군가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이제… 나랑 바꿔줘야지.”**
나는 핸드폰을 던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정신을 붙잡으려 애썼지만, 온몸에 퍼지는 공포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관리인은 계속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지만, 나는 귀에 들리지 않았다. 손에 땀이 흥건하게 맺혔고, 현관문 손잡이를 잡자 미세한 진동이 느껴졌다. 살아 있는 것처럼… 아니, 마치 안쪽에서 누군가가 문을 붙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결국 그날, 나는 짐도 못 싸고 다시 403호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밤이 되자, 방은 더욱 차갑고 어두웠다. 형광등이 미세하게 깜빡였고, TV 화면이 혼자 켜졌다가 꺼지기를 반복했다. 새벽 2시. 시계 초침이 다시 거꾸로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누군가 내 방문을 두드렸다.
**“툭… 툭… 툭…”**
나는 숨을 죽였다. 그 소리는 아주 규칙적이었고, 서두르지 않았다. 마치 이미 내가 열어줄 걸 알고 있는 사람처럼. 몇 분 후, 조용해졌고, 나는 다시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방문 밑으로 무언가가 밀려 들어왔다.
**404호 열쇠였다.**
다음 날, 나는 회사를 병가 내고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 건물, 아니 404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야 했다. 몇 시간 동안 낡은 신문 스크랩과 지역 기사 아카이브를 뒤진 끝에, 하나의 기사를 발견했다.
> **2008년, 관악구 ○○동 원룸 건물서 20대 여성 변사체로 발견.**
>
> 당시 발견된 방은 404호. 피해자는 임신 중이었으며, 외부 자극 없이 방 안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됨. 관리인의 증언에 따르면, 해당 여성은 몇 주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으며, 소음이나 이상한 행동도 없었다고. 방은 이후 몇 차례 세입자를 받으려 했으나, 미계약이 반복돼 10년 이상 공실로 남음.
사진 속, 흐릿한 흑백 이미지. 그곳엔 낯익은 복도와 문이 보였다. 그리고…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흐릿한 사람의 형체.
나는 바로 관리실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좀 더 단호하게, 진실을 묻기로 결심했다.
“관리자님, 404호에 전에 누가 살았는지 말해주세요. 전부 다요.”
관리인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 방… 원래는 임산부 한 분이 살았어요. 아주 조용했죠. 근데… 출산 예정일을 앞두고 사라졌어요. 아무도 찾지 않았고, 며칠 후에야 이상한 냄새 때문에 발견됐죠.”
“그런데요?”
관리인은 목소리를 낮췄다.
“문제는… 그 이후로 거기 들어간 사람마다 이상해졌다는 거예요. 혼잣말을 하거나, 벽에 귀를 대고 들리는 소리에 답을 하거나. 마지막 세입자는 6개월 만에 사라졌어요. 짐도 안 챙기고. 경찰도 그냥 실종 처리했죠.”
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날 밤, 방에 돌아오니 책상 위에 노트 한 권이 놓여 있었다. 처음 보는, 낡고 오래된 노트.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나는 404호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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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의 표지를 넘기자, 첫 장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날짜가 적혀 있었다.
**[2008년 9월 1일]**
> “나는 벽에서 소리를 들었다. 매일 밤, 누군가가 아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처음엔 내 착각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없었다. 이미 사라졌으니까.”
나는 뒷골이 서늘해졌다. 계속 페이지를 넘겼다. 글쓴이는 점점 정신이 흐려지는 것처럼 보였다. 문장 사이사이에 겹쳐 쓰인 글자들, 뒤죽박죽인 날짜, 심지어 같은 문장을 반복하는 부분도 있었다.
> “나는 여기 있지 않아. 나는 그 방에 있어. 하지만 그 방은 여기 없어. 나는 그 방이야.”
마지막 몇 장은 글이 아니라 그림이었다. 모두 방 구조를 그린 듯한 평면도인데, 이상하게도 그림에는 벽 안에 또 다른 방이 있는 것처럼 그려져 있었다. 404호 안에 숨어 있는, 작고 사방이 막힌 공간.
그리고 그 공간 안에, 누군가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
> “문을 열면, 난 너와 바뀔 수 있어. 넌 내 자리를 뺏었으니까. 이제 돌려줘.”
나는 노트를 덮었다.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이번엔 발신자 표시도 없었다. 무심결에 받자마자 들려온 건, 아주 조용한, 낮고 탁한 목소리.
**“네가 그 방을 보고 있잖아. 안으로 들어와.”**
휴대폰을 떨어뜨리자, 동시에 형광등이 꺼졌다. 방 안은 암흑이 되었다. 정적 속에서, 무언가 ‘스르륵’ 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천천히, 그리고 분명하게… 내 침대 밑에서.
나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때, 벽에서 ‘툭’ 소리가 났다. 손바닥 하나가 벽지를 밀어내며 천천히 안쪽에서 튀어나왔다.
**“이제 네 차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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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질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새벽이었다. 형광등은 다시 켜져 있었고, 방 안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꿈이었을까?
하지만, 책상 위 노트는 그대로였고, 내 손엔 이상한 흙 묻은 열쇠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404호 열쇠였다. 뒷면엔 뭔가 날카로운 걸로 긁어 쓴 글자가 있었다.
> “복도 끝, 벽 틈 아래.”
나는 더는 피할 수 없다고 느꼈다. 이 일이 끝나려면, 내가 직접 404호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날 밤, 나는 후레쉬와 장갑,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복도로 나갔다. 404호 문 앞에 서자, 열쇠는 마치 자석처럼 딱 들어맞았다. 문을 열자, 오래된 곰팡이 냄새와 차가운 공기가 밀려 나왔다.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이상했다. 방의 구조가 도면과 미묘하게 달랐다. 나는 카메라 플래시를 켜고 벽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툭. 툭.”**
어느 지점에서, 소리가 달라졌다. **텅, 텅…**
비어 있었다. 그 벽 뒤에 뭔가 있었다.
벽지를 뜯어내자, 거기에 나무로 덧댄 문이 있었다. 손잡이도 없는, 철로 박힌 작은 문. 그 아래에는 금이 가 있는 틈이 있었고, 틈으로 무언가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어린아이의 손.**
나는 뒷걸음질쳤다. 방 안이 서서히 차가워지기 시작했고, 벽에 박혀있던 거울이 혼자서 떨리더니 ‘쨍’ 하고 깨졌다.
그 순간, 귀에 익은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지훈아. 엄마야. 문 좀 열어줘.”**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 목소리는 내 어머니 목소리였다. 분명히, 수화기 너머로도 아닌, 바로 내 등 뒤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어머니는 2년 전에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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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망치듯 404호를 빠져나왔다. 몸이 휘청이고, 호흡이 가빠졌다. 복도에 나왔을 땐, 건물 전체가 마치 몇 년은 버려진 듯한 느낌이었다. 벽지엔 곰팡이가 슬어 있었고, 형광등은 모두 꺼져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았다.
‘이상하다. 나 방금까지 이런 상태 아니었는데…’
나는 403호로 돌아갔다. 그런데 문이 없었다. 아니, 문은 있었지만… **내 호수는 사라져 있었다.** 벽엔 문짝만 있었고, 403이라는 숫자는 마치 지워지듯 벗겨져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느낌. 누군가가 말했었다.
> “나는 그 방이야.”
나는 다시 한 번 404호로 돌아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방은 더 이상 비어 있지 않았다.
가구들이 정돈되어 있었고, 낡은 침대 위엔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등만 보였다. 긴 머리, 앙상한 어깨, 무릎을 모으고 손을 깍지 낀 채 고개를 숙인 사람.
천천히, 그 존재가 고개를 돌렸다.
**“지훈아. 기억났니?”**
그 얼굴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그러다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듯 ‘딸깍’ 하고 맞춰졌다.
어린 시절, 어렴풋이 기억하던 어느 방. 어두운 곳에 혼자 있던 나. 누군가가 매일 밤 문 너머로 이름을 불렀다.
> “지훈아… 엄마 여기 있어… 문 좀 열어줘…”
그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 때문이었다.
> “그건 네 엄마가 아니야. 절대 문 열지 마.”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됐다. 그 목소리는 진짜 엄마였다.
아버지는 정신이 무너져가고 있었고, 어머니는 산후 우울증과 감금 속에서 아이 하나를 잃고, 또 하나는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방 안에 남겨졌다.
그 방이 바로, **404호**였다.
어머니는 그 안에서 혼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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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뒤로 물러났다. 눈물이 흐르고, 호흡이 가빠졌다. 그녀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이제 바꿔야지, 지훈아. 넌 이제 다 기억났으니까.”
“아니야… 그때 난… 나도… 모르고 있었어…”
“너도 그 방에 있었잖아. 잊은 거야. 아니면… 일부러 지운 거야?”
순간, 방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가구들이 무너지고, 벽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했다. 천장이 휘어지고, 바닥이 갈라졌다. 그 틈 아래엔 어둡고 축축한 무언가가 있었다. 땅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기억**이 고여 있는 **심연**이었다.
나는 빨려 들어가듯 바닥 아래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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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뜬 곳은… 병실이었다.
희뿌연 형광등, 창밖엔 어두운 비가 내리고 있었다. 침대 옆엔 간호사와 경찰 한 명이 있었다.
“지훈 씨, 정신 차리셨네요. 3일 동안 의식 없으셨어요.”
“여긴… 어디죠…?”
“서울 ○○병원입니다. 원룸 복도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셨습니다. 기억나시는 거 있으세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렴풋한 환영, 깨진 벽, 벽 너머로 들리는 소리… 그리고, 어머니의 얼굴.
경찰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404호에 들어간 기억이 있습니까?”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그 방은 10년 전부터 폐쇄된 공간입니다. 내부 벽체는 막혀 있었고요. 이상한 건… 당신이 발견된 위치입니다. 404호 안, 침대 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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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퇴원한 나는 짐을 챙겨 그 건물을 떠났다. 마지막으로 복도를 지나갈 때, 나는 다시 404호 문 앞에 섰다. 문은 봉인되어 있었고, 경찰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문틈 아래로 무언가가 밀려 나왔다.
**엽서 한 장.**
> “잊지 마. 너도, 그 방의 일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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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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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잡담] 챗지피티에게 무서운 이야기하나 말아 달라고 해봤다.
2025.04.13 (12:41:57)
